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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전관
“좌수사 영감과 좌수사를 보좌하던
장수들은 모두 전사했다고 한다.
시신은 바다에 수장한 모양이야“
좌수사가 전사했다는 말에 장수들은
굳은 표정을 지었다.
“지난 해전에서 왜구들에게 붙잡힌
좌수군 병사들은 왜구들이 왜국으로
돌아가면서 끌고 갔고 손죽도에 남아있던
왜구들은 손죽도에 있는 왜선을 수리해
다른 주민들 까지 왜국으로 끌고 갈
예정이었다고 한다.“
장수들은 여전히 말이 없었고
말을 마친 나는 장수들을 바라보며
다시 입을 열었다.
“우리는 내일 좌수영으로 돌아간다.
좌수사 영감께서 전사하신 소식과
이곳의 상황을 우후나리에게 보고하고
조정에도 보고해야 하니 서둘러서
좌수영으로 돌아가겠다.“
좌수영으로 돌아간다는 소식이 반가운 듯
장수들은 일제히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주민들을 버려두고 갈수는 없으니
주민들 역시 좌수영으로 데리고 간다.
이언세 진무“
“예 나리”
“이진무는 현재 이곳 주민들의 수와
시산도 출신 주민들의 수를 파악하라
시산도의 주민들은 물론 손죽도의 주민들도
원하는 자는 좌수영으로 데려갈 것이다.
그리고 섬에 곡식이 얼마나 남아있는지도
파악하라“
“알겠습니다.”
“손대남 군관”
“예 나리”
“손대남은 내일 날이 밝는 대로 전선들과
왜선들을 점검하라 왜구들이 나포했었던
전선들과 왜선들이 항해가 가능한지
점검하라 왜선들은 지난번 전투 때 파손된
배라고 한다. 왜로 돌아가기 위해 왜구들이
보수했다고 하는데 좌수영 까지 항해가
가능한지 철저하게 점검하라“
“예 알겠습니다.”
“최도진 군관”
“예”
“왜구들의 관리를 부탁한다. 좌수영으로
돌아가는 길에 왜구들을 이송할 것이니
왜구들의 정확한 수를 파악하고 도주하지
못하도록 철저하게 감시하라“
“예 나리”
“김윤문 군관”
“예”
“승전 후 병사들의 군기가 흐트러지기
쉽다. 병사들을 단속하고 내일 좌수영으로
귀환하는데 차질이 없도록 철저하게
준비하라“
“예 나리”
“모두들 힘들겠지만 조금만 힘을 내자
좌수영으로 돌아가면 충분히 쉴 수 있을
것이다.“
“예 나리”
장수들을 돌려보낸 후 나는 갑옷을 벗은
후 그대로 선실에 자리를 깔고 누웠다.
최선을 다했지만 왜구 두목을 놓친 것과
좌수군 병사들이 일본에 끌려간 것이
마음에 걸렸다.
‘만족스럽지는 않지만 이 이상은 내 능력
밖이다.
지금 당장 일본으로 쳐들어갈 수도 없고‘
현실적으로는 어렵다고 생각했지만 좌수군
병사들을 그냥 내버려두자니 계속 마음에
걸렸다.
‘그냥 놔두면 십중팔구는 노예로 팔려갈
텐데 정해왜변 당시 일본으로 끌려갔던
병사들 가운데 노예로 팔려서 명나라 까지
갔다가 조선의 외교사절들을 만나 구조된
경우도 있었지 이런 사람들을 일일이 다
구할 수는 없겠지만 내가 아는 범위에서
벌어지는 일을 모르는 척하기는 마음에
걸리는데‘
계속 마음에 걸려서 생각을 해보니 방법이
있을 것도 같았다.
‘노예로 팔려간 사람들을 다시 돈으로 사올
수는 없는 일이고. 다시 사올 돈도 없고
구조하려면 군사들과 함께 고토열도로
진군하는 방법뿐인데 준비만 잘 하면
불가능한 일도 아닐 것 같단 말이야.
아직까지 일본은 전국시대가 끝나지
않았고 고토열도는 혼슈(本州)에서
떨어져 있는 섬이니 고토열도를
기습공격해도 당장 조선과 일본간의
전면전이 벌어지지는 않을 거야.
코토열도를 공격해서 점령하려는 것도
아니고 기습공격으로 병사들만 구해온다고
생각한다면 많은 병사가 필요할 것도
없고 잘 훈련된 병사로 500에서 600명
배를 가져가야 하니 1000명 내외면
충분히 가능할 것도 같은데‘
잘 훈련된 군사1000명과 화포로 무장한
전선만 끌고 간다면 해볼만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정해왜변을 겪으면서 체험한
조선수군의 전투력은 기대 이상이었다.
