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선 수군이 되었다-56화 (56/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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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도만호 이순신

이순신과 손대남이 의견을 주고받으며 병사들의 훈련계획을 의논하고 있었을 때 밖에서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려왔다.

“아 글쎄 만호 나리는 지금 바쁘시니. 내일 날이 밝으면 다시 찾아오게.”

“그럴 수는 없습니다. 저희도 이미 소문을 들었습니다. 어찌 저희를 쏙 빼놓으신단 말이십니까. 만호나리를 뵙고 사정이라도 해야겠습니다.”

“맞습니다. 저희가 가지 않으면 누가 간단 말입니다. 왜 저희를 빼놓으셨는지 이유라도 들어야겠습니다.”

싸우는 소리가 밖에서 들려오자 이순신은 밖을 향해 외쳤다.

“이게 무슨 일인가?. 시간이 늦었는데  무슨 소란인가?.”

이순신이 외치자 밖에서는 이언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닙니다. 만호나리 조용히 시키도록 하겠습니다.”

이언세의 대답이 끝나고도 소란은 그치지 않자 손대남은 이순신에게 양해를 구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희 녹도진의 병사들 같습니다. 무슨 일인지 알아보겠습니다.”

“같이 가지. 병사들도 나를 기다리는 것 같군.”

손대남이 자리에서 일어나자 이순신도 자리에서 일어나 방문을 열었다. 이순신과 손대남이 방문을 열고 나가자 동헌 앞마당에는 어느새 수 십 명의 병사들이 모여 있었고 이언세를 비롯한 아전들과 군관들이 병사들을 상대하고 있었다.

“이게 무슨 일인가?.”

이순신이 마당에 들어서며 외치자 아전들과 병사들은 황급히 이순신에게 고개를 조아렸다.

“만호 나리.”

“그래 이거 무슨 소동인가?. 무슨 일이 있기에 이렇게 많은 병사들이 나와 있냐는 말일세.?”

이순신이 다시 한번 묻자 이언세가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그게 병사들이 소문을 들은 모양입니다.”

“소문이라니 무슨 소문을 들은 것인가?.”

“저희 전라좌수군이 왜구들을 정벌하기 위해 출병한다는 소문이 퍼진 것 같습니다.”

이언세의 대답을 들은 이순신은 곤란하게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 그런 소문이 퍼졌을까. 출정군에 선발된 병사들에게 급료를 지불한다는 사실을 아직 발표하지도 않았는데 출정한다고 소문이 퍼졌으니 병사들이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지는 않을까. 염려한 모양이구나.’

“만호 나리 설명해 주십시오. 이것이 어찌된 일입니까?.”

이순신이 어찌할지 생각하고 있었을 때 병사들이 나서서 이순신에게 물었다. 그 광경을 본 손대남은 병사들에게 호통을 쳤다.

“무엄하다. 어찌 만호나리께 이런 무례를 범하느냐.”

“소문이 사실인지 궁금해서 그럽니다. 사실입니까? 왜구들을 치러 출병한다는 것이.”

손대남의 호통에 병사들은 이전 보다는 기가 죽었지만 그래도 끈질기게 물었다.

“그렇다. 왜구들을 토벌하고 왜구들에게 끌려간 백성들을 구출하기 위해 우리 전라좌수군은 오도로 출병할 것이다.”

이순신이 병사들 앞에 나서서 고토열도 정벌을 선언하자 병사들은 더욱 분노한 표정을 지었다.

“어떻게 저희에게 이러실 수 있습니까?.”

병사들 중에서 앞장서서 이순신에게 물었던 강영남이 따지듯이 물었다.

“강영남 그게 무슨 짓이냐? 만호나리께 무례하게 굴면 가만두지 않겠다.”

손대남이 호통을 쳤지만 강영남은 물러서지 않았다.

“군관나리 저희와 나리가 어디 남남입니까?. 지난 전란에서 함께 좌수사 영감을 모시고 왜구들과 싸우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어찌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지난 전란 당시 함께 싸운 전우라는 말에 손대남은 계속 호통을 칠 수가 없었다. 손대남이 헛기침을 하며 고개를 돌리자 이순신이 나서서 병사들을 위무했다.

