소설리스트

조선 수군이 되었다-12화 (12/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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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정

조선시대에 대한 불만과 날이 밝으면 다시 전쟁터로 나가야 한다는 부담감에 나는 다시 잠들지 못하고 생각에 잠겼다.

‘조선으로 떨어진 이상 현대로 돌아갈 방법을 찾기 전에는 어떻게든 조선에서 살아가야한다. 다시 돌아갈 방법이 있을지 없을지도 모르겠지만 우선은 어떻게든 조선에서 살아가야지. 다행히 조선에서 내 지위가 작지 않아. 양반 신분에 수군만호까지 역임하고 있으니 또 이번 왜변만 잘 끝나면 전쟁영웅이 될 것이니 포상도 받을 수도 있고 품계가 오를 수도 있단 말이야. 생각해 보니 조선에서 살아가는 것도 해볼 만 할 것 같은데‘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뜬 눈으로 밤을 새운 나는 닭이 우는 소리가 들리기가 무섭게 옷을 챙겨 입고 밖으로 나왔다.

날이 밝자 손죽도 해안가에 정박해 있던 왜선들이 일제히 돛을 올렸다.

다양한 크기의 세키부네(関船)로 구성된 선단은 돛을 활짝 폈고 함선 안에서는 노를 젓는 격군들은 열심히 노를 저었다.

“바람이 좋습니다. 내일 아침까지는 목적지에 도착할 것 같습니다.“

갑판위에 나와 선단의 방향을 인도하던 사화동의 보고가 긴시요라를 기쁘게 했다.

“좋아 서둘러서 안전히 뱃길로 안내해야 할 것이다.“

“예 알겠습니다.”

긴시요라는 오른 손으로 사화동에게 다가와 그의 어깨를 짚으며 말했다.

“이번에 잡은 노예들의 상태가 생각보다 좋다. 하지만 수가 너무 적어. 적어도 이천 이상은 잡아가야 하지 않겠느냐. 그 정도는 되야. 너도 이렇게 멀리까지 나온 보람이 있을 것이다.“

긴시요라는 말을 마친 후 껄껄 웃었지만 2000명이 넘는 조선인을 잡아가겠다는 말에 놀란 사화동은 놀란 기색을 감추기 위해 황급히 고개를 숙였다.

“예 그렇습니다.”

사화동은 긴시요라 앞에서 고개를 숙인 후 한동안 고개를 들 수 없었다.

‘수군 포로들을 비롯해 이미 잡혀있는 조선인의 수가 200명은 넘는다. 그런데 그보다 열배나 많은 조선인들을 잡아가겠다니‘

사화동은 긴시요라의 욕심에 놀랐지만 놀란 표정을 들키지 않기 위해 노력해야 했다.

전라좌수영 포구에는 판옥선 3척과 협선 4척이 정박해 있었고 그 앞에는 450여명의 군사들이 도열해 있었다. 녹도전선과 함께 출정할 좌수영 소속의 전선들과 좌수영 군사들이 포구 앞에 집결한 것이다.

출정준비가 끝나자 좌수영 우후 한정복은 좌수영의 관원들을 거느리고 포구로 나왔고 우후가 보이자 나와 출정군 장수들은 자세를 바로하고 우후에게 군례를 올렸다. 그 모습을 본 우후는 여유있는 표정으로 군례를 받으며 군사들 앞으로 나왔다.

“드디어 우리 전라좌수영의 정예병들이 그 용맹을 천하에 널리 알릴 기회가 왔다. 왜구들이 손죽도를 침략하여 백성들을 살육하고 약탈을 일삼고 있으니 천인공노할 일이 아닐 수 없다. 왜구들은 사납고 난폭하기로 유명하지만 충과 효를 위해 싸우는 군사가 아닌 이익을 쫓는 도적떼에 불과하니 우리 전라좌수영의 정예병들이 상대하지 못할 이유가 없을 것이다. 조선의 백성들을 살육하고 약탈한 왜구들을 토벌하기 위해 용맹하고 지혜롭기로 이름난 녹도만호 이대원을 주장으로 삼아 전라좌수영의 정예병들이 출정하니 왜구들을 한칼에 모조리 도륙하고 무사히 돌아올 것을 믿는다. 나아가 용감히 싸워 반드시 이기고 돌아오라“

우후의 연설이 끝나자 출정군의 주장인 내가 나섰다.

“지금 즉시 출정할 것이다. 전원 승선하라“

“승선하라~”

승선 명령을 내리자 장수들과 아전들이 승선 명령을 연이어서 외쳤고 아침부터 바닷바람을 맞으며 서있던 병사들은 승선하라는 소리가 들리기 무섭게 전선에 올라탔다. 군사들이 전선에 승선하기 시작하자 우후 한정복은 나에게 다가와 당부했다.

