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선 수군이 되었다-42화 (42/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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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쿠에 섬 - 수정본

도공들을 돌려보낸 후 나는 포로들을 데려올 것을 명령했다.

“옥 안에 있는 왜구를 데리고 오너라 알아볼 것이 있다.“

“예이~”

좌수영의 업무와 둔전과 염전을 일구는 일로 하루하루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었지만 고토열도의 정벌준비도 게을리 할 수 없었다. 고토열도 정벌을 준비하면서 사화동과 포로들을 통해 고토열도 특히 후쿠에 섬에 대한 정보를 모으고 있었고 정보를 수집하고 도주를 방지할 목적으로 포로들 중에서 지위가 높은 자들은 돌산도에 보내지 않고 좌수영 옥사에 하옥해 두고 있었다.

잠시 후 포로 한명이 병사들의 감시를 받으며 방 안으로 들어왔다.

포로들을 심문할 때는 항상 한명씩 따로 따로 불러서 심문했다. 포로들을 입을 맞춰서 거짓 정보를 흘리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포로들은 한명씩 따로 불러서 심문하고 포로가 진술한 내용을 다른 포로에게 다시 물어보는 방식으로 포로들이 진술한 내용을 교차 검증하는 것이다.

병사들은 포로를 의자에 앉혔고 왜구의 양옆에는 건장한 체구의 병사들이 창을 들고 서있었으며 내 옆에는 호위병 역할을 하는 김개동이 창을 들고 서 있었으니 포로와 같은 방 안에 있었어도 내 안전에는 아무 문제가 없었다.

잠시 후 일본어를 통역할 병사와 포로가 진술한 내용을 기록할 아전이 도착하자 나는 포로에게 물었다.

“네 이름이 무엇이냐?”

내가 한 질문을 통역을 담당하는 병사가 왜어로 들려주자 포로는 자신의 이름을 말했다.

“이와마츠 요시히입니다.”

그동안 옥안에서만 지낸 덕분인지 요시히는 순순히 묻는 말에 대답했다.

“너를 왜 불렀는지 알겠느냐?

“모르겠습니다.”

요시히가 긴장한 기색을 보이자 나는 탁자위에 있는 잔을 요시히의 앞에 가져다 놓고 술병을 들어 잔에 탁주를 따랐다.

“조선의 술이다. 쭉 들이마셔라.”

술이라는 말에 오시히는 두 손으로 잔을 잡고 단숨에 들이마셨다.

“끄윽~”

요시히는 트림을 하며 시원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나는 그런 요시히를 보며 말했다.

“너는 고향에 처자식이 있느냐?”

가족에 대해 묻자 요시히는 우울한 기색으로 대답했다.

“아내와 아직 어린 아들과 딸이 있습니다.“

“처자식을 다시 보고 싶으냐?. 처자식과 같이 살고 싶지는 않으냐?.“

처자식과 같이 살고 싶은지를 묻는 질문에 요시히는 두 눈을 크게 떴다.

“저를 돌려보내 주신다면 그 은혜는 잊지 않겠습니다. 저희 아버지는 마을의 촌장입니다. 저를 돌려보내주신다면 어떻게든 보답할 것입니다.“

병사를 통해 요시히의 말을 들은 나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나는 너를 왜로 돌려보내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네가 다시 처자식을 만나고 처자식과 함께 살도록 해줄 수는 있다.“

내말을 들은 요시히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물었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어떻게 다시 처자식을 만나고 처자식과 함께 산다는 말입니까?“

나는 요시히를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너희 두목 긴시요라가 고토열도로 도망치면서 200명이 넘는 조선인들을 끌고 갔다. 그 조선인들은 대부분 우리 전라좌수영의 병사들이다. 나는 곧 전라좌수군을 이끌고 고토열도를정벌해 고토열도로 끌려간 조선인들을 구해올 것이다.“

고토열도를 정벌한다는 말에 요시히는 두 눈을 부릅뜨며 나를 노려보았다.

“어떠냐. 네가 협조만 한다면 너의 처자식을 좌수영으로 데리고 올수 있다. 조선에서 계속 살아야 하겠지만 처자식과 함께 살 수 있고 밥을 굶지는 않을 것이다.“

처자식과 함께 살수 있다는 말에 요시히의 표정이 변했다. 요시히는 고개를 조아리며 대답했다.

“장군 살려주십시오. 저의 처자식을 구해 주십시오. 장군.”

