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선 수군이 되었다-33화 (33/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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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조판서 정언신 대감 2

중요한 이야기라는 말에 나는 나도 모르게

긴장하면서 몸이 굳었다.

‘말하다가 지친다더니 정말 피곤하다.

역시 대감은 그냥 된 게 아니구나.

상대하기 피곤하네.‘

짜증은 났지만 나의 이런 모습도 정언신이

보고 판단할 것이라는 생각이 드니

인상을 쓰고 있을 수는 없었다.

정언신 대감에게 흐트러진 모습을 보이지

않기 위해 눈에 힘을 주고 허리를 꼿꼿이

폈다.

“말씀하시지요. 대감 무엇이든 성심성의껏

답하겠습니다.“

그런 내 모습을 보며 가볍게 웃은 정언신은

진지한 목소리로 내게 물었다.

“좌수사는 이번과 같은 왜변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이 잘문은 나 스스로도 여러 번 생각했던

질문이었기에 대답하기 쉬운 질문이었다.

“전선과 군사를 일으켜 왜구들의 본거지를

쳐야 합니다. 본거지를 토벌하고 나면

적어도 5년간은 왜구들이 감히 조선을

침범하지 못할 것입니다.“

내 대답에 정인신은 놀랐는지 잠시

뜸을 들이다가 물었다.

“대마도를 정벌하자는 말인가?”

정언신의 이번 질문으로 내가 선조와

조정의 대신들 보다 정보에서 우위를

차지하고 있다는 것을 확신했다.

‘왜구들은 전부 대마도에서 온 것으로

알고 계신가? 이번 왜구들은 고토열도와

히라도의 해적들인데 조정에서는

그것도 모르고 있었구나.‘

“이번에 조선의 영토를 노략질한 왜구들은

대마도가 아닌 오도(五島)의 왜구들입니다.

대마도가 아닌 오도를 정벌하고 오도로

끌려간 백성들을 구해 와야 합니다.

이번에 따끔한 맛을 보여주면 한동안은

감히 조선을 침범할 생각을 하지 못할

것입니다.“

조선이 세종대왕 시절 대마도를 정벌하고

북방의 4군6진을 개척한 이후로 전쟁 없이

평화를 누렸다고는 하지만 항상 평화로웠던

것은 아니었다. 여진족들과 마주하고 있는

평안도와 함경도 지역에서는 여진족들이

강을 건너와 마을을 약탈하고 조선인들을

납치해 가는 일이 종종 벌어지는 있었고

조선군이 출동해 여진족을 물리치거나

때로는 두만강을 건너가 여진족 마을에

보복을 하는 일도 벌어지고 있었다.

니탕게의 난 당시 군사들을 지휘했었던

정언신은 그런 사정을 잘 알고 있었다.

정언신은 왜구들이 대마도 출신이

아니라는 말에 놀라고 오도(五島)를

정벌해야 한다는 말에 한번 더 놀랐다.

“아니 왜구들이 오도 출신인 것은 어떻게

알았나? 왜구들이 오도 출신이라는 것은

왜 조정에는 보고하지 않은 것인가?“

‘아차 내 실수다. 사화동을 심문한

내용은 장계에 쓰지 않았지.‘

사화동 같은 조선인 출신이 왜구들에게

협력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사화동은

죽음을 면하지 못할 것이 분명했다.

고토열도 정벌을 위해 사화동이 필요했던

나는 사화동에 대한 내용을 장계에

넣지 않았다.

정언신 대감의 의심을 피하기 위해서는

흥분하지 않고 침착하게 설명해야

한다고 생각한 나는 최대한 천천히

입을 열었다.

“좌수영으로 돌아온 후 왜구들을

문초하였습니다. 왜구들을 문초하여

왜구들이 오도에서 왔다는 것을

알아냈습니다. 왜구들을 문초한 내용은

아직 장계를 올리지 못했고 편전에서는

말씀드릴 기회를 찾지 못해 말씀드리지

못하였습니다.“

다행히 정언신 대감은 납득을 한 듯

고개를 끄덕인 후 다음 질문을

던졌다.

“을묘년의 왜변을 알고 있는가?”

정언신의 질문에 나는 차분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알고 있습니다.”

“그 당시에도 왜구들을 몰아내기만 했을

뿐 왜구들의 본거지는 토벌하지 못했어.

군사들을 거느리고 바다를 건너는 일은

그만큼 힘들고 위험한 일이네 그런데

왜구들의 본거지를 토벌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보는가?“

고토열도를 정벌하는 것 역시 내가

수십 번이나 머릿속으로 생각하고

고민해온 일이었다.

