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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어사
“내아(內衙)로 갈 것이다. 따르라.”
“예 만호나리”
곳간을 나오니 이미 한밤중 이었다.
나는 수령의 살림집인 내아로 돌아가는
길에 김개동을 호위 삼아 데리고 갔다.
‘오랜 시간 서 있었을 텐데 걸음걸이도
똑바르고 체격을 보니 힘도 좋을 것 같고
무술실력만 괜찮으면 호위병으로 데리고
다녀도 괜찮을 것 같다.‘
내아로 가는 동안 김개동을 평가한 나는
내아에 도착하자 김개동을 돌려보냈다.
“늦은 시간까지 수고 많았다.
오늘은 이만 들어가거라.“
“평안히 쉬십시오. 만호 나리”
“내일 아침을 먹고 난 후 무기를 들고
내아로 와서 나를 기다려라.
누가 물으면 내 명을 받았다고 하고“
“예 알겠습니다. 만호나리”
내일 또 보자는 말에 김개동은 긴장한
기색을 보였다.
그렇게 김개동을 보낸 후 나는 내아로
들어와 관노에서 목욕물을 끓이게 해
따듯한 물로 몸을 씻고 편히 쉬었다.
다음날 아침 자리에서 일어난 나는
아침을 먹자마자 철릭을 입고 밖으로
나왔다.
내아의 문 앞에는 김개동이 어제와
마찬가지로 창을 들고 서 있었다.
“아침은 먹었느냐?”
“예 만호나리”
“포구로 갈 것이다. 나를 따르라”
“예 나으리”
나는 김개동을 거느리고 포구로 향했다.
이른 아침이었지만 포구에서는 병사들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어제 돌아왔어도 곧 출정해야 하니
병사들도 쉴 틈이 없구나.‘
나는 천천히 걸으며 가마니를 나르고
있는 군사들을 바라보았다.
“만호 나리 이른 시간에
무슨 일이십니까?”
포구에서 작업지시를 내리고 있던
이언세가 나를 알아보고 다가왔다.
이언세의 뒤에는 녹도진의 아전들이
이언세를 따라 나에게 군례를 올렸다.
“잠시 왜선을 보려고 왔다.
왜선에 있던 화물들은 전부
내렸느냐?“
“예 배에 숨어있는 자들은 없는지
철저하게 살펴보고 배 안에 있던 것은
지푸라기 하나까지 모두 꺼내서 곳간
안에 넣어 두었습니다.
왜선으로 오르시겠습니까?“
‘관선에서 물건들을 모두 꺼냈다면
굳이 관선에 올라갈 필요가 없지‘
나는 관선 보다는 관선에서 나온
물품 정확히는 무기에 관심이 있었다.
‘하지만 왜선도 그냥 둘 수는 없지‘
“출정 준비가 끝나는 대로 목수들을
동원해 왜선을 수리하라. 다시 바다로
나갈 수 있을 정도로 완전히 수리하라.“
“예 알겠습니다.”
관선들을 수리해 놓으라는 명령에
이언세는 떨떠름한 얼굴이었지만
순순히 대답했다.
“왜선에서 나온 화물들을 보관중인
곳간으로 안내하라. 노획한 물건들을
확인하겠다.“
“뫼시겠습니다.”
이언세의 안내를 받으며 포구 한쪽에
있는 곳간 안으로 들어간 나는 한쪽
벽에 세워져 있는 조총을 발견하고는
나도 모르게 감탄사가 나왔다.
“역시”
조총을 쓰다듬으며 곳간을 둘러보았다.
‘조총이 있다면 총알 그리고 화약도
있을 텐데.’
곳간 안을 살펴보던 나는 가죽으로 된
주머니들을 발견했다.
조심스럽게 안을 열어 보니 둥근 구슬
모양의 총알들이 주머니 안에 가득히
들어있었다.
‘좋아 조총에 총알 까지 횡재했다.’
곳간 안에 있는 나무통들을 일일이
확인한 끝에 화약이 든 통까지 발견한
나는 화약통과 총알이 든 주머니를
조총에 세워져 있는 벽 쪽에
모아 놓고 곳간을 나왔다.
곳간을 나온 나는 이언세에게 조총을
잘 챙겨둘 것을 명령했다.
“벽에 세워져 있는 총통들은 따로
모아서 안전한 곳에 보관하라
한정이라도 분실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될 것이다.“
“예 알겠습니다. 나리”
“총통 옆에 가죽주머니와 나무로 된
통들이 있을 것이다. 총통의 탄환과
화약이니 총통과 같이 보관 하고
분실하지 않도록 주의하라“
“예 만호나리 명심하겠습니다.”
이언세가 대답하자 나는 만족한 표정을
지으며 아전들 앞으로 나갔다.
예상하지 못한 자리이지만 아전들을
만났으니 그들의 수고를 격려해 주고
싶었다.
“이른 아침부터 수고가 많다.
지난 전투로 피곤하겠지만
왜구들을 토벌하고 조선의 백성들을
구하기 위한 일이니 힘을 내야
할 것이다.
