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선 수군이 되었다-21화 (2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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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에 기록되지 않은 이들

녹도진에 도착한 후 동헌으로 들어간 나는

오늘의 전투 보고와 그동안 왜구들이

저지른 짓을 정리한 보고서를 작성하고

좌수영으로 보내라는 명령을 내렸다.

그와 동시에 좌수영에 있는 우후에게

따로 서신을 보내 한성으로 장계를

올려줄 것을 요청하고 흥양현과 발포진에도

서신을 보내 전투결과를 알리고 왜구들을

섬멸하기 위해서는 또 다시 출정해야 하니

화약과 군량을 지원해 줄 것을 요청했다.

이모든 일을 끝내고 나서야 저녁으로 나온

밥과 국을 마시듯이 먹어치우고는 장수들이

모여 있는 객사로 행했다.

녹도진 객사에서 장수들과 모인 회의는

금방 끝났다.

그 자리에서 나는 장수들과 군사들의 수고를

치하하는 한편 손죽도로의 출병을 주장했다.

왜구 잔적들의 토벌과 좌수사와 좌수군 병사들

그리고 손죽도와 시산도의 백성들을 구출하기

위해서는 손죽도로 출병해야 한다고 설명하자

장수들은 순순히 출병에 찬성했다.

오늘 전투에서 손쉽게 승리한 것과

오늘 전투에서 얻은 왜구들의 수급에

장수들은 전공을 세울 것을 기대하며

출병에 찬성한 것이다.

간단히 회의를 마친 후 장수들이 자리에서

일어나자 나는 밖으로 나가려는 손대남을

불렀다.

녹도진에 도착한 후에도 쉬지 못했는지

손대남은 여전히 두정갑 차림에 허리에는

환도를 차고 있었다.

“이번에 잡아온 왜구들 중에 조선말을

할 줄 아는 자가 있는가?“

“예 저희 녹도군에 붙잡힌 왜구 중에

조선말을 하는 자가 있습니다.“

포로 중에 조선말을 구사하는 자가

있다는 대답에 나는 잘됐다고 생각했다.

“그거 잘됐군. 그 자를 볼 수 있겠나?”

“예 가벼운 부상을 입었지만 움직이기

힘들 정도는 아닙니다. 곧 불러 오도록

하겠습니다.“

“왜구들에 대해 물으려고 하니

다른 사람들은 모르게 조용히 데려오게

이곳으로 데려오기 보다는 옥사 근처의

곳간으로 데려오는 것이 좋겠군.

기왕이면 다른 왜구들도 모르게

조용히 데려오게.“

“예 조용히 처리하겠습니다.”

손대남이 포로를 데려오는 동안

나는 차를 마시며 잠시 휴식을 취했다.

따듯한 찻물이 목을 부드럽게 넘어가는

느낌이 좋았고 곧 온 몸에 따듯한 기운이

도는 것 같았다.

“현대에서는 커피만 마셨었는데 의외로

차도 따듯하고 부드러운 느낌이 드는 것이

마음에 든다. 커피를 마시지 않는 사람들은

이래서 차를 마시나?“

천천히 차를 마신 후 방에서 나와

곳간으로 가면서 손대남이 데려올

포로에 대해서 생각해봤다.

‘정해왜변 당시 조선을 노략질한 왜구 중에서

조선말을 하는 자라면 그자일 확률이 높다.

이번에 조선으로 쳐들어온 왜구들 중에

조선출신이 그 자 하나가 아닐 수도 있지만

조선출신 왜구들 중에서 그 자의 지위가

높았을 가능성도 있으니.

뭐 곧 만나게 될 텐데. 직접 물어보면 알겠지‘

포로에 대해 생각하며 곳간으로 향하자

곳간 앞에는 창을 든 군사가 서 있었고

안에는 이미 관솔불이 밝혀져 있었다.

나를 본 군사는 군례를 올렸고 나는

군례에 대답한 후 곳간 안으로 들어갔다.

잠시 후  손대남의 목소리가 들렸다.

“만호나리 저 손대남입니다.”

“들어오게”

“예”

불을 미리 밝힌 것이며 곳간 앞에 군사가

배치된 것 모두 손대남의 솜씨 같았다.

신중한 성격의 손대남은 이번에도 혼자

포로를 끌고 오지 않았다.

손대남이 안으로 들어오자 그 뒤를 따라

건장한 체구의 병사 둘이 밧줄에 묶인

왜구를 끌고 곳간 안으로 들어왔다.

“꿇어라”

왜구를 꿇어앉힌 손대남은

굵직한 목소리로 왜구에게 말했다.

“녹도 만호 나리시다. 물으시는 말에

사실대로 대답하지 않으면 사지가

멀쩡하지 못할 것이다.“

밧줄에 묶여있는 사내는 손대남의

위협에도 고개를 숙이고 있을 뿐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이놈이 왜 대답이 없어.”

