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선 수군이 되었다-28화 (28/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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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전관2

우후와 좌수영 장수들의 표정을 보고

나는 속으로 외쳤다.

‘아이씨 X됐다.'

‘우후와 다른 장수들은 그대로 두고 나를

좌수사로 승진시켜 버렸으니 장수들이

나를 곱게 보지 않을 텐데 완전히 X됐다.‘

전라좌수영은 5관(官) 5포로 구성되어 있다.

그중 5관은 전라좌수영에서 관할하는

5곳의 군현으로 순천부, 낙안군, 보성군,

흥양현, 광양현이며

5포는 바다를 방어하는 5개 수군진으로

사도진, 방답진, 여도진, 녹도진, 발포진이

전라좌수영 관할하에 있다.

좌수사에 제수되기 전의 내 지위는

녹도만호 녹도진의 지휘관이며 품계로는

종4품이다.

그러나 좌수영에는 나와 같은 만호가

두 명이나 더 있으니 발포진과 여도진

역시 나와 품계가 같았던 만호가 지휘한다.

그리고 방답진과 사도진은 종3품 첨사가

지휘하니 이들만 해도 만호였던 나보다

품계가 높다.

이들 외에도 5곳의 군현의 장수들 역시

낙안군수와 보성군수는 종4품

순천부사는 종3품으로 대부분 나와 품계가

같았거나 품계가 높았다.

‘미치겠네. 나보다 품계가 높은 우후와

부사, 첨사들은 말할 것도 없고 종4품인

만호와 군수들도 나를 시기할 것 같은데

어쩌지‘

우후와 장수들이 나를 어떻게 볼지는

뻔했지만 좌수사가 됐으니 그들을

피할 수는 없었다.

나는 우후를 바라보며 천천히 다가갔다.

두정갑 차림에 환도까지 차고 있는

내가 우후를 정면으로 바라보며 걸어가자

잠시 머뭇거리던 우후는 내게 군례를

올렸다.

“감축 드립니다. 좌수사 영감”

우후가 군례를 올리자 다른 장수들도

내게 일제히 군례를 올렸다.

“감축 드립니다. 좌수사 영감”

“고맙소. 우선 안으로 들어갑시다.”

우후와 장수들의 군례에 대답한 나는

선전관에게도 함께 할 것을 권했다.

“안으로 드시지요.”

선전관의 품계는 대부분 6품에서 9품

당상관인 정3품 전라좌수사가 존칭을 쓸

필요는 없지만 어명을 전하러 온 선전관을

가볍게 대할 수는 없었다.

내가 앞장서서 동헌 안으로 들어가자

선전관이 나와 함께 안으로 들어섰고

우후와 장수들이 그 뒤를 따라 들어왔다.

안으로 들어와 자리를 잡기 무섭게 나는

절이도와 손죽도에서의 전투경과를

우후와 장수들에게 설명했다.

절이도 해전의 결과를 보고 받았던

우후와 장수들은 손죽도에서 왜구들을

토벌하고 전선을 되찾았다는 소식에

놀라며 감탄을 금치 못했고 전좌수사

심암과 심암을 보좌하던 장수들이

전사했다는 소식에는 침통한 표정을

지었다.

한편 한성에서 곧장 좌수영으로 달려온

선전관은 아직 절이도에서의 전투 결과도

보고받지 못했었는지 내가 설명하는 내내

내게서 눈을 떼지 못했고 많이 놀란

표정이었다.

전투경과를 설명한 후 나는 장수들에게

말했다.

“왜구들은 물리쳤지만 완전히 승리를 거둔

것은 아니오. 200명 이상의 백성들이 왜로

끌려갔을 뿐만 아니라 조선을 노략질 했던

왜구들도 상당수는 왜로 도망치는데

성공했으니 앞으로도 경계를 철저히 해야

할 것이오.“

일본으로 끌려간 백성들이 모두 한참 일할

장정들과 젊은 처녀들이니 이것은 작은

손실이 아니었다. 더구나 일본으로 끌려간

장정들 대부분 좌수군 병사들이니 좌수군의

전력 손실도 피할 수 없었다.

“알겠사옵니다. 좌수사 영감”

우후의 대답을 들으며 우후를 비롯한

장수들과 눈을 마주친 나는 다시 입을

열었다.

“우선 급한 것은 손죽도와 시산도의

백성들을 위무(慰撫)하는 것이오.

