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선 수군이 되었다-54화 (54/223)

────────────────────────────────────

────────────────────────────────────

군역2

내 대답을 들은 이순신이 진심으로 감탄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좌수사께서는 문무를 겸비하셨군요. 정말 대단하십니다.”

이순신 장군의 칭찬에 쑥스러워진 나는 시선을 돌리며 무심한척 말했다.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을 다하려는 것뿐이네. 양식이 없다고 굶고 있을 수만은 없지 않은가. 어떻게든 양식을 구해야지 하다못해 풀뿌리라도 캐야 굶주림을 면할 것 아니겠는가.”

말을 마친 나는 앞장서서 전선으로 향했고 그 뒤를 이순신이 따라서 전선에 올라왔다. 돌산도에서 좌수영으로 돌아가는 동안 오늘 겪은 일과 이순신과의 대화를 다시 생각해 보니 병사들의 교대 문제를 해결할 방법이 보였다.

‘그래 소금이다. 앞으로 염전에서 계속 소금이 생산될 것이고 조선에서 소금은 돈과 같으니 소금으로 병사들을 고용하자. 고토열도에 출병할 군사들을 모두 고용할 필요는 없겠지만 이번 달에 군사훈련을 받아야할 총병과 포수, 사부 등 전투 병력들과 전선을 조종하는데 필요한 병력을 추려보자.’

좌수영에 도착하기 무섭게 전선에서 내린 나는 돌산도에서 가져온 소금을 잘 간수하도록 지시하고는 곧장 동헌으로 향했다. 동헌에 도착하기 무섭게 방문을 닫고 생각에 생각을 거듭한 나는 좌수군 병사들의 군역문제를 어떻게 할지 결론을 내렸다.

‘날씨와 바다의 상태를 봐야겠지만 늦어도 4월에는 고토열도를 정벌하려고 했다. 더 이상 시간을 끌면 고토열도에 붙잡혀간 조선인들이 다른 곳에 노예로 팔려갈 수도 있고 도망치려고 하거나 왜구들에게 저항하다가 살해당할 수도 있으니 구하기 어려워질 것이 분명해. 조선인들을 구출하려면 어떻게든지 최단 시간에 고토열도를 정벌해야 하는데 이런 상황에서 실전을 경험한 병사들을 집으로 돌려보낸다는 것은 말도 안 되지. 이번 달은 병사들을 훈련시키고 4월에 날씨가 좋고 바다가 잠잠할 때 고토열도로 출병한다.’

좌수군의 군사들 중에서 고토열도로 출병할 정예병을 선발해 훈련시킬 것을 마음먹었지만 생각해 보니 이것은 나 혼자 단독으로 결정할 일이 아니었다.

‘지금까지 벌였던 일들은 좌수사의 권한으로 해결이 가능했지만 전시도 아닌 상황에서 복무기간이 끝난 병사들을 교대 시키지 않는 것은 조선의 국법에 어긋나는 일이야. 이건 내가 혼자 책임질 수 있는 일이 아니야. 선조에게 알리고 선조의 허락을 받아야 한다. 더구나 병사들을 교대시키지 않고 좌수영에서 훈련시키고 있다는 소문이 내가 보고하기도 전에 선조의 귀에 먼저 들어가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몰라. 하루빨리 선조에게 보고해야 한다.’

내가 선조를 이해시키지 못한 상황에서 좌수영에서 복무기간이 끝난 군사들을 집으로 귀가시키지 않고 군사훈련을 시키고 있다는 소문이 선조의 귀에 들어가기라도 하면 선조가 무슨

짓을 할지 몰랐다. 나는 선조가 좌수영에 금부도사를 보내고도 남을 사람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어차피 돌산도에 염전을 만든 것과 소금을 생산하기 시작한 것을 보고해야 하니 장계를 올리는 것은 상관이 없는데. 문제는 이 사실을 그대로 장계로 올려도 될까?. 장계는 선조에게 직접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승정원을 거쳐서 선조에게 올라가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조정의 대신들은 내가 고토열도 정벌을 준비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지 모르겠단 말이야. 만약 대신들이 고토열도 정벌에 모르고 있는 상황에서 내가 장계를 올리면 그야말로 벌집을 건드리는 일이고 자칫 잘못하면 나만 팽(烹)당할 수도 있단 말이지.’

