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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도 선생
“세총(洗銃)”
“세총”
병사들은 힘차게 외치며 식장(꽂을대)으로
총신 안을 닦았다.
“선화약”
“선화약”
화약소리에 병사들은 총구 안에 발사용
화약을 넣고 삭장으로 화약을 다져
넣었다.
“탄환”
“탄환”
탄환을 외친 병사들은 총구 안으로
탄환을 넣고 다시 한번 삭장으로
탄환을 안으로 깊숙이 밀어 넣었다.
“종이”
“종이”
이번에는 종이 조각을 총구 안에 넣고
또 삭장으로 종이를 밀어 넣었다.
“화문”
“화문”
총을 바로잡은 병사들은 화문을 외치며
점화용 화약이 들어가는 화문을 열었다.
“후화약”
“후화약”
이번에는 점화용 화약을 화문에
넣고 화문을 닫았다.
“화승”
“화승”
화승을 외치자 횃불을 들고 있는 병사가
다가가 화승에 불을 붙여주었다.
화승에 불이 붙으며 타오르기 시작하자
병사들은 긴장한 표정으로 총을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조준”
“조준”
총을 든 병사들은 총구로 과녁을 주준했다.
“방포”
“방포”
드디어 발사명령이 떨어졌다.
“탕” “탕” “탕” “탕” “탕”
“탕” “탕” “탕” “탕” “탕”
총성이 울리며 10정의 화승총이 불을 뿜었다.
“바로”
“바로”
바로를 외치자 병사들은 바로를 외치며
총을 앞에총 자세로 잡고 뒤로 물러났다.
“과녁”
“과녁”
이번에는 사수가 아닌 과녁을 담당하는
병사들이 과녁으로 다가가 명중 여부를
확인했다.
“내가 다 지치는군.”
지금까지 선창하며 병사들의 사격훈련을
지휘하던 나는 목이 말라 바가지를 들어
동이에서 물을 떴다.
바가지에 든 물을 단숨에 마신 나는
화승총을 든 병사들을 바라보았다.
‘하나하나 일일이 가르쳐야 하니 힘들지만
저들이 숙달되면 저들에게 조교 역할을
맡길 수 있으니 조금만 참자 그래도
처음 보다는 많이 나아졌네.‘
방금 발포한 사수들이 들고 있는 화승총은
정해왜변 당시 왜구들로부터 노획한
조총이었다. 노획한 무기들 중에 일부는
한성으로 보내고 좌수영에 남은 무기들은
내 마음대로 사용해도 좋다는 선조의 허락이
있었으니 나는 왜구들에게서 노획한 무기와
왜선을 적극적으로 사용할 생각이었다.
‘한성으로 보낸 것 말고도 멀쩡한 조총이
52정이나 있다니 횡재했지 뭐야. 거기에
화약과 탄환도 좀 있고 뭐 화약이야
조선에서도 제조할 수 있으니 문제없고
탄환도 납으로 된 구슬수준이니 앞으로
못 만들 이유도 없으니 조총을 그대로
썩힐 이유가 없지 조총으로 무장한 사수
50명이나 확보할 수 있으니 많지는 않지만
정말 다행이지‘
나는 조총으로 무장한 사수들을 이번
고토열도 정벌이 투입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화승총은 조선군이 처음 사용하는
무기였고 포로들을 훈련교관으로 동원하는
것은 병사들이 반가워하지 않을 것 같아
내가 직접 나서서 병사들을 훈련시키고
있었다.
‘언제가지 내가 직접 나서서 가르칠 수는
없지 1차로 훈련받고 있는 10명의 훈련이
끝나면 이들을 조교로 삼아 2차로 10명을
훈련시키고 2차 사수들의 훈련이 끝나면
1차와 2차에서 훈련받은 사수들이 3차로
훈련받는 20명을 훈련시킨다.
다행히 우수한 병사들로 선발해 훈련시킨
덕분인지 병사들도 훈련을 잘 따라오고
있으니 며칠만 더 고생하자.‘
과녁 확인이 끝나자 병사들은 둘로
나뉘었다. 과녁을 명중시킨 병사들은
자신의 총을 어깨에 메고 편안한 자세로
걸어갔고 과녁에 명중시키지 못한
병사들은 두 손으로 총을 잡고
오리걸음으로 걸어가야 했다.
물론 이 모든 훈련과정은 내가 개발한
것이었다.
훈련을 마치고 좌수영으로 돌아가는
병사들을 보며 생각했다.
‘사수 50명 조총 52정 아무래도 너무
적어 후쿠에 섬에서 조총을 더 확보할
수 있었으면 좋겠는데. 조총을 만들 수
있는 장인들을 확보하면 더 좋고‘
화승총의 유용성을 잘 알고 있는 나는
어떻게든 총과 화승총을 만들 수 있는
장인들을 확보하고 싶었다.
