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선 수군이 되었다-30화 (30/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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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인연

전라도 순천 전라좌수영

“이정도면 정리는 끝났고 내일 부터는

5관 5포를 둘러보자”

좌수사에 부임한 다음날부터 좌수영의

모든 문서와 곳간을 확인해 좌수영의

현황을 파악한 나는 좌수영에 대한 파악이

끝나는 대로 좌수영 예하의 5관 5포를

순시할 예정이었다.

“심암이 장수로써는 무능했는지 몰라도

부패한 인물은 아니었던 것인지 아니면

해먹고 장부까지 완벽하게 조작해 놓은

것인지 문서상으로는 큰 문제가 안 보인다.

다행히 곳간에 쌓여있는 군량과 무기도

문서와 큰 차이가 없고 이번 전란을

치르면서 소모한 군량과 화약의 양이

예상보다 많기는 하지만 워낙에 정신이

없었고 좌수영의 모든 전력을 동원했으니

그것까지 일일이 확인할 수는 없는 노릇이고

우선 좌수영 현황파악은 이것으로 끝내자“

좌수영의 장부와 물자를 파악은 쉽지

않았지만 다행히도 큰 문제없이 끝났다.

좌수영의 실상을 파악하는데 좌수영의

아전들과 군관들이 순순히 협조해주었고

전임자인 심암이 큰 비리를 저지르지

않았던 것이 나에게는 천만 다행이었다.

장부들과 문서들을 정리한 후 벽에 등을

기대고 앉아 두발을 쭉 뻗은 나는 두 팔을

뻗어 기지개를 폈다.

“한 사흘 제대로 자지도 못하고 눈 아프게

장부를 살폈지만 큰 문제는 없었으니

다행이다. 좌수영의 장수들이 나를

못마땅하게 보고 있는 줄 알았는데 그래도

할 일들은 하고 있으니 다행이야 좌수영의

아전들도 순순히 협조하고 있으니 잘됐지

뭐야 절이도와 손죽도에서 같이 배타고

싸웠던 전우애 덕분인지 아전들과 군관들이

도와준 덕분에 일이 쉽게 끝났어.“

좌수영의 군관들과 아전들 그리고 군사들

사이에서 내가 명장이자 맹장이라는 소문이

퍼졌다고 한다. 절이도 해전과 손죽도 해전에

참전했던 군관들과 아전들이 좌수영에 돌아와

자신들이 보고 들은 것을 동료들에게 자랑했고

자연히 좌수영 전체에 소문이 퍼진 것이다.

그 덕분에 좌수사에 부임한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군관들과 아전들 그리고 군사들은

내 명령을 잘 따르고 있다고

이언세가 넌지시 말해주었다.

“우후와 장수들도 순순히 협조해 주고

있어서 다행이야 잠도 못잘 정도로

바쁜 와중에 우후와 술 한잔 해야 했지만

우후와 대화가 잘 됐으니 같이 술잔을

기울인 보람이 있었지

좌수사에 제수된 다음날 나는 우후를

저녁식사에 초대했다.

우후는 나에 대한 감정이 좋지는

않았겠지만 상관의 초대에

순순히 응했다.

닭을 두 마리나 삶아 놓고 따뜻한 생선탕

까지 준비해서 상을 차려놓고 우후와

함께 청주를 주고 받았다.

‘우후가 나를 시기하는 것을 알고도

가만히 있을 수는 없지 내가 아직

좌수영의 사정을 잘 아는 것도 아니니

어떻게든 우후를 달래놓지 않으면

좌수영이 정상적으로 굴러가지 않을 것이

분명해‘

처음에는 우후와 술잔을 주고받으며

청주를 곁들여 저녁식사를 한 후

어느 정도 배가 차자 나는 술잔을

내려놓으며 우후에게 입을 열었다.

“지금은 상황이 이렇게 됐지만 나는

손죽도에서 왜구들에게 쫓겨 좌수영으로

왔을 때를 잊지 않고 있소이다.

그때 우후가 전선과 군사들을 지원해

주지 않았다면 절이도와 손죽도에서의

승리는 불가능했을 것이오.“

“과찬의 말씀이시지만

알아주시니 감사합니다.”

우후는 멋쩍은 듯 내 시선을 피하며

대답했고 나는 쉬지 않고 말을 이었다.

“나이도 많지 않고 관직에 오른 지도 얼마

안 되는 내가 좌수사에 오른 것을 우후는

물론 오관 오포의 장수들이 달가워하지

않을 것도 내 알고 있소이다.“

우후는 속마음을 들킨 듯 별다른 대답을

하지 않으며 내 시선을 피했다.