전라좌수군의 전력과 왜구들의 전투력을

감안해서 고민한 결과 내가 내린 결론은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힘든 일이겠지만 왜구들을 토벌해야

합니다. 왜구들은 이미 바다를 건너와

조선을 노략질 했습니다. 힘들다고

왜구들을 토벌하지 않으면 왜구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조선을 침략할

것입니다.“

내 대답이 일리가 있다고 느낀 정언신은

고개를 숙인 채로 잠시 생각에 잠겼다.

잠시 후 고개를 든 정언신은 나를 보며

물었다.

“왜구들의 본거지를 토벌하는데

군사가 얼마나 필요할 것 같은가?“

‘여기서 신중하게 대답해야 한다.

현실성이 있게 즉 실현 가능한 정도로

말해야 한다.‘

이번 대답이 중요한 고비라고 느낀 나는

신중하게 대답했다.

“전선을 타고 바다를 건너야 하니 많은

군사를 동원하기는 어렵습니다. 군사는

정예병으로 1000여명 그리고 총통으로

무장한 전선 8척만 있다면 충분히 오도의

왜구들에게 깊은 교훈을 알려주고 잡혀간

주민들을 구해올 수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내 대답을 들은 정언신은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 니탕개의 난 당시에는 함경도의

군사들뿐만 아니라 조선의 중앙군인 오위의

군사들이 8000명이나 북방으로 출동했었고

세종대왕 당시 대마도를 정벌했을 때는 전선

200여척과 군사 1만7000명이 출병했었다.

그런데 겨우 1000여명의 군사만으로 오도를

정벌하겠다니 정언신이 놀라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전선 8척과 군사 1000명이라니 그럼

전라좌수군 만으로 왜구들의 본거지를

토벌하겠다는 말인가?.“

“준비할 시간이 필요하지만 불가능한 것은

아닙니다. 이번에 왜구들에게 노획한 무기와

왜선 그리고 포로들을 길잡이로 동원할 수

있게 해주시면 저희 전라좌수군 만으로

올해 안에 왜구들을 토벌하고 왜구들에게

잡혀간 백성들을 구해오도록 하겠습니다.“

내 대답을 들은 정언신 대감은

믿지 못하겠다는 얼굴로 나에게 물었다.

“그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하는가?

전라좌수군 병력만으로 왜구들을

토벌하는 것이?“

나는 숨을 한번 들이 마신 후 그동안

생각하고 있던 계획을 침착하게 설명했다.

“저희는 오도를 점령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왜구들을 혼내주고 저희 백성들을

구해오려는 것입니다. 이번 같은 경우에는

많은 군사를 움직이는 것 보다 소수의

정예 병력으로 신속하게 움직이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오도 자체는

여러 섬들이 모여 있는 열도로써 그중에서

복강도[후쿠에 섬(福江島)]가 제일

큰 섬이며 이번에 조선을 침략한 왜구들이

여러 섬 출신들이지만 복강도에 모여서

출발했다고 합니다.

저는 오도 전역을 공격해 점령하려는 것이

아니라 복강도를 공격해 저희 백성들을

구출하고 복강도와 오도의 왜인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려고 합니다.“

“복강도라?”

정언신 대감은 오도 토벌이 과연 가능할지

고민하는 눈치였다.

“복강도를 성공적으로 토벌하기 위해서는

왜선과 왜구들이 사용하던 병장기들 특히

왜구들의 총통이 필요합니다.

판옥선은 왜선보다 튼튼하고 총통으로

무장하고 있지만 바다에서는 왜선의

속도가 판옥선 보다 더 빨랐습니다.

왜선은 속도가 빠를 뿐 아니라 왜구들은

왜선으로도 조선으로 건너오는데

성공했으니 판옥선과 함께 왜선을

사용해 보려고 합니다.

왜선에는 총통을 장비할 수 없으니

판옥선 5척이 왜선과 함께 출정할 것이며

섬에 상륙해서도 총통을 사용할 수 있도록

총통을 운반할 수레를 제작할 계획입니다.“

“총통을 운반할 수레라니 그게 무엇인가?”

정언신이 내 말에 관심을 가지고 묻자 나는

정언신에게 지필묵과 종이를 청했다.

잠시 후 서탁에 종이를 깔고 붓을 잡은

나는 천천히 포가(砲架)를 그렸다.

“총통을 싣고 움직여야 하는 만큼

이동하기 쉽도록 수레에 큰 바퀴

두 개를 달고 후미부분에는 지지대를

설치해 총통이 기울지 않도록 고정시킬

생각입니다.

