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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수군 우후
손죽도를 향하던 좌수군 전선들이 전날
손대남이 지휘하는 전선과 합류하던
그 시간 전라좌수영을 지키고 있던
좌수군 우후 한정복은 조천군에게
보고를 받고 있었다.
“뭐야 적선 12척과 전투를 벌여 4척을
침모시키고 4척을 나포했다고?
왜구 400명을 죽였고 포로의 수가
500명이 넘는다니 이것이 사실이냐?“
믿기지 않는 전과에 놀란 한정복이 묻자
녹도진 군관 조천군이 당당하게 대답했다.
“예 그렇사옵니다. 도망친 왜선들도
철환과 조란환에 맞았으니 도망친
왜구들도 이미 숨이 끊어진 놈들이
적지는 않을 것이옵니다.
왜구들의 수급과 노획한 병장기들은
이미 동헌 앞에 내려놓았습니다.“
조천군의 대답에 놀란 한정복은
믿기지 않는다는 듯이 물었다.
“녹도만호는 어떻게 싸웠기에 불과 4척의
판옥선으로 적선을 4척이나 침몰시키고도
4척을 더 나포했다는 말이냐? 적선의 수가
12척이나 되었는데도 말이다.“
한정복이의 질문에 조천군은
자랑스럽다는 듯이 대답했다.
“왜구들은 자신들이 수가 많은 것을 믿고
겁도 없이 아군에게 달려들었지만
만호 나리께서는 왜구들에게 화포가
없다는 사실을 병사들에게 알리시고
침착하게 대응하라 명하셨습니다.
왜선이 아군 전선을 향해 달려들자
만호 나리께서 당파를 명령하셨고
판옥선을 왜선에 출동시켜 왜선의
움직임을 봉쇄하셨습니다.
아군의 공격에 왜구들이 당황했는지
후방에 있던 왜선들이 아군 전선의
양 측면을 노리고 공격해 왔지만
만호 나리는 왜구들이 그렇게 측면으로
다가오기 만을 기다리고 계셨습니다.
왜선들이 다가오자 만호 나리께서는
총통의 방포를 명하셨고 모든 전선들이
일제히 방포하여 철환과 조란환으로
왜구들을 섬멸하였습니다.“
당파와 총통으로 왜구들을 제압했다는
대답에 한정복이 다시 물었다.
“왜구들도 총통으로 무장했다고 들었는데?
왜구들에게도 승자총통과 비슷한 병기가
있다고 들었다. 왜구들이 총통으로
공격하지는 않았느냐?“
“왜구들은 그 병기를 철포라고 하옵니다.
아군 전선들이 방포한 후 왜구들도 철포와
활로 아군을 공격했지만 아군은 갑판에
방패를 세워 적의 공격을 막아냈습니다.“
조천군의 대답을 들은 한정복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녹도만호는 용맹할 뿐만 아니라 지략도
대단구나. 판옥선으로 왜선을 당파하여
적의 기세를 꺾고 왜구들이 다가오자
총통을 방포해 왜구들을 제압하다니.
적군과 아군의 전력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지 않았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전투경과를 보고하는 서신을 다시 한번
읽은 한정복은 조천군에게 말했다.
“자리에서 일어나라 내 두 눈으로 왜구들의
수급과 병장기를 확인해야겠다.“
“예 나리”
한정복과 조천군은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좌수영 동헌 앞 마당에는 이미 가마니가
깔려 있었고 가마니 위에는 왜구들의 수급이
널려 있었다.
부패를 방지하기 위해 바닷물을 뿌린
수급에서 핏물이 떨어지면서 가마니를
붉게 물들였고 피비린내가 풍기고 있었다.
수백구의 수급들이 가마니 위에서 핏물을
흘리고 있는 장면은 전장을 누볐던
군관들도 고개를 돌릴 정도로 끔찍했다.
수급이 놓여있는 가마니 옆으로는
왜구들에게서 노획한 무기들이 널려있었다.
다양한 길이의 일본도를 비롯해 장창과
일본식 투구에 갑옷까지 있었으며
일본에서 무장들뿐만 아니라 병사들까지
보조 무기로 흔하게 차고 다니는
와키자시(30~60cm 길이의 일본도)가
100자루 이상이 쌓여있어 최소한
100명 이상의 왜구들을 죽였거나
포로로 잡았다는 사실을 증명해
주고 있었다.
한정복이 수급과 무기들을 보고 놀란
표정을 감추지 못하자 조천군은
병사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왜구들을 끌고 와라”
“예이”
잠시 후 병사들은 포로로 잡혀있던
왜구들을 한정복 앞으로 끌고 왔다.
