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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촌의 눈물
“흔히 볼 수 있는 조각배입니다.
저런 작은 배로 이렇게 먼 바다로
나오는 것은 위험한 일인데.“
어느새 갑판 위로 올라온 이언세가
바다 위에 떠 있는 물체를 바라보며
말했다.
불빛에 드러난 배는 이언세의 말대로
작고 왜소해 보였다.
“한번 더 화전을 날려라 배에 사람이
타고 있는지 확인해야겠다.“
“예”
다시 한번 화전이 조각배를 향해
날아가자 배 안에 사람이
쓰려져 있는 것이 보였다.
사람이 있는 것을 확인한 이상
구경만 하고 있을 수는 없었다.
“무슨 사정인지 모르겠지만 사람부터
구하고 보자 어서 배를 띄워라“
“예 알겠습니다.
협선에 만호나리의 명을 전하라”
곧 녹도진 협선이 조각배를 향해 다가갔고
협선의 병사들은 배 안에 쓰러져 있는
사람을 구해왔다.
병사들이 구조해온 사람을 녹도전선으로
이송하는 동안 나는 갑판위에 서서
그 장면을 모두 지켜보았다.
‘혼자서 저 작은 배를 몰고 바다로
나오다니 그것도 이 밤중에 무슨 일이
있었을까?“
병사들이 붙잡다시피 부축해온 사람은
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병사들은 구조한 이를 녹도전선의 갑판에
눕히고 이불을 가져다가 덮어주었다.
가까이 다가가서 얼굴을 보니 아직
어린티를 벗지 못한 소년이었다.
“배에 타고 있던 사람이 이 아이
하나뿐이었느냐“
“예 다른 사람은 없었습니다요.”
‘체구도 왜소해 보이는데 무슨 일이지’
소년은 체구도 작았고 겨울 바다의
추위에 시달렸는지 입술로 파랗게
변해있었다.
“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했으니 우선
선실에 눕혀라 이 아이가 정신을 차리면
사정을 들어보겠다.“
“예”
아이의 처분을 명령하고 다시 병사들을
쉬게 하려고 하던 그때 아이의 얼굴을
뚫어지게 쳐다보던 강영남은 아이를
알아보고 다가가 끌어안았다.
“이게 누구야 칠복이구나. 혹시나 했는데
칠복이 맞구나.“
강영남이 아이를 끌어안고 울먹이며
아이의 얼굴을 쓰다듬자 병사들은
이게 무슨 일인가 싶어서 웅성거렸다.
나는 아이를 끌어안고 울먹이고 있는
병사에게 다가가서 물었다.
“이 아이는 누구냐?
네가 아는 아이냐?”
“예 나리 제 조카 정칠복입니다.
제 누이동생의 자식입니다. 나리“
경계를 서고 있던 병사들이 발견하지
못했으면 칠복이는 겨울밤 바다를
헤매다가 탈진해서 목숨을 잃었을
것이다.
죽다 살아난 조카를 끌어안은 강영남은
울먹이며 어찌할 줄을 몰랐다.
“이놈아 어찌된 일이야. 네가 잘못되면
너 하나 바라보고 사는 네 어미는
어쩌라고 이놈아.“
그런 강영남을 보며 나는 물론 병사들도
눈시울이 붉어졌다.
그 모습을 보다 못한 내가 나섰다.
“우선 아이를 선실로 옮기고 보살펴
주어라. 밤바람이 차다.
어서 선실에 눕혀 그리고 화병은 빨리
불을 지피고 미음을 끓어라 어서“
“예 나리”
강영남이 울먹이며 칠복을 들어 올리려고
하자 병사들이 달려들어 강영남을 도와
칠복이를 부축했다.
바로 그때 정신을 차린 칠복이가 힘겹게
눈을 뜨며 입을 열었다.
“우리 어머니. 어머니를 구해주세요”
“칠복아 정신이드냐? 나다 외삼촌이다.”
강영남이 울먹이며 칠복이를 부르자
칠복은 온 힘을 다해 외쳤다.
“외삼촌 우리 어머니를 구해주세요.
왜구들이 어머니를. 왜구들이 절이도로“
왜구라는 말에 나는 소름이 돋았고
강영남이 울먹이며 칠복에게 물었다.
“그게 무슨 말이냐 칠복아?
네 어미에게 무슨 일이 생겼냐?
무슨 일이야?“
강영남이 칠복의 몸을 흔들어가며
물었지만 칠복은 기운이 다했는지
더 이상 대답하지 못했다.
강영남은 정신이 나갔는지 칠복을 안고
울부짖었고 병사들은 그런 강영남을
보면서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었다.
