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군역
조천군의 대답을 들은 나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됐다. 한고비는 넘긴 셈이구나.’
한숨을 쉰 나는 조천군에게 물었다.
“그동안 염전을 건설하고 소금을 만든 과정을 기록해 놓았겠지. 기록은 어디에 있나?”
“찾으실 것 같아 준비해 놓았습니다.”
조천군이 손짓을 하자 근처에서 기다리고 있던 아전이 다가와 서책을 내밀었다. 처음 염전을 건설하면서 부터 소금을 제조하는데 성공하기 까지 모든 과정을 서책으로 기록한 것이었다. 제법 두꺼운 굵기의 서책을 받은 나는 앞부분 몇 장을 펼쳐본 후 서책을 다시 닫고 조천군에게 물었다.
“기록해 놓은 것이 또 있는가?”
“아닙니다. 한부만 기록해 놓았습니다.”
“이것은 내가 가져가지 좌수영에서 필사한 후에 다시 돌려줄 것이니 오늘부터 염전을 운영하는 것과 생산된 소금의 수량, 그리고 섬에서 사용한 양과 좌수영으로 반출되는 소금의 수량까지 모든 것을 기록하게. 아주 중요한 자료가 될 것이니 한 치의 실수도 있어서는 안 될 것이야.”
“예 알겠습니다. 좌수사 영감.”
내가 서책을 김시민에게 내밀자 김시민은 재빨리 서책을 받아서 들었다. 자료를 챙긴 나는 조천군에게 다시 명령을 내렸다.
“오늘 거둔 소금 중 열섬을 좌수영으로 가져갈 것이야. 그리고 오늘 거둔 소금 중에서 가장 깨끗하고 질 좋은 것으로 한 말들 따로 담게 주상전하께 올릴 것이니.”
“이곳의 소금을 주상전하께 말입니까?.”
자신이 관리하는 염전에서 제조된 소금을 선조에게 진상한다는 말에 조천군은 놀란 표정을 지었다. 조천군 뿐만 아니라 이순신을 비롯해 이억기와 김시민도 놀란 표정을 지었다.
“새로 세운 염전에서 최초로 소금으로 거두었으니 주상전하께 올리는 것이 당연하지 않은가. 돌산도에 둔전을 일구고 염전을 만든 것은 모두 주상전하의 윤허를 받은 일이야. 주상전하께 장계를 올려 염전에서 소금을 거두었음을 보고하고 같이 소금을 올릴 것이니 가장 깨끗하고 질 좋은 소금을 준비하도록 하게.”
“예 알겠습니다. 좌수사 영감.”
조천군은 감격한 표정으로 직접 국자를 들고 소금을 떴고 이순신과 이억기 김시민도 감격한 표정을 보였다. 나는 그런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입안에 쓴맛이 도는 것을 느꼈다.
‘역시 조선인들인가. 왕에서 충성하는 모습을 보이니 저렇게 존경스러워하다니. 저들은 자신들의 운명을 알기나 할까?.’
이순신, 이억기, 김시민 저 셋은 임진왜란 당시 나라를 구한 영웅들이지만 셋 모두 왜란이 끝나기도 전에 전사하고 만다. 이순신은 말할 것도 없고 이억기는 전라우수사로 이순신과 함께 수군을 지휘해 남해 바다를 지키는데 혁혁한 전공을 세우지만 선조가 원균을 삼도수군통제사에 임명하면서 원균의 지휘를 받게 되고 칠천량 해전에서 전사하고 만다. 선조가 이순신을 파직시킨 후 원균이 아닌 이억기를 삼도수군통제사에 임명했다면 조선수군이 칠천량 해전 같은 참패를 겪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진주대첩으로 유명한 김시민은 임진왜란 당시 진주목사가 도망가자 진주판관이었던 김시민이 목사를 대신해 군사들을 수습하고 백성들을 안심시켰기에 진주성이 무사할 수 있었다. 김시민은 군사들과 백성들을 동원해 성벽을 보수하고 염초와 화약을 제조하는 등 진주성을 지킬 준비를 했다. 진주대첩 당시 3만 명이 넘는 왜군이 진주성을 공격해 왔을 때 진주성 안의 군사는 3800명에 불과했지만 김시민을 비롯한 진주성의 군사들과 백성들의 노력과 진주성을 지원한 의병들의 활약이 있었기에 왜군을 물리치고 진주성을 지켜낼 수 있었다. 김시민은 성을 지켜내는 데는 성공했지만 난전 중에 시체 속에 숨어있던 왜군이 쏜 총탄을 맞고 전사하고 만다.