왜구들의 수는 모두 10명이었고 부상을
당했는지 모두 팔이나 다리에 무명천을
감고 있었다.
왜구들의 수급에 이어서 잡혀온 포로들 까지
보자 한정복은 좋은 기회를 놓쳤다는 생각이
들었다.
‘녹도만호가 이렇게 큰 전공을 세우다니
이번 전란이 끝나면 녹도만호는
큰상을 받겠구나.‘
사람의 욕심은 누구나 마찬가지였다.
전라좌수군 우후 한정복은 녹도만호가
좌수영에 찾아와 전선과 군사의 지원을
요청했을 때만 해도 자신이 전장에
나가지 않아도 되는 것을 기뻐했었다.
하지만 막상 녹도만호가 큰 전공을 세우자
지금은 녹도만호가 세운 전공이 부럽기만
했다.
잠시 왜구들을 바라보던 한정복은 기운 없는
목소리로 조천군에게 말했다.
“알겠다. 조정에 장계를 올려 녹도만호가
왜구들을 토벌한 사실을 알릴 것이다.
녹도만호는 언제 좌수영으로 귀환할
예정이냐“
조천군은 한정복의 질문을 듣고
지금 무슨 소리를 하냐는 표정을 지었다.
‘이게 무슨 헛소리야? 만호 나리를 이미
군사들과 함께 손죽도로 출정하셨을 텐데.
왜 좌수영으로 귀환해?‘
“왜 대답이 없느냐? 녹도만호 이대원이
언제 전선을 이끌고 좌수영으로 귀환할
계획인지 물었다.“
조천군에게서 아무 대답도 없자 한정복은
성난 목소리로 물었다.
그제서야 조천군은 한정복이 녹도만호가
보낸 글을 다 읽지도 않고 전공을 확인하러
나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우후 나리가 전공욕심에 배가 아프신
모양이군. 만호나리께서 보낸 서신을
끝까지 보셨으면 출정소식을 모를 리가
없을 텐데.‘
조천군은 속으로 우후를 비웃으며 황급히
자리에서 엎드렸다.
“소인이 죽을죄를 졌습니다. 나리
전장에서 돌아 온지 얼마 되지 않아
아직도 정신이 나갔었나 봅니다.
소인의 죄를 용서해 주옵소서.“
전투를 치르고 돌아온 군관이 엎드려서
용서해달라고 청하니 한정복도 더 이상
조천군을 질책하기 어려웠다.
“용서할 테니 묻는 말에나 대답하라
녹도만호는 언제 좌수영으로 귀환할
예정이냐.“
한정복이 용서한다고 했지만 조천군은
일어나지 않고 엎드린 자세 그대로
대답했다.
“만호 나리께서는 군사들을 이끌고
손죽도로 출정하실 예정이십니다.
지금쯤이면 이미 출정하셨을 것입니다.“
“녹도만호가 손죽도로 출정해?”
한정복이 확인하듯이 물었다.
“예 만호 나리께서 왜구들에게 잡혀간
백성들과 좌수군 병사들을 구하기
전에는 돌아오지 않으실 작정을 하고
출정하셨습니다.“
그동안 왜구들과 전투를 치르며 진정한
마음으로 녹도만호 이대원을 존경하게 된
조천군은 큰 목소리로 한정복에게
대답했다.
“알았으니 이만 일어나라”
“예”
조천군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한정복
앞에서 고개를 숙이며 한정복의
눈을 피했다.
한정복은 조천군이 자신과 눈을 마주치지
못하자 군관치고는 겁이 많다고 생각하며
조천군을 비웃었다.
‘분명히 용서하겠다고 했는데도 나와
눈도 마주치지 못하다니.
저리도 겁이 많아서야 어찌 장수라고
할 수 있겠나? 그런데 녹도만호는
저런 겁쟁이들을 장수라고 끌고 가서
이런 큰 공을 세웠단 말이야.
그럼 내가 출정했어도 충분히 전공을
세울 수 있었을 것 같은데‘
한정복이 전공에 욕심을 내며 자신만의
생각에 잠겨있는 동안 조천군은 한정복이
생각하는 것과는 다른 이유로 고개를 들지
못하고 있었다.
‘우후의 얼굴을 봤다가 비웃는 기색을
보이기라도 하면 큰일이지. 아무리
못난이지만 좌수군의 우후인데 방금
용서해 달라고 해놓고 저놈 얼굴보고
웃으면 큰일이야.‘
조천군은 애써 한정복의 얼굴을 마주보지
않으며 속으로 한정복을 비웃었다.