“간단히 말하겠소이다. 나는 좌수사직에

오래있지는 못할 것이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이번에는 놀란 듯 우후가 반응을 보였다.

“주상전하께서는 좌수군이 아니 전임

좌수사가 패했다는 소식을 들으신 후에

나를 좌수사에 제수하셨소이다.

절이도에서 승전을 거두었다는 장계가

한양으로 올라가기 전에 선전관이

내려왔으니 어명은 그전에 내려진 것이

분명하오이다.“

우후는 내말을 들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주상전하께서 승전소식을 듣기도 전에

나를 좌수사에 제수하신 이유가

무엇이겠소이까?

내 생각에 나는 전란을 끝내기 위해

좌수사에 제수된 것이 아니라.

좌수군을 수습하라는 뜻으로 좌수사에

제수하신 것으로 생각되오.

좌수사가 전사할 정도로 큰 피해를 입은

좌수군이 제구실을 못 할 것으로 보고

좌수군을 수습하라는 뜻으로 말이오.

그런데 이미 전란은 끝났고 왜구들에게

빼앗겼던 전선도 되찾아 왔으니

좌수군을 수습하는 일도 이제부터는

그리 어렵지 않지 않겠소.

그럼 내가 계속 좌수사 자리에 있을

이유가 있을 것 같소?

과연 주상전하와 조정의 대신들이

아직 22세에 불과한 나를 계속 정3품

당상관 자리에 놔두실 것 같소이까?“

내말을 들은 우후는 머릿속이 복잡한지

말이 없었다.

“나는 좌수영이 안정되는 대로

5관 5포의 고을과 진을 돌아다니며

방어태세를 점검할 것이오.

내가 순시를 도는 동안 좌수영은 자연히

우후가 지휘하게 될 것이오.

그것은 우후에게도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니.

그 기회를 놓치지 마시오.

군사들을 다독이고 좌수영으로 피난 온

백성들을 보살피는 모습을 보여주시오.

우후가 좌수영을 잘 이끌어가는 모습을

보여주고 그것을 주상전하께서 아시면

어떻게 될지는 우후도 짐작할 수 있을

것이오.“

우후는 깨닫는 것이 있었는지 자세를

바로하고 내게 허리를 굽혔다.

“소장에게 이리 큰 깨달음을 주신 좌수사

영감의 은혜는 결코 잊지 못할 것입니다.“

나는 미소를 지으며 우후에게 말을 이었다.

“내 비록 좌수사직에 있으나 우후보다

나이도 어리고 벼슬길에 오른 것도

늦었으니 사적인 자리에서는 우후를

선배로 모시겠습니다.

내가 자리를 비우는 동안 좌수영을

잘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잊지 마십시오.

좌수사의 자리가 비는 것은 우후에게도

기회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말입니다.“

“가슴 속 깊이 세기도록 하겠습니다.”

우후는 자신의 방으로 돌아가기 전에

나에게 군례를 올렸고 그날 이후

우후와는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내가 좌수영을 비웠을 때 우후가 어떻게

움직일지 걱정했었는데 잘됐지 뭐야

5관 5포를 순시하고 돌아올 때쯤에는

조정에서도 둔전에 대해서도 명령이 내려올

테니 본격적으로 일을 벌여보자“

둔전을 짓는 것은 조정의 허락이 필요한

일이니 아직 밭을 만들지는 못하고

있었지만 나는 둔전에 대한 허락이 떨어질

것을 확신하고 있었다.

“전란으로 피해를 입은 백성들의 생계도

해결되고 포로들의 노동력도 활용할 수

있는데다가 군량도 확보할 수 있으니

특별한 이유가 없는 이상 둔전은 허락이

떨어질 것이 분명해 5관 5포를 순시하는

동안 돌산도와 절이도에 들려서 밭을

만들 만한 곳인지 직접 보고오자“

방안에서 잠시 쉬며 둔전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을 때 밖에서 요란한 소리가 들려왔다.

“좌수사 영감 소인 이언세이옵니다.”

“이진무 무슨 일인가. 안으로 들어오게”

이언세는 방 안으로 들어오지도 않고

다급하게 말했다.

“영감 선전관이 도착했습니다.

영감께 어명이 떨어졌습니다.“

“뭐 어명”

나는 반사적으로 자리에서 일어나

전립(戰笠)을 쓰고 밖으로 나갔다.

‘이런 선전관이 다녀 간지 얼마나 됐다고

또 어명이야‘

선전관이 왔다는 소식에 동헌 앞마당으로

내려가니 군사들이 마당에 자리를 깔고

있었고 좌수영의 장수와 아전들도 황급히

마당으로 모여들었다.

