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선 수군이 되었다-43화 (43/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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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들

“장군님께 묻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제가 질문을 드려도 되겠습니까.?“

요시히의 말을 들은 나는 가볍게 웃으며

대답했다.

“포로인 네가 감히 내게 질문을.

평소에는 어림도 없는 일이지만

오늘은 네가 대답을 잘해줬으니

특별히 기회를 주겠다.

묻고 싶은 것이 무엇이냐?“

“감사합니다. 장군.

그럼 실례를 무릅쓰고 묻겠습니다.

고토열도로는 언제 출정하시려고

하십니까? 장군

정말로 소인의 처자식을 조선으로

데려오실 생각이십니까?“

요시히의 질문에 나는 요시히를

노려보며 대답했다.

“네 처자식은 내가 조선으로

데려오겠다고 이미 약속하지 않았느냐?

너는 내가 헛소리나 하는 소인배로

보이느냐?“

내 말에 요시히는 놀란 얼굴로 변명을

했다.

“아닙니다. 장군. 다만 소인의 처지가

처지인 지라. 장군의 확답을

듣고 싶었습니다.“

그 표정을 보고 생각했다.

‘가족들을 생각하는 마음이 대단하구나.

잘됐다. 하는 짓을 보니 다른 마음을

먹을 것 같지는 않군.‘

“우리 좌수군은 빠르면 두 달 안에

출병할 것이다. 고토열도를 정벌할 뿐만

아니라 우리 백성들을 구해오는 것도

생각해야 하니 준비해야할 것이 많다.

출정 날은 뒤로 미뤄 질수 있지만

올해 안에는 반드시 출정할 것이며

출정하는 대로 항구와 마을을 점령하고

우리 백성들을 구출한 후 너희의

처자식들을 전선에 태워 조선으로

돌아올 것이다.“

“감사합니다. 장군”

요시히는 그 자리에서 엎드려 내게

절을 했다.

병사들이 요시히를 데리고 나가자

방안에 있던 아전과 병사들에게 주의를

주었다.

“오늘 이 자리에서 들은 이야기는 절대로

다른 사람들에게 발설해서는 안 될 것이다.

알겠느냐.“

“예 좌수사 영감”

아전과 병사들의 대답을 들은 후 나는

아전이 기록한 요시히의 진술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좋아 이런 식으로 포로들에게 정보를

모으면 후쿠에 섬을 직접 정찰하지

않아도 후쿠에 섬의 지형과 적의

방어시설을 파악할 수 있어.‘

고토열도 일대의 해도를 바라보며

좌수영에서부터 후쿠에 섬까지의

거리를 가늠해 보던 나는 장거리

장거리 항해에 대한 염려를 감출 수

없었다.

‘정확하지는 않겠지만 이곳 좌수영에서

고토열도 특히 후쿠에 섬 까지의

거리는 200km가 넘어 판옥선을 끌고

바다를 건너가는 것이 문제로군.

바람이나 해류도 잘 타야하고.

노만 저어서 고토열도 까지 가려고 하면

격군들이 지쳐서 버티지 못할 거야.‘

고토열도를 정벌할 계획을 세우면서

전라좌수군의 군사들과 화력에 대한

염려는 없었다. 다만 판옥선을 비롯한

전선들이 평저선이고 평저선은 대해를

건너기에 적합하지 않은 것이 걱정이었다.

‘갤리온만 있었어도 이런 걱정을 할

필요가 없을 텐데 유럽 상인들과 만나기만

하면 어떻게든 갤리온을 구하고 말테다.‘

아전이 기록한 속기록을 덮은 나는 차를

마시며 잠시 휴식을 취했다.

고토열도를 정벌하겠다고 장수들에게

선포하지는 않았지만 나는 이렇게 정보를

수집하고 계획을 세우며 차근차근 정벌을

준비하고 있었다.

‘군사훈련은 다음 달부터 시작한다.

돌산도와 절이도에 집을 짓고 밭을

일구는 일은 병사들을 투입해서

이번 달 안에 마무리 짓고 다음 달

부터는 군사들을 훈련시킨다.

포로들도 돌산도에서 밭을 일구고 집을

지은 경험이 나중에 북해도에 정착할 때

도움이 될 거야. 이 시대에 북해도는

그야말로 원시림이 울창한 처녀지일 테니‘

나는 북해도에 기반을 만드는 데 성공하는

즉시 돌산도의 포로들을 북해도로 이주시킬

계획이었다. 포로들에게 처자식들을 데려다

주겠다고 약속한 것 역시 포로들을

회유하는 한편 포로들을 가족단위로

북해도에 정착시키려는 계획의 일부였다.

