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선 수군이 되었다-13화 (13/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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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산도 示山島

“물론 왜구들과 싸우는 것은 힘든 일이다. 그러나 이번에 왜구들을 토벌하지 못한다면 그놈들은 조선 땅으로 올라와 백성들을 노략질하고 살육을 일삼을 것이니 바다를 지키는 우리 좌수군도 그 책임을 면하지는 못할 것이다. 우리 좌수군에게는 왜선보다 튼튼한 판옥선이 있고 왜구들의 총통보다 화력이 월등히 강한 총통이 있다. 왜구들을 토벌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지만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말을 마친 나는 다시 장수들을 바라보았다. 아직도 어두운 표정을 보이는 자도 있었지만 확실히 이전 보다는 표정들이 밝아보였다.

‘이제는 승산이 있다는 것을 알았는지 한결 표정이 밝아졌군. 하긴 생각해보면 장수들이 왜구들을 두려워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야 좌수사가 직접 출정했다가 왜구들을 토벌하기는커녕 돌아오지도 못했으니 그런데 지금은 왜구들을 상대할 방법이 있다고 생각하니 희망을 느꼈을 거야.‘

나는 여기서 쐐기를 박을 생각으로 장수들에게 강하게 말했다.

“우리는 바다를 지키는 수군이다. 이대로 왜구들을 방관해 그놈들이 조선에서 노략질을 벌인다면 그 책임을 면하지 못할 것이지만 왜구들을 토벌해 전공을 세운다면 그 포상이 적지 않을 것이다. 어찌하겠느냐?.“

내가 여기까지 말하자 장수들도 그제 서야 돌아갈 길이 없다는 것을 알았는지 싸우겠다고 나섰다.

“왜구들과 싸워 전공을 세울 것입니다.”

“만호 나리의 명을 따를 것입니다.”

“두려워하지 않고 왜구들을 향해 돌진할 것입니다.“

역시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머뭇거릴 때는 돌아갈 길을 끊어버리는 것도 좋은 방법이었다.장수들이 일제히 싸울 것을 결심하자 나는 장수들에게 술잔을 돌렸다.

“전투를 앞두고 있으니 취하도록 마시는 것은 불가하다. 다만 함께 적과 싸워 나라를 지키고자 하는 전우들을 격려하는 잔이니 사양하지 말고 받으라.“

장수들이 모두 잔을 받자 내가 직접 술병을 들어 장수들의 잔에 청주를 따라 주었다. 주장이 내리는 술에 장수들은 감격한 표정으로 술을 받았고 모두의 잔이 채워지자 마지막으로 내 잔에 술을 채운 나는 잔을 들어 장수들에게 외쳤다.

“왜구들을 토벌하여 나라와 백성들을 지키고 주상전하의 근심을 없앨 것이다.

모두들 이 잔을 마시고 힘써 싸우자.“

말을 마친 후 나는 잔을 들어 청주를 마셨고 내가 술을 마시는 것을 지켜본 장수들도 일제히 자신의 잔을 들어 술을 마셨다. 장수들을 격려한 후 각자의 전선으로 돌려보낸 나는 장수들이 돌아가기 무섭게 손대남과 이언세를 불렀다.

‘다행히 장수들을 격려해 돌려보냈지만 장수들이 두려워하는 것을 보니 군사들도 왜구들을 두려워하고 있을 것이 분명해 이래서는 곤란한데.‘

해가 중전에 뜬 정오 남해의 작은섬 시산도(示山島)에서는 비명소리와 고함을 지르는 소리가 사방에서 들려왔다.

“반항하는 놈들은 그 자리에서 목을 쳐라 본보기로 몇 놈 죽여도 상관없다.“

“하잇 알겠습니다. 빨리빨리 움직여라.”

갑주 차림의 무장이 피가 흐르고 있는 일본도를 휘두르며 호령하자 옷을 입었다기보다 벗은 차림에 가까운 차림이나 훈도시로 하체만 가린 왜구들이 무장에게 대답하면서 칼과 창을 휘두르며 조선인들을 배로 몰아갔다.

조선인들은 두 손이 새끼줄로 묶여있었고 왜구들에게 얻어맞고 걷어차여서 얼굴에는 멍이 들었고 상처에서는 피를 흘리고 있었다.

“빨리 빨리 움직이지 못해 늦장 부리는 놈들은 사지를 잘라버릴 테다.“

왜구들은 조선인들이 알아듣지도 못하는 일본어로 조선인들을 협박하며 재촉했고 조선인들은 일본어를 알아듣지 못해도 그들이 휘두르는 흉기를 피하기 위해 부지런히 두 발을 움직여야 했다.

관선의 갑판위에 서서 조선인들이 부하들에게 끌려오는 장면을 바라보던 긴시요라는 무엇이 마음에 들지 않는 지 얼굴 가득히 인상을 쓰고 있었다.