수병들의 항해술과 포격능력은 왜구들에
비해 뛰어났고 군관들의 검술과 전투력
역시 왜구들에 비해 뒤처지지 않았다.
‘다행히 아직도 일본은 화약 무기의
대부분이 조총과 대조총 종류야
조선군의 화포로 충분히 화력에서
우세를 점할 수 있어 활과 편전은
이미 일본보다 우수하고‘
여기까지 생각이 진행되자 한번
해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좋아 녹도진으로 돌아가면 사화동을
붙잡고 고토열도에 대한 정보를
모아보자‘
나는 그제서야 생각을 끝내고 편하게
잠들 수 있었다.
날이 밝기 무섭게 주민들을 집합시켜
좌수군은 좌수영으로 돌아간다는 사실을
알렸다. 주민들도 원하는 사람들은
좌수영으로 데려다 주겠다고 하자
대부분의 주민들이 좌수영으로 가겠다고
나섰다.
군사들 외에 주민들과 왜구 포로들 까지
800명이 넘는 대규모 인원이 움직이는
일은 결코 쉽지 않았다.
우선 포로들을 노잡이로 자리에 앉히고
무장한 병사들을 배치해 감시했으며
주민들 중에서도 노를 잡을 수 있는
사람들은 노를 잡아야 했다.
좌수영 까지 이동하는 도중 먹을 식량과
식수를 확보하기 위해 왜구들로부터
노획한 식량과 남아있는 군량을 풀어
전선마다 식량을 분배하고 물동이마다
물을 가득 채웠다.
모든 준비가 끝났을 때는 해가 이미 중천에
떠있었다.
기존의 전선 4척에 왜구들로부터 탈환한
전선 2척 그리고 왜구들에서 탈취한 관선
3척에 병사들과 주민들 그리고 왜구 포로들
까지 싣고 손죽도를 떠났다.
다행히 날씨는 맑고 순풍이 불었지만 워낙
많은 배들이 움직이고 승객들 중 노약자들이
많아 속도를 내지 못하고 천천히 바람과
해류에 의지해 나아가다 보니 얼마 지나지
않아 해가졌고 전선들은 그대로 밤새 앞으로
나아갔다.
다음날 정오 무렵 좌수군 본영이 있는
순천도호부(현대의 여수, 순천)를 향하는
함대 앞에 순천도호부의 전선이 나타났다.
순천전선이 다가온다는 소식에 나는
앞으로 나섰다.
정신을 집중해 순천전선을 살펴본 나는
순천부사 변기가 전선을 지휘하고 있는
것을 확인하고 속도를 줄일 것을
명령했다.
순천부사 변기는 종3품으로 종4품인
만호보다 2계급 높다.
“속도를 줄여라 순천부사시다.”
잠시 후 순천전선도 속도를 줄이고
녹도전선에 가까이 다가왔다.
병사가 노를 젓는 작은 거룻배를 타고
녹도전선으로 건너온 변기는 전선들과
관선들을 보고는 놀란 얼굴이었다.
“아니 이게 무슨 일인가?”
“도호부사 나리께 인사 올립니다.”
“인사는 됐네. 이게 무슨 일인가?
왜구들은 모두 토벌한 것인가?“
“다행히도 손죽도를 탈환했으나 저희가
도착했을 때는 이미 대부분의 왜구들이
왜국으로 도주한 후였습니다. 다행히
손죽도에 남아있는 왜구들을 토벌하고
왜선 3척을 노획했으며 왜구들에게
빼앗긴 전선 2척을 되찾았습니다.
그리고 왜구들에게 붙잡혀 있던 주민
200명을 구출하고 왜구 70명을
참살하였으며 80명을 사로잡았습니다.“
“빼앗겼던 전선을 되찾고 왜구들을
참살했다니 참으로 장하네.
그래 좌수사 영감은 어찌되셨는가?“
변기가 좌수사 심암의 소식을 묻자
나는 표정관리에 신경 쓰며 우울한
기색으로 대답했다.
“안타깝게도 좌수사 영감께서는
전사하셨다고 합니다. 왜구들에 맞서
끝까지 싸우시다가 휘하의 장수들과
함께 전사하셨다고 합니다.“
좌수사가 죽었다는 소식에 변기는
곤란한 소식을 들은 듯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 그러셨구나. 알았네. 그나저나
자네는 빨리 좌수영으로 가야겠네.
선전관(宣傳官)이 자네를 기다리고 있네“
“예 선전관이 말입니까?”
“그렇다니까. 그러니 어서 서두르게”
할 말을 마친 변기는 자신의 전선으로
돌아갔고 나는 이언세를 불렀다.