‘전라좌수군이 고토열도를 정벌하는데

성공하면 좌수군에 협력한 포로들은

그야말로 오갈 곳이 없게 되지.

일본에서는 배신자로 낙인찍힐 테고

조선에서도 왜구라고 손가락질 받으며

조선인들에게 따돌림 당하게 될 거야.

차라리 나와 함께 북해도에 정착하는

것도 포로들 입장에서는 나쁘지 않을

거야. 처음 몇 년은 고생을 하겠지만

정착하는데 성공하면 최소한 밥은 굶지

않을 테니.‘

왜구출신 포로들은 나에게 충성하기만

하면 쓸모가 많은 존재였다.

우선 농사를 지을 줄 아는 사람들이고

섬 출신들이니 뱃일에도 익숙했다.

북해도에서의 자급자족을 위해서는

밭을 개간하는 것과 함께 어업도 중요하니

포로들을 북해도에 정착시킬 수만 있다면

3년 만에 식량의 자급자족이 가능할

것으로 생각했다.

‘처자식과 함께 생활하게 해주고

포로생활에서 풀어주겠다고 하면

싫다고 거절할 놈은 없을 거야.

다만 군사로 쓰기에는 좀 불안하니

어떻게든 따로 군사들을 모아봐야지.“

북해도에 거점을 만들 생각을 하면서

좌수군의 전선들과 병력을 동원해

북해도를 점령할 생각도 해봤지만

한성에 다녀오며 배운 것은

조정 특히 선조는 조선군의 동향을

항상 주시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병마절도사나 수군절도사는

군대를 거느리고 자신의 담당지역

경계를 함부로 넘을 수가 없었다.

즉 북해도에 거점을 만들기 위해서는

좌수군 외에 내가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는 군대를 조직하거나. 좌수군을

북해도 까지 진군시킬 수 있는 허락을

선조에게 받아야 했지만 두 가지 다

쉽지 않은 일이었다.

‘우선 고토열도부터 정벌하고 백성들을

구출해오자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고

방법은 찾다보면 보이겠지.‘

생각을 끝내고 자리에서 일어난 나는

궁술을 연마하기 위해 활터로 향했다.

내가 포로들을 면담하는 동안 손대남은

배를 만드는 목수들의 우두머리인 대목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배는 잘 점검했겠지 내일이라도 바다에

나갈 수 있도록 철저하게 점검해야 한다.“

머리가 희끗희끗한 대목은 손대남에게

장인의 고집을 보이며 대답했다.

“염려 마십시오. 군관나리 소인이 배를

만든 세월이 벌써 스무 해가 넘습니다.

소인이 손본 배중에서 물위에 떠다니지

못하는 것은 없었으니 염려마시지요.“

“그래 그 말이 장하다. 장해”

손대남은 대목의 자부심이 마음에

들었는지 대목을 칭찬했다.

“그런데 소인이 보아하니 이배는

우리 전선들보다 약할 것 같습니다.

선체의 목재도 전선에서 쓰는 목재보다

훨씬 얇고 가볍게 생긴 것을 보니

말입니다. 더구나 나무판자들을

쇠못을 박아 고정했던데 쇠못은 바닷물에

부식되고 충격을 받으면 판자에서

빠지기가 쉽습니다.

그래서 우리 전선들과 같이

나무못으로 못질을 해 놨습니다.“

대목은 포구에 떠 있는 관선을

바라보며 자랑스럽게 말했다.

조선의 판옥선은 말린 소나무로 만든

목재로 건조하고 쇠못이 아닌

나무못으로 판자를 연결해 건조한다.

반면에 관선을 비롯한 왜국에서 건조한

배들은 일본에서 잘 자라는 삼나무로

건조하고 쇠못을 사용한다.

나무의 재질과 못의 차이가 임진왜란

당시 해전에서 일본의 전선이 조선수군의

공격에 쉽게 침몰한 원인 중 하나였다.

말린 소나무로 만든 판옥선은 삼나무로

만든 왜선 보다 튼튼했고 나무못의 경우

시간이 지나면 물을 먹은 나무못이

팽창하면서 판자를 단단하게 연결해줬지만

쇠못의 경우 바닷물에 부식됐고 전선끼리

충돌할 경우 부식된 쇠못은 쉽게

부러지거나 판자에서 빠져나와 왜선이

침몰하는 원인이 되었다.

손대남은 좌수사의 명령으로 대목에서

왜구들에게서 노획한 관선을 수선할 것을

명령했다. 전선을 건조한 경험이 많은

대목은 이 배가 조선의 전선이 아닌 것을

알아보고 나무못으로 보강까지 해놓은

것이다.