“자네들은 아무 걱정할 것 없네. 전라좌수군이 출병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지금 바로 출병하는 것이 아니니 복무기간이 끝난 병사들이 집으로 돌아가지 못할 일은 없을 것이네. 출병 일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지만 다음 달에 출병할 예정이야.”

이순신은 병사들을 진정시키기 위해 부드러운 어조로 말했지만 병사들의 목소리는 더욱 높아져 갔다.

“아니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만호나리 좌수군이 왜구들을 치러 가는데 저희에게 집으로 돌아가라니요. 그럴 수는 없습니다.”

“맞습니다. 나리 저희는 좌수군이 아니랍니까? 어찌 집으로 돌아가라 말씀하십니까. 섭섭합니다.”

“녹도진에서 아니 좌수군 전체에서 저희만큼 노를 잘 잡고 잘 젓는 병사들은 없습니다. 저희를 데려가지 않으시면 왜까지 전선을 끌고 가실수가 없으실 겁니다.”

“왜놈들을 박살내러 가는데 따라가지 못한다면 소인은 밤에 잠도 못 잘겁니다. 소인 헤엄을 쳐서라도 출병할 때 따라가렵니다.”

병사들이 너나할 것 없이 나서서 출정하겠다고 하자 이순신은 자신의 눈과 귀를 의심했다.

‘아니 병사들이 스스로 출정하겠다고 나서다니. 용맹하기로 유명한 함경도 육진의 군사들도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녹도진의 수군이 이렇게 까지 용감했었나?. 아니면 왜구들에게 깊은 원한이라도 있나?.’

이순신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상황에 놀란 나머지 손대남에게 물었다.

“병사들이 왜 이러는 것인가?. 녹도진의 병사들은 지난 전란에서도 맹활약을 펼쳤다고 들었는데 병사들이 왜구들에게 원한이라고 가진 것인가?.”

이순신의 질문에 손대남은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왜구들이 시산도와 절이도에서 주민들을 죽이고 노략질한 것은 만호나리께서도 알고 계실 겁니다. 시산도와 절이도에서 왜구들에게 해를 당한 사람들 중에는 병사들의 인척도 있었고 친분이 있는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그나마 좌수사 영감께서 절이도에서 왜구들을 치신 덕분에 절이도의 피해는 그리 크지 않았지만 시산도에서는 주민들이 많이 죽었고 살아남은 사람들도 집을 잃고 지금은 절이도에서 밭을 일구고 있습니다.”

손대남의 설명을 들은 이순신은 그제 서야 병사들의 반응이 이해가 됐다.

‘그러고 보니 절이도로 이주한 피난민들은 시산도와 손죽도의 주민들이었다고 했지. 지난 전란에서 왜구들을 물리쳤으니 대승을 거둔 것만 알고 있었는데 백성들은 엄청난 피해를 입었었구나.’

이순신이 납득한 표정으로 보이자 손대남은 강영남을 가리키며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저기 앞에 나서고 있는 병사가 강영남입니다. 지난 전란 당시 어떤 병사보다 용감히 싸운 놈입니다.”

“저 병사에게도 무슨 사연이 있는 것인가?.”

이순신이 눈치를 채고 묻자 손대남은 강영남에게서 고개를 돌리고 대답했다.

“누이동생과 조카가 시산도에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조카가 동무들과 고기를 잡으러 바다에 나가있는 동안 왜구들이 섬을 습격해 저항하는 사람들은 죽이고 주민들을 끌고 갔지 뭡니까.”

“그래서 어떻게 됐나?.”

“조카가 섬에 돌아와 그 광경을 보고는 눈이 뒤집혀 져서 어미를 찾다가 운 좋게 살아남은 사람이 알려줘서 왜구들이 어미와 섬사람들을 잡아간 것을 알았다고 합니다. 왜선이 절이도 방향으로 갔다는 것도 알려줬고 말입니다.”

“그래서?”

