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선 수군이 되었다-34화 (34/223)

────────────────────────────────────

────────────────────────────────────

병조판서 정언신 대감3

‘이번 왜변에서 왜구들에게 잡혀간 조선인

대부분이 좌수영의 수군들이야 그것만

생각하면 마음이 편하지 않았는데 이번에

구해낼 수 있었으면 좋겠다.‘

고토열도를 정벌하고 조선인들의 구출을

시도한다고 해도 잡혀간 사람들을 전부

구출한다는 보장은 없었다. 그동안 벌써

노예로 팔려간 사람들도 있을 수 있고

왜구들 중에는 고토열도 뿐만 아니라

히라도에서 온 왜구들도 있었으니

히라도에 끌려간 조선인들도 있을 것이다.

이번에 조선수군이 후쿠에 섬을

정벌한다면 전부는 아니라도 최소한

후쿠에 섬(福江島)에 잡혀있는

조선인들은 구출할 수 있을 것이다.

“피곤한 사람을 오래 붙잡고 있었군.

이제 그만 쉬게 내일은 별일이 없을

테니 하루 동안 푹 쉬도록 하게

내일 저녁에는 같이 술이나 한잔하세“

“감사합니다. 병판대감”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정언신에게

감사인사를 올렸고 정언신을 그런 나를

만류하며 하인을 불렀다.

정언신의 부름을 받은 하인의 안내를

받으며 나는 손님들이 머무는 방으로

향했다.

“편히 쉬십시오. 나리”

“그래 수고 많았다.”

방 안으로 들어온 나는 겉옷을 벗고

그대로 자리에 누워서 정언신과 나눈

이야기들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보았다.

오늘 정언신과 나눈 이야기들은 전부

선조의 귀에 들어가겠지만 별로 문제될

것은 없어 보였다.

‘잘된 일이지 내가 직접 선조를 상대하지

않아도 되고 정언신이 선조를 상대해

준다면 나는 편하지‘

긴 시간은 아니었지만 편전에서 겪은

일을 떠올리자 지금도 긴장감이

느껴졌다.

‘선조가 재위 기간 중에 별로 잘한 일은

없는 것 같지만 20년간 왕좌를 지킨

인물이야 상대하기 쉬운 인물은 아니야‘

선조와 정언신에 대한 생각을 하던 나는

그대로 잠이 들었다. 선조와 대신들을

대면한데 이어서 정언신 대감과 늦은

시간까지 대화를 주고받았으니 무척 피곤한

하루였다.

다음날 아침 자리에서 일어난 나는 아침을

청해서 아침밥을 먹고는 그대로 자리에

누워 하루 종일 잤다. 좌수영에서 한양까지

올라온 후 제대로 쉬지 못해 피로가 쌓인

것이다. 하루 동안 실컷 자고 나서야 정신을

차린 내가 자리에서 일어났을 때는 이미

날이 어두워지고 있었다.

“나리 대감마님께서 찾으십니다.”

때마침 정언신 대감이 나를 찾고 있다는

소리에 나는 황급히 옷을 챙겨 입었다.

“병판대감은 어디에 계시느냐”

“사랑채에 계십니다.

소인을 따르시지요.”

“하인의 안내를 받아 도착한 방에는

이미 술상이 차려져 있었고

정언신 대감은 자리에 앉아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어서 오게. 그동안 수고한 좌수사를

위로하기 위해 준비한 자리니

사양하지 말고 많이 드시게“

“예 감사합니다. 병판대감”

조선시대에는 식사는 물론 연희에서도

사람마다 개인상을 받았다.

정인신 대감과 나는 음식이 가득 차려진

상을 앞에 놓고 식사를 했고 정언신

대감은 직접 주전자를 들어 나의 잔에

술을 채워주었다.

“자 어서 들게”

“감사합니다. 병판대감”

술잔을 비운 나는 천천히 상을 살펴봤다.

상 위에는 삶은 닭이 한 마리 통째로 놓여

있었고 양념을 해서 구운 돼지고기와 삶은

소고기에 떡까지 한상 가득히 차려져

있었다. 하루 종일 자느라고 점심도 걸렸고

아직 저녁도 먹지 않았는데 눈 앞에

진수성찬이 차려져 있었으니 참을 수가

없었다.

‘오늘은 잠도 푹 자고 포식까지 하는 구나

살다보니 오늘 같은 날도 있네.’

돼지고기를 입에 넣는 것을 시작으로 배가

부를 때 까지 실컷 먹고 적당히 술을 마셨다.

