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선 수군이 되었다-31화 (3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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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경

‘이 선전관이 바로 이운룡 장군이라니’

역사에 기록될 명장을 직접 만난 나는

이루 말할 수 없이 감격했다.

“오늘 좋은 벗을 만나 기쁘기가 그지없소.

어서 안으로 듭시다.“

“환대에 감사드립니다.”

나는 이운룡과 함께 어깨를 나란히 하며

객사 안으로 들어갔고 우후를 비롯해

좌수영의 장수들이 그 뒤를 따랐다.

곧 저녁상이 차려졌고 나는 이운룡과

청주를 주고받으며 이야기꽃을 피웠다.

“드시게”

“감사합니다.”

이운룡의 잔에 청주를 가득 부어주며

권했고 이운룡은 단숨에 잔을 비웠다.

나는 이운룡과 함께 술잔을 비웠지만

취하지 않기 위해 잔에 든 술을 천천히

마시며 속도를 조절해 이운룡보다 적게

마셨다.

“맹장으로 명성이 자자하신 좌수사

영감을 뵙게 되어 큰 영광이옵니다.“

“나야 말로 자네 같은 인재를 벗으로

사귀게 되어 기쁘기가 그지없네.“

이운룡은 나 이대원 보다 나이는 4살

많았지만 내가 종3품 당상관인

좌수사이니 공적인 자리에서는 나에게

존칭을 쓸 수밖에 없었다.

‘아무래도 이곳에서 이운룡과 깊은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무리야

다른 장수들도 있고 나도 한성으로

올라가기 전에 준비해야 할 일들이

있으니.

우선은 이운룡과 친분만 만들어 놓고

나중에 만나서 이야기를 나눠보자‘

술잔을 나누면서 분위기를 살피던 나는

그렇게 결론을 내리고 한성에 올라가야

한다는 이유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이운룡과

다른 장수들도 아쉬운 기색이

역력했지만 어쩔 수 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늘은 이렇게 자리를 끝내지만

아쉬워할 것 업네. 언제 한성에서

자네와 다시 한번 자리를 만들도

싶은데 어떤가?“

한성에서 보자는 말에 이운룡은

내 손을 붙잡고 대답했다.

“그리하시지요. 영감 연통만 주시면 제가

모시겠습니다. 한성에서 꼭 뵙겠습니다.“

“그래 그렇게 하지”

아쉬웠지만 이운룡을 돌려보낸 후

내 방으로 돌아온 나는 손대남과

이언세를 불렀다.

이미 한밤중이었지만 손대남과

이언세도 내가 부를 것을 예상하고

있었는지 얼마 안 되어 도착했다.

“어명이 내려온 것은 알고 있을테니

긴말하지 않겠네. 나는 내일 바로

한성으로 출발할 것이니 좌수영의

일은 두 사람이 수고해 주게“

“영감 말씀만 하시지요.”

“명을 따르겠습니다.”

손대남과 이언세의 대답을 들은 후

나는 손대남에게 말했다.

“손군관은 우선 한성으로 가져갈

병장기들과 왜구들의 수급을 준비해 주게

갑주와 검, 창, 총통을 종류별로 10벌씩

준비해 주고 아니 총통은 3정만 준비하게.

화약과 탄환도 함께 준비해 주고 왜구들의

수급은 지위가 높은 놈으로 10구 정도

그리고 포로도 지위가 높은 자로 5명

정도 준비해 주게“

“알겠습니다. 영감”

손대남의 대답을 들은 나는 작은 목소리로

덧붙여 말했다.

“사화동이나 내가 심문했던 포로들은

계속 녹도진에 하옥시켜 놓게 반항적이고

말 안 듣는 놈들을 한성으로 데려가야

하네.“

“예 영감 명심하겠습니다.”

고토열도와 일본의 정보를 얻기 위해서는

사화동은 필요한 존재였다.

‘조선은 왜구들에게 너그러운 나라가

아니야. 선조를 만난 자리에서 포로들의

노동력을 활용할 것을 건의해 보겠지만

지금의 조선이라면 특히 선조라면

포로들을 전부 처형하라고 할지도 몰라

만약 포로들을 처형하라는 명령이 내려오면

사화동과 필요한 사람들은 빼돌리는 수밖에‘

“포로들과 수급 그리고 병장기들은 최대한

빨리 준비해 주게 그리고 그것들을

한성으로 수송하는 일도 손군관이 맡도록

하게 우리 좌수군이 왜구들을 물리쳤다는

증거이니 최대한 빨리 한성으로 수송하도록

하게.“

“좌수사 영감 맡겨주셔서 감사합니다.”

손대남은 중요한 일을 맡은 것에

감격한 듯했다.

나는 손대남에게 명령을 내린 후

이언세에게도 명령을 내렸다.

“이진무는 좌수영에서 지내고 있는

주민들을 도와주게 우후에게는 이야기를

해 놓았으니 크게 방해하지는 않을

것이야 주상전하의 윤허를 받기 전에

둔전을 시작할 수는 없으니 우선 좌수영

인근의 황무지에 텃밭을 가꾸거나 새끼를

꼬는 일부터 시작하지 좌수영이나

조정에서 주민들이 재기하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하네.“

“알겠습니다. 심려 놓으시지요.”

