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선 수군이 되었다-58화 (58/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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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수영 병사들

이순신 장군을 통해 녹도진 병사들의 입장을 전해들은 나는 환호성을 지르고 싶은 감정을 간신히 참았다.

‘병사들이 자진해서 정벌에 참가하겠다니. 고토열도 정벌에 이것보다 더 좋은 조건은 없다.

스스로 참가하겠다고 나선 만큼 병사들의 사기는 높을 것이고. 병사들과 그 가족들의 생계문제도 해결됐으니 당장 보수를 지급할 필요도 없으니 전비를 걱정할 필요도 없구나.’

한동안 병사들의 복무기간과 보수를 지급하는 문제로 고민했었던 나는 상황이 너무나 유리하게 펼쳐지자 하늘이 나를 돕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했다. 잠시 동안 지금의 상황을 정리한 나는 결론을 내리고 장수들을 소집했다.

“좋아 지금 즉시 좌수군의 모든 장수들을 본영으로 소집하라.”

좌수군 5관 5포의 장수들을 모두 소집한 나는 녹도진의 병사들이 정벌에 동참할 것을 간청했다는 사실을 장수들에게 알리고 장수들에게 다음과 같은 명령을 내렸다.

1. 좌수영 본영과 좌수군 예하의 5곳의 수군진 중에서 녹도진을 제외한 4곳의 진(사도, 방답, 여도, 발포) 에서는 군사들에게 왜구정벌의 가능성을 알리고 병사들의 참여 의사를 묻는다.(출병하기 이전에 조정이나 한성에 고토열도 정벌을 준비하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져서 안 되는 만큼 공식적으로 정벌을 선언할 수 없었다.)

2. 지난달에 복무를 마치고 귀가하는 병사들에게는 정벌의 동참을 강요하지 않으며 정벌에 참여하는 병사들에게는 후일 보상이 있을 수 있음을 알린다.(집으로 귀가하는 대신 연이어 복무하게 된 병사들에게는 계획대로 소금을 지급한다. 하지만 당분간은 병사들과 병사들의 가족들의 생계문제를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만큼 소금은 고토열도 정벌이 끝난 후에 지급한다.)

3. 정벌에 동참을 의사를 밝힌 병사들은 좌수영에 집결해 훈련을 시작한다.(기존의 판옥선 외에 관선도 동원되고 상륙과 지상전을 대비해야 하는 만큼 강도 높은 군사훈련을 계획하고 있다.)

4. 좌수군 예하의 5곳의 고을(순천부, 낙안군, 보성군, 흥양현, 광양현)에서는 병사를 모병하지 않지만 5관의 전선과 병장기 역시 오도 정벌에 동원한다.(5관의 병사들도 출병시기에 복무 중이던 병사들은 고토열도 정벌에 동원될 수 있다.)

장수들에게 명령을 내린 후 나는 장수들에게 단호하게 말했다.

“마음에 내켜하지 않는 군사들을 억지로 끌고 갈 필요는 없다. 스스로 동참하겠다고 자원한 병사들만으로 출병할 것이다. 출병할 병사들은 한 달 동안 강도 높은 훈련을 받겠지만 왜구를 두려워하지 않을 강병이 될 것이고 정벌이 끝나고 귀환한 후에는 한 말씩 다섯 차례에 걸쳐 다섯 말의 소금을 지급받게 될 것이다.”

이전과는 달리진 분위기에 장수들은 당황하는 것 같았지만 내 말이 끝나자 군례를 올리며 일제히 대답을 했고 각자의 진과 고을로 돌아갔다.

장수들이 돌아간 후 나는 좌수영 본영의 군관들을 소집해 군관들에게도 같은 명령을 내렸다.

