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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조판서 정언신 대감 4
정언신의 말을 들으며 나는 의문에 빠졌다.
‘그러고 보니 조선의 500년 역사 중에서
지방에서 일어난 반란이 성공한 사례는
없었어. 조선시대에 성공한 반란은 왕자의
난과 계유정난 그리고 중종반정과 인조반정
뿐인데 성공한 반란은 대부분 변방의 군사가
아닌 경기도와 황해도등 한성 인근의 군사를
동원했어. 인조반정도 훈련대장이 반란군에
호응했으니까. 성공했지 훈련도감의 병력이
출동했으면 충분히 진압할 수 있을 정도였지
실제로 진압되기는 했지만 이괄의 난 당시
이괄은 평안도의 군대를 동원해 한성을
점령하는데 성공했고 조사의의 난에서도
함경도의 군대가 남진하자 중앙군이
반란군을 진압하기 위해 치열한 전투를
벌였었는데. 평안도와 함경도의 군사들이
한성으로 진격한 경우가 이상할 정도로
없었어.‘
“지금까지 그런 경우는 없었지 않습니까?”
내가 의외라는 듯이 대답하자 정언신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왜 그런 일이 없었을 것 같은가?
함경도에서 딱 한번 이시애가 반란을
일으킨 적은 있었지만 이시애는 조정에서
임명한 장수는 아니었지.
평안도와 함경도의 군사들이 강병인 것은
모르는 사람이 없을 텐데 왜 변방의
장수들은 한성으로 군사를 일으킬 생각을
못하는 것 같은가?
주상전하는 장수들의 충성심만을 믿고
안심하시는 것 같은가?“
정언신의 말을 들으며 나는 등골이
오싹해 지는 것을 느꼈다.
“평안도와 함경도의 병영들을 감시하고
있다는 말씀이십니까? 도대체 누가
어떤 방법으로 말입니까?“
정언신은 천천히 잔을 들어 술을 마신 후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옛적에 이징옥이 함경도에서 군사들을
일으켰던 적이 있었지 이징옥은 한성으로
진군하지는 않았지만 만주로 들어가
나라를 세우겠다고 함경도 군사들을
거느리고 북진했었어. 다행히 이징옥의
목을 치고 반란을 진압하는 데 성공했지만
만약 이징옥이 함경도 군사들을 거느리고
만주에 근거지를 만들었다면 6진은 물론
함경도 전역은 이징옥의 세상이 되었을
것이야. 이징옥의 반란을 진압한 후
세조대왕께서는 6진은 물론 각지의
병영과 수영을 살펴보셨네.
주상전하께서도 한성에 계시지만 병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알고 계시네.
의주의 군사들이 한 달에 몇 번이나
훈련을 받고 있는지.
6진의 장수들 중에서 훈련을 게을리 하는
사람은 누구인지.
8도의 병영 중에서 군사들의 불만이 가장
많은 병영은 어느 곳인지 모두 알고 계시네.
누가 전하께 8도의 병영과 수영의 사정을
알려주는지 궁금한가?
바로 주상전하의 그림자들 일세. 조선에는
오직 주상전하께만 충성하고 주상전하를
위해서는 수단을 가리지 않는 이들이 있네.
그들이 누구인지 알겠나?“
순간 나는 숨이 막히는 것 같았다.
‘이 이야기가 사실이라면 정말 엄청난
일이다. 조선에 왕이 직접 부리는
정보조직이 있다니. 왕이 직접 첩자들에게
보고를 받고 있었다니.
지금까지 전혀 듣지도 보지도
못했던 일이다.‘
“전혀 모르겠습니다.
가르침을 구합니다. 병판대감“
나는 식은 땀을 흘릴 지경이었지만
정언신 대감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알려주었다.
“바로 내시들이네 환관들 말이야”
내시라는 말에 나는 다시 한번 놀랐다.
전혀 의외의 대답이었다.
“내시들은 자손을 가지지 못하지 재물이
많아도 사후에는 양자에게 물려줄 뿐
재물이나 유산을 물려 줄 자손이 없어
내시에 대한 모든 인사는 주상전하의 뜻에
따라 결정되고 전하가 계신 곳에는 항상
내시가 그 뒤를 따르고 있네. 그들은 다른
사람들과는 다르네. 대궐이 그들의 집이나
다름없고 주상전하만이 그들의 주인이시네
그들은 주상전하의 눈과 귀야“
“그럼 내시들이 병영과 수영을
염탐하고 있다는 말씀이십니까?“
내 질문에 정언신 대감은 당연한 것을
묻는 다는 듯이 대답했다.
