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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가
저수지는 모두 수로로 연결되어 있고 수로에는 수문이 달려 있어서 배수를 조절할 수 있었다. 처음 바닷물을 저장하는 1차 저수지에서 햇볕에 수분이 증발된 물은 배수로를 통해 2차 저수지로 운송되고 2차 저수지에서 햇볕에 한층 더 수분이 증발된 물은 3차 저수지로 운송되는 방식으로 마지막 저수지인 5차 저수지에는 수분이 증발되어 염도가 높아진 물이 모여 있었다. 돌산도에 주둔 중인 군사들을 지휘하며 둔전과 염전 그리고 염초밭을 관리하는 조천군은 5곳의 저수지에 염분의 농도가 짙은 물들이 가득 찬 것을 보며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과연 좌수사 영감께서 말씀하신대로 구나. 이렇게 바닷물을 모아놓는 것만으로도 한결 수월하게 소금을 구울 수 있다니. 과연 좌수사 영감은 문무를 겸비하신 명장이시다.”
조천군은 저수지를 바라보며 그동안 수고했던 결과를 확인하는 것 같아 뿌듯한 기분이 들었다.
“저수지에 이물질이 들어가지 않도록 주의하여야 할 것이다. 근일내로 좌수사 영감께서 오실 것이니 저수지의 관리를 철저히 하도록 하라. 알겠느냐.”
“예이~”
조천군이 병사들을 향해 외치자 아전과 병사들은 군례를 올리며 ‘예’라고 외쳤다. 이곳 좌수영의 군사들은 지난 전란에서의 전라좌수사의 활약과 전라좌수사로 부임한 이후에 보인 모습을 보고 진심으로 좌수사를 존경하고 있었다. 좌수사가 곧 온다는 말을 들은 병사들의 눈빛이 어느새 달라져 있었다.
절이도를 시찰하고 돌아온 나는 다음날 드디어 완성된 포가가 좌수영에 도착하자 기쁜을 감추지 못하고 화포장과 포수들을 소집했다.
“좌수사 영감 이것이 무엇이 쓰는 달구지입니까요.?”
화포장 이동구가 포가를 바라보며 묻자 나는 포가를 바라보며 말했다.
“앞으로 너희들 화포장과 포수들이 익숙해져야 할 물건이다.”
이동구의 질문에 대답을 한 나는 병사들을 바라보며 외쳤다.
“준비해 놓은 총통을 가져오너라.”
“예이~”
병사들은 대답하기 무섭게 현자총통을 밧줄에 메달에 들고 왔다.
“총통을 포가에 올려놓아라.”
병사들이 현자총통을 포가에 올려놓자 포가를 만든 장인들이 달려들어 포가에 총통을 고정시켰다. 5대의 포가에 모두 현자총통을 장착하자 그 모습은 보기에도 든든했다.
‘조선시대 화포의 크기는 천,지,현,황 순이라지. 현자총통은 천자총통, 지자총통 보다 구경은 작지만 현대의 구경으로 60mm가 넘으니 아주 작은 것도 아니고 공성용이 아닌 대인살상용과 목책 파괴용으로는 충분한 구경이지. 무엇보다 사정거리가 길고 화약의 소모가 적은 것이 마음에 들어. 현자총통은 최대 사정거리가 2000보에 달한다는 기록이 있었을 정도로 조선시대 총통들 가운데 가장 사정거리가 길었다고 하지. 화약의 사용량도 지자총통이 1회 발사에 20냥(1냥=37.79g)의 화약을 사용하는데 비해 현자총통은 1회 발사에 4냥의 화약을 사용하니 단순히 비교해 봐도 무려 5배나 차이가 나니 공성전이나 적의 대형전선을 공격하는 것이 아니면 지자총통보다 현자총통을 사용하는 것이 경제적이야.’
포가에 총통이 장착되자 화포장과 포수들은 이게 무엇이냐는 표정을 지으며 포가를 바라보았다. 나는 그런 포수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것은 포가라고 한다. 한번 밀어보아라.”
내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이동구를 비롯해 화포장과 포수들이 포가에 달려들어 포가를 밀었다. 총통이 장착된 포가는 포수들이 미는 대로 앞으로 굴러갔다. 포수들은 포가를 밀면서 신기해하는 것 같았고 포가를 제작한 장인들을 바라보자 장인들은 뿌듯한 표정을 지으며 포가를 바라보고 있었다.
“어떠냐? 밀고 갈만 한 것 같으냐?”
포수들을 바라보며 묻자 이동구가 대표로 나서서 대답했다.