“예 나리”
“우리 군사들이 이지역의 물길에는
익숙하다고 했었지?“
“그렇습니다. 익숙하고말고요. 전선을
몰고 나올 때 마다 돌았던 지역이고
군역을 서지 않을 때도 고기 잡으러
나오던 곳입니다. 저희 손바닥을 보는
것 보다 많이 다닌 곳입니다.“
“잘됐다. 지금부터 녹도전선은
전속력으로 좌수영으로 향한다.
격군들이 힘들겠지만 최고속력을
내라 그리고 주민들이 탄 배는 속도를
내지 않아도 좋다. 천천히 조심해서
좌수영으로 오도록 한다.“
“주민들이 전선에서 멀어지는 것을
불안해 할 것 같습니다.“
“어쩔 수 없다. 사정이 있어서 그러는
것이니 전선은 속도를 높여서
좌수영으로 향한다.“
“예 알겠습니다.”
이언세는 곧 내 명령을 타공과
격군들에게 전달했고 다른 전선에도
소식을 전했다.
격군들은 힘을 주어 노를 잡았고
전선은 날개가 달린 듯 빠른 속도로
달리기 시작했다.
전선이 속도를 내서 달리자 나는 망루에 서서
바닷바람을 맞으며 생각에 잠겼다.
‘선전관이 왔다면 어명(御命) 내려왔다는
말인데. 지난번에 올린 장계 때문인가
과연 무슨 명령이 내려왔을지 궁금한데‘
지금의 조선 임금이 선조라는 것을
생각하면 무슨 어명이 내려왔을지
걱정되는 것이 사실이었다.
‘어차피 피할 수 없는 매는 빨리 맞는 것이
속편하지 한시라도 빨리 좌수영으로 가서
확인하자‘
내려놓는 심정으로 마음을 정리한 나는
전선의 속도를 늦추지 말 것을 명령하고
그대로 선실로 들어갔다.
격군들이 열심히 노를 젓고 순풍이 분
덕분에 전선은 다음날 오전 좌수영에
도착했다.
전선이 포구에 닿기 무섭게 배에서 내린
나는 좌수영 동헌(東軒)으로 향했다.
도착 소식을 들었는지 동헌 앞에는 이미
멍석이 깔려 있었고 우후를 비롯해 좌수영의
장수들이 모여 있었다. 그 가운데 철릭차림의
젊은 무관이 서 있는 것이 보였다.
‘선전관이구나.’
젊은 무관이 선전관인 것을 눈치 챈 내가
선전관 앞으로 향하자 선전관은
두루마리를 들어 올리며 외쳤다.
“녹도만호 이대원은 어명을 받으라.”
나는 멍석 앞으로 가 한성이 있는
북쪽 방향으로 4번 절하고
엎드린 자세로 외쳤다.
“신 녹도만호 이대원 어명을 받습니다.”
선전관은 그 자리에서 두루마리를 열고
읽었다.
“왜구들이 조선에 침범하여 백성들을
약탈하고 노략질을 일삼으니 과인의
마음이 참담하기가 그지없다.
전라좌수사 심암이 왜구들을 토벌하기
위해 출정하였으니 패하였다는 소식이
들려왔고 좌수사는 그 생사를 알 수
없으니 이 역시 참담한 일이다.
왜구들이 노략질을 일삼고 있는 이 때에
좌수사의 자리를 한시라도 비워둘 수는
없는 일이다. 녹도만호 이대원은 좌수사가
패한 직후에 가장먼저 좌수영으로 돌아와
군사와 전선을 청해 다시 출정했으니
이는 녹도만호가 왜구들을 토벌하고자
하는 의지가 강하고 나라에 충성을
다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에 녹도만호 이대원을 전라좌수사에
제수하니 하루라도 빨리 왜구들을
토벌하고 과인의 근심이 사라지게
할지어다.“
선전관은 교서를 모두 읽은 후
나에게 말했다.
“자리에서 일어나시지요.
감축 드립니다. 좌수사 영감“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선전관의
축하인사를 받으면서도 얼떨떨한
기분을 느꼈다.
‘내가 좌수사라니 전라좌수사라니.’
임진왜란 발발 당시 이순신 장군은
전라좌수군 만으로 판옥선 24척과
병력 수 천명을 지휘했다.
전라좌수군의 전력이 지금은
그 정도까지는 아니겠지만
전라좌수사에 임명되었으니
전라좌수군의 지휘권이 내 손안에
들어온 것이다.
“주상전하의 기대에 부응할 것입니다.
이미 손죽도의 왜구들을 토벌하였고
좌수군의 전선도 되찾아왔습니다.“
선전관에게 대답하며 왜구들을 토벌했다는
소식을 전하자 선전관은 잘됐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정말 대단하십니다.
과연 좌수사 영감이십니다.”
선전관과 인사를 나눈 후 고개를 들어
우후와 좌수영의 장수들을 보니 하나같이
얼굴이 굳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