“병영과 수영뿐만이 아니네.
병마절도사와 수군절도사만이 군사를
거느리고 있는 것이 아니지. 일정규모
이상의 군사를 거느리고 있는 부사와
첨사 혹은 만호진에도 전하께서 명하시면
이들이 찾아가지. 꼭 큰일이 있을 때만이
아니네. 계절이 바뀔 때나 대규모
군사훈련을 앞두고 있거나 훈련이 끝났을
때 사냥꾼이나 심마니들이 병영 주변의
산 정상이나 훈련하는 장면이 잘 보일만한
곳에 나타난다고 생각해 보게 수염을 달고
옷차림까지 그럴 듯하게 차려입으면 누가
의심이나 하겠나. 그 뿐만이 아니야
작정하고 염탐하려고 하면 병영이나
훈련장 근처를 기웃거리는 것 말고도
여러 가지 방법이 있겠지“
나는 정언신의 말을 들으며 등에 식은땀이
흐르는 것을 느꼈다.
‘위화도 회군으로 조선이 건국된 만큼 조선의
왕들은 장수들이 병권을 쥐고 군사를 움직이는
것을 경계했다고 했었어. 그래서 문관들에게
군사지휘를 맡기기도 했었고 그래도
그렇지 아군 병영을 수시로 염탐하다니
이거 생각보다 위험한 곳인데’
“내시들뿐만이 아니야 병영과 수영은
물론 감영과 관아에도 노비들이 있지
공노비들 아무도 노비들을 의심하지는
않아 하지만 노비들도 귀가 있고 눈이
있네. 일을 하다가 듣는 것이 있고
보는 것이 있지 공노비들에게 면천을
조건으로 자신이 일하고 있는 관아에
대해서 묻는다면 어떻게 될 것 같은가?“
오늘 놀라운 이야기를 많이 들었지만
이번 이야기만큼 놀라운 이야기는
없었다.
“면천을 미끼로 건다면 알고 있는
모든 것을 털어놓겠군요.
아니 묻는 사람이 알고 싶어 하는 것은
어떻게든 알아다가 고할 것 입니다.“
“그렇지 노비들을 통해 알아낼 수 있는
것들에 대해 알면 좌수사 자네도 크게
놀랄 것이네“
정언신의 말을 들은 나도 모르게 지친
목소리를 내며 물었다.
“모든 병영과 수영들을 내시들이
염탐하는 것입니까? 그리고 병마사들과
수사들은 이 사실을 모르고 있습니까?“
“물론 모든 병영과 수영을 항상
염탐하지는 않지 하지만 좌수사 자네는
이번에 보기 드문 전공을 세웠으니
이미 좌수영에 변복한 내시들이
파견됐을 것이야“
“그렇군요.”
간신히 대답을 했지만 어느새 내 머리
속에는 걱정근심이 가득했다.
‘이거 조선은 생각보다 위험한 곳인지도
모르겠다.‘
“병마사와 수사를 역임했던 장수들은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네 처음 임지에 부임했을
때는 모를 수 있어도 1년 정도 지나면
자연스럽게 알 수 있어.
그 정도도 눈치 채지 못할 정도로
둔한 사람이면 주상전하께서 파직시키기도
하시지 하지만 어찌 하겠는가.
내시들을 잡아다가 곤장을 칠 수도 없고
역모만 꾀하지 않는다면 별 상관이 없지
오히려 몇몇 장수들은 내시들로 의심되는
자들을 잘 대접해서 보낸 경우도 있었다고
하더군.“
정언신의 말을 들으며 나는 점차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역시 이곳도 사람 사는 곳이구나. 정치하는
양반들은 조선이고 한국이고 마찬가지야
조선인들이라고 순수할 것이라고 생각한
내가 어리석었던 거야‘
내 얼굴 표정을 본 정언신은 내 잔에 술을
따라 주며 말했다.
“많이 놀란 것 같군 어차피 좌수사도 알아야
할 일이니 말해준 것이야. 너무 언짢아하지
말게 좌수사는 용맹하기도 하고 지략도
갖췄으니 주상전하께서 크게 쓰실 것이야.“
“감사합니다. 병판대감”
나는 진심으로 정언신에게 감사했고
그 자리에서 엎드려 정언신 대감에게
절을 올렸다.
“아니야 이럴 것 없네.”
정언신 대감은 과한 인사라며 나를 말렸지만
나는 진심으로 정언신 대감에서 감사했다.
‘오늘 정언신 대감에 나에게 들려준 이야기는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의 가치가 있다.
