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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고문
나는 포로들을 노려보며 말했다.
“묻는 말에 사실대로 대답하는 자는
살려줄 것이다. 순순히 대답하면 투항한
것으로 여겨서 살려주겠지만 대답하지
않거나 거짓을 말하는 자는 목숨을
부지하지 못할 것이다.“
이언세와 함께 온 병사들 중 하나가
일본어로 왜구들에게 내말을 전달하자
왜구들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살려만 주시면 물으시는 대로
대답하겠다고 합니다.“
왜구들에게 일본어로 통역했던 병사가
이번에는 나에게 왜구들의 대답을
통역했다.
“좋아 순순히 대답하면 반드시 살려줄
것이다.“
병사는 다시 왜구들에게 일본어로
내 말을 전했고 왜구들은 살려달라는
시늉을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도리어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뭐야 이놈들 졸개들도 아니고 제법 높은
놈들이라며 그런데 이렇게 비굴하게 굴어
대답하면 살려주겠다고 했지만 아무래도
이상한데‘
나는 왜구들에게 의심을 풀지 않고 물었다.
“너희는 어디에서 왔으며 정체가 무엇이냐?”
내 질문을 병사가 일본어로 통역하자
왜구들 중 가장 덩치가 큰 자가 주저하는
기색도 없이 순순히 대답했다.
“대마도에서 왔고 대마도주의 부하들이라고
합니다.“
그 대답을 듣고 나는 도리어 마음이 편했다.
‘그럼 그렇지 이렇게 순순히
대답할 리가 없지‘
“대마도주는 누구이며
너희의 지위는 무엇이냐?”
“대마도주는 요시토시[宗義智]이며
이자의 지위는 대마도주의 하타모토
(영주의 직속무사)라고 합니다.“
“다른 자들에게도 물어라 지금 대답하는
자가 너희들 중에서 지위가 가장
높은 자냐?“
내 질문에 다른 왜구들은 이구동성으로
대답했다.
“지금 대답하고 있는 자가 가장 지위가
높다고 합니다.“
“잘됐군.”
지금까지 대답했던 왜구를 가리키며
병사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저놈을 눕히고 얼굴에 수건을 덮어줘라”
“예”
병사들은 주저하지 않고 덩치 큰 왜구에게
달려들었다.
왜구는 몸을 비틀며 저항했지만 두 팔과
몸은 이미 밧줄에 묶여있어 제대로 움직일
수 없는 상태였다. 병사들은 왜구를 붙잡고
힘으로 눌러 바닥에 눕히고 얼굴에는
수건을 덮었다.
바닥에 눕혀진 왜구는 여전히 몸을
비틀었지만 건장한 병사들이 4명이나
달려들어 팔과 다리를 각각 하나씩 붙잡고
누르자 더 이상 움직이지 못했다.
왜구가 더 이상 움직이지 못하게 되자
나는 다른 병사들에게도 명령을 내렸다.
“너희는 물동이에 바닷물을 가득 담아라.”
“예 나리”
병사 두 명이 물동이를 들고 바다로
다가가 바닷물을 떠왔다.
병사들이 물을 떠오자 나는 대답하던
왜구에게 다시 한번 물었다.
“네놈들이 대마도에서 온 것이 확실한
것이냐? 네놈이 대마도주의 직속 부하인
것이 사실이냐?“
“그렇다고 합니다. 자신들은 대마도에서
왔으며 자신은 대마도주의 하타모토라고
합니다.“
왜구의 대답을 통역한 병사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나는 물동이에서 바가지 가득 물을
퍼 담았다.
바닷물이 가득 담긴 바가지를 들고
왜구에게로 다가간 나는 바가지의
물을 천천히 왜구의 얼굴 위에 부었다.
“으아아~”
차가운 바닷물이 얼굴을 뒤덮자 왜구는
온 몸을 비틀었지만 병사들이 사지를
붙잡고 있었고 나는 정확히 왜구의 얼굴
위에 물을 부었다.
‘원래는 짬뽕국물로 해야 하는데 아직
짬뽕은커녕 고추장도 없으니 아니야 고추는
임진왜란 이전에도 조선에 존재했다는 설도
있었어. 고려후추로 불리다가 고추로 불리게
됐다는 설도 있었고 조선에 고추가 있어도
아직은 향신료 보다는 약재료 쓰이고 있을
테니 약재상들을 통해 알아봐야겠군.
하여간 고추장이나 고춧가루가 있었으면
더 화끈한 맛을 보여줬을 텐데 바닷물로
효과가 있을지 모르겠네.‘
짬뽕국물과 고추를 생각하는 동안 바가지의
물이 전부 왜구의 얼굴로 쏟아졌다.
바가지를 완전히 비운 나는 다시 바가지에
물을 담아 왜구의 얼굴 위로 천천히 부었다.
왜구는 다시 몸부림을 쳤지만 바닷물은
어김없이 왜구의 얼굴위에 쏟아졌다.