‘언제까지니 좌수영의 군량으로 주민들의

밥을 먹일 수는 없어 둔전을 시작하기

전이라도 무엇이든 일을 하게 해야 해‘

“이진무가 알아봐주어야 할 일이 하나

더 있네.“

“얼마든지 말씀하십시오.”

“자기(瓷器)를 만드는 관요와 민요에

대해 알아보게.

어느 곳의 실력이 좋은지 특히 청자를

만드는 곳이 있는지 알아봐 주게“

“예 강진의 민요에서 청자를 만들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자세히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고맙네. 그럼 수고하게”

“예 좌수사 영감”

이렇게 손대남 이언세에게 명령을 내린 후

두 사람을 돌려보낸 나는 녹도진을 지키고

있는 조천군에게 보낼 서신까지 쓰고 나서야

쉴 수 있었다. 이미 밤이 늦었고 몸은

피곤했지만 이제 좌수영의 일은 안심하고

한성으로 올라갈 수 있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한결 편했다.

다음날 아침 우후를 비롯해 좌수영의

장수들과 인사를 나눈 나는 한성을 향해

말을 달렸다.

내 호위를 겸해서 가족들이 한성에 살고

있다는 군관 둘이 한성까지 나와

동행하기로 했다.

군관들과 함께 말을 달린 나는 남해안

지역인 순천부에서 출발해 충청도를 거쳐

경기도로 올라가면서 목격한 조선의

풍경은 황량함 그 자체였다.

말이 달리는 길은 폭도 좁고 흙먼지가

날리는 흙길이었고 그런 길 좌우로는

논과 밭이 펼쳐져 있었다.

지나치는 마을 대부분은 낡은

초가집들이었고 마을 한가운대

초가집들과 상당히 거리가 떨어진

곳에서는 몇몇 기와집들이 보였다.

아마도 그 지역에서 힘깨나 쓰는

양반들이나 부호들의 집일 것이다.

사극에서는 시대에 상관없이 반드시

등장하는 주막이 성행한 것이 17세기

무렵이었으니 아직 까지는 그렇게 많지

않을 시기였지만 큰 고을이나 배가

다니는 포구에는 상인들을 상대하는

객주나 밥과 술을 파는 밥집들이

있었다.

상경하는 길에도 객주나 국밥집들이

있었겠지만 일부러 들릴 필요는 없었다.

어명으로 상경하는 나와 군관들은

지방관아에서 숙식을 제공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조선의 자연을 관람하며 즐기는 여행이

아니라 상경하라는 어명을 받아 떠난

길이었기에 나와 군관들은 쉬지 않고 달렸다.

아침에 눈을 뜨면 아침을 먹자마자 말에

올랐고 말이 지치면 인근 역참에서 말을

바꿔 타고 다시 달렸다.

배가 고프거나 해가 지면 가까운 관아로

찾아가 어명으로 상경하는 길이라는 것을

밝혔고 어느 관아에서든지 식사와 잠자리를

제공받을 수 있었다.

그렇게 말을 달려 좌수영을 출발한지 3일째

되는 날 오후에서야 한성에 도착한 나는

군관들과 헤어져 한성부 객사에 들러

하룻밤을 보내고 다음날 아침

경복궁으로 입궐했다.

경복궁에 입궐한 후 편전으로 안내된 나는

조심스럽게 편전으로 향했다. 편전에는

이미 선조와 조정대신들이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고 내가 편전 가까이 도착하자

내시가 선조에게 알렸다.

“전하 전라좌수사 이대원이옵니다.”

내시의 외침이 들리고 뒤이어 선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서 들라하라”

편전 안으로 들어간 나는 용상에 앉아있는

선조에서 절을 하며 외쳤다.

“전라좌수사 이대원 주상전하를 뵙습니다.”

“좌수사 아주 큰 공을 세웠다. 정말 수고가

많았느니라.”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전하”

절을 하고 일어나며 조심스럽게 선조를

바라보았다. 곤룡포 차림의 선조는

턱수염을 길게 기르고 있었고 앉아있었고

체격은 작지 않아보였다.

선조는 입을 열어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말했다.

“조선이 건국된 이래 왜구들을 상대로

그것도 왜구들 보다 적은 군사로 싸워서

이만큼 큰 전공을 세운 예는 드물 것이다.

장계는 읽어보았지만 좌수사에게 자세한

이야기를 듣고자 한다.

그래 왜구들은 어떻게 물리쳤느냐?“

올해로 20년째 왕위를 지키고 있는

선조는 거침이 없었다.

편전에 들어서자마자 쏟아지는 선조의

질문 공세에 나는 최대한 침착하게

대답했다.

다행히 선조나 조정의 대신들이

전투과정을 질문할 것을 예상했었기에

미리 대답할 내용을 생각하고 있었고

그 덕분에 갑자기 쏟아진 질문이었지만

침착하게 대답할 수 있었다.

