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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명의 명장
한성 경복궁
저녁식사를 마친 선조는 차를 마시며
상선(尙膳)으로부터 정탐을 나간
내시들이 보고한 내용을 듣고 있었다.
“전라좌수사가 일을 열심히 하고
있다고?”
“예 전하. 전라좌수사 이대원은
좌수영으로 돌아간 그날 곧바로
전하께서 좌수영의 병사들을
포상하실 것과 둔전을 짓는 것을
허락하셨다고 발표했다고 합니다.
병사들은 물론 좌수영에서 지내던
피난민들도 그 소식을 듣고는 천세를
외치며 기뻐했다고 합니다.“
“으음 그래~”
“좌수사는 다음날 바로 절이도에
피난민들과 병사들을 보내 피난민들이
지낼 집을 짓게 하고 밭을 일구게
했으며 옥에 가두어 뒀던 왜구들도
돌산도로 보내 돌산도에서도 집을
짓고 밭을 일구는 일이 한창 벌어지고
있다고 합니다.“
상선의 보고를 들으며 선조는 입가에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과연 좌수사가 나이는 어리지만
일하는 것은 철두철미 하구나.“
천천히 차를 마시던 선조는 입안에 든
차를 목 안으로 넘기고는 상선에게
물었다.
“좌수사는 왜의 오도를 정벌하겠다고
했다. 군사를 움직일 기미는 아직
보이지 않고 있느냐?“
“아직까지 군사를 움직일 기미는
보이고 있지 않고 있지만 군사를
일으킬 준비는 이미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고 합니다.
전선을 건조하는 목수들을 불러
왜선을 점검하게 하고 수레를 만드는
장인들을 불러서 총통을 싣고 움직일
수레를 주문했다고 합니다.
둔전을 일구는 것이 끝나는 대로
본격적으로 군사를 일으킬 준비를
할 것 같습니다.“
“병판에게 이야기를 들었다.
좌수사가 총통을 운반하는데 쓰이는
새로운 수레를 생각해 냈다고 말이야.“
선조가 말을 마치고 상선을 바라보자
상선은 다시 입을 열었다.
“좌수사가 물건을 만드는 일에 관심이
많은가 봅니다. 목수들 외에도 기와를
굽는 장인들도 좌수영에 다녀갔다고
합니다.
장인들이 좌수사와 무슨 이야기를
나눴는지는 알아내지 못했지만
좌수사가 장인들을 불러 이야기를
나눈 것은 분명하다고 합니다.“
“장인들을 불러 이야기를 나눈다.
과연 평범한 무장은 아니구나.
병판도 좌수사가 생각해낸 수레가
총통을 운반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고
호평을 했었지. 병판이 하도 칭찬을
해서 군기시에서 우선 100대를 만들어
육진으로 보낼 계획이다.
장수가 좋은 말과 날카로운 검을 찾듯이
좌수사도 전쟁에 유용한 도구를 생각하는
모양이구나.“
선조는 전라좌수사에 대한 보고를 들으며
흥미롭다는 듯이 말했다.
찻잔을 마저 비운 선조는 상선에게
물었다.
“이억기와 김시민 그리고 이순신은
좌수영에 도착했는냐.?“
“예 전하 좌수영에 도착한 그들을
좌수사가 반갑게 맞이했다고
합니다만...“
상선이 말끝을 흐리자 선조는 날카로운
눈빛으로 상선을 노려보며 물었다.
“좌수사가 그들을 박대하였느냐?”
“아니옵니다. 전하 분명 좌수사는 그들
셋을 반갑게 맞이했다고 합니다, 하오나
인사를 나누기 무섭게 이억기와 이순신을
순천부 관아와 녹도진으로 보내고
김시민에게는 좌수영의 현황을 파악할
것을 명했다고 합니다.“
상선의 대답을 들은 선조는 의외라는 듯이
물었다.
“아니 새로 부임한 장수들을 연회도
베풀어주지 않고 바로 일을 시켰단
말이냐? 그것은 푸대접한 것인 아니냐?“
“박대하는 분위기는 아니었다고 합니다.
좌수사는 5관 5포의 모든 장수들을
좌수영으로 소집해 모든 장수들 앞에서
그들 셋을 반갑게 맞이했다고 합니다.
다만 지금은 좌수영에서 벌이고 있는
일이 많고 전란의 피해도 아직 수습되지
않았으니 우선은 서둘러 각자의 임지로
가서 현황을 파악하고 공무를 볼 준비를
하라고 했답니다.
그들을 임지로 보내며 차후에 연회를
열어 대접하겠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고
합니다.“
상선의 보고를 들은 선조는
기가 막히다 는 표정을 지으며
전라좌수사 이대원을 떠올렸다.