백성들을 위로함과 동시에 삶의 기반을

잃은 백성들이 생계를 이어갈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은 이번 왜란을 마무리 짓는

가장 중요한 일이 아닐 수 없소.“

잠시 말을 멈추자 순천부사 변기가 나에게

물었다.

“영감께서 생각하고 계신 계획이

있으십니까.”

“우선은 돌산도와 절이도에 백성들을

정착시킬 생각을 하고 있소. 백성들에게

당장의 양식과 농기구를 지원하고 절이도와

돌산도에 밭을 일구게 해서 둔전을 경작하게

하면 백성들은 생계를 이어갈 수 있을

것이고 좌수영은 군량을 확보할 수 있으니

일거양득 아니겠소.“

1984년 돌산대교가 개통하면서 현대에는

육지와 연결된 돌산도는 면적이 71.69㎢에

달하는 큰 섬으로 한국에서 9번째로

큰 섬이고 좌수영이 있는 순천부

(현대의 여수와)와 가까이 있어서

좌수영에서 관리하기에 용이한 섬이다.

‘이순신 장군은 임진왜란 당시에 돌산도와

고금도 등 섬에서 둔전을 경작하고 소금을

구워서 군량과 전비를 마련했지. 섬의

주민들과 왜구 포로들을 동원해서 절이도와

돌산도에 둔전을 경작하고 염전을 만들면

군량 확보는 물론  전력증강에도 도움이

될 거야 전쟁도 돈이 있어야 할 수 있어‘

내 의견에 우후는 아무 말도 없었지만

순천부사는 긍정적으로 대답했다.

“좋은 생각이십니다. 둔전을 일구는 것은

주상전하의 허락을 받아야 하지만 둔전을

일구는데 성공한다면 백성들은 물론

좌수영에도 도움이 될 것입니다.“

그때까지 이야기를 듣고만 있던 선전관도

나섰다.

“전란을 수습하는 방법이고 백성들을 위한

일이니 한양에 올라가는 대로 좌수사 영감의

계획을 주상전하께 아뢸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주상전하께는 장계를 올려

왜구들을 물리친 것과 전임 좌수사 심암

영감이 전사하신 사실을 아뢰고 그와 함께

둔전을 일구는 계획을 아뢸 것입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시면 오늘 중으로 장계를

쓰겠습니다.“

“알겠습니다.”

나는 순천부사, 선전관과 대화를 나누면서

우후와 다른 장수들의 눈치를 살폈다.

순천부사 외에 다른 장수들도 대부분

내 의견에 동의하는지 별다른 기색을

보이지 않았고 우후 역시 체념한 표정을

지으며 조용히 한숨을 쉬는 것 같았다.

‘당분간은 우후나 다른 장수들이 말썽을

부릴 것 같지는 않다. 정말 다행이다.‘

백성들을 정착시키는 일부터 포로들의

관리와 둔전의 경작에 좌수군의 전력

회복과 보강까지 앞으로도 할 일이

태산 같은데 우후가 심통을 부리거나

훼방을 놓으면 여러 가지로 곤란했다.

좌수사로 승진하기는 했으니 그야말로

벼락출세한 것이고 좌수영의 상황도

아직 완전히 파악하지 못했으니 한동안은

우후의 협조가 필요했다.

“아직 마무리해야 할 일이 많지만 왜구들이

물러갔으니 우선은 동원령을 해제하고

고을의 수령들과 진의 장수들은 각자의

고을과 진으로 돌아가도 좋소.

각자의 고을로 돌아가 소집된 군사들을

해산시키시오. 이번에 복무할 순번이

아닌 군사들은 집으로 돌려보내시오.“

군사들을 돌려보내라는 말에 우후가

놀란 듯 나서서 말했다.

“사로잡은 왜구의 수가 수 백명에

달한다고 들었습니다. 전란을 완전히

수습한 것도 아닌데 벌써 군사들을

해산시키는 것은 너무 위험하지

않겠습니까?“

“물론 녹도진에는 500이 넘는 왜구들이

잡혀있고 이번에 손죽도에서 항복한

왜구들도 80명에 달하오. 그래서 녹도진의

군사들과 좌수영의 군사들은 당장

돌려보내지 않고 포로의 감시와 둔전

경작에 동원할 것이오.