좌수군이 고토열도를 정벌한다는 말에 분노했었던 요시히는 곧 자신의 처지를 생각했다. 자신은 이미 전투에 패해서 포로로 잡혀있고 고토열도에서 출발한 군사들 중에 살아서 돌아간 자는 4분지 1도 안될 정도였다. 조선수군이 고토열도를 정벌한다면 후쿠에 섬을 비롯한 고토열도 전역이 남아날 것 같지가 않았다.

“어떻게 하겠느냐. 나를 돕겠느냐. 아니면 다시 옥으로 들어가겠느냐?.“

요시히는 내 심기를 거스르지 않기로 작정했는지 재빨리 대답했다.

“무엇이든지 시키는 대로 하겠습니다. 장군. 제발 저의 가족을 구해주십시오.“

요시히의 대답에 만족한 나는 요시히의 잔에 탁자를 따라 주면서 말했다.

“좋다. 묻는 말에 순순히 대답하고 포로들을 관리하는데 협조하면 너의 처자식을 좌수영으로 데려오도록 하겠다.“

“감사합니다. 장군”

가족들 걱정에 긴장했는지 요시히는 손까지 떨면서 탁주를 마셨다.

요시히의 반응은 내가 예상했던 범위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요시히 외에 다른 포로들도 가족들과 함께 살 수 있도록 보호해주겠다는 조건으로 회유하고 있었다.

‘가족에 대한 애정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거절할 수 없는 조건이지 이 시대는 남편을 잃은 미망인과 아버지 없는 아이들에게 가혹한 시대이니 말이야.‘

16세기 조선에서도 남편과 사별한 미망인은 살기 어려웠지만 일본에서는 조선보다 더 가혹했다. 남편이 없는 여인들은 집에 마을의 남자들이 밤에 찾아가 관계를 가지는 요바이라는 풍습이 일본에서는 2차 대전 이후 까지 실제로 존재했었다.

애초에 남자가 마음에 드는 여성의 집에 찾아가 구애하는 풍습이었다는 요바이는 어느 시대부터인지 남자가 마음에 드는 여자의 집에 밤에 몰래 들어가 관계를 가지는 것으로 변질됐고 주로 남편에 없는 미망인과 미혼여성들이 요바이의 대상이 됐다고 한다.

특히 일본 전국시대에는 오랜 내전으로 성인 남자의 수가 급감하자 아이의 출산과 노동력의 확보 등을 목적으로 마을의 남자들이 밤바다 미망인의 집으로 찾아가 관계를 가지는 일이 빈번하게 일어났고 마을의 촌장들도 요바이를 장려했다는 기록이 남아있을 정도였다.

‘요바이 뿐만이 아니야 일본에서는 성교육 혹은 성인식의 명분으로 임신할 수 있는 나이가 된 소녀가 마을의 촌장이나 촌장이 지목한 남자와 관계를 가지는 풍습도 있었다는 기록이 있다. 가장이 없는 집의 여성들은 이런저런 명목으로 마을 남자들의 노리개가 되기 쉬었다는 말이지. 이런 풍습에 대해서 안다면 처자식을 일본에 그대로 놔두겠다는 소리는 못하지.‘

나는 요시히가 잔을 내려놓자 물었다.

“자 이것을 보거라”

나는 탁자위에 내가 가지고 있는 현대에서의 기억과 사화동을 비롯한 포로들을 통해서 얻은 정보를 바탕으로 그린 남해안과 고토열도 일대의 해도와 고토열도의 지도를 펼쳐놓고 요시히에게 물었다.

“섬의 주민들은 많지 않을 것이다. 주민들이 사는 마을은 어느 곳에 집중되어 있느냐?.“

이미 마음을 정한 요시히는 주저하지 않고 지도를 가리키며 대답했다.

“산지를 제외한 섬의 남쪽과 서쪽지역에도 마을이 있지만 가장 큰 마을은 섬의 동쪽 지역에 있습니다. 섬과 나가사키를 오가는 배가 섬 동쪽에 있는 항구에서 출발합니다. 항구 주변에 있는 마을이 섬에서 가장 큰 마을이고 섬의 주민들도 대부분 동쪽 마을에서 살고 있습니다.“

요시히의 대답을 들으며 나는 지도를 살펴보았다.

‘그럼 섬의 동쪽에 있는 항구에 상륙해야겠군. 병력과 화포를 무사히 상륙시키기 위해서는 항구가 필요해. 그리고 나가사키와의 연락도 봉쇄해야 하고.‘

“끌려간 조선인들은 어느 곳에 잡혀있을 것 같으냐?.”