“우리 전라좌수군은 다음 달에 왜구들의 본거지인 오도로 출병해 왜구들을 토벌하고 왜구들에게 끌려간 우리 백성들을 구해올 것이다. 좌수군의 병사들이 곧 복무기간이 끝나 집으로 귀가해야 하는 것은 알고 있지만 다음 달에 출병을 앞두고 있으니 출병을 앞둔 병사들은 집으로 돌아가는 것 보다는 훈련에 집중해야 할 시기이다. 본영에서 복무하고 있는 병사들 중에서 집으로 귀가하기를 바라는 병사들은 돌려보낼 것이다. 그러나 왜구 토벌에 동참하기를 희망하는 병사들은 이번 달에서 본영에서 복무하며 훈련을 받아야 할 것이다. 군관들은 병사들에게 조용히 이 사실을 알리고 오도 정벌에 동참할 의사가 있는 병사들을 파악하도록 하라.”

나는 군관들에게 일부러 정벌이 참가한 병사들은 보수를 지급한다는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

보수를 노리고 자원하는 병사들은 나오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때문이었다.

‘녹도진 병사들의 마음이 그렇다면 절이도와 인접한 발포진의 병사들도 왜구들에게 복수하기를 바라고 있을 가능성이 높아. 좌수영 본영의 군사들도 지난 전란에서 승리를 맛보았고 승리는 포상이 따른다는 것을 경험했으니 왜구들을 두려워하지 않을 거야.

내가 내린 명령은 장수들과 군관들을 통해 좌수군 병사들에게 알려졌고 하루 일과를 마친 병사들은 삼삼오오 모여 앉아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니 이게 무슨 일이야. 왜구들을 토벌하러 출병한다니.”

“잘된 일이지. 그동안 왜구들이 쳐들어와서 얼마나 난동을 부렸어. 지난달에도 왜구들과 싸우다가 좌수영으로 돌아오지 못한 사람들이 200명이 넘었잖아 이참에 한번 혼내줘야 다시는 함부로 쳐들어오지 못하지.”

“그래도 일부러 왜까지 쳐들어갈 필요가 있나.”

처음 말을 꺼냈던 조문부가 두려운 듯 말끝을 흐리자 같이 이야기를 나누던 정한손은 답답하다는 듯 말했다.

“그럼 왜구들에게 또 당할 텐가. 문부 자네 딸이 셋이지. 자네 딸들도 왜구들에게 당하면 좋겠나.”

그 말에 조문부는 발끈하며 화를 냈다.

“무슨 그런 흉악한 소리를 하나. 누가 왜구들에게 당해?.”

“지난달에 절이도의 처녀들이 왜구들에게 당했다는 것을 몰라서 그런 소리를 하나?. 모르긴 몰라도 손죽도와 시산도의 처녀들도 왜구들에게 많이 당했을 것이네. 그런데도 왜구들을 그냥 두고 봐야 하겠나?.”

정한손의 대답에 조문부는 다시 주춤거리며 말끝을 흐렸다.

“그래도 내 딸들까지 당하겠나. 모르는 일이지.”

“왜구들이 몰려오면 왜 안 당하겠나. 그것이야 말로 모를 일이지.”

조문부와 정한손이 대화를 주고받는 동안 듣고만 있던 성범동이 둘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무엇을 걱정하나. 정벌에 참여하고 싶지 않은 사람들은 집으로 돌려보내 준다는데. 그렇게 겁이 나면 집으로 돌아가면 되는 일 아닌가.”

성범동의 말을 들은 정한손은 비웃는 말투로 대답했다.

“집으로 돌아가면 이번 정벌에서 빠질 수 있을 것 같은가. 어차피 다음 달에 다시 군역으로 좌수영에 돌아올 텐데. 돌아오자마자 그대로 정벌군에 동원되는 것 보다는 이번 달 동안 여기에서 훈련이라도 받고 오도로 출병하는 것이 살아 돌아올 가능성이 더 높을 것이네.”