저 세 명의 명장들이 어떤 최후를 맞이하는지 알고 있는 나는 선조에게 소금을 진상하는 것을 영광스럽게 보는 저들의 모습을 보면서 씁쓸한 기분을 감출 수 없었다.
“소금은 준비되었습니다. 전선에 싣도록 하겠습니다.”
병사들은 달구지에 소금 부대를 실었고 따로 고른 소금은 나무상자에 담아 나에게 내밀었다. 아무 말도 없이 소금을 받은 나는 소금 상자는 김시민에게 내밀었고 이번에도 김시민은 재빨리 상자를 받았다. 달구지에 소금이 모두 실린 것을 확인한 나는 바닷가 방향을 둘러보며 조천군에게 말했다.
“조군관 수고가 많았네. 맨 땅에서 이렇게 염전을 일구고 소금까지 제조하는데 성공했으니 조군관의 공로는 내 결코 잊지 않을 것이야.”
내 칭찬을 들은 조천군은 감격한 표정으로 말했다.
“감사합니다. 좌수사 영감. 언제라도 명하시는 대로 분골쇄신 하도록 하겠습니다.”
나는 그러 조천군에게 미소를 보이며 물었다.
“좋아 조군관의 그런 자세를 내 결코 잊지 않겠네. 그럼 한 가지 더 명할 것이 있는데 괜찮겠나?”
“무엇이든 말씀하시지요. 좌수사 영감.”
조천군이 씩씩한 목소리로 대답하자 나는 조천군에게 주변을 가리키며 말했다.
“어떤가. 저쪽도 이곳과 지형이 비슷한 것 같은데 말이야. 저곳에서 이런 염전을 건설하는 것이 어떻겠나?.”
군대는 계급이 깡패다. 조천군은 내가 질문하는 것이 아니라 명령하는 것이라는 것을 확실히 알아들었다. 염전을 하나 더 만들라는 말에 조천군은 당황한 기색을 보였지만 내말은 아직 끝난 것이 아니었다.
“인력은 포로들을 더 동원해도 좋아. 염전건설에 이미 경험이 있는 병사들과 포로들이 있으니 포로들을 더 동원하면 이번에는 처음보다 쉽게 건설할 수 있을 것이야. 이번에도 한 달 안에만 건설하면 되니 시간에 쫓긴다고 느낄 필요는 없네. 수차를 만드는 장인들과 기와를 굽는 장인들에게는 내가 명령을 내리겠네. 그들도 한 달간 더 일하면서 보수를 소금으로 받으면 큰 불만은 없을 것이야. 물론 돌산도에서 수고하는 병사들에게도 술과 음식을 내려 위로할 것이고 복무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군사들에게도 적당히 소금을 내려 그동안의 노고를 위로할 것이니 병사들이 불만을 가지지는 않을 것이네.”
내 말을 들은 조천군은 처음보다는 한결 진정된 모습을 보였다. 처음보다는 덜 힘들 것이고 필요한 인력과 지원을 충분히 한다고 하자 해 볼만 하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무엇보다 수고하는 장인들과 병사들에게 소금으로 보수를 지불한다는 말에 조천군이 자신이 만들고 있는 소금이 조선에서 어떤 가치를 가지고 있는 깨달았다.
“예 좌수사 영감. 당장 내일부터 염전 건설을 시작하겠습니다.”
“너무 무리하지는 말게. 지금 돌아가고 있는 염전에서도 소금은 계속 생산되어야 하니 말이야. 그리고 조군관 자네에게도 이달에는 소금을 한 섬 내릴 것이야.”
“감사합니다. 영감.”
“내 노파심에 이야기 하지만 혹시나 병사들이 다른 마음먹는 일이 없도록 주의하게 이 염전은 주상전하의 윤허를 받고 건설한 것이고 이곳에서 생산되는 소금은 좌수영의 군비마련과
좌수영 병사들의 식량으로 사용될 것이니 말이야.“
이 말은 조천군에게도 해당되는 말이라는 것을 조천군이 알아듣지 못 할리는 없었다. 조천군에게 따로 소금을 내리는 역시 다른 마음을 먹지 말라는 의미였다. 견물생심이라고 보고 있으면 욕심이 나게 마련이고 아무리 감시를 하고 장부를 확인한다고 해도 현장에서 소금을 빼돌릴 생각을 하면 방법이 없었다.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 적당히 상급을 주면서 당근과 채찍을 같이 사용하는 것이 부정행위를 방지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었다.
