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선 수군이 되었다-49화 (49/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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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난민

구덩이를 파고 분뇨와 볏짚을 그 안에 채우라는 명령에 흥양현감과 김시민은 이게 무슨 일인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으며 나를 바라보았지만 내 말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구덩이 안에 분뇨와 볏짚들이 잘 섞이도록 하루에 한 번씩은 장대로 휘저어 주고 한 달간 그대로 묵히도록 하게 그런 구덩이를 최소한 10개는 만들어야 하니. 구덩이 간에 거리가 너무 가깝지 않도록 적당히 거리를 두고 구덩이를 파게 알겠나.”

말을 마치고 흥양현감을 바라보니 흥양현감은 아예 넋이 나간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런 구덩이를 10개나 말씀이십니까?”

넋이 나간 흥양현감을 대신해 김시민이 묻자 나는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다.

“지금까지 내가 내린 명을 듣지 못했나. 구덩이를 파는 것은 당장 내일부터 시작하도록 하게 구덩이에 분뇨와 볏짚도 부어야 하고 장대로 휘저어야 하니 구덩이 사이에 거리가 충분히 있어야 할 것이야. 내 다음 달에 구덩이들을 확인하러 올 것이니 내일부터 준비하도록 하게.”

말을 마친 나는 피난민들이 일구고 있는 밭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내가 움직이자 김시민은 황급히 내 뒤를 따랐고 넋 나간 표정을 짓고 있던 흥양현감도 정신을 차리고 내 뒤를 따랐다. 피난민들이 대부분 여인들과 아이들은 탓에 밭에 남자들은 몇 보이지 않았고 여인들과 좀 큰 아이들이 호미질을 하며 밭일 일구고 있었다. 그 광경을 보자 나도 모르게 눈시울이 붉어졌다.

‘세상에 아직 열 살도 안 돼 보이는 어린아이들인데 벌써 호미를 잡고 있으니’

그 광경을 보고 기가 막혀서 그 자리에 서있자 흥양현감이 나에게 다가왔다.

“명하신대로 우선 콩을 심고 있습니다. 피난민들이 열심히 일하고 있고 저희 장졸들도 힘껏 거들고 있어서 순조롭게 밭을 일구고 있습니다.”

돌산도와 절이도의 둔전에 우선은 콩을 심게 했다. 예부터 콩을 심은 땅에는 지력이 회복된다고 해서 농민들은 거친 땅에는 콩을 심었다. 실제로 콩을 심으면 콩의 뿌리에 서식하는 뿌리혹박테리아가 자체적으로 질소화합물을 합성하기 때문에 땅에 비료를 준 것과 같은 효과를 낸다. 비료를 줄 수 없었던 중세시대에 콩을 심는 것은 땅의 지력을 회복시킬 수 있는 좋은 방법이었다.

“콩을 수확한 후에는 콩 줄기와 콩을 털고 남은 콩깍지의 절반은 가축의 사료로 쓰고 나머지 절반은 밭에 쌓아놓고 불태우도록 하게 콩의 줄기가 탄 재는 땅에 거름이 될 것이니.”

나는 흥양현감에서 표정을 들키지 않기 위해 밭을 바라보며 말했다. 내말을 들은 흥양현감과 김시민은 또 한번 놀란 것 같았다.

“명대로 따르겠습니다.”

흥양현감은 내가 농사일에도 잘 아는 것 같아 보이자 의외라는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고 김시민은 대놓고 나를 바라보며 생각에 잠겨있었다. 하지만 내 눈에는 흥양현감과 김시민 보다는 돌을 나르고 있는 여인들과 호미를 들고 잡초를 캐고 있는 아이들 밖에 보이는 것이 없었다.

‘정신 바짝 차려야 한다. 까닥 잘못하다가는 조선 팔도가 다 저지경이 된다. 젊은 장정들은 전장에 나갔다가 전사하거나 왜군들에게 살해당하고 여인들은 자식들 앞에서 겁탈당한 후 왜군들에게 끌려가고. 부모 잃은 아이들은 굶어죽거나 얼어 죽는 그런 생지옥을 만들지 않으려면 내가 정신을 바짝 차려야한다.’

“콩을 수확한 후에는 밭에 보리를 심을 수 있도록 준비하게 보리농사를 지을 때는 소를 보내줄 테니 한결 수월하게 밭을 갈수 있을 것이네.”

“알겠습니다. 좌수사 영감.”

