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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타는 전의
“이진무가 아주 중요한 사안을 일깨워
주었다. 발포진과 흥양현 그리고
녹도진에도 왜구들이 시산도를 약탈하고
절이도에 침범했음을 알려야 한다.
내일 새벽 출정할 때 협선 한척을
발포진으로 보내 발포만호에게
이 사실을 알리고 협조를 구하도록
하겠다. 흥양현감에게도 이 사실을
알리고 협조를 요청할 것이며 아울러
녹도진에도 이 사실을 알리고 진의
경계를 철저히 하도록 하라“
“예 알겠습니다.”
“그리고 정칠복은 발포진에 소식을
전하는 협선편에 녹도진으로
보내도록 하라“
“예 만호 나리”
“마지막으로 이진무는 중요한 사안을
깨우쳐 주었다.
덕분에 실수를 하지 않게 되었으니
왜구들을 토벌한 후 반드시 상을 내릴
것이다. 앞으로도 내가 실수하거나
알아야 할 중요한 사안이 있다면
언제라도 말하도록 하라.“
“예 감사합니다.”
내가 이언세와 장수들에게 잘못된 것은
언제라도 말하라고 하자 이언세는 물론
손대남과 군관들도 놀란 것 같았다.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자신의 실수를
지적당하고 싶지 않지.
더구나 아랫사람에게 지적당하면 더 기분
나쁘고 아랫사람에게 무시당했다는 생각까지
들 수도 있지 한국에서도 윗사람의 잘못이나
실수를 말하기 힘든데 신분차별이 존재하는
조선시대에는 더 심했겠지. 하지만 그러다가
대형사고가 나기 쉬워 아랫사람이 상관의
실수와 잘못을 말하지 않고 고치지 않고
그대로 있다가 사고가 나면 그야말로
대형사고야. 내가 뭘 잘못하고 있는지를
알아야 나도 고쳐 나갈 수 있고 그러면서
배워나가는 거지‘
나는 장수들을 바라보며 다시 명령을
내렸다.
“절이도에 도착하는 즉시 해안가를 정찰해
왜구들의 관선을 찾겠다. 관선들을 발견하는
즉시 절이도를 떠나지 못하도록 바닷길을
봉쇄하고 총통으로 공격할 생각이니
준비를 철저하게 하도록.“
“예 알겠습니다.”
장수들이 일제히 대답하자 나는
장수들에게 한 가지 명령을 더 내렸다.
“시산도에서 납치된 우리 백성들이
관선에 감금되어 있을 가능성이 높다.
우선 총통으로 관선들을 공격한 후
군사들을 보내 관선을 나포하고 백성들을
구출해야 할 것이니 각 전선에서는 검술이
능한 군관들과 용감하고 무술에 능한
군사들을 선별해 적선을 나포할 별동대를
조직하도록 하라.“
“예 알겠습니다.”
적선을 나포한다는 말에 장수들은 전공을
세울 기회라고 생각했는지 눈에서 빛을
내고 있었다.
‘지금의 조선은 적의 수급의 수로 전공을
평가한다. 왜구들과 직접 근접전을 치러야
하는 별동대는 위험하지만 그만큼 많은
전공을 세울 수 있어. 장수들이 그걸
모르지는 않겠지.‘
“그럼 이만 돌아들 가게 모두들 각자의
전선으로 돌아가 출정준비에 만전을
기해주게“
“예 만호나리”
이언세와 손대남 그리고 좌수영의
군관들은 나에게 군례를 올리고
선실 밖으로 나갔다.
밤이 깊었지만 내일 출정 준비를 위해
오늘 밤 제대로 잠을 자지 못하는 이들이
많을 것 같았다.
나는 의복을 벗은 후 자리에 누웠지만
잠이 오지는 않았다.
‘나는 내일 전투를 지휘해야 한다.
우선 푹 쉬어야 체력을 회복하고
맑은 정신을 유지할 수 있어.
쉴 수 있을 때 쉬는 것도 지휘관의
임무다.‘
애써 잠자기 위해 눈을 감았지만
조카를 부둥켜안고 울먹이던 강영남과
다 죽어가면서도 목소리로 어머니를
구해 달라고 말하는 칠복이가 눈앞에 보여
쉽게 잠이 오지 않았다.
‘아직 어린 아이로 보이던데 어머니를
구하기 위해 조각배로 바다에 뛰어들다니
부모 목숨을 살리기 위해 자기 목숨을
내놓는 효자의 이야기는 동화에서만
봤었는데 실제로 그런 효자가 있기는
있구나.‘
강영남과 칠복이를 생각하자 왜구들에
대한 분노가 불타올랐다.
‘생각할수록 열 받네. 손죽도를 점령했고
좌수군 수군들도 일부 포로로 사로잡았다.