‘좌수영에 새 인물이 필요하다고 해서
그들 셋을 내려 보냈다.
좌수사가 신임 녹도만호에 이순신을
추천한 것은 의외였지만 이순신이
발포만호를 역임했었고 북방에서도
활약한 점이 인정되어 좌수사의 원대로
이순신을 녹도만호로 내려 보냈지
이순신은 성품이 고지식해 모든 일을
원리원칙대로 행하고 융통성이 없다고
하니 젊고 혈기왕성한 좌수사가
이순신을 부하장수로 부리려면 답답한
점이 많을 것이다. 이순신 뿐만 아니라
이억기와 김시민도 실력 있는
장수들이지만 전라좌수사가 쉽게
다룰 수는 없을 인물들인데 앞으로
좌수사가 그들을 어떻게 다룰지 궁금하군.‘
선조가 이억기와 김시민, 이순신을
좌수영으로 내려 보낸 것은 정언신 대감이
제안한 대로 좌수사 이대원 보다 선배이자
상관이었던 장수들을 교체해 좌수사의
권위를 높여주려는 의도도 있었지만
절반 정도는 좌수사를 시험하는 의도도
있었다.
선조가 보기에 이순신은 물론 이억기와
김시민도 좌수사 이대원이 쉽게 다루기는
어려운 인물들이었다.
이억기는 조선왕실의 종친으로 조선왕실에
대한 충성심이 대단하고 이미 10대에
무과에 급제했을 정도로 실력도 대단했을
뿐만 아니라 불과 21세의 젊은 나이에
종3품 경흥부사로 부임해 북방에서 여진족을
상대로 전공을 세운 장수였다.
좌수사 이대원이 불과 22세의 나이에
왜구를 물리치는 전공을 세우고
정3품 수군절도사로 부임해 조선팔도를
놀라게 했지만 이억기 역시 실력이나
경력에서는 좌수사에게 밀리지 않았다.
김시민 역시 북방에서 여진족을 물리쳐
전공을 세운 장수였고 자신의 제안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상관과 다투었을
정도로 고집이세고 강직한 장수였다.
이순신, 김시민, 이억기 이 셋 중에서
가장 젊은 이억기의 나이가 올해 28세로
이들 셋 모두 좌수사 보다 나이가 많고
무과도 좌수사보다 일찍 급제했다.
‘셋 모두 실력 있는 장수들이다.
능력을 발휘할 수 있게 판을 깔아주면
신나게 일할 장수들이지.
하지만 좌수사가 그 셋을 자신의 명령을
따르는 손발처럼 부리고 싶어 한다면
그것은 쉽지 않을 것이다.
과연 좌수사가 그들을 잘 품어 날개로
삼을 수 있을 것인지 아니면 그들과
충돌할 것인지,‘
잠시 차를 음미하며 생각에 빠져 있던
선조는 상선을 바라보며 말했다.
“앞으로도 전라좌수사를 주시해야
할 것이다.
오도를 정벌하고 백성들을
구해오겠다는 좌수사의 기백이
기특해서 이번에 좌수사에게 많은
권한을 주었다. 혹시나 좌수사에게
흑심을 품은 무리들이 달라붙지는
않는지 주시해야 할 것이다.“
“예 전하. 전라좌수영에는 정탐을 나간
이들 중에서도 영리하고 무예실력이
뛰어난 이들이 나가 있습니다.
앞으로도 좌수사를 주시하도록
하겠습니다.“
상선의 대답을 들은 선조는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그래. 그래야지”
좌수영으로 새로 부임한 세 명의 장수는
나를 비롯한 5관5포의 장수들과 인사를
나눈 후 각자의 임지로 부임했다.
우선 장수들이 각자의 임지에서
업무를 파악한 후 다시 좌수영으로
모일 것을 명한 나는 새로운 장수들이
부임한 날로 부터 5일 후 다시 한번
5관5포의 장수들을 모두 좌수영으로
소집했다.
새로 부임한 장수들을 축하하는
연회가 열린다는 이유로 장수들을
소집해 함께 반주를 곁들인 식사를
했다.
오랜만에 열린 연회에 장수들은
기뻐했고 앞 다투어 새로 부임한
장수들에게 술을 권하고 북방에서의
무용담을 물었다.
식사가 끝난 후에도 술자리가 길어지자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외쳤다.
“오늘은 새로 부임한 우후와 순천부사.
녹도만호를 격려하는 자리이네.
마음 같아서는 조금 더 즐기게 해주고
싶지만 오늘은 내가 장수들과 함께
상의할 일이 있으니 이만 자리에서
일어나게“
자리를 끝내라는 소리에 장수들은
아쉬워하면서도 하나둘씩 자리에서
일어났다.