먹고 마시는 동안 정언신 대감은 나를

배려하는 것인지 일체 말을 걸지 않았고

간간히 하인들을 불러 음식과 술을

더 가져오게 했다. 나는 실컷 먹고 마셨고

정언신 대감 역시 나와 같은 속도로 먹고

마시며 나이에 답지 않은 주량과 식성을

자랑했다.

어느 정도 배가 차자 여유를 가지고

정언신 대감의 상을 바라본 나는 정언신

대감의 상에도 대부분의 음식들이

비어있는 것을 보고 놀랐다.

‘조선시대에 60이면 적은 나이가 아닌데

대단한 양반이다. 중국 전국시대 조나라의

장군 염파가 노년에도 한 번에 밥 한 말과

고기 열 근을 먹고 용맹을 자랑했다고

하더니 정언신 대감도 장수가 됐다면 그에

못지않았을 것 같다.‘

한참을 먹은 후 다들 자신들 앞에 있는 상을

깨끗이 비우자 정언신 대감은 흐뭇한

표정으로 나에게 술을 한잔씩 따라 주었고

나는 단번에 잔을 비웠다.

식사가 끝나자 정언신 대감은 천천히

잔을 들어 술을 마신 후 나에게 입을

열었다.

“우선 좋은 소식을 전해주겠네 오늘 경기

수사에게서 연락이 왔네. 전라좌수영에서

출발한 전선이 경기도에 들어섰다고

하네. 내일은 한성에 도착할 것이야.“

“정말 좋은 소식입니다. 감사합니다.”

내 대답을 들은 정언신은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오늘 주상전하께 어제 밤 좌수사와 나눈

이야기들을 아뢰었네. 전하께서 흥미를

가지시는 것 같더군. 모든 결정은 전하께서

내리시겠지만 저하께서 흥미를 보이시는

것을 보니 좌수사를 따로 부르실 지도

모르겠네. 전하를 뵈면 좌수사의 계획을

어떻게 설명 드릴지 생각해 보게.“

나는 정언신 대감에게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감사합니다. 대감마님 이 모든 것이

주상전하와 병판대감의 은혜이옵니다.“

내가 말을 해놓고도 이건 오버가 아닌가.

싶었다.

‘내가 선조를 너무 무섭게 여기나?

선조에 관련된 일은 과민반응하게

되는 것 같네.‘

감사 인사를 해놓고도 너무 과했던 것이

아닌가 싶어 민망한 마음에 고개를 들지

못하고 숙이고 있자. 정언신 대감은 껄껄

웃으며 말했다.

“이런 이런 정3품 당상관인 전라좌수사가

이렇게 간이 작아서야.“

간이 작다는 말은 대범하지 못하다.

겁이 많다는 말과 일맥상통한다.

겁이 많다는 말을 들으니 갑자기

울컥하는 기분이 들었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대감”

“이보게 좌수사 이 늙은이가 그리도

무서운가? 아니지 이 늙은이가 아니라

주상전하가 무서운 게로구나?

그래 맞아 충분히 그럴 수 있는 일이야“

조선에서 남자가 그것도 무장이 겁이

많다는 말을 들었으니 그만한 모욕도

없었다. 그러나 나는 모욕을 받은 것

보다 내 속마음을 들킨 것 같아 마음이

불편했다.

“병판대감 장수에게 간이 작다고 하시니

말씀이 과하십니다.“

나도 모르게 목소리에 힘이 들어갔지만

정언신은 얼굴에서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그래 좌수사가 왜구들과 싸울 때는

용감무쌍한 것을 내 잘 알고 있지

그것은 주상전하께서도 알고 계시네.“

“그것은 또 무슨 말씀이십니까?”

나는 정말 어이가 없었다.

‘이게 뭐야 말을 알아들을 수 있게

해야지. 조선시대 사람들은 순박하고

순진할 줄 알았더니 선조도 그렇고

정언신도 그렇고 다들 능구렁이 같으니.

어디서나 어느 시대나 정치한다는 양반

고관대작이라는 양반들은 다 똑같은

건가?‘

화가 난 내 표정을 본 정언신은

그제 서야 웃음을 그치고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너무 기분 나빠하지 말게 이 나이가 되면

사람들과 대화를 나눌 때 상대의 얼굴만

보고도 감정과 말하는 의도를 알게 되지

별로 어려운 일도 아니네. 내가 관직에

있은 지가 20년이 넘었는데 그 정도도

파악하지 못하면 무능한 것이지.

좌수사 자네가 똑똑하고 용맹한

장수인 것은 잘 알고 있네.

어젯밤에 나눈 대화를 봐도 알 수 있네.