다른 전선들은 몰라도 좌수영 전선 2척에만
200명이 넘는 병사들이 있었을 테니
손죽도의 주민들과 수군 병사들만 해도
이미 수 백 명을 잡아놓고 있다는 말인데
시산도의 주민들을 잡아가고 절이도 까지
침범하다니 도대체 조선인들을 얼마나
잡아가려고 이개자식들‘
생각할수록 열 받고 화가 났고 화가 난
끝에 정규군도 아닌 왜구들에게 이렇게
숙수무책으로 당하는 조선이라는 나라가
한심하게 느껴졌다.
‘고작 왜구 2000여명이 쳐들어와도
이 난리인데 일본군 20만명이 쳐들어오는
임진왜란에는 얼마나 큰 난리가 벌어질까.‘
처음 조선으로 떨어진 후 지금이 정해년인
것을 알았을 때 절망했던 이유 중의
하나가 바로 임진왜란(壬辰倭亂)이었다.
‘지금은 정해년 선조 20년이니 서기
1587년이다. 임진왜란(壬辰倭亂)이
1592년에 일어나니 앞으로 5년 정도
남았구나. 임진왜란이 역사대로 일어나면
칠복이 같이 어머니를 잃고 울부짖는
아이들이 수 만명 단위로 생길 텐데.
누이동생 소식에 울음을 터트리는 강영남
같은 사람들도 수 없이 많이 생길 테고‘
나는 처음 조선에 떨어졌을 때부터
지금까지 살아남을 궁리만 해왔고
이번 전투도 전공을 세워 살길을 만들기
위한 생존 계획의 일부였다.
그러나 칠복이와 강영남을 본 후
내 마음속에 조금씩 변화가 일어났다.
‘그리 한번 해보자 내가 이래봬도 대한민국
해병대 출신에 특전사 중위고 대한민국에서
치열한 중학, 고교 생활 다 이겨내고 4년제
대학까지 졸업한 몸이시다. 이번 생애는
임진왜란 아니 일본을 아니 조선과 일본을
한번 뒤엎어 버리자‘
결정을 내리고 나니 마음이 편해졌다.
자리에서 일어난 나는 내 머리 속에
들어있는 역사 지식들을 떠올리며
어떻게 일본을 상대할지 궁리하기
시작했다.
날이 밝아오자 긴시요라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으 잘 잤다.”
따듯한 온돌방에서 푹신한 솜이불을 덮고
따뜻하게 잠을 푹 잔 긴시요라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기지개를 폈다.
그의 옆자리에는 지난 밤 긴시요라의
시중을 든 처녀가 이불을 덮고
누워있었다.
얼굴까지 이불로 덮고 있는 모습을 보고
짜증이 난 긴시요라는 옆자리의 이불을
거칠게 잡아당겼다.
“어이 이미 일어나 있었구나.”
긴시요라가 잡아당긴 이불은 힘없이
끌려왔고 이불을 걷어낸 자리에는
댕기머리를 풀지도 않은 처녀가 겁에
질린 눈으로 긴시요라를 바라보고
있었다.
지난 밤 그 처녀가 자신의 시중을
들면서 몇 번이나 질렀던 비명소리를
떠올린 긴시요라는 다시 한번 욕정이
치솟았다.
“아직 시간도 여유 있고 좋아”
처녀를 바라보며 입맛을 다시던
긴시요라는 다시 한번 처녀를 덮쳤다.
“아악~”
지난 밤 동안 몇 번이나 시달렸던
처녀는 긴시요라가 눈을 뜨자마자
또 다시 들려들자 몸부림치며 비명을
질렀지만 비명소리는 오히려 긴시요라의
욕정을 부채질할 뿐이었다.
긴시요라가 자고 있는 방의 문 앞에서
지키고 있던 왜구들은 방안에서 들려오는
비명소리를 들으며 비열해 보이는 미소를
지었다.
시산도를 침략한 왜구들은 시산도의 주민들
중에서 노동력을 기대할 수 없는 노약자들은
모두 죽이고 노예로 써먹거나 팔아먹을 수
있을 만한 사람들만 붙잡아서 손죽도로
보냈다.
관선 한 척에 주민들을 몰아넣고 손죽도로
보낸 후 긴시요라는 관선들을 거느리고
절이도로 쳐들어왔다.
절이도는 제법 큰 섬이었지만 1000여명이나
되는 왜구들의 공격을 막아낼 병력이 없었다.
마을 주민들은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또 가족을 지키기 위해 농기구와 몽둥이를
휘둘렀지만 조총과 일본도로 무장한 왜구들을
당해낼 수는 없었다.
어렵지 않게 절이도에 상륙한 왜구들은
해안가와 그 주변 마을을 점령했고
긴시요라는 주민들에게 저녁밥을
준비할 것을 명령했다.
이미 시간이 늦어 날이 어두워지고
있었으니 마을에서 저녁밥을 먹고
주민들의 집에서 편히 잠을 잔 후
다음날 섬의 주민들을 납치할
생각이었다.