“만호만 믿겠네. 반드시 승리하고 돌아오게.“

한정복이 좌수영의 가용 병력과 전선을 전부 나에게 맡겼으니 나에게는 좌수영 우후 한정복이 은인이었다.

나는 최대한 정중하게 예를 갖춰서 우후에게 대답했다.

“예 알겠습니다. 최선을 다할 것이니 너무 심려하지 마십시오.”

내 대답을 들은 한정복은 나에게 다가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왜구들을 토벌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좌수사 영감의 생사여부를 반드시 확인해야 할 것이네 좌수사 영감께서 생존해 계시다면 반드시 구출해 와야 하는 것도 잊지 마시게.“

한정복의 말을 듣는 순간 나는 속에서부터 울컥하고 치밀어 오르는 것이 있었다.

‘심암 그 원수 내가 잡아 족치지 못하는 게. 안타까울 뿐이다.‘

나와 녹도군을 사지로 몰아넣었던 심암을 생각하니 속에서 열불이 올라오는 것 같았지만 우후 앞에서 티를 낼 수는 없었다. 나는 최대한 표정을 관리하며 우후에게 마음에도 없는 소리로 대답했다.

“예 저도 항상 좌수사 영감의 안위를 염려하고 있습니다.“

우후는 내 대답에 만족한 듯 한결 밝아진 얼굴로 말했다.

“그래 내 만호를 믿지 녹도만호가 이번에 대승을 거두고 돌아올 것이 분명하니 좋은 술과 떡과 고기 안주로 승전 연희를 준비하고 있겠네.“

“예 저도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한정복에게 대답하며 나는 속으로 혀를 찼다.

‘전시나 마찬가지인데 술타령에 떡과 고기라니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아니야.‘

연희를 준비하겠다는 한정복의 말이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좌수영을 떠나기 전에 한정복의 기분을 상하게 할 필요는 없었다. 좌수사가 없으니 이제는 우후인 한정복이 좌수영을 지키며 좌수군의 소식을 한성과 전라감영에 전달할 것이다. 한정복과 좋은 관계를 유지해야 하는 것을 잘 알고 있었던 나는 한정복에게 웃는 얼굴로 대답한 후 한정복과 작별의 인사를

나눴다.

우후를 비롯한 좌수영의 관원들과 인사를 나누는 동안 병사들은 모두 전선에 탑승했고 전선들은 출항을 준비하고 있었다.

“우리도 어서 타자”

군관들을 거느리고 녹도전선에 오른 나는 전선의 망루에 올라 전선을 가득히 채우고 있는 군관들과 병사들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선창을 가득히 채우고 있을 식량과 화약들을 생각하니 든든하기가 그지없었다.

‘무기와 식량이 넉넉하니 힘이 난다. 먹지 않아도 배가 부를 것 같네.‘

선창에 가득 차있을 곡식 가마니와 화약통, 화살을 생각하며 웃고 있었을 때 이언세가 다가와 출항준비가 끝났음을 알려왔다.

“만호나리 모든 준비가 끝났습니다.”

“좋아 출항하라.”

“출항하라~”

출진명령을 내리자 녹도전선을 선두로 3척의 판옥선이 천천히 바다로 나왔고 판옥선 보다 크기가 작은 협선들이 그 뒤를 따라 나왔다.

‘불과 하루 전만 해도 사지에서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 쳤었는데 지금은 400명이 넘는 군사들과 함대를 지휘하게 됐으니 이래서 인생은 재미있어.‘

전선들이 바다로 나오자 전선에서는 돛이 활짝 펼쳐지고 선체의 양옆에서 달려있는 노가 움직이기 시작하자 전선들은 점차 속도가 빨라졌다. 바다로 나온 전선들이 바람을 타고 순조롭게 항해를 시작하자 나는 손대남에게 물었다.

“녹도진에는 명령을 전달했겠지.”

“예 녹도진에서 준비하고 있던 전선들도 이미 바다로 나왔을 것입니다. 판옥선 1척과 협선 2척입니다. 손죽도로 향하는 길목에서 우리 선단을 기다리고 있을 것입니다.“

손대남의 대답에 나는 만족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좋아 아주 좋아”

녹도진에서 출진한 전선들 까지 함대에 합류하면 나는 판옥선 4척과 협선 6척 그리고 600명이 넘는 병력을 지휘하게 된다.

‘이정도 전력이면 왜구들을 피해 도망칠 필요가 없다. 작전만 잘 세우면 왜구들과 정면대결을 펼쳐도 충분한 전력이다.‘

손죽도에는 아직도 15척의 관선들이 남아있을 것으로 예상되지만 총통으로 무장한 판옥선이 4척이나 있으니 충분히 상대할 자신이 있었다.

