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선 수군이 되었다-36화 (36/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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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가는 길

“출항준비가 끝났사옵니다. 좌수사 영감”

“출항하도록 하라.”

“예 영감”

출항명령이 떨어지자 판옥선의 돛이

활짝 펼쳐졌고 격군들은 노를 저었다.

전선은 천천히 포구에서 멀어지면서

바다로 나왔다.

전선의 선창과 갑판에는 화약통과 화살

대신 쌀과 면포가 쌓여있었고 수병들은

물론 장수들과 갑판에 쌓여있는

쌀가마니를 보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망루에서 그 광경을 바라보던 나는

배가 완전히 포구를 벗어나자

망루에서 내려왔다.

“나는 잠시 쉴 테니. 무슨 일이

일어나면 보고하도록 하라.“

“예 좌수사 영감 아무 염려 마십시오.”

손대남에게 전선의 지휘를 맡긴 나는

선실로 내려가 자리에 앉았다.

“휴 귀신이 곡할 노릇이라고 해야 하나

아니 번개 불에 콩 볶아먹었다는 말이

더 정확할까. 한성에서 지낸 시간이

일주일도 되지 않는데 마치 한달은

지낸 것처럼 피곤하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거야.“

훈련원에서 선조가 떠난 후 한성부의

관노들로 보이는 남녀노비들이

술동이를 가져왔고 솥을 걸고 고기를

삶았다.

곧 잔치가 벌어졌고 좌수영 군사들은

물론 훈련원에 있었던 오위의

군사들 까지 신나게 먹고 마셨고

나도 오위의 장수들에게 붙잡혀

장수들과 술잔을 비워야 했다.

준비된 술과 고기가 떨어지고

날이 어두워져서야 잔치는 끝났고

나는 잔치가 끝나기 무섭게 선조의

부름을 받았다.

경복궁에 도착하기 무섭게 별감의

안내를 받아 한 전각에 도착한 나는

전각의 방 안에서 선조를 만났다.

승지도 없이 내시만 거느리고 나타난

선조는 거침없이 말했다.

“병판에게 좌수사의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상당히 재미난 생각을 하고 있더구나.“

나는 갑자기 선조를 독대하게 되자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이런 제길 한성을 떠나기 전에 선조를

한번은 만나게 될 것 같았지만 정언신

대감도 없이 독대하게 될 줄이야.‘

선조의 뜻대로 선조가 원하는 시간과

장소에서 선조와 독대하게 되었으니

나에게는 최악의 자리였지만 피할 수도

없는 자리였다.

“왜구들에게 잡혀간 백성들을 구해올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이번에

왜로 끌려간 백성들은 대부분 전라

좌수군의 군사들이니 저희 전라

좌수군이 앞장서서 구해오는 것이

마땅하다고 생각되옵니다. 전하“

“좌수사는 고개를 들라.”

내 대답을 들은 선조는 뜬금없이

나에게 고개를 들라는 명령을

내렸다.

내가 고개를 들어 선조를 바라보자

선조는 화가 난 표정으로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겨우 군졸 몇 구하자고 네가 직접

바다를 건너 왜까지 쳐들어가겠다는

말이냐? 네 솔직한 속셈을 털어놓지

못할까. 원하는 것이 무엇이냐?“

선조의 말에 나는 속에서부터

열불이 올라오는 것 같았지만

우선 참았다.

‘선조가 나를 추궁할 생각이었으면

의금부로 압송했을 거야.

이런 전각에서 독대할 필요가 없지’

애써서 속에서 올라오는 화를

참은 나는 선조를 똑바로 바라보며

최대한 침착하게 대답했다.

“전하 그들은 나라를 지키기 위해

출정했던 용사들입니다. 소장은

전라좌수군의 수장인 좌수사로써

그리고 나라를 지키는 장수로써

그들을 외면할 수는 없습니다.“

내 대답을 들은 선조는 성난 표정을

풀더니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다시

물었다.

“반드시 왜를 정벌하려느냐?

정벌이 실패한다면 아무리 좌수사라도

무사하지는 못할 것이다.“

“전하 소장은 왜를 침략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왜에 끌려간 우리 백성들을

좌수군의 수병들을 구해오려는

것입니다. 조선의 백성들을

조선으로 귀환시키려는 것입니다.“

성심성의껏 대답했지만 선조의 질문은

계속 이어졌다.