고민 끝에 나는 혼자서 독박을 쓰지 않겠다는 심정으로 붓을 들었다. 한성으로 보낼 서신을 쓴 후 나는 아전을 불러 파발로 한성에 서신을 보낼 것을 명하고 좌수영의 장수들을 소집했다. 군역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생각했으니 이제는 좌수영에 고토열도로 출병할 정예병을 선발하는 일이 남아있었다.

그로부터 며칠 후 병조판서 정언신 대감은 경복궁의 한 전각에서 선조를 독대했다.

“전라좌수사가 병판에게 서신을 보냈다고?.”

선조가 전라좌수사의 소식에 흥미를 보이자 정언신은 선조에게 좌수사가 보낸 서신을 내밀었다.

“그렇사옵니다. 전하. 좌수사가 그동안 진행해온 일들을 소상하게 알려왔사옵니다.”

“그런데 좌수사는 왜 장계를 올리지 않고 병판에게 모든 것을 보고하는 것인가?.”

선조의 말투에서 전라좌수사를 의심하는 기색이 보이자 정언신은 황급히 선조에게 서신에 쓰인 내용을 설명했다.

“전라좌수사는 염전이 완성된 것과 소금 생산이 시작된 것을 알려왔습니다. 그리고 곧 장계를 올려 그 사실을 전하께 아뢰고 처음 거둔 소금을 전하께 올리겠다고 전해왔습니다.”

정인신의 대답이 다행히 선조의 마음에 들었다.

“기특하군. 염전에서 처음 거둔 소금을 과인에게 올리겠다. 기특한지고.”

선조의 마음이 풀어진 것을 눈치 챈 정언신은 선조의 마음이 바뀌기 전에 재빨리 좌수사의 상황을 설명했다.

“좌수사는 다음 달에 출병할 예정으로 군사들을 훈련시키려고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미

달이 바뀌어 지난달에 전란을 치른 군사들이 귀가하게 되자 난처한 입장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정언신의 말을 들은 선조는 기분이 언짢은 듯이 말했다.

“왜구의 침략으로 전란을 겪었고 좌수사는 왜구들에게 붙잡혀간 백성들을 구출하기 위해 군사를 일으키려는데 좌수사의 부하들은 집으로 돌아가려고 한다니 이것이 말이 되는 소리인가. 내일 당장 좌수영에 명을 내려 좌수영의 모든 군사들은 다음 달 까지 군역을 연이어 치르도록 할 것이다.”

다른 대신들이나 무장들이었다면 이런 선조의 명에 감사하다고 대답하겠지만 북방에서 군사들을 지휘해본 정언신은 달랐다. 정인신은 군역을 치르는 것이 일반 백성들에게 얼마나 큰 부담이 되는지를 똑똑히 잘 알고 있었다.

“전하의 말씀이 지극히 합당하십니다. 하오나 전하. 수군에서 군역을 치르는 병사들은 한 달간 군역을 치르고는 집으로 돌아가 한 달간 생계를 위해 일하다가 다음 달에는 다시 군역을 치르기 위해 수영으로 되돌아가는 삶을 반복하고 있습니다. 이들이 집으로 돌아가지 않으면 그들 본인은 물론 군사들의 처자식들도 생계를 이어가기가 어려운 것이 사실입니다.”

선조는 정인신의 대답이 마음에 들지는 않았지만 틀린 말은 아니었으니 반박하지는 못했다.

“그러면. 병판은 어찌하면 좋겠는가?.”

대책을 내놓으라는 선조의 말에 정언신은 좌수사가 보낸 서신을 다시 한번 선조에게 내밀면서 대답했다.

“대책은 좌수사가 생각해놓았습니다. 좌수사는 오도에 출병할 군사들을 집으로 귀가시키는 대신 이번 달에도 좌수영에서 훈련시킬 것을 바라고 있습니다. 대신 귀가하지 않는 병사들에게는 돌산도에서 생산하는 소금으로 보수를 줘서 군사들의 처자식들이 생계를 이어갈 수 있도록 하고자 합니다.“

정언신의 대답을 들은 선조는 잠시 생각해 보더니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좋은 생각이다. 군사들은 출병에 대비해 훈련을 시킬 수 있고 병사들의 가족들은 나눠받은

소금으로 생계를 이어가면 되겠구나.”

“좌수사는 이 모든 일과 계획을 장계를 올려 주상전하께 정식으로 아뢸 것이나. 장계에는 어떻게 그 내용을 어떻게 작성해야 할지 묻기 위해 신에게 먼저 서신을 보낸 것입니다.”