‘저러다 사람 잡겠네’
그 광경을 본 나는 참지 못하고
외쳤다.
“우선 아이를 쉬게 하라. 빨리 선실에
눕히고 몸을 따듯하게 해줘. 어서.“
“예”
내가 외치자 병사들이 강영남에게 달려들어
강영남의 품속에서 칠복이를 뺏듯이 업었다.
병사들이 칠복이를 업고 선실로 내려가자
강영남은 넋이 나간 표정으로 울먹이며
칠복이의 뒤를 따라 가려고 했다.
“잠깐 자네는 잠시 나를 따르게”
나는 칠복이의 뒤를 따라서 선실로
내려가려는 강영남을 붙잡았다.
“손군관, 이진무도 나를 따르라.”
“예”
“예”
나는 손대남과 이언세 그리고
강영남을 데리고 내 선실로 돌아왔다.
선실로 돌아온 나는 우선 이언세에게
물었다.
“칠복이가 뭐라고 말했는지 기억하나?”
내 질문에 이언세는 잠시 강영남을
바라본 후 대답했다.
“예 어머니를 구해달라고 했습니다.”
강영남의 얼굴에는 아직도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있었지만 칠복이가
한 말이 사실이라면 시간이 없었다.
“어머니를 구해달라고 한 다음에는
뭐라고 말했지?“
이언세는 강영남의 눈치를 보며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왜구들이라고 했고 절이도라고
말했습니다.”
이언세의 대답에 내가 칠복이가 한
말을 제대로 들었다는 것을 확인한 후
나는 강영남에게 물었다.
“칠복이가 조카라고?”
강영남은 여전히 넋이 나간
표정이었지만 내 질문에 대답했다.
“예 누이동생의 아들입니다.
애 아버지는 바다에 나갔다가 돌아오지
못했고 누이동생 혼자 갖은 고생하며
키운 놈입니다.“
울먹이며 대답하는 강영남의 모습에
이런 질문을 하는 것이 가혹하게
느껴졌지만 지금은 꼭 물어야 했다.
“칠복이와 누이동생은 어디에서 살고
있었나?”
그 질문에 강영남은 정신이 번쩍 든 것
같았다. 갑자기 울음을 그친 강영남은
한 글자씩 힘주어 대답했다.
“시산도입니다. 칠복이와 칠복이 어미인
제 동생 강순옥은 시산도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시산도라면 흥양현 바로 아래 있는
섬입니다. 절이도에서도 가깝습니다.“
강영남의 대답을 들은 손대남은 놀랍다는
듯이 말했고 그 말을 들은 나도 어이가
없었다.
“설마 손죽도를 침범한 왜구들이 시산도
까지 가서 노략질을 하고 절이도로 갔다는
말인가?
집밖의 도둑을 쫓다가 도둑에게 안방을
털린 셈이군. 시산도에 절이도라니“
대한민국의 전라도 고흥군인 흥양현은
전라좌수군의 관할의 지역으로
5관5포 중에서 1관 4포가 흥양현에
자리 잡고 있었다.
‘왜구들이 간이 배 밖으로 나왔군.
흥양현에는 사도진, 녹도진, 여도진,
발포진 까지 4진에 흥양현도 좌수영
소속인데 감히 흥양현의 앞바다 까지
몰려오다니.‘
뜻밖에 소식으로 왜구들의 위치를 알게
돼서 다행이었지만 이미 시산도가
약탈당했고 어쩌면 절이도 까지 이미
약탈당했을지도 모르는 상황이었으니
좋아할 수도 없었다.
나는 우선 강영남을 선실 밖으로 내보냈다.
“강영남 자네는 그만 조카에게 가보게
수고 많았네.”
내가 강영남을 내보내려고 하자 이언세도
나를 거들었다.
“그래 이제부터는 만호 나리께서 알아서
하실 것이니 자네는 그만 가보게
곧 미음을 끓일 것이니 어서 가서
조카에게 미음이라고 먹이게“
“예 감사합니다. 나으리.”
강영남은 나에게 감사하다는 인사를
하며 선실 밖으로 나갔다.
강영남이 밖으로 나가자 나는 해도를
펼치며 손대남과 이언세에게 말했다.
“왜구들의 위치를 알게 됐으니 작전을
다시 세워야겠어.
다른 장수들도 부르는 것이 좋겠군.
전부 부를 필요는 없고 같이 작전을
세울만한 사람으로 두세 명만 불러오게
그리고 회의가 길어질 수 있으니
물을 끓이고 차를 준비하라고 이르게“
“예 나리”
이언세는 선실 밖으로 나가 병사들에게
내 명령을 전했고 잠시 후 좌수영 속속
군관 최도진과 김윤문 그리고 녹도진 군관
조천군이 선실로 들어왔다.