‘물고문 일명 코렁탕이다.
한국에서는 주로 짬뽕국물이나
설렁탕 국물을 썼다는데 아직 짬뽕이나
설렁탕이 없으니 우선은 바닷물로
맛을 보여주마.‘
왜구가 물고문을 당하면서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자 기분이 좋지는 않았지만
필요한 일이라는 생각에 굳게 마음을
먹었다.
‘내가 직접 고문을 하게 될 줄은 몰랐었네.
역사에 관심이 많았던 시절 역사에 관련된
책은 종류를 가리지 않고 읽다가 한국에서도
고문이 실제로 행해졌었다는 사실을 알고
놀랐었지 군사정권 때 학생들이 당했던
물고문과 전기고문이 일제시대 당시
일본경찰과 헌병들이 독립군에게 가한
고문방법과 같다는 사실을 알고는 얼마나
놀랐었는지.‘
두 번째 바가지를 완전히 비우고 나서
나는 다시 왜구에게 물었다.
“너는 어디서온 누구냐?”
“대마도에서 왔다고 합니다.
사실대로 대답했다고 합니다.“
병사의 통역을 듣고는 어이가 없었다.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구나. 여봐라.”
“예 나리”
“다른 놈들도 모조리 눕혀서 얼굴에
수건을 덮어줘라“
“예 나리”
병사들은 달려들어서 왜구들을 눕히자
이미 물고문 장면을 본 왜구들은
발버둥을 치며 저항했지만 병사들은
왜구들을 주먹으로 내려치며 강제로
바닥에 눕혔다.
왜구들 마다 병사들이 두 명씩 붙어
팔과 달리를 붙잡고 바닦에 눌렀고
나는 직접 왜구들의 얼굴에 수건을
덮어주었다.
잠시 후 바가지 가득 채운 바닷물을
왜구들의 얼굴에 천천히 쏟아 붓자
왜구들을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몸부림을 쳤다.
다섯 명 모두에서 한 바가지씩
차가운 바닷물을 붓자 왜구들은
겁을 먹은 기색이 역력했다.
‘일단 시작했으면 확실하게
기를 죽여야지 어설프게 굴다가는
죽도 밥도 안 된다.‘
독하게 마음먹은 나는 왜구들의
얼굴에 한 번씩 더 바닷물을 부었다.
다섯 명 모두에게 바닷물을 부었으니
제일 덩치가 큰 놈은 바닷물 무려
네 바가지나 마셨고 다른 놈들도 각각
두 바가지씩 바닷물을 마셨다.
나는 왜구들 중에서 가장 체구가
작은 자를 가리키며 명령을 내렸다.
“일으켜라”
병사들이 왜구를 일으켜 내 앞으로
끌고 오자 나는 화톳불에서 끝에 불이
붙은 장작 하나를 집어 왜구의 얼굴
가까이에 들이 됐다.
불길이 눈 앞에 보이자 왜구는 몸을
떨었고 나는 그런 왜구를 노려보며
말했다.
“이번이 마지막 기회다. 이번에도 거짓을
말하면 너는 바닷물을 마시다가 물고기
밥이 될 것이다. 알겠느냐“
물고문에 이어 뜨거운 불길을 본 왜구는
몸을 부들부들 떨면서 대답했다.
“이들은 오도에서 왔다고 합니다.
자신은 장군의 부하라고 합니다.“
왜구의 대답을 병사가 통역하자 다른
왜구들은 놀랐는지 몸을 비틀었고
병사들은 그제 서야 왜구가 그동안
거짓말을 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네놈들이 고토열도에서 왔다는 것을
나는 이미 알고 있었다.
이제야 진실을 말하는 구나.’
나는 만족한 표정을 지으며 왜구에게
질문을 던졌고 왜구는 몸을 떨면서도
성심 성의껏 대답했다.
“장군은 누구를 말하느냐?”
“긴시요라라는 자가 이들의 두목이며
이들은 긴시요라를 장군이라 부른다고
합니다.“
“긴시요라는 지금은 어디에 있느냐?“
“오늘 아침에 오도로 떠났다고 합니다.”
긴시요라가 고토열도로 떠났다는 대답에
나도 인상을 썼다.
‘역시 도망쳤군. 한발 늦었구나.’
“너희는 왜 손죽도에 남아 있었느냐?”
이번에는 왜구의 대답이 길었다.
통역을 맡은 병사는 왜구의 대답을
들으며 중간 중간에 통역을 이어갔다.
“긴시요라가 출정하기 전에 파손된
전선을 남겨놓고 갔다고 합니다.
전선을 수리하고 고토로 돌아갈 준비를
하라고 부하들을 남겨놓고 갔는데 어제
저녁 긴시요라가 돌아와 보니 전선은
수리되어 있지 않고 부하들은 변명만
했다고 합니다.“
어떤 상황이었는지 그림이 그려졌다.