내 너희의 수고를 잊지 않을 것이다.“
“감사합니다. 만호나리”
내가 이언세와 아전들의 수고를 치하하고
잊지 않겠다고 하자 아전들은 감격한
것 같았다.
아전들의 군례를 받으며 나는 발걸음을
옮겼다.
포구를 떠나 동헌으로 온 나는 장수들을
소집하고는 잠시 앉아 생각에 잠겼다.
‘대포와 군함만 고민할게 아니었어.
조총 아니 화승총도 하루빨리
생산해야 한다.
문제는 아직 조선에는 화승총을 만들
기술자가 없다는 건데. 어쩔 수 없이
일본의 기술자들을 데려와야겠어.
납치를 하던 돈을 주던 일본에서
화승총을 만들 수 있는 기술자를
데려와야 해 그리고 고토열도 까지
유럽 상인들이 들어온다면 고토열도에서
유럽 상인들과의 접촉이 가능하다는
말인데 고토열도 까지만 간다면
유럽 상인들과 만나는 문제는 해결될 것
같은데. 화승총을 제작하는 것도 그렇고
유럽 상인들과의 교역도 그렇고
문제는 돈이군. 돈이 문제야‘
돈 문제로 고민하고 있었을 때 장수들이
도착했다.
“부르셨습니까. 만호 나리”
손대남이 장수들을 대표해 군례를
올리자 나는 군례를 받은 후
장수들에게 말했다.
“손죽도로 출정하는 것은 이미 결정된
일이지만 어제 자세한 이야기를 나누지
못 해 다들 모이라고 했네.“
내가 장수들을 소집한 이유를 말하자
손대남은 시원스럽게 대답했다.
“이야기를 따로 나눌 필요가 있겠습니까.
왜구들을 토벌하기 위해 손죽도로
출정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만호 께서
저희의 주장이시니 명을 내리시지요.
저희는 만호 나리의 명대로 열심히
싸울 뿐입니다.“
손대남이 나서서 말하자 다른 장수들도
고개를 끄덕이는 것이 별다른 의견이
없어 보였다.
“좋다. 그럼 오늘 하루는 재정비와
출정을 준비하도록 하고 내일 아침
손죽도로 출정하도록 한다.“
“예~”
장수들은 힘차게 대답했다.
다들 전공을 세울 욕심에
사기가 충천해 보였다.
“손대남 군관”
“예 나리”
“손군관은 전선 1척과 군사들을 이끌고
오늘 중으로 절이도로 출발하도록 하라.“
오늘 출발하라는 갑작스러운 명령에도
손대남은 당황하는 기색도 없이
대답했다.
“예”
“절이도의 백성들은 왜구들에게 피해를
입었을 것이다. 군량 50섬을 내어줄테니
왜구들에게 피해를 입은 백성들을
위무하고 혹시라도 절이도에 남아있는
왜구가 있다면 포박하도록 하라“
“예 알겠습니다.”
“조천군 군관”
“예 나리”
조천군은 녹도진 소속 군관으로
녹도만호 이대원이 손족도로 출정했을
당시 녹도진을 지키고 있다가 내가
좌수영에서 보급을 받고 다시 출정하자
녹도전선을 지휘해 합류한 장수였다.
“조군관은 준비가 되는 대로 협선 2척을
거느리고 전라좌수영으로 가도록 하라.
조군관의 임무는 좌수군 우후 나리에게
전투의 결과를 보고하고 우리 좌수군이
세운 전공을 확인시키는 것이다.
어제 거둔 왜구들의 수급과 노획한
병장기들 그리고 생포한 왜구들도 10명
정도 좌수영으로 수송하도록 하라.“
“예 알겠습니다. 나리”
전공을 보고하라는 명령에 조천군은
기뻐하며 대답했다. 전공을 증명할
수급과 포로들을 가지고 좌수영으로
가는 것이니 전공할 자랑할 기회가
될 것이다.
‘전공을 세운 것도 중요하지만
자신이 세운 전공을 인정받는 것 역시
중요한 일이지. 좌수영에 포로들과
왜구들의 수급을 가져가면 우리가
열심히 싸웠다는 증거도 될 거야.‘
어제 전투에서 좌수군은 500명이 넘는
포로를 붙잡았고 관선과 인근 바다에서
400개가 넘는 왜구들의 수급을 확보했다.
전사자들은 물론 바다에 빠져 죽은
왜구들도 좌수군이 발견한 시신들은
모두 건져서 수급을 잘라냈고
관선들을 점령한 후 왜구들 중에서
중상을 입은 자들과 저항하는 자들은
좌수군 군사들이 처단해 이들의 역시
수급이 잘렸다.
그렇게 거둬들인 수급들이 400여개에
달하며 그 수급들을 배에 싣고 왔다는
보고를 들은 나는 속이 거북해지는 것을
느꼈지만. 조선에서는 수급의 수로
전공을 평가하니 전공을 인정받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이렇게 장수들에게 임무를 부여한 나는
회의를 끝내고 밀린 공무를 보기 위해
장수들을 돌려보냈다.