"안 돼 안 된다. 이놈들아“

왜구들에게 끌려오던 조선인들은 왜구들이 자신들을 배 안으로 밀어 넣으려고 하자 배에 타지 않기 위해 발버둥 치며 저항했지만 왜구들의 창, 칼 앞에서는 소용없는 몸부림이었다.

“뭐해 빨리 들어가지 못하나.”

“이놈이 여기서 죽고 싶어.”

저항하는 조선인들에게는 사정없이 발길질과 창대가 날아들었다.

“으악”

창대에 맞아 쓰러진 사람들은 흙투성이 발에 짓밟혔고 왜구들은 조선인들을 흉기로 위협하고 폭행하면서 짐승처럼 관선 안으로 몰아갔다.

조선인들이 관선 안으로 끌려가는 장면을 바라보던 긴시요라는 고개를 돌려 자신의 뒤에 서있는 사화동에게 물었다.

“네가 말한 진도는 이곳에서 멀리 떨어져 있나?”

“왜 진도는 이곳에서 한 참을 더 가야하는 하는 곳입니다. 이곳은 시산도라는 작은 섬입니다.“

사화동의 말에 긴시요라는 관선으로 끌려오고 있는 또 다른 조선인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진도까지 가지 않고도 노예들을 잡았으니 재수가 좋군. 그런데 섬이 작아서 인지 기껏 수고해서 잡아들인 노예들의 수가 너무 적어. 100명도 안될 것 같지 않은가. 이건 너무 적어.“

수고에 비해 소득이 적다고 생각한 긴시요라는 얼굴로 가득히 인상을 쓰며 사화동에게 물었다.

“이 근처에 조선인이 사는 섬이 또 있나?”

긴시요라의 질문에 사화동은 별 생각없이 대답했다.

“예 동쪽에 절이도(折爾島)라는 제법 큰 섬이 있습니다.“

사화동의 대답에 긴시요라는 그제서야 인상을 폈다.

“큰 섬이라니 좋아 이곳에서 잡은 노예들은 배 한척에 모아서 손죽도로 돌려보낸다. 이곳에서 잡은 노예들과 손죽도에 잡아놓은 노예들은 수리중인 배들의 수리가 끝나는 대로 오도로 보내도록 하라. 이곳이 정리하고 절이도로 출발할 것이다. 오늘 저녁은 절이도에서 먹을 것이니 서둘러라.“

“예 알겠습니다.”

사화동은 긴시요라가 진도로 가는 길목에 있는 섬들에서 까지 노략질을 하고 조선인들을 납치할 생각인 것을 알고 긴시요라의 욕심에 놀랐다.

‘평소에는 무사라고 자랑하고 다니더니 아주 도둑 중에서도 상도둑이구나.‘

손죽도에는 좌수군과의 전투에서 손상을 입은 관선 2척과 왜구 100여명이 남아 있었다. 긴시요라가 왜구들을 이끌고 진도를 약탈하기 위해 다녀오는 동안 손죽도에 남아 있는 왜구들은 잡혀있는 조선인들을 감시하고 관선을 수리할 계획이었다.

긴시요라는 진도를 목표로 선단을 이끌고 출항했지만 항해 중에 우연히 어선들을 발견했고 왜선을 목격한 어선들이 섬으로 도망치자 긴시요라는 어선들을 추격할 것을 명령했다. 관선들이 어선들을 추격해 시산도로 쫓아오면서 시산도의 주민들은 왜구들에게 약탈당하고 노예로 붙잡히게 된 것이다.

왜구들의 관선이 시산도를 떠난 후 시간이 흘러 해가 지려고 할 때 작은 조각배 한척이 시산도에 들어왔다.

“이게 무슨 일이야.”

고기잡이를 나갔다가 돌아온 정칠복과 소정철은 해안가에 사람들이 쓰러져 있는 것을 보고는 놀라 외쳤다. 너무나 놀란 두 사람은 배가 뭍에 닿기도 전에 배에서 뛰어내려 사람들에게도 달려갔다.

쓰러져 있는 사람들이 모두 시산도의 주민들이며 쓰러져 있는 사람들이 모두 죽었다는 것을 확인한 칠복과 정철은 비명을 지르며 마을로 달려갔다. 14세로 조선에서는 적지 않은 나이였지만 이토록 참혹한 광경은 처음이었던 칠복은 너무나 놀란 나머지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앞으로 달려갔다.

부디 자신의 집만은 어머니만은 무사하기를 바라며 달려간 집은 안타깝게도 이미 문이 활짝 열려있었고 집안을 들쑤시고 뒤진 흔적이 역력했다.

“어머니”  “어머니”

연신 어머니를 찾으며 외친 정칠복은 집밖으로 나가 마을을 돌아다니며 어머니를 찾았지만 어머니는 보이지 않았다.

소정철 역시 자신의 아버지를 찾기 위해 집으로 뛰어가려고 하던 중 아버지의 목소리를 들었다.