총통을 방포할 때에도 지지대가 땅에

박혀 있으면 수레가 뒤로 밀리지 않고

중심을 잡을 수 있으니 지지대는 되도록

튼튼하게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정인신 대감은 내가 그린 그림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겨 있었다.

정언신은 함경도에서 여진족들을 상대로

실전을 치르는 것을 목격한 사람이다.

여진족들이 조선군과 싸울 때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 바로 화약무기인 것을

정언신은 잘 알고 있었다.

“이것을 좌수사 자네가 생각해냈단

말인가?“

정인신 대감은 놀란 듯 심상치 않은

얼굴로 물었다.

“예 전선에서는 총통을 동차에 실어서

방포하지 않습니까.

그 동차를 육지에서도 사용하면

편리하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구상한

수레입니다.“

“확실히 이런 수레에 총통을 고정시켜서

운반하면 이동할 때 편리하겠군.

사람이 직접 밀고 다닐 필요도 없이

말이나 소로 끌고 다녀도 될 것 같고

총통을 방포할 때도 지지대만 땅에

박으면 되니 방포를 준비할 시간도

많이 절약되겠어.“

정언신의 말을 들으며 나는 등에

땀이 흐르는 것을 느꼈다.

‘아니 이사람 뭐야? 아무리 병조판서라지만

직업군인도 아니고 기능인도 아닌 사람이

포가의 그림만 보고 특징과 장점을

파악해 버리다니 조선사람 맞아?

이사람 무과가 아닌 문과에 급제한

문관으로 알고 있었는데.‘

한동안 그림을 뚫어지게 보던 정언신

대감은 갑자기 고개를 들어 나에게

물었다.

“이 수레를 어떻게 사용할 생각인가?”

정언신의 질문에 나도 모르게 바짝

군기가 든 자세로 목소리를 높여 대답했다.

“복강도에 상륙할 때 사용할 생각입니다.

우선 전선들이 복강도의 해안을 봉쇄하고

왜선들을 발견하는 대로 총통과 불화살로

공격해 불태울 생각입니다.

왜선들을 모두 불태운 후 군사들을 섬에

상륙시킬 생각입니다.

해안가에 바로 상륙할 경우를 대비해

군사 10명이 탈수 있고 노를 저어 움직이는

작은 배들을 10척 정도 만들어서 전선과

왜선의 좌우 갑판위에 1척씩 매달아서

가져갈 생각입니다.

군사들이 상륙하는 동안 전선에서는

포수들이 총통을 장전해 놓고 만약의 사태에

대비하고 왜구들이 나타나면 즉각 방포해

상륙하는 군사들을 지원합니다.

해안가에 상륙한 군사들은 아군에게 전향한

포로들의 길 안내를 받으며 왜구들의

본거지로 진군할 계획이며.

검술에 능한 장수 10명과 편전을 다루는

궁수들을 포함해 궁수 100여명 그리고

포수를 포함해 군사 500명과

10문 이상의 황자총통을 상륙시킬

계획입니다.“

정언신은 아무 대답이 없었지만 말없이

나를 바라보는 것이 계속 예기해 보라는

것 같았다.

“이번에 조선을 침략한 왜구들 중에 무사히

오도로 돌아간 왜구들은 왜선 4척에 탑승한

왜구들로 그 수는 많아봐야 500명에서

600명에 불과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2000명에 달하는 왜구들 중에서 7할 이상이

죽거나 포로로 잡혔고 오도로 돌아간 왜구들

역시 복강도 출신이 아닌 자들은 자신들의

고향으로 돌아갔을 테니 저희 군사들이

복강도에서 상대해야할 왜구들은 많아 봐야

300명 이하일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조선을 침략한 왜구들의 대부분이 죽었거나

포로로 잡혔으니 현재 복강도와 오도 일대는

무방비 상태일 것입니다.

바로 지금이 오도의 왜구들을 토벌할

최적의 기회입니다.“

정언신 대감은 잠시 생각하더니 천천히

입을 열었다.

“왜구들이 아무리 사납고 검술에 능하다고

해도 겨우 300명 남짓한 수만 남아있다면

총통과 각궁 그리고 편전으로 무장한 500명의

군사들을 당해낼 수는 없겠지 주상전하께

아뢰도록 하겠네.“

“감사합니다. 병판대감”

내가 선조에게 말하는 것과 정언신이

선조에게 말하는 것은 엄청난 차이가

있었다.

당연히 선조는 내 이야기를 듣는 것 보다

훨씬 진지하게 긍정적으로 정언신이

말하는 것을 들어줄 테니 오도 정벌을

허락할 가능성이 높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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