“예 좌수사 영감 동차에 실린 총통을 밀고 가는 것 보다 한결 편하고 빠릅니다.”
“그럴 것이다. 그대로 밀고 가거라. 방포훈련을 할 것이다.”
방포훈련을 한다는 말에 이동구는 나에게 물었다.
“앞으로는 전선에서 이 포가를 쓰는 것입니까?.”
이동구의 질문을 들은 나는 ‘아차’ 싶었다.
‘포수들에게 제대로 설명을 해주지 않았구나. 내 실수다.’
“잠시 그 자리에 멈춰라.”
포수들에게 멈출 것을 명령하고 주위를 둘러보니 좌수영의 군사들과 포가를 만든 장인들이 보였다. 군사들은 당연히 알아야 하고 장인들이 아는 것도 큰 문제는 없겠다 싶어서 나는 포수들에게 포격훈련을 하는 이유를 설명했다.
“장수들은 이미 알고 있지만 너희들은 아직 듣지 못했을 것이다. 오늘 이 자리에서 들은 이야기를 다른 사람에게 말하는 자는 군법으로 처벌을 면하지 못할 것이다. 알겠느냐.?”
“예이~”
포수들과 병사들은 군례를 올리며 대답했고 포가를 만든 장인들은 군사기밀을 듣는 다는 말에 당황한 기색을 보였다. 나는 우선 장인들에게 말했다.
“너희도 알아야 하는 일이니 이 자리에서 듣거라. 그러나 다른 사람들에게 오늘 들은 이야기를 해서는 안 된다. 알겠느냐.”
“예 좌수사 영감.”
장인들 중에서 가장 지위가 높은 대목이 대답하자 나는 병사들을 향해 입을 열었다.
“우리 좌수군은 곧 왜국 오도로 출병할 것이다. 지난 전란에 손죽도와 시산도를 침략한 왜구들은 오도와 평호도의 왜구들인 것으로 밝혀졌다. 그래서 우리 좌수군은 오도를 정벌하고 왜구들에게 붙잡혀간 우리 백성들을 구출하기 위해 오도로 출병할 것이다.”
고토열도로 출병한다는 말에 병사들은 긴장한 표정이 역력했고 장인들도 많이 놀란 것 같았다.
“지금 너희가 보고 있는 포가는 오도에 상륙해서 총통을 운반할 때 쓸 것이다. 포가는 방금 밀어본 것 같이 총통을 손쉽게 운반할 수 있고 방포훈련을 해 보면 알겠지만 포가에 총통을 장착하면 총통을 장전하는 것도 편리할 것이다. 총통을 조준하는 것도 역시 이전보다 더 편할 것이다. 포가의 사용법과 방포훈련은 오늘부터 시작할 것이니 곧 체험하게 될 것이다.”
내 말이 끝나자 이동구가 질문을 던졌다.
“그럼 저희가 오도에 상륙하는 것입니까?.”
“오도 정벌은 내가 직접 출병할 것이며 지난 전란 당시 나와 함께 싸웠던 좌수영 직할군과 녹도군이 나와 함께 출병할 것이다. 화포로 무장한 전선으로 오도열도에서 가장 큰 섬인 복강도[후쿠에 섬(福江島)]를 봉쇄할 것이며 포가에 장착된 총통 10문과 500명의 군사가 복강도에 상륙할 것이다.”
잠시 말을 마친 나는 병사들을 바라보며 다시 말을 이었다.
“이번 정벌은 왜구들에게 붙잡혀간 우리 백성들을 구해오고 오도의 왜구들이 다시는 조선을 넘보지 못하도록 혼내주는 것이 목적이다. 이번에 출병한 병사들에게는 지난 전란에 전공을 세운 병사들이 받은 포상과는 비교할 수 없는 포상이 있을 것이다.”
포상이 있다는 말에 병사들의 눈이 밝게 빛났다.
“오늘 훈련을 통해 가장 실력이 우수한 포수들을 선발할 것이고 가장 우수한 포수들은 나와 함께 복강도에 상륙할 것이다.”
조선을 침략한 왜구들을 몰아내는 것이 아닌 왜구들이 사는 섬을 정벌한다는 사실에 병사들은 흥분한 것 같았다. 처음 정벌 소식을 들었을 때는 전투에 투입되는 것을 우려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는 병사들도 있었지만 이번에 받은 포상보다 더 큰 포상이 있을 것이라는 말에 병사들은 기대감까지 보이고 있었다.
“좌수사 영감 알겠습니다. 아무 염려 마십시오.”