풀밭을 갈아엎어서 만든 거친 밭이지만 봄에는 콩을 심고 가을에는 보리를 심어서 콩과 보리를 수확하면 피난민들과 절이도에 주둔하는 군사들의 양식을 수확하기에는 충분할 것으로 보였다. 지금은 보리든 콩이든 배불리 먹을 수 있는 것이 중요하지 음식의 질을 따질 상황이 아니었다.

‘정여립이 가져다 준 보리와 전라도의 부호들이 구휼미로 보낸 곡식이면 피난민들의 1년 치 양식은 되고도 남는다. 구휼미와 올해 수확할 콩으로 내년 보리를 수확할 때 까지만 버틸 수 있다면 그 다음 부터는 피난민 마을도 충분히 자급자족할 수 있다. 어떻게든 올해 1년은 최선을 다해 돌봐주겠다.’

피난민들을 보며 흘러내리는 눈물을 애써 참은 나는 엄한 목소리로 흥양현감에게 명했다.

“여인들과 아이들이 많다보니 혹시나 섬의 사내들이 흑심을 품고 피난민들에게 접근할 수도 있다. 군사들을 시켜 마을과 밭에 순찰을 돌고 특히 밤에는 더욱 경계해야할 것이다.”

“예 영감. 혹시 몰라 장졸들에게도 단단히 주의를 주었습니다. 불측한 마음을 먹는 놈들은 군법으로 처벌하겠다. 하였으니 심려를 놓으시지요.”

“좋다. 가자”

흥양현감의 대답을 들은 나는 바닷가로 발걸음을 옮겼다. 돌산도에 만들고 있는 염전이 성공하면 이곳에도 염전을 만들 생각을 하고 있었던 나는 이곳 절이도에 온 김에 염전을 만들

만한 곳이 있는지 바닷가를 살펴볼 생각이었다. 전라좌수사를 따라 절이도에 온 좌수영 우후 김시민은 오늘 여러 번 놀랐다. 좌수사가 촌장을 직접 만나 촌장을 위로하고 섬 주민들에게 곡식과 면포를 나눠주는 것도 놀라웠고. 좌수영에서 전란으로 피해를 입은 피난민들을 구제하기 위해 둔전을 조성하고 있다는 소문은 들었었지만 새로 마을을 세우고 군사들 까지 배치해 피난민들을 지켜주고 있다는 것은 오늘 처음 알게 된 사실이었다. 더구나 좌수사가 피난민들이 지낼 집에 직접 들어가 방을 확인하고 심지어 변소까지 직접 들어가 보는 모습을 보며 좌수사 보통 범상한 인물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조선의 장수들 중에서 전란의 피해를 입은 피난민들을 이정도 까지 보살피는 장수가 있었을까? 아니야 육진에서도 이런 장수는 보기 드물어. 듣자하니 피난민들을 먹일 구휼미를 구하기 위해 좌수사가 직접 부호들에게 서신을 보내 구휼미를 청했다고 하던데 좌수사가 무슨 생각으로 이렇게 까지 적극적으로 피난민들을 구제하고 있는 지 알 수 없구나.’

김시민은 좌수사의 지난 행보와 오늘 보인 모습을 보며 좌수사가 어떤 사람인지 궁금해졌다.

‘촌장을 위로하고 피난민들을 측은하게 여기는 것을 보면 정이 많고 인덕이 있는 인물인 것 같은데 군령을 내리고 명령을 수행했는지 확인하는 모습을 보면 꼼꼼하고 철저한 사람이야. 좌수사가 직접 변소까지 들어가서 살펴보다니 아무리 어린 나이라지만 당상관이 할 수 있는 행동은 아니야. 좌수사 알 수 없는 사람이다.’

김시민은 좌수사가 앞으로 어떤 모습을 보일지 기대하며 좌수사의 뒤를 따랐다.

내가 절이도에서 둔전을 살피고 있었을 때 좌수영 포구에서는 손대남이 배를 만드는 대목에게 내 명령을 전달하고 있었다.

“좌수사 영감의 명이시다. 이 그림대로 배를 만들어오라고 하셨다.”

손대남에게서 받은 그림을 살펴보던 대목은 처음 보는 배의 형태에 신기해하면서도 충분히 만들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군사들이 둘씩 앉아서 노를 젓는 배인 모양입니다. 그림을 보니 군사 10명이 앉을 수 있는 크기로 만들어야겠고. 배에 달 노도 새로 만들어야 할 것 같습니다.”