평소에 생각하고 있던 것이라고

마음의 준비도 없이 갑자기 그것도

병조판서에게 설명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야.

그런데 좌수사 자네는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열성적으로 자신의 생각과 주장을

설명하더군.

내가 감동을 받을 지경이었어.

그런데 주상전하와 관련된 이야기만

나오면 좌수사의 목소리가 빨라지고

말투가 과장되곤 했네.

몰론 좌수사 자네는 느끼지 못했을 수

있겠지만 엄연한 사실이야“

나는 내 속마음을 들킨 것 같아

나도 모르게 고개를 숙였다.

정언신은 그런 내 모습을 보며

차분한 말투로 말했다.

“좌수사 자네가 주상전하를 두려워하는

것은 아주 당연한 일이네 창피한 일이

아니야.

주상전하 앞에서는 조정의 대신들도

숨을 죽이고 말을 조심하니

약관(만20세)을 넘은지 얼마 안 되는

좌수사가 주상전하를 어려워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야.

아니 신하로써는 아주 바람직한 일이야

앞으로도 주상전하를 존경하며 두려워하게

그럼 방심하거나 실수하는 일은 없을 테니

말이야.“

정언신의 말을 들은 나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래 지금은 조선이야 왕의 말 한마디에

정승과 장군의 벼슬이 떨어지고 심할

경우에는 목이 바로 떨어지는

역사에 비록 성군으로 기록되지는 않은

왕이지만 선조는 죽을 때까지 권력을

놓치지 않았어.

심지어 임진왜란을 겪으면서도 그렇다면

선조의 정치력은 상당하다는 뜻이야

내가 미래의 지식만 믿고 조선을 너무

쉽게 생각한 것은 아닌지 모르겠구나.‘

나는 조선으로 떨어지기 전에 군인이었고

그 전에는 역사책을 좋아하는 평범한

학생이었다. 당연히 정치는 경험해 본적도

없었고 익숙하지도 않았다.

‘한성에서 일이 끝나고 좌수영으로

돌아가면 정치에 관한 책도 천천히

읽어보자.‘

조선에 와서도 공부를 하게 된

내 신세가 서글펐지만

신세한탄을 하기 전에

정언신에게 물어볼 것이 있었다.

“병판대감 한 가지 여쭐 것이 있습니다.”

정인신 대감은 얼굴 가득히 여유로운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얼마든지 물어보게”

“소장이 왜구들과 싸울 때 용감무쌍하다.

말씀하신 것을 기억하십니까?.“

“물론 기억하다. 마다 방금 말한 것을

잊을 정도로 늙지는 않았네.“

“소장이 용맹무쌍한 것을 병판대감께서도

잘 알고 계시고 주상전하께서도 알고

계신다고 하셨습니다. 그게 무슨 뜻인지

대답해 주실 수 있으시겠습니까?“

정언신 대감은 아까와는 다른 살짝

날카로운 눈빛으로 나를 보며 말했다.

“좌수사의 질문은 자네가 용맹한 것을

어떻게 알았느냐? 어떻게 확인했냐는

말이겠지?.“

말을 그치고 술잔을 집은 정언신 대감은

잔에 든 술을 단숨에 입안에 털어 넣고는

술을 삼키며 나를 노려보았다.

“지금 이 자리에서 내가 하는 말은 절대로

밖으로 세어나가서는 안될 것이네.

알겠는가?“

“예 대감마님”

이번에도 긴장했는지 목소리가 좀 컸다.

정언신 대감은 그런 나를 바라보며

귀엽다는 듯이 웃었다.

“좌수사의 그런 모습이 좌수사에게는

큰 무기가 될 것이네.

누구에게라도 그런 순수한 모습을

보여주면 좌수사에 대한

경계를 풀 것 이니 말이야.“

말을 마치고 어느새 진지한 표정이 된

정언신 대감은 나를 정면으로 바라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조선은 작은 나라가 아닐세.

대국(명나라)처럼 크고 넓은 나라는

아니지만 6진의 변방이나 좌수영 같은

바닷가에서 변란이 일어나도 한성까지

소식이 전해지는 데는 시일이 많이 걸리지

봉화를 올려도 한성까지 소식이 도착하는데

한나절은 걸리고 파발이 말을 달려와도

한성까지 도착하는데 이 삼일은 걸리지

그래서 변방의 장수들은 현장에서 지휘권을

행사하고 사후에 보고하는 경우가 흔하지

만약의 경우 변방의 군사들을 지휘하는

병마절도사나 수군절도사가 한성을 향해

군사를 몰고 온다면 어떻게 되겠나?“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