그 모습을 본 병사가 왜구에게 화를 내며

옆구리를 걷어차자 발길질을 당한 왜구는

그제서야 비명을 지르며 대답했다.

“사실대로 대답하면 살려주시는 겁니까?”

왜구는 정확한 발음의 조선말로 물었다.

왜구의 말에 나는 냉정하게 대답했다.

“나도 사실대로 말해주마.

네 목숨은 장담할 수 없다.

그러나 사실대로 대답하지 않거나

거짓을 말하면 죽는 것 보다

끔직한 고통을 당하게 해주마.“

내말이 못마땅한 듯 왜구는 다시

고개를 숙였다.

“아니 이놈이.”

병사들이 다시 왜구에게 발길질을

하려고 하자 나는 손을 들어 병사들을

제지했다.

“사실대로만 대답하면 여기에 있는

동안은 편히 지낼 수 있게 해주지.

잠자리에는 솜이불을 깔아주고

밥을 굶는 일도 없을 것이다.“

왜구는 그제 서야 고개를 들어

나에게 간청했다.

“만호나리시면 양반이시고 높으신 분이

아니십니까? 그런 높으신 분이

소인의 목숨하나 구해주지 못하신다는

말씀이십니까?

무엇이든 보고 들은 대로 대답할 테니.

제발 살려주십시오.“

‘삶에 대한 애착인가?

말로는 살려달라고 하지만

눈물을 보이지는 않는 것을 보니

죽음을 두려워하지는 않는 것 같은데?

두려움보다는 살아남겠다는 의지가

강한 것 같군. 좋아 쓸모가 있겠어.‘

“우선 묻는 말에 대답이나 하거라.

혹시 아느냐 네가 쓸모가 있다는 것을

알면 네 목숨은 걸질 수 있을지“

처음보다는 긍정적인 대답이라고

느꼈는지 왜구의 눈이 빛나기

시작했다.

“무엇이든지 물으십시오.”

“네 이름은 무엇이냐?”

“사화동이라고 합니다.”

사화동의 이름을 듣는 순간

나도 모르게 눈이 힘이 들어갔다.

‘역시 사화동이었어.’

나는 감정을 감추기 위해 일부러

딱딱한 말투로 물었다.

“어디에서 왔으며.

손죽도에는 몇 명이나 왔느냐?“

“소인은 고토의 후쿠에 섬(福江島)에 살고

있었습니다. 이번에 조선으로 건너온

병사들의 수는 2000명 남짓이고 병사들은

후쿠에 섬과 주변의 다른 섬들 그리고

히라도 섬(平戶島)에서도 왔다고

들었습니다.“

“히라도?”

내 반응에 사화동은 의외라는 듯이

물었다.

“히라도를 아십니까.”

‘알지 아주 잘 알고 있지 히라도는

네덜란드와 포르투갈 상인들이

일본에 처음 도착했던 곳이고

가톨릭 선교사들이 활동하고 있는 곳이지.

히라도에 갈수 있다면 유럽 상인들과

거래하는 것도 꿈은 아니야.‘

나는 사화동의 질문에 대답하지 않고

다른 질문을 던졌다.

“히라도에는 가봤느냐”

“소인은 뱃놈입니다. 배를 타고

몇 번인가 다녀오기는 했습니다.“

히라도에 다녀왔다는 대답에 나는

입가에 웃음을 띠우며 다음 질문을

던졌다.

“히라도에서 남만인들을 만나보았느냐?”

이번에는 사화동이 놀란 토끼 눈을 하고

나를 바라봤다.

“아니 남만인들을 어떻게 아십니까?”

나는 사화동을 비웃으며 말했다.

“조선에서는 남만을 모르고 있는 줄

알았느냐?

조선은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모르고 있었을 것 같으냐?

하여간 남만인에 대해 아는 것을 보니

남만인들을 만나본 모양이구나?“

사화동은 한결 기가 죽은 태도로

순순히 대답했다.

“예 히라도 섬에 처음 갔을 때 남만인을

보았고 후쿠에 섬에서도 남만인을 본적이

있습니다.“

사화동의 대답에 이번에는 내가 놀랐다.

‘뭐 고토열도에서도 유럽인들을 봤어?

유럽 상선이 고토열도 까지 들어오는

건가?‘

나는 애써 놀란 표정을 감추며 물었다.

“남만선이 후쿠에 까지 오는 것이냐?”

“예 그렇습니다. 자주 오는 것은 아니지만

후쿠에 섬에 남만선이 찾아오기도 합니다.

히라도 섬에서는 열 척도 넘는 많은

남만선들이 정박해 있는 것도 본적이

있습니다.“

나는 속으로 ‘대박이다’를 외쳤다.

‘고토열도 까지 유럽 상인들이 들어온다면

유럽인들과 접촉할 방법이 있을 것도 같다.