“정철아”

“아버지”

아버지의 목소리를 들은 소정철은 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한걸음에 달려갔다. 해안가에 쓰러져있던 정철의 아버지 소한수는 물속에 있었다가 나왔는지 온몸이 흠뻑 젖어있었고 입술도 파랗게 변해있었다.

“아니 아버지 이게 어찌된 일이요.”

정철은 놀라서 아버지를 부축해 일으키며 물었다. 소한수는 아들의 부축을 받으며 창백한 얼굴로 대답했다.

“왜구들이다. 그 죽일 놈들이 섬으로 쳐들어왔어. 마을 사람들을 잡아가고 도망치려던 사람들은 왜구들이 다 죽었다. 나는 왜구들에게 잡히기 전에 바다에 뛰어들어서 간신히 살았다.

뭍으로 올라오면 왜구들에게 잡힐 것 같아 일부러 바다로 나가서 돌섬에 숨어 있다가 방금 전에 올라왔다.“

이미 마흔이 넘어 조선 기준으로는 고령인 한수가 살아남기 위해 겨울 바닷물 속에 뛰어들었다는 말에 정철은 가슴이 아팠다.

“아버지 무사하셔서 정말 다행이오. 빨리 집으로 갑시다.“

마을 주민들이 죽고 왜구들에게 잡혀간 것은 애석한 일이지만 정철은 유일한 가족인 아버지가 무사한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정철과 한수가 마을로 들어서자 어머니를 찾다가 이들을 발견한 칠복이 달려와 물었다.

“아저씨 우리 어머니는. 어머니는 어찌 되셨나요?“

한수는 안됐다는 표정으로 칠복을 바라보며 대답했다.

“너희 어머니. 죽지는 않았으니 걱정마라.”

한수의 대답을 들은 칠복은 눈동자가 커지며 목소리가 올라갔다.

“우리 어머니는 어디에 계십니까? 아저씨 우리 어머니는 어디에 계세요?“

칠복의 질문에 잠시 머뭇거리던 한수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마을사람들이 왜구들에게 많이 잡혀갔다. 너희 어머니도 그때 잡혀간 것 갔더라. 바다에서 봐서 정확하지는 않지만. 너희 어머니 또래 부인들을 왜구들이 끌고 가는 것을 봤다.“

어머니가 왜구들에게 끌려갔다는 말에 칠복은 다급하게 물었다.

“왜구들은 어디로 갔습니까. 내가 당장 쫓아갈 겁니다.“

칠복의 말에 한수는 칠복을 말렸다.

“아서라 왜구를 쫓아갔다가 잡히면 너도 끌려간다. 아니 죽을 수도 있다.“

놀란 한수가 만류했지만 칠복은 듣지 않았다.

“죽어도 상관없습니다. 아니 차라리 왜구들에게 잡혀가 어머니와 함께 있겠습니다. 왜구들은 어디에 있습니까.“

정철에게 아버지가 유일한 가족이듯이 칠복은 어머니와 단둘이 살고 있었다. 그런 칠복의 심정을 이해한 정철은 칠복을 타이르며 말했다.

“흥분하지 말고 차라리 뭍으로 나가 관군을 불러 오너라. 너 혼자 왜구들을 쫓아가면 진짜 죽는다.“

“관군을 불러오는 동안 왜구들이 멀리 도망치면 어떻게 합니까. 내 영영 어머니를 못 찾으면 어떻게 합니까.“

칠복이 울부짖으며 말하자 한수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칠복에게 말했다.

“돌섬에 숨어서 보니 왜구들이 탄 배가 동쪽으로 가는 것 같았다. 절이도로 가는 것 같더라 왜구들이 우리 섬에서 한 짓을 보면 절이도에서도 노략질을 할 텐데 서둘러서 관군을 불러오면 왜구들을 잡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한수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칠복은 달려갈 기세였다.

“절이도 라고요. 알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어서 가서 관군을 불러오겠습니다.“

말을 마친 칠복은 해안가로 달려가 타고 왔던 조각배에 올라탔다.

아직 14세에 불과했지만 섬에서 태어나 일생을 보냈으니 어른들이 배를 모는 것은 그동안 지겹게 보고 들었다. 칠복은 배에 오르기 무섭게 돛을 펴고 배를 몰았다. 그 모습을 보며 한수와 정철은 무력감에 몸을 부르르 떨었다.

“아이고 곧 해가 질 텐데 혼자서 어떻게 하려고.“

어부로 일생을 보낸 한수와 역시 어부로 살아가고 있는 정철은 조각배로 먼 바다에 나가는 정칠복이 무모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어머니를 구하겠다는 칠복을 말릴 수는 없었다.

‘나라도 따라가야 하는데.’

칠복이가 태어났을 때부터 한 마을에서 살아온 정철은 칠복을 혼자 보내고 싶지 않았지만 아버지를 섬에 놓고 칠복을 따라 갈수는 없었다. 안타까운 마음으로 칠복이 탄 배가 무사히 육지에 도착하기만을 기원할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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