이 질문에는 요시히도 난감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제대로 대답하지 못했다.

“조선인들을 농사에 동원한다면 마을별로 흩어져 있을 수 있습니다. 다만 항구에 도착한 배에서 짐을 내리는데 동원하거나 배를 수리하는 일을 시킨다면 항구에 잡혀 있을 수도 있습니다.“

“항구에 잡혀있을 수 있다?. 배에서 짐을 내리는 일이 많으냐?.“

“예 후쿠에 섬이 작지는 않으나 섬이다 보니 부족한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그러다 보니 나가사키에서 배가 들어올 때 마다 배에서 내리는 짐이 적지 않습니다. 배가 들어올 때 마다 섬의 주민들을 짐꾼으로 동원하는데 주민들은 농사와 고기잡이 등 생계를 위해 일 할 시간에 짐을 내리라고 하니 섬 주민들에게 일을 시킬 때 마다 원성이 높았습니다.“

나는 요시히의 설명이 그럴 듯하다고 생각됐다.

“그래서 조선인들을 항구에서 짐꾼으로 쓸 것이다?.”

“전부는 아니더라도 일부는 항구에서 일을 시킬 것입니다.“

요시히의 대답을 들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이로써 목표는 정해졌군.”

나는 후쿠에 섬 동쪽의 항구를 가리키며 생각했다.

‘후쿠에 섬에 도착하는 대로 우선 항구를 점령하고 병력과 화포를 상륙시킨다. 그리고 화포로 무장한 전선을 항구 앞 바다에 포진시켜 나가사키와의 연락을 차단하고 섬 주민들의 도주를 방지한다.‘

“중요한 항구이니 병사들이 지키고 있겠구나. 항구를 지키는 병사는 얼마나 되느냐?“

“항구 북쪽에 항구를 지키는 성에 있습니다. 성안에는 약 100명의 군사들이 지키고 있습니다.“

항구 근처에 성이 있다는 말에 나는 지도에 성이 있는 위치를 표시하게 하고 다시 물었다.

“섬의 다른 곳에도 군사가 있느냐?”

“항구에서 섬 안으로 강이 있습니다. 그 강을 따라 섬 안으로 들어가면 강줄기가 셋으로 나눠지는 지점에 성이 있습니다. 무사들과 그들의 가족들이 지내는 곳으로 성 안에는 무사와 병사들이 전부 300명 정도 있습니다.“

“300명이라”

요시히의 대답을 들으며 나는 생각에 잠겼다.

‘항구에 약 100명 성안에 300명 좋다. 이정도면 예상했던 대로야.‘

사화동으로 부터 왜구들이 고토열도와 히라도에서 왔다는 진술을 들었을 때부터 고토열도의 병력이 많지는 않을 것으로 생각했었다.

‘말이 왜구지 노를 젓는 노꾼들은 고토열도와 히라도의 주민들을 징집한 것이 분명해 무장하고 있던 왜구들만이 고토열도와 히라도의 병사들이었겠지.‘

전국시대 당시 일본의 수군은 수군이라기 보다 해적들에 가까웠다. 다이묘(大名)라 불리는 영주들은 전문적인 해군을 육성한 것이 아니라 해적이나 다름없는 해상군벌들을 고용하거나 자신의 세력에 복속시켜 수군으로 이용했다.

“섬의 병사들은 전에도 해적질을 하거나 수군으로 동원된 적이 있었겠지?.“

“예 그렇습니다. 병사들이 배를 타고 멀리 다녀온 일이 있었습니다.“

‘역시 그렇군.’

고토열도와 히라도의 병사들이 해적 짓을 한 것이 이번이 처음은 아닐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요시히에게 몇 가지 질문을 더 던졌고 요시히의 대답을 확인한 나는 마지막으로 요시히에게 물었다.

“배는 잘 모느냐? 너희가 타고 온 왜선 말이다.“

요시히는 자신 있다는 얼굴로 대답했다.

“소인 걸음마를 걷기 시작했을 때부터 배를 탔습니다. 키도 잡을 줄 알고 돛도 조정할 수 있습니다. 뱃일 이라면 무엇이든 자신 있습니다.“

“좋아 수고했다. 궁금한 것이 있으면 다음에 다시 부를 테니. 오늘은 이만 돌아가거라.

오늘 부터는 먹는 것이 이전보다는 더 나을 것이다.“

요시히에게 돌아가라고 하자 요시히는 자리에서 일어나지도 않고 간절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말하고 싶은 것이 있는 것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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