이 사실을 모르고 선조를 상대했거나
조선에서 일을 꾸몄다면 나는 어느 날
의금부에 끌려가거나 사약을 받았을지도
모르는 일이야.‘
“오늘은 늦었으니 그만 들어가서 쉬게
내일은 아침부터 바쁠 테니“
“감사합니다. 병판대감 대감께서도 편히
쉬시지요.”
정언신 대감에서 인사를 하고 방으로 돌아온
나는 쉽게 잠을 이루지 못했다. 조선에서
지내는 것이 이번만큼 무섭게 느껴진 적은
없었다.
다음날 아침 나를 찾아온 선전관들은
눈부신 수은갑주 한 벌과 장검을 전달하며
주상전하의 하사품이라는 말을 잊지 않았다.
수은갑주 차림에 새로 하사받은 검을 찬
나는 선전관들과 함께 훈련원으로 향했다.
선조는 조정의 대신들과 함께 훈련원에서
좌수영의 군사들을 맞이할 예정이었다.
훈련원에는 이미 오위의 군사들이
경계를 서고 있었고 잠시 후
손대남을 비롯한 좌수영의 장수들과
군사들이 포로와 전리품이 실린 수레를
몰로 훈련원으로 들어왔다.
오위의 군사들에게 포로들과 전리품들을
인계한 손대남은 나에게 다가왔다.
“좌수사 영감 그간 강녕하셨습니까?”
손대남과 좌수영의 장수들은 나에게
다가와 군례를 올렸고 나는 그들의
군례를 받은 후 명령을 내렸다.
“곧 주상전하께서 당도하실 것이다.
군사들을 정렬시켜라“
“예 영감”
선조가 온다는 말에 긴장한 장수들은
군사들을 정렬시켰고 군기가 바짝 든
자세로 군사들 앞에 섰다.
잠시 후 내금위 군사들의 호위를 받으며
선조의 일행이 훈련원에 들어섰다.
선조가 연(輦)에서 내리자 군사들은
일제히 고개를 숙여 군례를 올렸고
선조는 친히 나서서 좌수군의 전공을
치하하고 장수들을 격려했다.
군사들을 격려하던 선조는 왜구 포로들을
발견하고는 성난 목소리로 물었다.
“저들이 조선을 침략한 왜구들인가?”
“그렇사옵니다. 전하 손죽도와
절이도에서 좌수군에 사로잡힌
왜구들입니다.“
내 대답을 들은 선조는 더욱 성난
목소리로 외쳤다.
“감히 조선을 침략하고 백성들을
노략질한 왜구들은 절대로 용서할
수 없다. 지금 당장 저들을 의금부로
압송하도록 하라 당장 저들을 문초하여
저들의 배후와 본거지를 파악해야 할
것이다.“
“예 전하”
선조의 명령을 내리기 무섭게 오위의
군사들은 왜구들에게 달려들었다.
분위기를 눈치 챈 왜구들은 발버둥 쳤지만
억센 군사들이 달려들어 한명씩 끌고
나가자 모두 끌려 나갔다.
그렇게 포로들에 대한 처분을 내린
선조는 왜구들에게서 노획한 무기들을
잠시 살펴보더니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고 다시 군사들 앞에 나와 다시 한번
군사들의 전공을 치하했다.
“과인이 직접 왜구들을 보니 저들이 얼마나
흉악한자들인지 잘 알 수 있었다.
전라좌수군의 용맹한 군사들이 왜구들을
토벌하지 못했다면 그 피해는 지난
을묘년의 전란(을묘왜변)에 뭇지 않았을
것이다. 왜구들을 물리쳐 조선을 구한
좌수군의 강병들을 과인은 절대로
잊지 않을 것이다. 전라좌수군의 모든
군사들에게 백미를 한 섬씩 내릴 것이며
이번 전란에 전공을 세운 장수와
군사들은 별도로 포상할 것이다.“
“주상전하 천세~”
“천세 천세~”
선조가 군사들에게 쌀을 한 섬씩이나
내리겠다고 하자 좌수군 군사들은
일제히 천세를 부르며 환호했다.
군사들의 함성을 듣던 선조는 군사들에게
손을 들었고 군사들은 일제히 함성을
멈추고 조용해 졌다.
“상으로 내릴 쌀은 좌수영에 도착하는
즉시 받을 것이다. 오늘은 과인이 술과
고기를 내릴 것이니 모든 장병들은 배불리
먹고 즐기도록 하라“
“천세 천세 주상전하 천세~”
술과 고기를 내리겠다는 말에 군사들은
다시 한번 천세를 외쳤고 선조는
군사들의 함성을 들으며 유유히 연(輦)에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