‘손죽도에 남아있던 왜구들이 게으름을
피운 것이군. 두목은 떠났고 포로들과
섬에 남아있었으니 배 수리 보다는
술 마시고 놀기에 바빴겠지‘
왜구들에게 잡혀있었던 조선인들 특히
처녀들이 무슨 일을 당했을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긴시요라가 화를 내면서 손죽도에
남아있던 부하들 중 장수급 인물들을
죽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포로들 가운데
일시키기 좋은 장정들과 처녀들만 배에
싣고 오도로 떠났다고 합니다. 자신들은
전선을 수리하는 대로 섬에 남아있는
포로들을 데리고 오도로 떠날
계획이었다고 합니다.“
포로의 대답을 들은 나는 궁금한 것이
있었다.
“파손된 왜선은 두 척이 아니었느냐?
왜선이 왜 세척이나 남아있었지?“
통역하는 병사를 통해 내 질문을 들은
왜구는 놀란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나리의 말 대로 파손된 전선은
두 척이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오도로 돌아가는 길이 멀고
위험해서 수리한 전선들 만으로는
불안해서 안전히 오도로 돌아갈 수
있도록 전선 한 척을 더 남겨놓았다고
합니다.“
통역이 끝나자 병사들은 화가 난
표정으로 왜구들을 노려보았고
나는 저절로 한숨이 나왔다.
‘조선인들 가운데 좌수군 병사들이 보이지
않는 이유가 이미 고토열도로 끌려갔기
때문이구나. 병사들과 처녀들은 이미
끌려갔고 손죽도에 남아있는 조선인들도
곧 끌려갈 처지였어. 손죽도로 진군하는
것이 하루만 늦었어도 조선인들 전부가
일본으로 끌려갔을 뻔했다.‘
긴시요라와 좌수군 병사들의 행방을
알았으니 중요한 것은 모두 알아냈지만
물어볼 것이 하나 더 있었다.
“너희가 점령한 조선 수군 전선에는
좌수사 영감이 계셨다.
좌수사 영감은 어떻게 되셨느냐?“
이 질문을 들은 왜구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어렵게 입을 열었다.
“좌수사와 장수들은 전투가 벌어졌던
날 철포탄에 맞아 전사하셨다고 합니다.
긴시요라의 명령에 따라 철포를 쏘는
병사들이 갑옷을 입은 장수들을 우선
노렸다고 합니다.“
“좌수사 영감은 전사하셨구나.”
이미 짐작은 하고 있었지만 나를 사지로
몰아넣었던 좌수사 심암이 죽었다는
사실을 확인하자 후련함 보다는 왠지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
‘이언세와 병사들이 보고 있으니 대놓고
좋아할 수는 없지만 나한테는 좋은
소식인데 왠지 기분은 그러네.‘
실제 역사에서 좌수사 심암은 정해왜변
당시의 비겁한 행동과 조정에
거짓 보고를 올린 것이 드러나
참수형을 당했다.
비록 죽었지만 전투중 전사로 인정될
것이니 이번에는 명예로운 죽음이었다.
심암과 좌수영의 장수들이 죽었다는 것을
확인한 나는 심문을 끝내고 자리를 정돈할
생각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뭐야 이건 겁먹은 표정들 같은데’
나를 바라보는 병사들의 표정이 평소와는
달라 보였다.
평소에 병사들이 보기에 녹도만호 이대원은
부하들을 아끼고 지략이 뛰어난 탁월한
지휘관이었다. 그러나 오늘 본 모습은
가차 없이 왜구를 고문하고 거짓을 가려내는
두렵고 무서운 존재였다.
오늘 일을 목격한 병사들은 이전보다
나를 두려워하게 됐다.
포로를 모두 심문한 나는 그 자리에 있던
병사들을 집결시켰다.
“오늘 이곳에서 있었던 일은 누구에게도
발설해서는 안 될 것이다. 알겠느냐?“
“예 나리”
병사들인 이전보다 각 잡힌 자세로 힘차게
대답했고 나는 그 모습이 보기에 좋았다.
“오늘 수고한 이들은 전란이 끝난 후
특별히 포상할 것이다.“
“감사합니다. 나리”
병사들을 입단속 한 후 현장의 뒷정리를
맡기고 이언세에게는 따로 명령을 내렸다.
“오늘 심문한 왜구들을 다른 왜구들과
접촉할 수 없도록 별도로 감금하도록
하도록 하라.“
“예 나리”
“그리고 밤이 깊었지만 손대남과 장수들을
녹도전선으로 소집하라 왜구들을 문초해서
알아낸 일들을 장수들과 나눠야겠다.“
“소식을 전하도록 하겠습니다.”
이언세 역시 상황의 심각성을
인식했는지 굳은 얼굴로 대답했다.
잠시 후 녹도전선에 손대남을 비롯한
좌수영의 장수들이 모이자 나는
이들에게 왜구들의 두목은 이미 일본으로
도망쳤으며 왜구의 포로가 된 좌수군
병사들도 이미 일본으로 끌려간 사실을
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