유럽 상인들과 교역하는 것도 꿈은 아니야.‘

예상했던 것 보다 좋은 정보를 얻은

나는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웃는 얼굴로 앞으로 바라보던 나는

손대남이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는 것을 발견하고

내 실수를 깨달았다.

‘아 실수 왜구들에 대해 물어본다고

불러왔는데 지금까지 엉뚱한 것만

물어봤다.‘

정신을 차린 나는 진지한 표정으로

사화동에게 물었다.

“오늘 왜선 4척이 도망쳤다.

아마 손죽도로 돌아갔겠지.

손죽도에는 왜선이 몇 척이나

남아 있느냐?“

갑자기 대화의 주제가 바뀌자

사화동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아는 대로 대답했다.

“손죽도에서 출발하기 전에 전선 2척을

남겨놓았습니다. 조선 수군의 화포에 맞아

파손된 전선들입니다.

전선을 수리하기 위해 병사 100명이

손죽도에 남아있습니다.“

‘오늘 전투에서 4척이 도망쳤으니

손죽도에는 왜선이 6척 남아있는

셈인가.‘

“오늘 우리 좌수군이 점령한 왜선에는

시산도의 백성들이 없었다. 시산도의

백성들도 손죽도로 보냈느냐?“

“예 전선 한척을 어제 손죽도로

돌려보냈습니다.“

시산도의 백성들을 이미 손죽도로

보냈다는 대답에 병사들의 인상이

한결 험악해졌다.

나는 병사들을 눈짓으로 말리며

사화동에게 계속 질문을 던졌다.

“그럼 손죽도에는 왜선이 7척 있겠구나.

왜구들은 몇 명이나 남아 있느냐?“

사화동은 잠시 속으로 생각을 한 후

이번 질문에 대답했다.

“배는 일본에서 몰고 온 전선 외에도

조선 수군의 전선도 2척이나 있습니다.

병사들은 노를 젓는 노꾼들 까지

600명은 넘을 것입니다.

그리고 손죽도에는 시산도의 백성들

외에도 손죽도의 백성들과 포로로 잡힌

조선수군 병사들 까지 조선인이 400명은

잡혀있을 것입니다.“

“뭐 조선인들이 400명이나 잡혀있어?”

사화동의 대답에 나는 물론 손대남과

병사들도 놀랐다.

‘현대 역사 기록에 정해왜변에 대해서는

녹도만호 이대원이 전사하고 장수들이

부상당한 것과 전선을 빼앗긴 사실만

기록되어 있었지.

조선의 백성들이 얼마나 피해를 입었는지는

전혀 나와 있지 않았어.

이번 사건으로 조선인들이 왜구들에게

잡혀간 것은 알고 있었지만

무려 400명이라니 이렇게나 많이

잡혀있다니‘

너무 놀란 나는 더 이상 질문을 할 수가

없었다.

“알겠다. 오늘은 이만 쉬어라

다시 부를 날이 있을 것이다.“

“예 나리”

사화동과 더 이상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마음이 사라진 나는 사화동을 돌려보냈다.

병사들이 험악한 얼굴로 사화동을 일으켜

밖으로 나가자 나는 손대남에게 조용히

말했다.

“사화동을 다른 왜구들로부터 떼어놓게

다른 왜구들과 이야기를 주고 받지

못하도록 떨어트려 놓고 도망치지

못하도록 단단히 지키도록 하게“

“예 알겠습니다.”

오늘 대화를 들으며 사화동의 가치를

깨달은 것인지 손대남은 진지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사화동의 옥에 이불 한 채 넣어주고

끼니 때 마다 밥을 넉넉히 주라 이르게“

“신경 쓰라고 전하겠습니다.”

사화동에 대한 처분을 명령한 나는 곳간

밖으로 나왔다.

곳간 앞을 지키고 있던 병사는 그때까지

창을 들고 서 있었다.

떡 벌어진 어깨에 흐트러진 모습도 없이

창을 들고 곳간 앞에 버티고 서있는

모습은 제법 든든해 보였다.

‘일반 병사치고는 제법인데.’

처음 보는 병사였지만 체격도 태도도

마음에 들었다.

“이름이 무엇이냐?“

내가 이름을 묻자 병사는 황송하다는

표정이었지만 당당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김개동이라고 합니다.”

‘뭐 개똥이 사람이름이 개똥이라고

역시 조선인가?‘

나는 터져 나오는 웃음을 필사적으로

참으며 근엄한 얼굴로 병사에게 물었다.

“계속 이곳을 지킨 것이냐?”

“예 그렇습니다. 만호 나리

군관 나리께서 이곳을 지키라고

명하셨습니다.“

‘대답하는 목소리도 괜찮고’

김개동이 마음에 든 나는 그를

내 호위병을 쓸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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