이번 전란으로 복무할 순번이 아닌

병사들이 갑자기 소집됐으니 병사들도

힘들었을 뿐만 아니라 병사들의 가족들

역시 생계가 걱정되는 바이오. 그래서

한시라도 빨리 군사들을 가족들에게

돌려보내려는 것이오.“

녹도군과 좌수영 소속 군사들 외에

다른 군사들은 돌려보낸다는 말에

녹도진을 제외한 5관 4포의 장수들은

전혀 불만이 없었다. 어차피 왜구들도

도망친 마당에 형편이 넉넉하지 못한

군사들을 잡아놓고 있어 봤자 군사들의

원망만 들을 뿐이고 휘하의 군사가

많을수록 일거리도 많아진다.

한시바삐 자신들의 고을로 돌아갈 생각에

신이 난 장수들은 힘차게 대답했다.

“예 좌수사 영감 알겠습니다.”

장수들과 앞으로의 일을 의논하는 동안

손죽도에서 출발한 전선들이 좌수영에

도착했다.

우선 좌수영에 비어있는 방과 객사에 우선

섬의 주민들을 수용할 것을 명령하고

밥과 국을 끓이게 해서 군사들과 주민들을

배불리 먹였다.

먼 길을 오느라 지쳤던 주민들은 따뜻한

국밥을 먹고는 각자의 숙소에서 기절한 듯

잠들었고 군사들도 식사를 마치고 각자의

전선으로 돌아가서 쉬었다.

군사들이 밥을 먹는 동안 장수들과 함께

점심을 먹은 나는 식사를 마치자마자

곧바로 조정에 올릴 장계를 썼다.

처음 왜구들이 침범해왔을 때부터 손죽도와

절이도 다시 손죽도에서 벌어진 전투에

대해서 진행과정과 결과를 상세히 적었고

특히 체포한 포로의 수와 왜구들의 수급의

수를 비롯해 나포한 왜선들 등 좌수군의

전공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글을 썼다.

생활의 기반을 잃은 주민들과 왜구

포로들을 동원해 돌산도와 절이도 등

남해안의 섬에 둔전을 일굴 계획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리고 허락을 요청하는

내용도 잊지 않았다.

이렇다 보니 글에 써야할 분량도 적지 않았고

조정 특히 선조에게 보내는 글이라고 생각하지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최대한 상세하게 전공을 강조하면서 오만해

보이지 않도록 노력하다 보니 생각보다

긴 시간이 걸려서 해가 완전히 지고

나서야 글을 완성할 수 있었다.

결국 선전관 일행은 좌수영에서 하루

더 지내고 다음날 장계를 가지고

한성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긴장하며 글을 썼던 나는 선전관에게

글을 넘겨준 후 지쳐서 쓰러질

지경이었다.

‘며칠간이나 배를 타고 돌아다녔고

좌수영에 와서도 긴장의 연속이었으니

피곤할 만 하지 우선은 밥부터 먹자‘

“밖에 아무도 없느냐”

“예 영감”

“시장하니 저녁상을 들여라”

“예 알겠습니다,”

저녁밥을 먹은 후 나른하고 피곤했지만

아직도 해야 할 일이 남아있었다.

“군관 손대남과 녹도전선 진무 이언세를

불러오라“

“예 영감”

잠시 후 손대남과 이언세가 도착했다.

이들은 함께 전투를 치르면서 나의 수족처럼

움직였고 이들은 물론 다른 사람들도 이들을

나의 심복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조선에 나 홀로 떨어졌으니 조선의 사정을

잘 아는 이런 부하가 생긴 것이 나도 나쁘지

않았다.

앞으로 좌수영을 운영하기 위해서도

그리고 계획대로 둔전을 운영하기 위해서도

조선 수군의 상황을 잘 아는 두 사람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두 사람을

불러 장계를 올린 것과 둔전을 경작할

계획을 간단히 설명했다.

내 설명을 들은 손대남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돌산도는 몰라도 절이도에 둔전을

설치하는 것은 절이도의 사정을 고려해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시산도와 손죽도의 백성들이

절이도로 이주하는 것은 몰라도 왜인들이

절이도에 들어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나는 손대남의 말을 듣고 깨닫는 것이

있었다.

“절이도의 백성들이 왜구들에게 피해를

입었지. 간단한 일이 아니군 그래“

“예 마을 처녀들이 왜구들에게 봉변을

당한 경우가 많았습니다. 봉변을 당한

처녀들 가운데는 스스로 목을 맨 사람도

있으니 절이도의 백성들이 왜구들을

보기만 해도 난리가 날 것입니다.“

그동안 전투로 바쁘게 지내다 보니

절이도의 상황에 대해서 자세한 보고를

받지 못했었다.

마을 처녀들 가운데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람들도 있다는 말에 화가 나고 답답한

마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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