이번에도 이동구가 나서서 대답했다. 대답을 마친 이동구는 화포장들을 재촉해 다시 포가를 밀었다. 화포장과 포수들이 포가를 밀고가자 나는 장인들에게 다가갔다.
“수고 많았네. 포가는 잘 사용하도록 하지 곡식과 면포로 값을 치를 테니. 쌀이든 보리든 면포든 원하는 것으로 가져가도록 하게.”
“예 감사합니다. 좌수사 영감.”
“그리고 오늘 들은 대로 우리 좌수군은 곧 출병할 것이네. 그래서 포가를 더 만들어줘야겠네.”
“좌수사 영감께서 필요하신 만큼 얼마든지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아무 염려 마십시오. 얼마나 필요하십니까?.”
대목의 대답을 들은 나는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우선 현자총통을 장착할 포가가 10대 더 필요하네. 오도에는 10문을 상륙시킬 예정이지만 전투는 어떻게 될지 알 수 없으니 미리 여분의 포가를 가져갈 생각이네 그리고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서 지자총통을 장착할 수 있는 포가도 10문정도 만들어 주게. 이것도 5문 정도를 가져갈 생각이지만 미리 여분을 준비해 놓을 생각이야.”
“알겠습니다. 영감 한 달만 시간을 주시면 충분히 만들 수 있습니다.”
“최대한 서둘러 주게. 지자총통용 포가는 한 달 안에 만들어도 상관없지만 현자총통용 포가는 보름 안에 10대를 만들어 줄 수 있겠나?.”
내 요구를 들은 대목은 쉽지 않은 일인지 바로 대답을 하지 못하고 머뭇거리다 대답했다.
“해보겠습니다. 현자총통을 장착할 포가만 우선 만든다면 보름 안에 10대를 만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좋아 늦지 않게 10대를 만들어오면 약속한 보수에서 쌀 한 섬을 더 주겠네. 그리고 한 달
안에 20대를 모두 만들어오면 쌀 한 섬을 더 얹어주지 어떤가?.“
약속한 보수에서 쌀을 두 섬이나 더 주겠다는 말에 대목의 눈이 밝게 빛났다.
“아무 염려 마십시오. 좌수사 영감 한 달 안에 모두 만들어 오겠습니다.”
대목과 장인들은 나에게 허리 굽혀 인사를 하고 갔다. 쌀이 돈과 다름없는 조선시대에 보리나 잡곡이 아닌 쌀로 두 섬이면 장인들이나 일반 병사들에게 적지 않은 액수였다. 쌀 두 섬을 더 받기 위해서라도 대목과 장인들은 오늘부터 한 달간 쉬지 않고 일할 것이 분명했다.
좌수영을 떠나는 장인들을 바라보며 나는 방포훈련을 지휘하기 위해 발걸음을 옮겼다.
‘처음에는 무엇부터 시작해야 할지 몰라 막막하기도 했는데 하나씩 차근차근 풀어나가니까. 길이 보이는 구나.’
한성에서 좌수영으로 내려올 때만 해도 무엇부터 시작해야 할지 몰랐었다. 다행히 선조에게 고토열도 정벌에 대한 허락은 받았지만 당장 군사훈련이나 정벌을 준비할 상황이 아니었다.
언제까지 피난민들을 좌수영에 수용할 수는 없었고 포로들도 하옥시켜 둘 수만은 없었으니 우선 돌산도와 절이도에 마을을 만들고 둔전을 일구는 것이 더 시급한 일이었다. 어느 세월에 둔전을 짓고 정벌을 준비할 수 있을지 막막한 마음이 들 때도 있었지만 다행히도 피난민들의 근로의욕과 흥양현 군사들의 도움으로 절이도의 피난민 마을은 안정되고 있었고 돌산도 역시 포로들이 생각보다 열심히 일한 덕분에 이제는 집과 밭이 완성되고 염전도 지금까지는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었다. 절이도와 돌산도에 피난민들과 포로들을 이주시키는데 성공했으니 이제부터는 고토열도 정벌을 준비하는데 아무런 걸림돌이 없었다.
‘다행히도 관선의 정비가 끝났고 포가도 1차분은 제작되었으니 한 고비는 넘긴 셈이다. 보트를 만드는 것은 지금 조선의 기술로도 어렵지 않을 것이고 대목도 자신했다고 하니 출정하기 전에는 완성될 것 같고 포가를 만드는 것도 처음이 어렵지 이미 만들어본 포가를 다시 만드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니 한 달 안에 완성 될 것 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