장수들이 일어나는 것을 보며 나는
장수들에게 동헌으로 모일 것을
지시하고는 동헌으로 향했다.
내가 명령했던 대로 방안에는
이미 차와 찻잔이 준비되어
있었다.
“어서들 앉게”
내가 먼저 자리에 앉아 장수들을
기다리고 있다가 장수들이 들어오는
대로 앉기를 권하고 그들의 잔에 차를
따랐다.
새로 부임한 세명의 장수를 포함해
나까지 모두 열 두 명이 자리에 앉자
장수들을 바라보았다.
아무래도 이순신 장군에게 가장 먼저
눈길이 갔다.
‘이순신, 이억기, 김시민 장군이
내 부하라니 정말 든든하구나 든든해.‘
그들이 찻잔을 비우고 잔을 내려놓자
나는 그들 앞에서 폭탄선언을 했다.
“곧 정예병을 선별해 군사훈련을
시작하려고 한다. 훈련의 목적은
오도의 정벌과 오도로 끌려간
백성들을 구출해 오는 것이다.“
고토열도 정벌은 이미 선조의 허락을
받았지만 장수들 앞에서 공식적으로
발표하는 것은 처음이었다.
고토열도 정벌을 선언한 후 장수들의
반응을 보니 당황한 표정을 보이는
장수들이 있는가 하면 전공을 세울
기회로 보는지 기대하는 표정을 짓고
있는 장수도 있었다.
장수들의 반응을 살피던 나에게
이억기가 질문을 던졌다.
“주성전하의 허락은 받으셨습니까?”
이억기의 질문에 나는 당당하게
대답했다.
“이번 정벌은 이미 주상전하의 재가가
떨어졌다. 지난날 전하의 부름을 받아
입궐하였을 때 주상전하께 오도의
정벌과 백성들의 구출을 말씀드렸고
전하께서는 흔쾌히 허락하셨다.“
고토열도 정벌 계획이 이미 선조의
허락을 받았다고 말하자 장수들의
동요가 잠잠해 지는 것이 눈에 보였다.
이들은 역시 군인이었고 이들에게
위로부터의 명령은 절대적이었다.
질문을 했던 이억기도 선조의 허락이
떨어졌다고 하자 별다른 말이 없었다.
김시민과 이순신 역시 놀란 기색보다는
담담한 얼굴로 다음 설명을 기다리고
있었다.
부임한지 얼마 되지도 않은 곳에서
곧 전투가 벌어진다고 하는데도
놀란 기색을 보이지 않는 그들을 보고
오히려 내가 살짝 놀랐다.
‘역시 북방에서 활약했던 장수들은
다르구나. 육진에서는 여진족이 국경을
넘어와 마을을 약탈하고 사람들을
잡아가면 조선군 기병이 여진족을
추격해 붙잡혀간 사람들을 구해오거나
여진족 마을에 보복을 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했지. 북방에서 여진족을
상대하던 장수들이니 왜구를 여진족과
같이 생각할 수 있겠구나.‘
잠시 장수들의 반응을 살핀 나는 장수들이
진정되기를 기다려 정벌 계획을 설명했다.
“이번 정벌의 목적은 침략이 아니다.
왜구들을 징벌하고 이번 전란으로
오도에 붙잡혀간 우리 백성들을
구출해오는 것이다. 출정병력은
1000명에서 2000명 사이가 될 것이며
왜선을 포함 10척 이상의 전선이
동원될 것이다.“
장수들이 한자리에 모인 김에 해도와
지도를 펼쳐놓고 지금까지 수집한
정보와 정벌 계획을 설명했다.
정벌계획을 설명할수록 장수들은
긴장하기보다 안정을 찾는 모습이
눈에 보였다.
장수들도 이번 정벌의 성공가능성이
높다고 본 것이다.
“이것으로 모든 설명이 끝났다.
상세한 계획은 앞으로 정벌을 준비해
가면서 세울 것이고. 군사들의 훈련은
다음 달 부터 시작될 것이다.
더 묻고 싶은 것이 있는가?“
질문을 받자 김시민 장군이 질문을
던졌다.
“좌수군의 전선들만으로도 충분할 것
같은데 왜선을 동원하려는 이유가
따로 있으십니까?“
“아군의 판옥선은 평저선이라
넓은 바다에서 속도가 느리다.
반면에 왜선들은 첨저선이라
바다에서 속도가 빠르니 군량과
병력을 운반할 수송선으로 왜선을
활용하는 것이다. 그리고 유사시에
좌수영과 연락할 연락선으로 속도가
빠른 왜선을 사용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