이순신이 어서 말해보라는 듯이 손대남을 바라보자. 손대남은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아직 약관도 치르지 않은 어린 것이 어미를 구하겠다고 조각배를 타고 바다에 뛰어들었습니다. 그것도 이미 해가 지고 있을 때 말입니다. 다행히 직접 절이도로 달려가지는 않고 수군을 불러오겠다고 이곳 녹도진으로 오려고 했다고 합니다. 지 삼촌인 강영남이 녹도진에 있는 것을 알고 있으니 말입니다. 그런데 그 어린 것이 그것도 혼자 겨울 밤에 조각배로 바다를 건너는 것이 쉬운 일이겠습니까. 파도에 떠밀려서 이리저리 밀려나다가 마침 손죽도로 향하던 저희 전선을 만나는 덕분에 살았습니다. 만약에 그때 번을 서던 병사들이 조각배를 발견하지 못했으면 강영남의 조카는 그대로 물고기 밥이 됐을 겁니다.”

“그런 사연이 있었군.”

강영남의 사연을 들은 이순신은 병사들이 저러는 것을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손대남의 말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말도 마십시오. 밤에 번을 서다가 조각배를 발견해서 전선으로 끌어보니 아직 어린 아이가 있는 것이 아닙니까. 추위에 오들오들 떨면서도 어미를 구해달라고 사정하던 아이의 모습이 아직도 잊혀 지지가 않습니다. 그리고 더 기가 막힌 것은 번을 서다가 조각배를 발견한 병사가 바로 강영남이었습니다.”

손대남의 이야기를 들은 이순신은 믿기지가 않아 손대남을 바라보고 물었다.

“그 말이 참인가?.”

“바닷물에 젖고 추위에 떨며 이미 인사불성이 된 아이를 조각배에서 전선으로 끌어올리고 보니 갑자기 강영남이 아이에게 달려들어 껴안고 통곡을 했습니다. 누이동생이 서방 잃고 혼자 기른 조카라고 말입니다. 아이를 껴안고 네가 왜 여기에 있느냐고 통곡하던 강영남의 목소리도 지금까지 잊혀 지지가 않습니다.”

손대남의 설명을 들으며 이순신의 머릿속에서는 왜구들에게 살해당하는 사람들과 어머니를 구해달라고 울부짖는 아이의 모습이 그려지면서 겨울 바다를 헤매다가 가까스로 구조된 조카를 안고 울부짖는 강영남의 울음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병사들이 저러는 이유를 알겠군.”

“저놈들의 무례를 용서해주십시오. 강영남 뿐만 아니라 그 광경을 본 병사들도 전부 같은 심정일 것입니다.”

손대남이 이순신에게 청하자 이순신은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저들을 그냥 말로 달래서는 안 돼. 아니 달랠 수도 없어. 우선 병사들을 귀가시키려던 계획은 연기하겠네. 내일 날이 밝는 대로 좌수사 영감을 찾아뵙고 병사들의 심정을 전할 것이니 준비하도록 하게.”

“예. 만호 나리”

이순신에게 대답하는 손대남의 목소리는 이전과 달리 힘이 들어가 있었다. 손대남에게 명을 내린 이순신은 그대로 병사들 앞에 나가 외쳤다.

“너희의 심정을 잘 알겠다. 그리고 본관은 오늘 매우 기쁘다.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죽음을 두려워하는 것이 정상일 것인데 왜구들을 토벌하고 백성들을 구하는 일에 앞 다투어 동참하려는 녹도진의 정예병들을 보니 본관은 녹도진의 만호인것과 그대들의 상관인 것이 매우 기쁘고 자랑스럽다. 내일 날이 밝는 즉시 본관은 좌수영으로 찾아가 좌수사 영감을 뵙고 녹도진의 용사들은 하루라도 빨리 왜구들을 향해 출병하기를 원한다는 것을 고하고 출병을 허락받도록 할 것이다. 오늘은 그만 들어가 편히 쉬도록 하라.“

“와아~”

이순신의 말이 끝나자 병사들은 함성을 지르며 기뻐했고. 이순신은 병사들 사이에 들어가 병사들을 격려했다. 그 광경을 보며 손대남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녹도진의 병사들은 복이 참 많구나. 좌수사 영감에 이어서 저런 만호나리가 상관으로 부임하셨으니.”

만호 정도 되는 고위 장수라면 병사들의 입장보다는 상관의 명령과 자신의 입장을 먼저 생각하기 마련이다. 손대남은 병사들의 무례를 꾸짖지 않고 병사들의 심정을 이해해서 좌수사에게 직접 아뢰겠다는 이순신의 말을 듣고는 녹도만호 이순신이 전라좌수사 이대원 뭇지 않게 병사들을 아끼는 장수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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