조총에 대해 생각하며 좌수영으로 향해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을 때 좌수영 소속
아전이 나를 찾아왔다.
“좌수사 영감”
“무슨 일이냐?”
“좌수영에 손님이 찾아오셨습니다.”
“나는 찾아온 손님이더냐?”
“예 그렇습니다. 영감”
“누구신지 아느냐?”
“홍문관 수찬을 지내신 정여립
나리라고 하십니다.“
정여립이 나를 찾아왔다는 말에
나는 살짝 놀랐다.
‘정여립이 직접 오셨다.
언젠가 찾아올 줄은 알고 있었지만
생각보다 빠른데.‘
“손님은 어디에 계시느냐?”
“좌수영 객사에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알았다. 가자”
“예 영감”
객사를 향해 걸으며 생각했다.
‘정여립은 구휼미를 보내달라는 서신을
보고 찾아온 걸까? 구휼미를 전해주는
것이 목적이었으면 굳이 정여립이 직접
찾아올 필요는 없었을 텐데. 하여간
정여립이라니 워낙 거물이라 긴장되는군.‘
전라우수사 원호가 돌아간 이후 나는
정여립을 만날 구실을 만들기 위해
정여립에게 이번 전란의 피해를 입은
피난민들을 구제할 구휼미를 도와달라는
서신을 보냈다. 정여립에게만 서신을
보내면 선조의 의심을 살수도 있다는 생각에
같은 내용의 서신을 전라도 지역에서 이름난
부자들에게도 보냈고 서신을 받은 사람들
중에는 실제로 좌수영에 쌀과 보리를 보낸
이들도 있었다.
좌수영에 들어서자 곡식을 실은 달구지들이
보였고 병사들이 달구지에서 곡식을 내리고
있었다.
“이것은 무엇이냐?”
내 질문에 아전이 대답했다.
“정여립 나리가 가져오신 곡식입니다.”
“구휼미로 가져온 곡식들인가?
상당히 많이 가져오셨는데.“
정여립이 부자라더니 역시 통이 크다고
생각하며 나는 객사로 향했다.
객사 앞에는 잘 차려입은 중년의 사내가
젊은 청년에게 무엇인가를 이야기 하고
있었다.
“저분이 정여립 나리이십니다. 영감”
“그래 알았다.”
나는 정여립에게 다가갔다.
“전라좌수사 이대원이라 합니다.”
“좌수사 영감 만나서 반갑소이다.
전 홍문관 수찬 정여립이오.”
나와 인사를 주고받은 정여립은 청년을
나에게 소개시켰다.
“아들은 옥남이오.”
‘아 정옥남이었군.’
정여립의 아들 정옥남은 정여립의 난
당시 정여립과 함께 사망하게 된다.
“죽도(정여립의 호) 선생의 명성은 익히
들어왔습니다.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내 말을 들은 정여립은 쑥스럽다는 듯이
손사래를 치며 대답했다.
“명성이라니 나는 관직에서 물러나
서책이나 읽으며 유유자적해 지내고 있는
서생일 뿐이오.“
“죽도 선생께서 학식이 깊으시고 통찰력이
뛰어나신 것은 소장도 익히 들어 알고
있습니다. 겸손이 과하십니다.”
“좌수사 영감이 내 얼굴에 금칠을 하시니
내 몸 둘 바를 모르겠소.“
말로는 아니라고 하면서도 정여립은 기분이
좋은 표정이었다.
“좌수사야 말로 약관도 지난 지 얼마
안 되는 젊은 나이에 왜구들을 물리치시고
전란의 피해를 입은 백성들 까지 구제하고
계시니 뛰어난 무재에 덕까지 겸비하지
않으셨소. 좌수사는 신립 뭇지 않은 명장이
되실 것이오.“
“저야말로 선생께서 금칠을 해주십니다.
여기서 이러실 것이 아니라 안으로 드시지요.
좋은 차는 아니지만 따듯한 차 한잔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정여립, 정옥남과 함께 객사 안으로 들어온
나는 물을 끓여 차를 대접했다.
뜨거운 김이 오르는 차를 조심스럽게
마시던 정여립은 찻잔을 내려넣고
말했다.
“좌수사께서 보내신 서신을 읽고 솔직히
놀랐소. 장수가 왜적을 물리칠 생각을
하는 것은 쉬운 일이지만 전란의 피해를
입은 백성들을 구제할 생각을 하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오.