“수고했네. 좌수사 영감의 명이니 이 배를

잘 살펴보고 이와 같이 바닥이 뾰족한

배를 만들 수 있는지 알아보게.“

손대남의 말을 들은 대목은 머리를

긁적이며 대답했다.

“만들라고 하시면 만들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익숙한 모양의 배가 아니라서

시간이 많이 걸릴 것입니다.“

만들 수 있다는 대답에 손대남은

잘됐다는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시간은 얼마나 걸리겠는가?”

“익숙하지 않은 배라 밑판부터

차근차근 만들어야 합니다.

다섯 달은 걸릴 것 같습니다.“

다섯 달이라는 말이 손대남의 얼굴이

어두워졌지만 금세 표정을 풀었다.

시급한 일도 아닌 일로 대목의 사기를

꺾을 필요는 없었다.

“알았네. 내가 좌수사 영감께 아뢸 테니.

자네들은 우선 전선들을 다시 정비하게“

“알겠습니다, 나리”

좌수사가 왜선들을 수선하라고 명령하자

귀찮게 왜 왜선들 까지 신경 쓰는지

의문도 들었지만 손대남은 그동안의

경험으로 좌수사가 특별한 이유 없이

이런 일을 시켰을 리는 없다고 믿었다.

‘하긴 왜선이 바다에 나가면 속도는

빠르지 물자를 수송하거나 섬에 사람들이

오고갈 때 사용하면 편리할 것 같기는

하네.‘

이렇게 하루하루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었을 때 반가운 사람들이 좌수영에

도착했다.

신임 전라좌수군 우후 김시민.

신임 순천부사 이억기, 신임 녹도만호

이순신이 드디어 좌수영에 도착한

것이다.

이들이 도착했다는 소식을 들은 나는

그야말로 버선발로 달려가 맞이하고

싶었지만 좌수사의 위엄을 세우기 위해

감정을 억누르고 참았다.

우선 좌수영 예하의 5관5포에 전령을 보내

5관5포의 수령들과 장수들을 소집한 나는

장수들을 거느리고 새로 좌수영에 부임한

세 명의 장수를 맞이했다.

“먼 길을 오느라 수고가 많으셨네.

나는 전라좌수사 이대원이네“

“좌수사 영감을 뵙습니다.”

북방에서 여진족들을 상대하던

장수들이라 군기가 칼같이 들어있었다.

일제히 군례를 올린 장수들은

차례대로 자신을 소개했다.

“소장은 이번에 순천부사로 부임한

전 온성부사 이억기이옵니다.“

북방을 누볐던 장수답게 탄탄한 체격에

턱과 뺨에 수염을 기른 이억기가 먼저

자신을 소개했다.

나는 이억기의 인사를 받으며 이억기

장군의 전적에 대해 생각하니 감탄을

금치 못했다.

‘이억기 장군. 조선왕실의 종친이며

10대에 무과에 급제해 21세에 북방에서

여진족을 상대로 전공을 세운 명장

1561년생이니 불과 27세의 나이에

온성부사를 거쳐 순천부사에 임명됐으니

정말 대단한 장수다.‘

“소장인 좌수영 우후로 부임한

전 훈련원 판관 김시민이옵니다.“

진주대첩으로 잘 알려진 김시민 장군

역시 니탕게의 난 당시 북방에서 싸운

장수였다. 니탕게의 난 이후 전공을

인정받아 훈련원 판관에 부임하였지만

군사력 강화에 대해 건의했다가 그의

건의가 받아들여지지 않자 스스로 관직을

그만둔 열성적인 장수였다.

내가 알고 있는 역사에서는 훈련원

판관에서 스스로 사직하지만

이 시대에서는 니탕게의 난 당시

상관이었던 정언신 대감의 추천으로

좌수영 우후에 부임하게 되었다.

내가 김시민의 인사를 받자 마지막으로

키가 큰 장수가 자신을 소개했다.

“소장은 녹도만호로 부임한

전 조산보만호 이순신이옵니다.“

나는 이순신 장군의 인사를 받으며

눈물이 나오려는 것을 간신히 참았다.

‘이순신. 임진왜란으로부터 조선을 구한

구국의 영웅 그리고 조선의 왕 선조의

의심을 받아 모욕적으로 지휘권을

박탈당하고 고문을 당한 비운의 영웅‘

나는 임진왜란 당시 원균이 아닌

이순신 장군이 100여척의 전선과

1만 이상의 병력을 거느렸던

경상우수사였다면 임진왜란은 첫 해를

넘기지 않고 끝났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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