좌수영 전선들이 녹도전선을 따라오는 것을 확인한 나는 이언세에게 명령을 내렸다.

“이대로 손죽도로 향한다. 녹도진의 전선들과 합류한 다음에 격군들을 쉬게 할 것이니 그때까지는 쉬지 말고 노를 저어라.“

“예 알겠습니다.”

명령에 따라 격군들은 힘차게 노를 저었고 전선들은 빠르게 전진해갔다.

한편 출정군을 격려한 후 동헌으로 돌아와 업무를 보고 있던 좌수영 우후 한정복에게 좌수영 예하의 고을과 진에서 보낸 전령들이 연이어서 도착했다. 고을의 수령들과 진의 만호, 첨사들이 좌수영으로 보낸 글을 받은 우후는 그 자리에서 수령들과 장수들이 보낸 글을 펼쳤다. 앉은 자리에서 글을 모두 읽은 한정복은 혀를 찼다.

“다들 자기 잘못은 아니라고 열변을 토하는 심정으로 글을 쓴 것이 눈에 보이는 군. 뭐 녹도만호가 보고한 내용과 큰 차이는 없지만 함대가 패하고 좌수사 영감의 생사도 모르는 판인데 전장에 나갔던 장수들이 자기 잘못은 아니라고 변명하기 바쁘니.“

한정복이 읽은 서신들은 장수들이 각자 자신의 입장에서 쓴 글이라 보낸 이에 따라 조금씩 차이는 있었지만 장수들은 공통적으로 좌수사가 녹도만호를 선봉으로 내세웠고 왜구들이 녹도만호를 추격해왔다고 보고했다. 대놓고 좌수사가 무능하다고 쓰지는 않았지만 녹도만호가 왜구들과 전투를 벌였고 좌수사가 철군을 명령한 사실도 장수들은 숨기지 않았다.

“녹도만호를 추격하던 왜구들은 좌수군 함대를 공격했다. 녹도만호가 보고한 내용과 큰 차이는 없는 것 같군. 뭐 결과적으로 녹도만호의 과실도 없지는 않은 것 같지만 녹도만호가 나름 분전한 것은 사실인 것 같으니 출정한 함대는 계속 녹도만호에게 맡기고 각 고을과 진에 군령을 내려 전선과 군사들을 좌수영으로 집결시켜야겠다.“

장수들이 올린 글을 보고 왜구들의 규모와 기세가 심상치 않다고 느낀 우후 한정복은 좌수군의 잔여 전선과 병력을 좌수영으로 집결시킬 것을 명령했다.

바다로 나와 손죽도로 향하던 함대는 정오가 지내서 녹도진에서 출정한 전선들과 합류했다.함대가 모두 모이자 나는 녹도전선으로 장수들을 소집했다. 장수들에게 지난번 전투에서 경험한 것을 설명하고 장수들의 사기를 올려줄 생각으로 소집했는데 모인 장수들의 얼굴을 보니 그나마 남아있던 사기도 떨어질 것 같았다.

‘아니 왜 다들 죽상이야. 연회에서는 술이며 고기며 잘들 먹더니 여기에서는 왜 죽 한 그릇 못 먹은 표정들이냐.‘

잠시 장수들의 안색을 살핀 나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모두들 들어서 알고 있겠지만 손죽도를 침략한 왜선들은 18척에 달한다. 왜선 1척당 100여명의 왜구들이 타고 왔을 것으로 예상하면 왜구들의 수는 2000명에 가까울 것으로 예상된다. 왜구들의 무장 상태는 활과 도검, 그리고 승자총통 형태의 소형 총통으로 무장하고 있다.“

왜구들에 대해 설명하면서 장수들을 살펴본 결과 나는 장수들이 왜구들을 두려워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장수들이 왜구들을 두려워하고 있다면 상황이 심각한데 장수들이 두려워할 정도면 군사들은 말할 것도 없을 테고 군사들의 수가 600명이 넘어도 적을 두려워한다면 승산이 없어.‘

잠시 장수들의 눈치를 살핀 나는 아군이 왜구들 보다 화력에서 월등히 우수한 것을 생각하고 조선수군 화포의 우수성을 떠들기 시작했다.

“왜구들이 왜검을 다루는 데 익숙하고 사납다는 것은 제장들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 전라 좌수군에게는 왜구들이 가지지 못한 무기가 있으니 바로 판옥선과 총통이다.

왜선은 판옥선에 비해 크기가 작고 선체가 견고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화포도 장비하고 있지 못하니 왜선들을 만난다면 왜구들이 아군 전선으로 올라오기 전에 화포를 방포하여 왜구들을 제압할 것이다.“

왜구들에게는 화포가 없다는 말에 장수들의 얼굴이 점차 밝아지는 것이 눈에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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