나 정여립 좌수사의 인품에 정말
놀랐소이다.“
“과찬이십니다. 소장은 다만 왜구들에게
노략질 당한 섬의 주민들을 그대로 섬에
두고 올수가 없어서 좌수영으로 데리고
왔을 뿐입니다. 우선은 좌수군의 군량으로
피난민들을 먹이고 있지만 언제까지
군량으로 먹일 수는 없는 일이고
피난민들도 절이도에 밭을 일구고 있으나
황무지를 옥토로 만드는 일이 하루 아침에
되는 일이 아니라. 죽도 선생의 이름을 듣고
구휼미를 청하게 되었습니다.“
“잘하셨소이다. 어차피 안 먹고 창고에
처박아 두면 그대로 썩힐 양곡들이니
전란으로 피해를 입은 백성들을
구휼하는데 쓰면 얼마나 좋습니까.
우선 보리 1000섬을 가져왔으니 당장
피난민들을 위해 쓰시고 곡식이
떨어지시면 어제든지 연락주시기 바랍니다.
이 정여립의 창고에 그 정도 곡식은 항상
들어있으니 말입니다.“
“정말로 감사합니다. 죽도 선생”
나는 정여립의 배포와 재력에 놀랐다.
보리라고는 하지만 1000섬이나 되는
곡식을 단번에 내놓고도 그 정도의
곡식은 더 내놓을 수 있다는 말은
아무리 재산이 많아도 원만한
배포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정여립 정도 되는 인물은 이런 말을
했다면 1000섬 정도는 더 내놓을 생각이
있다는 말인데 보리 1000섬을 가져오고도
1000섬 정도는 더 내놓을 생각을 하다니
배포도 대단하고 재력도 예상한 것
이상이구나.‘
“아니오. 백성들을 구휼하는데 쓰는
곡식이니 아까울 것 없소.
재물을 가치 있게 사용할 수 있으니
오히려 내가 좌수사께 감사해야 할
일이오.“
말을 마친 정여립은 정옥남에게 눈짓을
했고 정옥남은 품속에서 잘 접은 한지를
꺼내 정여립에게 내밀었다.
“좌수사와 전라좌수군 군사들이 왜구들을
물리친 것은 나도 들어서 알고 있었소.
사대부로써 그것을 알고도 좌수영에
빈손으로 오는 것은 예의가 아닌 것 같아.
좌수사에게 작은 예물을 준비했소.
변변치 않은 것들이나 이번 전란에 수고한
군사들을 위로하는데 사용하시고
좌수사께서도 필요하신데 써 주시면
감사하겠소.“
정여립에게 감사 인사를 하고 한지를 받은
나는 한지를 펼쳐보고는 다시 한번 놀랐다.
‘쌀 300섬, 무명 100필, 소 5마리, 돼지가
10마리‘
정여립의 재력이 대단할 것으로 생각은
했었지만 이것은 예상외였다.
“죽도 선생 대단히 감사하지만 이것은
받지 않겠습니다.“
너무 놀란 나머지 나는 정여립에게
받지 않겠다고 말했다.
“좌수사 무슨 말씀이시오. 이 재물은
나 정여립이 좌수사에게 뇌물을 주는
것이 아니라 전란에 수고한 군사들과
좌수사를 위로하기 위해 준비한 것이오.
왜 재물이 변변치 않아서 마음에
안 드시오?“
“아닙니다. 변변치 않다니요.
오히려 과합니다.
과해서 받지 못하겠다는 겁니다.“
정여립은 껄껄 웃으며 말했다.
“좌수사 그럼 받으시오. 좌수사 께서
받지 않으시면 나 정여립의 자존심을
건드리시는 게요. 좌수사 께서 받아
군사들에게 베푸시면 되는 것 아니오.
좌수사 께서도 필요한 곳에 쓰시고.“
정여립이 이렇게 까지 말하는 데
거절하는 것도 예의가 아니었다.
‘그래 받자 받아서 병사들에게 나눠주고
포로들을 먹이는 것과 유럽 상인들과
교역할 밑천으로 쓰자‘
“그럼 감사히 받겠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정여립은 다시 한번 껄껄 웃으며
말했다.
“내 오늘 좌수사를 처음 보지만
좌수사가 아주 마음에 드오.
내 청 한 가지 들어주시겠소.“
“무엇이든지 말씀하시지요.
제가 들어드릴 수 있는 청은
들어드리겠습니다.“
“내 오늘은 좌수사와 술 한잔 하고
싶어 그러니 돼지 한 마리 잡아 오늘
거하게 마셔 봅시다. 내 아들 옥남이가
술도 몇 병 가져왔을 것이오.“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정옥남은 밖으로
나가더니 잠시 후 술병을 들고 왔다.
“예 곧 준비하겠습니다.
잠시만 기다리시지요.“
“돼지를 잡으려면 시간이 걸릴테니 우선
나물이라도 놓고 같이 한잔 합시다.
내 좌수사와 빨리 술 한잔 하고 싶소.“
정여립은 껄껄 웃으며 술 자리를 재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