“군사 1000명이면 충분히 왜구들을

토벌하고 백성들을 구해올 수 있다고

장담했다 들었다. 자신이 있는 것이냐?“

“이번에 조선을 침략한 왜구들은

오도(五島列島)의 복강도(福江島)에서

출정했다고 합니다. 왜구들에게 끌려간

백성들이 복강도에 잡혀있을 것으로

예상되니 복강도를 쳐서 백성들을

구출하려고 합니다. 복강도는 섬의

크기가 작아 대마도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고 합니다.

잘 훈련된 군사 1000명만 있다면

왜구들을 징벌하고 백성들을 구해오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닐 것입니다. 전하“

“하 하 하 하 하 하 하”

내 대답을 들은 선조는 갑자기

입을 벌려 웃기 시작했다.

“그래 조선의 장수라면 아니 사내라면

그 정도 배짱은 있어야지 좋다.

좌수사에게 복강도 정벌을 맡기겠다.

왜구들을 길잡이로 쓰고 싶다고 했다지?

그것도 좋다. 왜구와 왜선의 처분은

좌수사에게 위임한다. 필요한 만큼

부려먹고 죽이던 살리던 좌수사의

뜻대로 하라. 그리고 더 필요한 것이

있느냐?“

선조의 질문에 나는 황급히 대답했다.

“화약과 병장기를 증원해야 합니다.

좌수영에서 화약과 총통을 제작해야

하고 전선도 정비해야 합니다.“

“그것도 좋다. 좌수영에서 알아서

진행하도록 하라 그리고 남해안의

섬에 둔전과 염전을 설치하는 것도

허락하겠다.“

너무나 시원한 선조의 허락에 나는

고개를 조아리며 외쳤다.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전하”

“좌수사는 고개를 들라.”

선조의 명에 따라 고개를 올린 나는

선조의 얼굴을 보면서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뭐야 저 표정은 나를 얕보고 있는

것인가? 아니 비웃는 것 같기도 하고.‘

“병판이 지난 밤 좌수사와 깊은 대화를

나눈 것으로 알고 있다. 병판에게서

중요한 조언을 많이 들었을 것이다.“

나는 선조가 무슨 의도로 이런 말을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좌수사는 좌수영으로 돌아가서도 병판의

조언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알겠느냐“

“명심하겠나이다. 전하”

선조의 말을 들은 후 나는 다시한번 등골이

오싹해 지는 것을 느꼈다.

‘뭐야 이거. 어젯밤에 정언신 대감이 해준

이야기들 이거 정언신 대감이 선조의

허락을 받고 나에게 이야기한 건가?

아니야. 선조가 정언신 대감에게 명령을

내렸구나. 나에게 이야기해 주라고.‘

점차 굳어지는 얼굴을 감추기 위해

고개를 숙이자 다시 선조가 명을

내렸다.

“좌수사는 고개를 들라.”

황급히 얼굴을 풀고 고개를 들자

선조가 이번에는 진지한 표정으로

나에게 물었다.

“좌수군에 녹도만호 자리가 비어있다.

좌수사는 얼마 전 까지 녹도만호였으니

녹도진의 상황을 잘 알 것이다.

그래서 묻겠다. 좌수사는 녹도만호에

어울릴만한 장수를 알고 있느냐?“

선조의 물음에 나는 생각해 볼 것도 없이

대답했다.

“신은 조산보 만호 이순신을 추천합니다.

이순신은 이미 발포만호를 역임해

전라좌수군에 대해 잘 알고 있고

성격이 강직하여 원리원칙대로 행하는

장수이니 믿고 맡길 수 있습니다.“

“오호 그래 이순신이라”

선조는 내가 이순신 장군을 녹도만호에

추천하자 잠시 고민하는 표정을 지었다.

“알겠다. 녹도만호의 인사문제는

대신들과 상의해서 결정할 것이다.

좌수사는 이만 돌아가도록 하라“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전하”

선조가 방을 나간 후 전각을 나와

정언신 대감의 집으로 돌아온 나는

갑주를 벗자 온몸이 식은땀으로

젖어 있었다.

이번 상경으로 내가 느낀 것은 조선은

현대의 한국 뭇지 않게 위험한 곳이라는

것과 선조는 특히 위험하다는 것이었다.

‘좌수영으로 귀환하는 즉시 전선과

군사들을 정비해 고토열도를 정벌하고

조선인들을 구해온다. 그리고 고토열도

정벌이 끝난 후 조선이 아닌 해외에

거점을 만든다.‘

그동안 나는 임진왜란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좌수영에서 전선과 무기를 개발해

조선 수군의 전력을 강화시킬 생각을

했었지만 이번 상경을 통해 마음을

바꿨다.