내가 녹도진에서 장수들과 회의를 하고
있던 바로 그 날 한성에서는 왜변의 소식이
전해졌다.
좌수군 우후가 올린 장계가 한성에 도착한
것이다.
왜구가 손죽도를 침범한 것도 모자라
수군을 이끌고 출병했던 좌수사가
왜구들에게 패했다는 소식에 놀란
선조(宣祖)는 대신들과 함께 대책을
논의했다.
“또 왜구들이 말썽을 부리고 있구나.
그런데 전라좌수사가 군사들을 이끌고
나갔으나 패해 돌아오지 못했다니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인가?“
왜구들이 쳐들어온 것도 큰일이지만
전라좌수사가 직접 출병했다가 패해서
돌아오지도 못했으니
망신도 이런 망신이 없었다.
선조의 성난 음성에 다른 대신들이
나서지 못하자 영의정 노수신이
나섰다.
“ 전하 전라좌수군이 패했다고는 하나
다행히도 녹도만호가 다시 군사들을
이끌고 왜구들과 싸우러 나갔다고 하니
다행히 좌수군이 와해된 것은 아닌 것
같사옵니다.
우선은 용맹한 장수들을 보내 왜구들을
물리치는 것이 시급한 일로 보이옵니다.“
노수신이 먼저 입을 열자 다른
대신들은 고개를 숙이고 있으면서도
내심 노수신에게 고마워했다.
중종 10년(1515년)생인 노수신은
이미 나이가 70 이 넘었으니 조선시대
기준으로 상당한 고령이었다.
노수신 스스로도 고령인 점과 건강상의
이유로 사직을 요청했으나 선조는
노수신의 사직을 허락하지 않았고
도리어 궤장을 내릴 정도로 깊이
신임하고 있었다.
선조의 신임을 받고 있는 노수신이
나서자 다른 대신들도 하나둘씩 입을
열기 시작했다.
“그러하옵니다. 전하 용맹한 장수와
날쌘 군사들을 보내 왜구들을
물리치소서.“
대신들이 입을 열기 시작하자
선조는 대신들을 내려다보며 물었다.
“영상의 말이 옳다.
우선은 장수와 군사들을 내려 보내
왜구들을 토벌할 것이다.
그럼 장수는 누구를 내려 보내는 것이
좋을 것 같은가?“
이번에는 이조판서 이산해가 나섰다.
“왜구를 물리칠 장수로는 군기시 제조
변협(邊協) 만큼 적합한 장수가
없을 것이옵니다.
변협은 이미 을묘년의 난(을묘왜란)에
왜구들과 싸워 큰 전공을 세웠을 만큼
왜구들과의 전투에 익숙할 뿐만 아니라
전라도 병사를 역임했었으니
전라도 현지의 사정에도 정통한
장수이옵니다.“
변협이라도 선조도 크 불만이 없었다.
“좋다 변협을 방어사로 임명해
전라도로 내려 보낼 것이다.
그러나 변협의 나이가 적지 않으니
젊고 용맹한 장수를 한명 더 보내
왜구들을 토벌하도록 할 것이다.
누구를 보내면 좋겠는가?“
변협은 1528년 생으로 이미 적지 않은
나이였다. 그러나 변협보다 13년이나
먼저 태어난 노수신은 선조가 굳이
변협의 나이를 들먹이며 젊고 용맹한
장수를 보내겠다고 하자 선조가
누구를 보내고 싶어 하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신립이다. 주상전하는 신립을 신임하고
계신다.‘
선조의 의도를 눈치 챈 노수신은 신립을
추천했다.
“용맹한 장수라면 조선에서 신립만큼
용맹한 이가 없사옵니다.
북방의 야인들도 신립의 용맹을 두려워하며
신립이 이끄는 기병만 보면 도망을 칠
정도이니 신립을 전라도로 보내신다면
기필코 왜구들을 토벌할 수 있을
것이옵니다.“
노수신이 신립을 추천하자 선조는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현대에서 신립은 탄금대 전투로 인해서
무능한 장수라는 평가를 받기도 하지만
신립이 함경도의 6진 지역에서 활약했던
당시에는 용맹하기로 이름난 장수였다.
신립이 온성부사로 재임하고 있던 1583년
1만명 이상의 여진족이 함경도 6진을
공격한 사건이 있었다.
바로 ‘니탕개의 난’ 이었다.
니탕개의 난 당시 여진족의 공격을 받던
진과 성은 대부분 여진족에게 함락되거나
포위당해 구원만 기다리고 있었지만
신립은 평소에 훈련시켜 놓았던 500명의
기병을 이끌고 출정해
경원진을 포위하고 있던 여진족을
배후에서 공격해 경원진을 구하고
적장을 활로 쏴서 죽이는 등 활약했고
이때의 전공으로 선조의 신임을 얻게
되었다.
“좋다. 군기시 제조 변협(邊恊)을 좌방어사로
함경남병사 신립(申砬)을 우방어사로 삼아
전라도로 출정하게 하고 전라좌수군은
물론 전라우수군과 전라감영의 군사들을
일으켜 왜구들을 토벌하게 할 것이다.“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전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