정언신의 설명을 들은 선조는 굳은 얼굴로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생각에 잠겼다. 올해로 즉위 한지 20년째인 선조는 좌수사가 무엇을 걱정하는지 알 수 있었다.

‘그렇지 오도를 정벌하는 것은 내가 좌수사와 단둘이 있을 때 허락한 일이야. 그 이야기가 조정에 전해져서 좋을 것이 없지.’

선조는 생각 끝에 정언신을 바라보며 말했다.

“병판은 좌수사에게 전하라 좌수사가 오도를 정벌할 것을 조정에 공론화 시킬 필요는 없다.

그러나 그 외에는 있는 사실 그대로 장계를 올려도 상관없다고 말이다.”

선조의 말을 들은 정언신은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럼 염전의 일과 군사들을 교대시키지 않는 일은 조정에서 어찌 다루시려고 하시나이까?.”

“좌수사가 염전을 건설하고 소금을 생산하는 것은 지난날 과인이 허락한 일이다. 전란으로 피해를 입은 전라좌수영의 전력을 회복시키는데 필요한 자금을 마련하기 위한 일이니 과인이 허락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군사들을 귀가시키지 않는 것 역시 작은 일이 아니지만 전란이 일어난 것이 불과 한 달 전이니 좌수군 군사들이 한 달간 더 훈련을 받는다고 해도 무리한 일은 아닐 것이다. 이것은 좌수사가 나라를 지키고자하는 마음에서 군사들을 강병으로 만들기 위해 조치하는 것이니 과인은 좌수사의 뜻을 기특하게 여기고 그 청을 들어줄 것이다.”

선조의 대답을 들은 정언신은 선조가 오도정벌 계획은 인정하지 않으려는 속셈인 것을 깨달았다.

‘좌수사의 정벌이 성공하면 이대원을 좌수사에 제수하신 주상전하는 인재를 알아보고 적재적소에 배치하신 것이니 전하께서는 좌수사와 함께 승전의 영광을 누리실 것이고. 만약 좌수사가 패전하고 돌아온다고 해도 전하께서는 좌수사의 계획을 모르고 계셨으니 패전의 책임은 오로지 좌수사가 짊어지겠구나. 그래도 좌수사가 청하는 것은 들어주시니 다행이다.’

선조의 속셈을 눈치 챈 정언신은 정중하게 대답했다.

“전하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전라좌수사에게는 신이 서신을 보내 장계를 정성들여 작성하라 이르겠나이다.”

정언신의 대답이 마음에 들었는지 선조는 정언신을 격려했다.

“병판이 항상 수고가 많다. 병판은 과인이 믿고 의지하는 신하인 것을 항상 잊지 말라. 과인이 내의원에 명을 내려 병판에게 보약을 내릴 것이다. 매일 약을 거르지 말라.”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전하.”

선조가 신하에게 이정도 신뢰를 보이는 것은 보기 드문 일이었다. 정언신은 진심으로 선조에게 감사한 마음을 품고 망극하다고 외쳤다.

선조와 정언신이 독대를 마친 후 정언신은 좌수영으로 서신을 보냈고 그 서신을 받은 나는 정식으로 선조에게 장계를 올리고 돌산도 염전에서 처음으로 거둔 소금 한 말을 정성스럽게 포장해 한성으로 보냈다.

정언신에게 서신을 보낸 후 답장을 받기도 전에 나는 장수들을 소집해 고토열도 정벌에 출병할 군사들을 선발할 것을 지시했다. 다행히 이미 훈련 중인 군사들도 있어서 출정병력 선발은 어렵지 않게 진행됐다. 나에게서 훈련받은 총병들과 포가에 장착된 총통으로 훈련 중이던 포수들 그리고 관선으로 항해 경험을 쌓은 수병들을 포함해 2000명에 가까운 군사들이 선발되었고 이들 중에서 후쿠에 섬에 직접 상륙할 병력을 중심으로 전투훈련이 필요한 병력을 계산하자 800명이 넘었다. 800명은 적지 않은 병력이었지만 고토열도 정벌의 중요성과 적지에 상륙한다는 것을 감안하면 오히려 터무니없이 적은 병력이었다.

나는 장수들에게 내 계획을 설명하고 선발된 군사들을 좌수영에서 훈련시킬 것을 명령했다.

아직 정언신 대감이나 선조의 허락이 떨어지기 전이었지만 나는 선조가 허락할 것으로 생각했다.

‘한성에서 분명히 느꼈다. 선조는 고토열도 정벌을 은근히 기대하고 있어.’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