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돈이 문제
8척의 관선을 모두 점령하고 왜구들을
제압하는 데 꼬박 한나절이 걸렸다.
“왜구들을 모두 제압했다는 보고입니다.
왜선에는 왜구들만 있었다고 합니다.
시산도에서 붙잡힌 백성들은
이미 손죽도로 보낸 것이 분명합니다.“
손대남의 보고에 나는 한숨을 쉬었다.
승리하기는 했지만 시산도의 주민들을
구출하지 못했다고 하니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어서 기분이 좋지
않았다.
“어차피 손죽도로 진군할 생각이었지만
백성들을 구하기 위해서도 손죽도 탈환을
서둘러야겠군.
칠복이가 안됐어. 어머니를 만날 기대가
컸을 텐데“
손대남도 안타깝다는 듯이 말했다.
“이번 왜란으로 가족친지를 잃은
이가 어디 한 둘이겠습니까.“
나는 손대남의 말에 쓰게 웃으며
물었다.
“왜선들의 상태는 어떤가.
항해에 지장은 없겠나.“
“뱃머리가 부셔진 4척은 이미 물이차고
있습니다. 곧 침몰할 것 같습니다.
다른 4척은 당분간은 괜찮을 것
같지만 선체에 손상이 있어서
먼 길을 가는 것은 위험할 것
같습니다.“
손대남의 보고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당장 침몰할 정도만 아니면 상관없다.
왜구들을 전선에 수용할 수는 없으니
왜선으로 왜구들은 이송한다.
물론 군사들을 배치해서
함대는 왜선들을 이끌고 녹도진으로
향한다.“
“절이도에는 상륙하지 않으십니까?”
손대남이 의외라는 듯이 물었다.
“절이도의 백성들은 이미 왜구들에게
많이 시달렸을 것이다.
우리는 우선 녹도진으로 돌아가
왜구들을 하옥하고 전선과 군사들을
재정비한다.
오늘밤은 녹도진에서 쉬고 이후에 상황을
봐서 움직일 것이다.“
“예 알겠습니다.”
손대남의 목소리에 힘이 들어간 것이
녹도진으로 돌아가는 것이 반가운 것
같았다.
“좋아 녹도진에 도착하는 대로 흥양현과
발포진에 글을 보내도록 하겠다.
전투 상황을 알리고 흥양현과 발포진의
도움을 받으려고 한다.
왜구들을 완전히 섬멸한 것은 아니니
다시 손죽도로 출정해야 한다.
군량과 화약은 좌수영에서 출정할 때
넉넉히 받아오기는 하지만 오늘 전투에서
적지 않게 소모했으니 흥양현과 발포진에
화약과 군량의 지원을 요청해하겠다.“
“예 알겠습니다.”
손대남이 선실 밖으로 나간 후 급한 일은
끝났다는 생각이 든 나는 녹도진에
도착할 때 까지 쉴 생각으로 갑주를 벗고
느긋하게 자리에 누웠다.
‘오늘은 펀하게 잠들겠군.’
판옥선 4척 협선 5척 그리고 600명의
병력으로 12척의 적선들과 싸워서 8척을
나포하고 500여명의 포로들을 잡았으니
이정도 전공이면 좌수군 함대가 손죽도에서
패전한 책임은 충분히 상쇄될 것 같았다.
오랜만에 마음 편하게 자리에 누웠지만
아직 흥분이 풀리지 않았는지
쉽게 잠이 오지는 않았다.
‘이정도 전공을 세웠으면 처형당할 일은
없겠지만. 그래도 아직 손죽도가 남아있다.
일을 시작했으면 마무리를 지어야지
오늘 도망친 왜구들이 갈 곳은 뻔해
손죽도로 도망쳤겠지.
녹도진에서 재정비한 후 손죽도로 진군해
왜구들을 토벌하자.‘
손죽도에는 지난 해전에서 왜구들에게
패한 좌수군 병사들이 왜구들에게 포로로
잡혀있을 것이고 시산도의 주민들도
왜구들에게 붙잡혀 손죽도로 끌려갔을 것이
분명했다.
‘오늘 12척을 상대로 이정도로 싸웠으면
잘했다고 생각했는데 왠지 시원하지가 않아.
시산도의 주민들을 구출하지 못한 것도
마음에 걸리고‘
시산도의 주민들을 생각하자 정칠복이
생각나면서 임진왜란이 떠올랐다.
‘그래 어제 마음먹은 대로 임진왜란은
어떻게 해보자 임진왜란이 일어나지 못하게
만들 수 없으면 왜란이 일어나도 내가 아는
역사보다 조선에 훨씬 피해가 적도록 아니
가능한 최소한의 피해로 전쟁이 끝나도록‘
현대에서 내가 배운 역사는 임진왜란을
승리한 전쟁으로 가르쳤다.
조총 등 신무기로 무장한 20만이 넘는
일본군을 상대로 조선군과 의병 그리고
명나라 군사들 까지 열심히 싸워서
일본군을 몰아내고 조선을 지켜낸
승리한 전쟁
전쟁의 승패만 가지고 본다면 임진왜란은
조선이 승리한 전쟁으로 봐도 무리가
없었다.