흉기를 들이대는 왜구들 앞에서
주민들은 어쩔 수 없이 밥을 짓고
국을 끓어서 저녁상을 차려줬고
왜구들은 주민들이 담가놓은 술까지
찾아내서 꺼내 마시며 포식을 했다.
실컷 먹고 마신 후 긴시요라는 마을에서
가장 큰 집으로 걸어 들어갔고 집안에
있던 그 집의 큰 딸을 잡아 안방으로
끌고 들어갔다.
딸이 끌려가려는 것을 말리던 집주인과
그의 부인은 왜구들에게 두들겨 맞아
마당에 쓰러졌고. 왜구들은 집주인과
가족들에게 눈을 부라리며 일본도를
들이댔다.
긴시요라가 가장 큰 집 안으로 들어가자
장수급의 왜구들은 그나마 번듯해 보이는
집을 하나씩 골라 잠자리로 잡았고
당연 하다는 듯이 마을 처녀들을 붙잡아
방안으로 끌고 갔다.
“돛을 펴라”
“힘껏 노를 저어라”
“다른 전선들에게 뒤쳐져서는
안 될 것이다.“
해가 뜨기 무섭게 좌수군의 전선들은
돛을 펴고 노를 저으며 무인도를
벗어났다.
전선의 갑판 위에는 총통을 점검하는
포수들과 각궁의 시위를 당기고 있는
사부들이 가득했고 선체 안에서는
격군들이 힘껏 노를 젓고 있었다.
아침식사는 화병들이 주먹밥을 가득 담은
광주리를 들고 다니며 병사들에게 주먹밥을
나눠주었고 병사들은 갑판에 앉아 묵묵히
주먹밥을 씹었다.
격군들 역시 다르지 않았다.
교대로 노를 젓는 격군들은 자신이 노를
잡지 않을 때 재빨리 주먹밥을 먹고
물을 마셨다.
병사들의 태도와 눈빛이 어제와는 많이
달라보였다.
“보시는 대로 군사들의 전의(戰意)가
대단합니다.
저희 녹도군은 물론 좌수영의 군사들도
칠복이의 소식을 듣고 왜구들에게
이를 갈고 있다고 합니다.“
망루위에 서서 군사들을 내려다보며
이언세의 보고를 듣고 있던 나는 병사들의
움직임과 표정을 보고는 놀랐다.
‘해병대와 특전사에서 훈련이 끝난 직후에
볼 수 있는 표정들이다. 잔뜩 독이 오른
모습들이야 이제 군사들의 사기를 걱정할
필요는 없다.‘
군사들의 사기가 오른 것을 보고도
기뻐할 수만은 없었다.
외삼촌의 지극한 간호로 정신을 차린
정칠복은 나를 직접 찾아와 어머니를
구해 달라고 눈물로 호소했고
칠복이에게서 자세한 사정을 들은 나는
다시 한번 왜구들에 대한 분노를
체험했고 칠복이의 효심에 가슴이 아팠다.
“세상에 열넷의 어린 나이에 어머니를
구하겠다고 조각배를 타고 홀로 바다에
나오다니. 자칫했으면 아니 병사들이
발견하지 못했으면 겨울 바다를 헤매다가
탈진해서 죽었을 거야.“
정칠복이는 흥양현에 있는 발포진이나
녹도진으로 가서 관군을 불러오기 위해
바다로 나왔다고 말했고 그 말을 듣고
눈시울을 붉히지 않은 군사들이 없었다고
한다.
흥양현으로 가기 위해 배를 몰고 나왔지만
흥양현으로 가지 못하고 우리 전선을
만난 것은 흥양현이 있는 북쪽으로 가지
못하고 북동쪽으로 표류했다는 뜻이고
우리를 만나지 못했으면 칠복이는 죽을
수도 있었다는 소리였다.
“손죽도만 하더라도 멀리 있는 섬에
불과하지만 절이도와 시산도의 주민들
중에는 병사들과 인척관계인 사람들도
있고 병사들과 함께 바다에서 고기를
잡던 사람들도 많을 것입니다.
병사들이 칠복이의 사연에 가슴 아파하고
왜구들에게 분노한 것도 무리는 아닙니다.“
이언세가 보고하는 대로였다.
밤새 칠복이의 이야기는 전선 마다
전해졌고 군사들의 칠복이의 효심에
감탄하는 한편 시산도 까지 약탈하고
절이도 까지 노리고 있는 왜구들에 대한
분노를 감추지 않았다.
“어제 밤에 이야기했던 대로 칠복이는
협선에 태워 녹도진으로 보내게 칠복이를
의원에게 보내고 잘 보살피라고 전하게“
“예 나리”
칠복이는 군사들과 함께 절이도로 가겠다고
나서겠지만 겨울 밤바다에 시달린 아이를
데리고 전장에 나갈 수는 없었다.
내가 장수들에게 명령을 내리는 동안에도
전선들은 힘차게 앞으로 나아갔고 군사들은
전의를 불태우며 왜구들과의 전투를
준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