“심려 놓으십시오. 영감”
조천군의 내말을 잘 알아들은 듯 긴장된 표정으로 대답했고
“조군관 내가 항상 자네를 믿고 의지하고 있다는 것을 기억하게”
나는 조천군을 격려한 후 이순신과 이억기 그리고 김시민을 향해 말했다.
“이제 그만 좌수영으로 돌아갈 것이다.”
내가 포구를 향해 발걸음을 움직이자 세 명의 장수들은 나를 따라 움직였고 곧 병사들과 소금을 실은 달구지도 나를 따라 움직였다. 포구로 가는 도중에도 나는 마음이 급했다.
‘오늘 시간이 나면 염초도 만들어 보고 싶었는데 일이 급하게 됐다. 병사들이 교대한다는 것을 생각하지 못했어. 전란 중에도 복무기간이 아닌 장정들을 소집되는 것을 봤으면서도 복무를 교대하는 것을 생각하지 못하다니 내 실수다. 실수야.’
마음이 급해진 나는 서둘러 좌수영으로 돌아가 대책을 세울 생각을 했다. 내가 급한 발걸음으로 포구에 도착하자마자 전선에 오르려고 하자 이순신이 나를 말렸다.
“아직 소금을 전선에 싣지 않았습니다. 좌수사 영감께서는 천천히 오르시지요.”
마음이 급한 와중에서 상대가 이순신이다 보니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하지 전선에 소금 섬을 싣느라 분주할 텐데. 짐 정리가 끝나면 승선하지.”
내가 전선에서 한걸음 물러나 병사들이 소금부대를 전선으로 나르는 장면을 지켜보는 동안에도 이순신은 내 옆에서 떠나지 않았다. 이순신을 의식한 나는 이순신에게 먼저 말을 걸었다.
“녹도만호는 내게 묻고 싶은 것이 있는가?”
이순신은 내게 공손한 태도로 말했다.
“오늘 보고 들은 것이 너무나 놀라워 무엇부터 물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실례가 아니라면 어찌된 것인지 물어도 되겠습니까? 좌수사 영감”
이순신이 내게 정중한 태도로 묻자 어께에 힘이 들어가는 것 같았다.
‘이순신 장군과 이런 대화를 나누다니 역시 군대는 계급이 깡패야.’
나는 최대한 침착한 표정을 지으며 이순신에게 말했다.
“무엇을 물을지 모르지만 모두 대답해줄 수는 없을 것 같네. 우선 무엇이 궁금한지 들어보고 대답해 줄 수 있는 것은 대답하지. 묻고 싶은 것이 무엇인가?”
“왜 돌산도에서 소금을 생산하시는 지요. 그리고 염전의 구조와 소금을 생산하는 방법이 제가 알고 있는 방법과는 많이 다른 것 같습니다.”
이순신 장군의 질문을 들은 나는 속으로 놀랐다.
‘역시 이순신 대단하구나. 돌산도의 염전이 조선의 다른 염전들과 다른 것을 알다니.’
나는 놀란 기색을 감추고 태연하게 대답했다.
“돌산도에 염전을 건설해 소금을 생산하는 것은 본관이 주상전하께 청하여 윤허를 받은 일이다. 본관은 지난 전란을 겪으면서 바다를 지키기 위해 전선과 총통을 수선하고 더 증강해야 한다는 것을 실감했지만 군비를 확보하는 것이 어려웠다. 그래서 지난 달 상경하였을 때 주상전하께 좌수영의 사정을 아뢰고 둔전과 염전을 건설하는 것을 청하였고 주상전하께서는 윤허하셨다.”
내 대답을 들은 이순신은 이해했다는 듯이 수긍하는 분위기였지만 질문을 멈추지 않았다.
“이곳에서 소금을 만드는 방법은 다른 곳과는 다른 것 같습니다. 조선에서 저렇게 저수지를 만들어 소금을 생산한다는 이야기는 듣지도 보지도 못하였습니다.”
예상하지 못한 날카로운 질문에 당황했지만 나는 최대한 천연덕스럽게 대답했다.
“염전에 저수지를 만드는 것은 본관이 명령한 것이다. 본관은 무과에 급제하기 전에 온갖 잡서를 섭렵한 적이 있었다. 그때 본 잡서에서 명국 남부에서는 갯벌에 바닷물을 가두고 햇볕에 말려 소금을 만든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었다. 이번에 염전을 건설하면서 그 이야기가 생각나서 시험해 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