일본의 목표는 조선을 점령하고 명나라로
진군하는 즉 대륙으로 진출하는 교두보로
삼는 것이었고 토요토미 히데요시는
조선의 국토를 부하들에게 영지로 나눠주어
부하들을 통해 조선을 통치할 생각을 하고
있었다.
일본 전국시대를 끝내고 일본을 평정했지만
한정된 영토에서 전공을 세운 부하들에게
영지를 나눠줘야 했던 토요토미 히데요시는
조선의 영토를 욕심냈고 임진왜란 당시
조선으로 출병하는 장수들에게 조선의
어느 지역을 영지로 나눠주겠다는
구체적인 영지분배까지 약속하여
조선으로 출병시켰을 정도였다.
전국시대를 거치면서 수없이 많은
실전을 경험한 장수들과 군사들이
조총 등 신무기로 무장하고 20만명이나
조선에 상륙했으니 토요토미 히데요시는
조선을 점령할 수 있다고 확신했다.
그러나 임진왜란이 무려 7년간이나
이어지면서 장기전으로 흘러가고
이순신 장군과 조선수군의 활약으로
일본군의 서해를 통한 보급이 봉쇄되고
의병들의 활약으로 지상보급로 역시
수시로 위협을 받자 한양을 점령하고
평양까지 진군했던 일본군은 보급에
어려움을 겪게 된다.
전국시대를 누볐던 일본의 무장들도
길어지는 전쟁과 보급의 어려움으로 인해서
지쳐갔고
임진왜란을 일으켰던 토요토미 히데요시가
1598년에 사망하면서 일본군은 조선에서
완전히 철수하게 된다.
결국 일본군이 조선을 점령하는데 실패하고
철수하면서 전쟁에서 조선이 승리했지만.
7년간 조선의 전 지역이 전쟁터가 되면서
그 피해는 고스란히 조선과 조선의 백성들이
뒤집어썼다.
전쟁으로 인한 사상자와 물질적 피해는 물론
전국의 논밭이 황폐해졌고 일본군의 학살과
강간, 약탈로 인한 피해도 적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일본군은 왜란 기간 동안 수많은
조선인들을 일본으로 납치해갔다.
일본으로 납치된 조선인들 가운데는 유럽의
상인들에게 노예로 팔려간 사람들도 있을
정도로 대부분 비참한 삶을 살아야 했고
조선에서 납치해간 도공들로 인해서 일본에서
도자기를 생산하는 것이 가능했을 정도로
임진왜란을 통해 많은 기술과 지식이
조선에서 일본으로 유출됐으니.
임진왜란은 그야말로 조선과 일본의 운명을
바꾼 전쟁이었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가 자리에서 일어난
나는 붓을 들었다.
붓을 든 나는 종이를 펼친 후
생각나는 대로 종이에 적기 시작했다.
‘임진왜란은 수군이 중요했지.
우선은 수군 아니 해군은 전선, 수병 그리고
화포가 있어야지 수병들을 훈련시키는 것은
내가 전문이 아니니 어쩔 수 없고
전선과 화포 그래 군함과 대포가 중요해
그리고 대포를 쏘려면 화약도 있어야
하겠구나.
우선은 이게 중요한 것 같다.
군함과 대포의 개량 그리고 화약의 생산‘
종이에 “군함”, “대포”, “화약”을 적고 보니
나도 모르게 한숨이 나왔다.
‘군함, 대포, 화약 전부 돈이 많이 드는
것들이네 조선에 와서도 돈이 문제구나 돈‘
조선에서도 돈 문제로 고민할 줄 몰랐던
나는 강한 군대는 경제력이 뒷받침 되어야
한다는 상식을 다시 한번 실감했다.
‘돈 문제는 당장 어쩔 수 없고.
우선은 군함과 대포를 개량하는 문제부터
생각해보자‘
나는 종이에 판옥선과 거북선을 적었다.
‘임진왜란 당시 조선수군의 주력 전선은
판옥선이었지. 거북선도 맹활약을 했고
판옥선과 거북선은 다 좋은데 평저선이라서
첨저선보다 속도가 느리단 말이야.
노를 사용하는 만큼 격군들도 많이
탑승해야 해서 먼 바다로 나가기는 어려워
조선에도 첨저선이 있으면 조선수군 아니
조선 해군이 더 다양한 전술을 사용할
수 있지 않을까?‘
첨저선을 떠올리자 갤리온이 생각났다.
‘맞아 이 시대 16세기는 이미 필리핀
루손섬을 스페인이 통치하고 있고
일본에는 네덜란드와 스페인, 포르투갈
상인들이 장사하러 오고 있어.
유럽 상인들과 거래를 할 수 있다면
갤리온을 구하는 것도 가능할 것 같은데?‘
유럽 상인들을 생각하자 실타래가 하나씩
풀려나가는 것 같았다.