이들이 모두 선실로 들어오자 나는
장수들에게 왜구들이 절이도에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정칠복의 증언에 따르면 왜구들은 오늘
시산도를 약탈하고 시산도의 주민들을
납치한 후 절이도로 향한 것으로 보인다.
절이도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이 있는가?“
내 질문에 이언세가 대답했다.
“절이도는 녹도군 전선이 훈련을 나가거나
출정했을 때 물과 장작을 구하기 위해
자주 들리는 곳입니다. 바다로 나왔다가
비바람을 만날 경우에도 절이도나
시산도에서 비를 피했다가 녹도진으로
돌아가기에 절이도에는 자주 가봤습니다.“
이언세의 대답에 나는 잘됐다고 생각했다.
“잘됐군. 시산도에서 절이도 까지의
거리는 얼마나 되는가?“
“시산도와 절이도의 거리는 매우
가깝습니다. 해도상의 거리는
10리(약4km)에 불과할 정도입니다.“
거리가 10리에 불과하다는 말에
나는 절이도 역시 이미 약탈당했을
것으로 생각했다.
“그렇게나 가깝단 말인가. 그럼 왜구들이
절이도 까지 건너가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겠군. 절이도 역시 노략질 당했겠어.“
내가 안타까워하자 손대남이 입을 열었다.
“왜구들이 절이도를 침범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왜구들은 그전에 이미 시산도를
노략질하고 시산도의 주민들 까지
납치한 다음에야 절이도로 향했다면
오후가 돼서야 절이도에 도착했을
것입니다. 절이도는 크고 넓은 섬이니
왜구들이 아직까지 절이도를 떠나지는
못했을 수도입니다.“
손대남의 말에 나는 정신이 번쩍 들어
해도에 나와 있는 절이도를 바라보았다.
그 크기가 시산도나 손죽도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컸다.
‘맞아 절이도는 한때 섬 안에 목장이
있었을 정도로 큰 섬이야 그리고 거리가
10리에 불과하더라도 해도 지상에서의
4km와 바다에서의 4km은 달라 왜구들이
포로들 까지 끌고 절이도로 향했다면
신속하게 움직이지는 못했을 거야.‘
왜구들이 시산도에서 절이도 까지
신속하게 진군하지 못했을 것으로 판단한
나는 왜구들이 절이도를 벗어나기 전에
섬멸할 계획을 세웠다.
“좋아 왜선들이 아직 절이도에 정박해
있다면 왜구들을 일망타진할 수 있는
좋은 기회다. 내일 동이 트는 대로
출병한다면 절이도에 도착하기 까지
시간이 얼마나 걸릴 것 같은가?“
이번에는 이언세가 대답했다.
“시산도와 절이도는 우리 좌수군에게
아주 익숙한 곳입니다. 인근 바다의
물살은 물론 어디에 얼마나 암초가
있는지 까지 훤히 알고 있으니
2시진(4시간)이면 능히 도착할 수
있습니다.“
동틀 무렵에 출발해 이동하는데
4시간이나 걸린다면 기습하기에는
늦은 시간에 도착할 것 같았지만
나는 포기하지 않았다.
‘좋아 해보자 기습하기가 어려우면
전면전을 펼쳐보자.‘
“좋아 왜구들의 위치를 알았으니
더 이상 머뭇거릴 이유가 없다.
동이 트는 대로 모든 전선은
절이도로 향한다. 그리고 화병(火兵)
[취사병]들은 지금부터 밥을 짓고
최대한 많은 주먹밥을 만들어라
격군들은 노를 저으며 교대로 식사를
하고 병사들도 병장기를 점검하면서
교대로 밥을 먹는다.
절이도에 도착할 때 까지는 쉬지않고
진군할 것이다.“
“예 만호 나리”
내일 새벽에 출동할 것을 명령하자
손대남과 군관들은 힘차게 대답했다.
이언세 역시 군관들과 함께 대답한 후
조심스럽게 말했다.
“만호 나리 왜구들이 절이도를 침범한
사실을 흥양현감과 발포 만호께도
알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아차 깜박했다. 절이도는 흥양현
바로 아래에 있고 녹도진 발포진과
인접한 지역에 있는 섬인데 녹도진은
내가 만호니 신경 쓸 필요가 없지만
발포만호와 흥양현감에게는 이 사실을
알려야한다. 발포만호와 흥양현감에게
왜구들의 소식을 전하고 아예 지원을
요청하도록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