“좌수사 영감께서는 보름 안에 배를 만들어오라고 하셨다. 가능하겠는가?”

기한이 생각보다 짧았는지 대목은 바로 대답을 못했다. 잠시 생각하던 대목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배의 형태를 보니 만드는 것은 어렵지 않을 듯합니다. 다만 배의 크기에 맞게 목재를 잘라 말리는 시간이 있다 보니 보름이면 아슬아슬하게 기한을 맞출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대목의 대답을 들은 손대남은 잘됐다는 듯이 말했다.

“기한 안에 배를 완성시키면 좌수사 영감께서 큰 상을 내리실 것이다. 전선에 좌우 양 측면에 이 배를 한척씩 메달아 다닐 수 있어야 한다고 하셨으니 배를 만들 때 전선에 배를 달수 있도록 만들어야 할 것이야. 만들어온 배가 좌수사 영감의 마음에 드시면 10척정도 더 만들 수 있으니 미리 목재를 넉넉히 준비해 두라는 말씀도 계셨네.”

관선들을 수리해주고 좌수사로부터 두둑하게 곡식을 받았던 대목은 이번 일도 기한 안에 마치면 큰 상을 내린다는 말에 신이 났다.

“좌수사 영감 덕분에 올해는 보릿고개도 모르고 넘어가겠습니다. 아무 염려 마시지요. 기한 안에 배를 만들어 오겠습니다.”

“좋아 그래야지. 수고하게.”

“감사합니다. 나리.”

기한을 맞출 수 있다는 대답을 들은 손대남은 만족한 표정으로 좌수영으로 돌아갔고 대목은

손대남에게 허리를 굽혀 인사했다.

돌산도 염전

“물들어온다. 수차를 돌려라.”

“예이 수차를 돌려라.”

밀물 때가 되어 바닷물의 수위가 높아지자 염전을 관리하는 병사들은 물레방아처럼 생긴 수차를 돌렸다. 수차의 날개에는 나무로 된 바가지 형태의 구조물이 달려 있었고 수차가 돌기시작하자 날개에 달린 바가지가 밑에서 위로 올라가면서 바가지에 바닷물이 가득 담겼고 날개가 올라가면서 다시 아래로 내려오자 바가지에 담긴 바닷물은 그대로 쏟아지면서 그대로 수로 위로 쏟아졌다. 한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고가도로 형태의 나무구조물 위에 반원형태의 기와를 올려서 만든 수로에 쏟아진 바닷물은 그대로 경사진 수로를 따라 흘러 내려가면서 바닥에 기와가 깔린 저수지까지 흘러갔다. 처음에는 수차를 사람의 힘으로 돌렸기에 민물 때 마다 수차를 돌려도 하루 안에 저수지를 채우는 것이 어려웠지만 돌산도에 소가 도착하면서 한결 일이 쉬워졌다. 소를 이용해 수차를 돌리자 사람이 돌리는 것 보다 쉽고 빠르게 저수지를 채울 수 있었다.

“그만 그만 소가 지쳤다.”

“저수지도 가득 찼습니다.”

“좋아 그만하자 어서 소 쇠죽 먹여라.”

“예 알겠습니다.”

수차를 돌리던 소가 힘들어하는 기색을 보이자 병사들은 재빨리 달려들어 소를 수차에서 풀어줬다. 수차에서 풀려난 소는 힘들었는지 물통으로 다가가 허겁지겁 물을 마셨다.

“그래 그래 수고 많았다.”

병사들은 소를 쓰다듬어 주며 위로했고 소가 물통에서 입을 떼자 외양간으로 소를 몰았다.

“네가 좋아하는 쇠죽을 끓여 놨다. 실컷 먹게 해주마.”

쇠죽을 끓였다는 소리에 소는 마치 병사의 말을 알아들은 듯 꼬리를 흔들며 병사가 이끄는  대로 외양간으로 향했다. 저수지에 바닷물이 고이자 병사들은 저수지의 수면을 살펴보며 저수지 안으로 혹시 이물질이 들어가지는 않았는지 확인했다. 저수지 바닥에는 정사각형 형태의 기와가 깔려있었고 기와의 틈 사이를 석회가 섞인 진흙으로 발라 굳혀서 저수지의 물이

땅속으로 스며들지 않도록 만들어 놓았고 이곳 저수지와 다른 저수지를 연결하는 수로가

만들어져 있었다. 물론 수로에는 반원형 기와로 포장돼 있었고 돌산도에 이런 저수지가 5곳이나 만들어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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