‘해외에 거점을 만들어 그곳에서 무기와

전선을 개발한다. 그리고 임진왜란을

최단기간에 종전하도록 만든 후 나는

태평양을 건너자 조선에서 선조의 눈치를

볼 필요 없이 북미대륙을 차지하고

마음 편히 지내자.‘

한성에서 겪은 일들을 계기로 나는

임진왜란이 끝나는 대로 북미로 떠나기로

마음먹었다.

전라좌수사 이대원이 선실에서 이런

생각을 하는 동안에도 전선은 순조롭게

남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해가 서서히 기울기 시작하자 화병들은

재빨리 밥을 지어 주먹밥을 뭉쳤고

수병들은 저녁으로 나온 주먹밥을 받아

입으로 가져갔다.

이대원을 대신해 전선을 지휘하고 있던

손대남은 갑판위에서 입으로 타령을

흥얼거리며 병사들에게 주먹밥을 나눠주고

있는 강영남을 보고는 웃으며 물었다.

“무엇이 그토록 재미있느냐?”

손대남의 질문에 고개를 숙였던 강영남은

잠시 후 밝은 표정으로 대답했다.

“모든 것이 좋지 않습니까. 나으리.

저희 같은 천한 것들에게 주상전하께서

수고하였다고 칭찬하시고 상으로 쌀까지

내려주셨으니 이건 대대로 자랑할 만한

영광이옵니다.“

강영남의 사정을 잘 아는 손대남은

강영남의 대답을 듣고는 강영남을

격려했다.

“그래 수고가 많았다. 누이동생과

조카를 모두 구했으니. 그래도

자네는 복 받은 사람이야 누이동생과

조카를 잘 보살피게“

“여부가 있겠습니까. 나리 누이동생은 물론

칠복이도 제 친자식처럼 키울 것입니다.“

강영남을 비롯해 이번에 상경한 좌수군의

수병들은 선조의 칭찬과 격려에 크게 고무된

상태였다. 더구나 선조가 술과 고기를 베풀고

포상까지 약속하자 사기가 하늘까지 치솟았다.

지방수영의 군졸에 불과한 이들이 임금을

직접 대면했다는 것 자체가 조선에서는

상상하기도 어려운 영광이었고 포상으로

약속한 쌀은 이들에게 현실적으로 큰 도움이

될 것이 분명했다.

한성에서 생각하지도 못한 칙사대접을 받은

좌수군 군사들은 신이 나서 전선을 좌수영으로

몰아갔다.

전라좌수사 이대원과 좌수군이

전라좌수영으로 돌아간 바로 그날 저녁

병조판서 정언신은 경복궁의 한 전각에서

선조를 독대했다.

“전라좌수사가 제법 기특한 면이 있더군.”

“아직 나이는 어리나 장수로써의

마음가짐이 올바른 사람으로 보입니다.“

“복강도를 정벌하고 백성들을 구해오겠다고

했지. 좌수사가 성공할 것 같은가?“

선조가 묻자 정언신은 선조를 바라보며

대답했다.

“좌수사가 천지분간 못하는

철부지는 아닌 것으로 보입니다.

한성으로 올라오기 전에 충분히

가능하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입니다.“

정언신의 대답에 선조의 얼굴이

한결 풀어졌다.

“좋아 이미 허락을 했으니 좌수사가

정벌을 성공시킬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 옳겠지 병판은 전라좌수영에

가능한 모든 지원을 하도록 하라.

좌수영에서 자체적으로 전선과 무기,

화약을 제조하는 것도 허용하겠다.

다급한 일은 조치 후 보고하는 것도

허락하겠다.“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전하”

선조의 이런 명령에 정언신은

사실 놀랐다.

‘전하께서 전라좌수사가 어지간히

마음에 드셨나 보구나. 전하께서

장수에게 이정도의 신뢰를 보이시는

경우는 드문 일인데.‘

“전라좌수사는 녹도만호 자리에

조산보 만호인 이순신을 추천했다.

병판의 생각은 어떠한가?“

이순신은 정언신도 잘 아는 장수였다.

이순신은 함경도에서도 여진족 족장

울지내를 생포하는데 활약했었다.

“이순신은 맡은 임무에 충실하고 성실한

장수입니다. 녹도만호를 맡겨도

부족하지 않을 것입니다.“

“병판의 생각이 그렇다면 알겠다.

조정의 대신들과 논의해 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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