잠시 후 이전에 왔었던 선전관 보다 건장한

체구의 선전관이 좌수영 군사들의 호위를

받으며 동헌으로 들어섰다.

“전라좌수사 이대원은 어명을 받으라.”

나는 한양이 있는 북쪽을 향해 네 번

절을하고 엎드린 자세로 외쳤다.

“신 전라좌수사 이대원 어명을

받습니다.“

선전관은 그 자리에서 두루마리를

펼쳐서 외쳤고 그 소리를 들으며

나는 얼굴색이 점점 하얗게 변하는 것

같았다.

선전관이 교서를 다 읽자 나는 재빨리

외쳤다.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전하”

입으로는 성은이 망극하다고 외쳤지만

속마음은 전혀 달랐다.

‘뭐 하루 빨리 입궐하라고 여기서 할 일도

많은데‘

조선에서 변방의 장수에게 임금으로 부터

입궐하라는 어명을 내려왔으니 분명히

큰 영광이었다. 그러나 지금의 조선 왕이

선조인 것을 아는 나는 대궐에서 선조와

대면하고 싶은 마음이 조금도 없었다.

‘이걸 어쩌나 못가겠다고 하면 어명을

어겼다고 죽이려들 텐데‘

변방의 장수가 어명을 거역하는 것은

죽음을 자초하는 길이었다.

“좌수사 영감 감축 드립니다.

주상전하께서 입궐을 명하셨으니 분명

큰 상을 내리실 것입니다.“

어명을 전달한 선전관은 내 속도 모르고

반갑게 다가오며 말했다.

무과에 급제한 무관 중에서 특별히

선발된 선전관답게 체격도 건장했고

목소리도 우렁찼다.

“먼 길을 오시느라 수고 많으셨소이다.

주상전하의 어명을 전해 주셨으니 정말

감사하오이다.“

선전관을 통해 내 말과 행동이 선조의

귀에 들어갈 수 있는 만큼 최대한

정중하게 선전관을 상대했다.

“아닙니다. 좌수사께서 왜구들을 무찌른

무용담은 이미 한성에 널려 알려져

있습니다. 용맹하실 뿐만 아니라 지략이

제갈공명 뭇지 않으신 좌수사를 뵙게 되어

소인이 큰 영광이옵니다.“

선전관의 칭찬을 들으며 머릿속으로 떠오른

생각이 있었다.

‘그래 선전관은 한성에서 왔고 선조의

명령을 듣고 왔어 선전관을 통해 한성과

선조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도 있겠구나.‘

나는 입가에 웃음을 지으며 선전관에게

대답했다.

“제갈공명이라니요 과찬이십니다. 곧 해가

질 것이니 우선은 안으로 들어가 같이

저녁을 들면서 천천히 이야기를 나눠봅시다.

나도 한성의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함께 저녁을 먹자는 소리에 선전관은

얼굴 가득히 미소를 지으며 좋아했다.

“말을 달려오느라 출출하던 참인데

좋습니다. 반주 한잔 정도는 주시겠지요.

영감“

“물론이오. 비록 좋은 술은 없지만

잘 익은 청주가 있으니 아끼지 않고

내놓으리다.“

술이라는 말에 나 이대원 보다 서너 살은

많아 보이는 선전관이 어린아이처럼

좋아했다.

“감사하옵니다. 좌수사 영감

그러고 보니 소인이 깜박하고 소인의 이름도

아직 밝히지 않았습니다. 무례를 용서하소서.

소인은 이운룡이라고 하옵니다. 갑신년에

무과에 급제하였습니다.“

이운룡이라는 말에 나는 올라서 눈을 크게

뜨고 선전관을 바라보았다.

‘뭐라고 이운룡?

삼도수군통제사 이운룡 장군.’

이운룡 장군은 이순신 장군이 녹둔도 전투로

백의종군 했을 때 이순신 장군과 함께

싸운 전우였고 임진왜란이 발발했을

당시에는 옥포만호로 수군을 지휘하고 있었다.

전투가 벌어질 때 마다 용감히 싸워 이순신

장군의 신임을 받았으니 옥포는 경상우수군

소속이었지만 옥포만호 이운룡 장군은

당시 경상우수사 원균보다 전라좌수사였던

이순신 장군과 더 친했다고 하니

이순신 장군으로부터 얼마나 신임을

받았는지 알 수 있는 일이다.

이운룡 장군은 이후 이순신 장군의 천거로

경상 좌수사에 오르게 되고 잠시 수군을 떠나

육군에 배속된 적도 있지만 임진왜란 기간

내내 육지와 바다를 오가며 전장에서 활약했고

나중에는 삼도수군통제사에 까지 오르게 되는

명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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