‘대포의 개량은 불량기와 홍이포를
개발한다면 조선군의 화력이 크게 증강될
것 같은데?
불량기의 연사력과 홍이포의 위력은
해군은 물론 육군도 전력이 상승할 꺼야.
불량기와 홍이포 역시 유럽의 기술로
개발된 무기였지‘
불량기는 후장식 대포로 포탄과 화약을
장전하는 자포를 본체인 모포에 장착해
포탄과 화약을 장전하는 방식으로
발포한 후에는 모포에서 자포를 분리한 후
모포에서 자포를 교환하는 방식으로
장전하므로 기존의 전장식 대포보다
장전속도가 월등히 빠른 장점이 있었다.
불량기는 중국이 나포한 스페인 선박에서
노획한 후장식 대포를 모방해서 개발한
것으로 알려져 있고 임진왜란 당시
조선으로 출병한 명군의 주력화기로
쓰였다.
조선에서는 임진왜란 당시 명군이 사용하는
불량기의 위력을 목격한 후 본격적으로
쓰이기 시작했고 임진왜란 이후 조선군의
주력화포로 쓰였다.
‘갤리온과 대포뿐만이 아니야 유럽 상인들과
거래를 할 수 있으면 화약 문제도 해결돼
16세기는 유럽 상인들이 일본에 화약과
초석을 대량으로 판매하던 시기이니
유럽 상인들에게서 초석을 수입하면
염초를 만드는 문제도 해결되고
염초와 유황만 있다면 화약을 대량으로
생산하는 것도 가능해.‘
화약의 생산은 조선의 약점 중 하나였다.
조선에서는 아직까지 유황이 나지 않아
명국과 일본으로부터 유황을 수입해야
했고. 염초 역시 생산량이 많지 않아
각 지방마다 염초의 생산량을 할당해
염초 생산을 독려할 정도였다.
‘유럽 상인들에게 초석을 수입하는데
성공하면 염초문제로 걱정할 필요가
없다. 다음 문제는 유황인데
효종시대에 조선에서 유황을 생산하는데
성공했다는 기록이 있었으니 유황도
시간을 가지고 찾아보면 방법이 있을 거야.‘
생각을 하다 보니 조선군의 전력을 강화하기
위해 필요한 자원들은 유럽 상인들과의
거래를 통해 대부분 해결될 수 있을 것
같았다.
‘역시 문제는 돈이군. 돈이야
유럽 상인들이야 돈 벌자고 바다를
건너온 놈들이니 돈만 주면 초석, 대포,
갤리온 무엇이든 판매할 것 같은데 문제는
돈이야‘
돈과 무기만으로 강군을 만들 수는 없겠지만
돈과 무기 없이도 강군을 만들 수는 없는
법이었다.
갤리온과 대포를 구입한 자금을 구하기 위해
머리 속으로 별의별 생각을 다하고 있던 중
녹도진에 도착했다는 소리가 들렸다.
“만호 나리 주무시고 계십니까?.”
“아니다. 잠시 생각할 것이 있었다.”
“드디어 도착했습니다.”
“그래 곧 나가겠다.”
다시 갑주를 입고 선실 밖으로 나가자
갑판 위는 이미 병사들로 가득했다.
병사들은 포구를 보며 기뻐했고 녹도진의
포구에서도 한 무리의 사람들이 전선들을
바라보며 두 손을 들어 환영하고 있었다.
포구를 잠시 바라본 나는 손대남과
이언세를 불러 명령을 내렸다.
“손군관은 녹도진에 상륙하는 즉시
왜구들을 옥에 가두고 군사들을 배치해
철저하게 감시하라.“
“예 알겠습니다.”
“곧 어두워질 것 같으니 왜구들을 하옥한
후 병사들을 쉬게 한다.
밥과 국을 끓여서 병사들을 배불리 먹이고
오늘밤은 편히 쉬게 하라.
그리고 장수들은 저녁을 먹은 후 모인다.“
“예 알겠습니다.”
손대남과 이언세가 대답을 마치자
나는 미안한 마음으로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이 둘은 조만간에
손죽도로 출정할 것을 예상하고 있을 것이다.
이들도 오랜만에 집으로 돌아 왔으니
다시 전장으로 나가는 것이 결코 반갑지는
않을 것이다.
더구나 왜구들을 옥에 가두고 병사들에게
저녁을 먹이고 다음 출정에 대한 준비까지
이 모든 일은 하나부터 열까지 손대남과
이언세 이들의 손을 거쳐야 하는 일이다.
이러다 보니 이들은 회의가 끝나고도 편히
쉬지는 못할 것이 분명했다.
나는 미안한 마음을 숨기지 못하고
그들에게 말했다.
“손죽도에서부터 오늘의 승리까지
둘의 수고가 많았네.
내 결코 자네들을 잊지 않을 것이야“
“과분하신 말씀이십니다.”
“만호나리를 모셔서 영광입니다.”
손대남과 이언세는 더욱 고개를 숙였지만
기뻐하는 기색을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