‘만호나리께서 좌수영에 서신을 보내면서
손죽도로 출정한다는 소식을 빠트렸을 리가
없지. 분명히 서신에 적혀있었을 텐데.
만호 나리가 공을 세웠단 소식에
눈이 뒤집혀져서 글도 다 읽지 않고
수급을 확인하러 나온 게 분명해.
그러니 손죽도로 출정한 것도 모르고
있지. 저런 못난이가 우후라니 참‘
조천군은 한정복을 비웃으며 웃음을
참기 위해 계속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한동안 잠시 생각에 잠겨있던 한정복은
결국 전공욕심을 이기지 못했고
이제라도 왜구 토벌에 숟가락을 올리고
싶었다.
‘왜구토벌이 끝난 것이 아니라면
출정의 이유는 충분해 그동안 좌수영
전선들을 녹도만호에게 배속시킨 것도
나였으니 좌수사 영감이 부재중인
상황에서 우후인 내가 녹도만호를
지원하기 위해 전라좌수군을 이끌고
출정한다? 충분히 말이 되는 일이야
말이 되고말고.‘
결국 숟가락을 얻기로 결심한 한정복은
좌수영 군관에게 물었다.
“지금 좌수영에서 출정할 수 있는 전선은
모두 몇 척이냐?”
“좌수영의 직속 전선들은 모두 녹도만호와
함께 출정하였습니다만 좌수군 예하의
고을과 각 진의 전선들은 좌수영에 도착해
대기 중입니다. 기존의 전선이 9척에
순천부와 낙안군, 보성군에서 각각
1척씩을 더 동원해 판옥선만 12척에
달합니다.“
중년 군관의 대답에 한정복은 기대감에
가슴이 부풀어 올랐다.
‘좋아 어차피 녹도만호가 이끌고 있는
전선도 절반은 좌수영 직속 전선들이니
녹도만호가 전공을 세우는데 내 공이
없다고는 못하겠지. 내가 아니었으면
녹도만호가 어떻게 좌수영 전선들을
끌고 나갈 수 있었겠나. 그리고 판옥선이
12척이나 남아있다니 좋아 아주 좋아‘
자신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를 지은
한정복은 자신의 앞에 있는 조천군을
바라보고는 얼른 근엄한 표정을 지었다.
“녹도만호가 왜구들을 물리치기 위해
힘겨운 싸움을 치르고 있고 왜구들에게
잡혀간 백성들을 구하려고 하니 좌수군의
우후인 본관이 가만히 있을 수는 없는
일이다. 곧 좌수군의 모든 전선들을
이끌고 손죽도로 출정할 것이니
조군관도 우리와 함께 가도록 하자.“
손죽도로 출정하겠다는 한정복의 말에
조천군은 놀랐지만 애써서 태연하게
대답했다.
“우후께서 친히 출정하신다니 그 소문만
듣고도 왜구들이 겁에 질려 도망칠
것입니다. 소인이 재주는 없사오나
출정군의 길잡이가 되어 선봉에
서겠나이다.“
말은 정중했으나. 조천군은 한정복의
속마음을 짐작할 수 있었기에 선봉을
자청했다.
‘이제라도 숟가락을 얹으려고 하는 것을
보니 녹도만호 나리가 어지간히 부러웠구나.
이 망할 놈아 전선이 12척이나 더 있었으면
좌수군이 절이도로 진군했을 때 몇 척
더 보내줬어야지 판옥선이 4척만
더 있었어도 절이도에서 왜구들을 놓치지는
않았을 거다.‘
조천군은 한정복의 행동이 못마땅했지만
자리가 자리인 만큼 우선은 선봉을
자처했다.
조천군이 앞장서겠다고 나서자
한정복은 흔쾌히 승낙했다.
‘조군관도 전공욕심이 있나 보군?
좋아 조군관이 소식을 전해준 덕분에
전공을 세울 기회가 만들어졌기도 하고
어차피 우후인 내가 선봉으로 나설 수는
없는 노릇이니 이번 기회에 조군관에게
은혜를 베풀어주지‘
“힘겨운 싸움이 될 것인데 선봉에
나서다니 그 용기가 장하다.
순천부사에게 명하여 순천부의 전선
1척을 내줄 것이니 출정군의
길을 안내하도록 하라“
“예 나리 감사하옵니다.”
조천군이 고개를 숙이자 한정복은
신이 나서 외쳤다.
“당장 순천부사와 방답첨사, 사도첨사를
비롯한 5관 5포의 장수들을 모두
소집하라 우리 전라좌수군은 왜구들을
토벌하기 위해 출정할 것이다.
“예이~”
이렇게 좌수영에 전해진 승전보는
전라좌수군 전군의 출정으로 이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