“왜구들은 사납고 날쌔기로 유명하지만

아군의 판옥선은 왜의 전선보다 튼튼하며

화포도 장비하고 있습니다. 왜구들이

전선에 접근하기 전에 총통으로 왜의

전선을 공격하고 활과 편전으로 왜구들을

저격하였기에 왜구들은 아군의 공격에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참으로 장하도다. 아군의 장점과 왜구들의

약점을 잘 활용해서 싸웠구나.

이런 지혜로운 장수가 바다를 지키고 있으니

과인과 조정의 대신들이 안심할 수 있는

것이다.“

내 대답이 만족스러웠는지 선조는 웃음을

지으며 칭찬했지만 선조 앞에서 나는

긴장을 풀지 못했다.

“이번에 좌수사가 사로잡은 왜구들의 수가

수백에 달하고 왜구들로부터 노획한 병장기가

산처럼 쌓였었다고 들었다. 과인과 대신들에게

왜구들과 병장기들을 보여줄 수 있겠느냐?“

“감히 주상전하께 포로들과 왜구들의

병장기를 보여드려 좌수군 장병들의 전과와

노고를 자랑할 수 있는 영광을 주시니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전하

포로들은 상경하는 도중에 도주할 것을

염려하여 전선에 태워 한성으로 올라오고

있는 중이고 병장기들 역시 전선을

통해 한성으로 수송하고 있는 중이옵니다.

소장이 좌수영을 출발하기 전에 조치해

놓고 왔으니 곧 포로들과 노획품을 실은

전선이 한성에 도착할 것이옵니다. 전하“

“좌수사의 지혜가 또 한번 빛을 발하는구나.

포로들이 도주할 것을 염려해 바닷길을

통해 포로들을 이송하다니 역시 지혜롭도다.

한데 왜구들은 배를 몰아 조선으로 건너오지

않았느냐 혹시라도 왜구들이 전선을 빼앗아

왜로 도망이라도 치면 어찌하려느냐?“

선조는 여전히 웃는 얼굴이었지만 어느새

나를 바라보는 눈빛이 날카로워져 있었다.

웃는 얼굴로 심지어 바를 칭찬할 때와

다름없는 목소리로 나를 추궁하는 선조의

얼굴을 보며 나도 모르게 두 다리가

떨려왔다.

‘선조의 눈빛을 보지 않았다면 단순히

호기심에 물어보는 줄 알았겠다.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목소리 하나

떨지 않으며 저렇게 태연하게 추궁하다니

과연 20년간 왕위를 지켜온 능구렁이답다.‘

내가 만약 선조에 대한 역사적 사실을 알고

있지 않았다면 방금 전까지 나를 칭찬하던

선조의 겉모습만 생각하고 별생각 없이

대답했을 것이다.

그러나 선조가 어떤 사람인지 알고 있었고

어느 순간 영문도 모르는 체 의금부에

끌려갈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었다.

“심려 마십시오. 전하 소장이 비록 아는 것은

많이 없으나 할 일과 해서는 안 될 일도

구분하지 못하는 무능한 이는 아니옵니다.

소장이 좌수영을 출발하기에 앞서 소장과

함께 왜구들을 토벌하는데 앞장섰던 좌수영

군관 손대남에게 직접 전선들을 지휘할 것을

명하였고 녹도진의 군사들로 하여금 포로들을

감시하고 전선을 몰게 하였으니 추후도 실수가

없을 것이옵니다.“

내 대답을 들은 선조는 아까보다 한결 더

날카로워진 목소리로 물었다.

“좌수사는 한낱 군관을 신뢰하는가?”

“손대남은 비록 지위는 낮으나 소장과 함께

왜구들에게 돌격해 들어간 전우이옵니다.

손죽도에서 18척이나 되는 왜선들에게 쫓겨

후퇴할 때도 소장을 믿고 따랐고 절이도에서

아군보다 3배나 많은 왜선들과 해전을 벌였을

때도 소장을 믿고 따랐으며 소장을 명령을

하나도 어기지 않고 수행했으니 소장의

목숨을 걸고라도 손대남 군관을 믿을 수

있사옵니다.“

손죽도와 절이도에서의 해전을 떠올리니

속에서부터 열이 나는 것 같았다. 나도

모르게 목소리가 높아졌고 흥분한 나머지

선조에게 생각보다 대답했다.

“오호 그래”

내 대답이 예상외였는지 선조는 이제

흥미롭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훌륭한 장수아래에 약졸은 없는 법

좌수사는 녹도진의 군사들과 좌수영의

군사들도 손대남 만큼이나 신뢰하는가?“

선조가 연이어서 질문을 던지자 속으로는

‘아차’ 싶었다. 실수하지는 않았는지

걱정됐지만 여기 약한 모습을 보이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 갈 때 까지 가보자 장수가 부하들을

믿는다는데 그게 죄가 되지는 않겠지‘

“물론이옵니다. 전하 소장의 목숨이라도

걸 수가 있사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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