“아니. 다음 달에 출병한다는데 왜 정벌군에 동원된다는 것인가. 아까 군관 나리의 말씀 못 들었나. 집으로 돌아가겠다고 하면 집으로 보내주고 출병은 다음 달 초에 하신다는 말씀. 그러면 이번 달에 군역 할 차례인 병사들이 출병하는 것 아니겠나?.”

정한손의 말에 성범동이 발끈하며 대꾸했지만 정한손은 그것도 모르겠냐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자네 수군에서 몇 년 있었나. 어디 바다가 사람 마음대로 움직이는 곳인가. 바람 불고 파도치면 며칠간 배 못 뜨는 것은 흔한 일이고. 좌수사 영감께서 다음 달에 출병하려고 하시다가 날씨가 좋지 않아 출병하지 못하시면 이번에 군역으로 들어온 놈들이 군역기간 끝났다고 집으로 돌아가겠다고 하지 않겠나. 그럼 어떻게 되겠나. 결국 다시 군역기간 돌아온 우리가 나가게 되겠지.”

“그래도 그건 아직 모르는 일 아닌가.”

정한손의 대답을 들은 성범동은 모르는 일이라고는 했지만 정한손의 말이 그럴 듯하다고 여겼는지 말끝을 흐렸다.

“한손이의 말이 틀린 것이 없지.”

그들의 대화를 듣고 있던 강응적이 대화에 끼어들었다. 다른 병사들 보다 나이가 10살 가까이 많은 강응적은 병사들 사이에서도 어른 대접을 받고 있었다.

“더구나 지금 좌수영에 있는 우리들은 지난 전란 좌수사 영감을 모시고 왜구들과 싸운 경험이 있지 않은가. 좌수사 영감이나 군관 나리들은 기왕이면 우리들을 데리고 왜구들을 토벌하러 가고 싶으실 것이니. 일부러 며칠 기다리실 수도 있지 않겠나.”

강응적의 말을 들은 조문부와 성범동이 울상을 지으며 말했다.

“결국 좌수영에 남을 수밖에 없는가.”

“아이고 이번에는 진짜 큰일을 겪는가 보네.”

정한손은 그런 둘을 보며 놀리듯이 말했다.

“좋게 생각하게 어차피 피할 수도 없는 일이고 다녀오면 두둑한 포상이 있지 않겠나.”

“뭐 포상.”

포상이라는 말에 조문부와 성범동은 물론 주위에 있던 다른 병사들도 귀를 기울였다.

“생각해보게 조선에 쳐들어온 왜구들을 몰아내기만 했는데도 잘 싸웠다고 임금님께서 쌀과 면포를 내리지 않으셨나. 그런데 이번에 직접 왜구들의 소굴로 쳐들어가자 박살내고 돌아오면 그보다 더 큰 상을 내리시지 않겠나.”

포상이 있을 것이라는 말에 병사들은 기대하는 눈빛으로 과연 얼마나 큰 포상이 있을지 상상하기 시작했다.

“필시 포상이 있을 것이네. 임금님이 주시는 상 말고도 왜구들의 소굴을 토벌하면 왜구들이 노략질해 놓은 재물들을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르지. 듣자니 왜구들은 조선뿐만 아니라 명나라의 해안가에서도 노략질을 하고 사람들을 끌고 간다고 하니 왜구들의 소굴에는 조선과 명나라에서 노략질한 재물이 쌓여있을지도 모르는 일이지.”

강응적의 말에 몇몇 병사들은 재물을 기대하며 탐욕스러운 눈빛을 보였지만 성범동은 허풍으로 생각했다.

“형님. 왜구들이 재물을 쌓아놓고 있다면 바다를 건너 조선까지 노략질을 하러 오겠습니까?. 그리고 왜구들 소굴에 재물이 있다고 해도 뭐 우리들에게 국물이라도 떨어지겠습니까. 좌수사 영감과 군관 나리들에 나눠 가지시겠지요.”

성범동의 말이 끝나자 강응적은 성범동을 노려보며 말했다.

“재물이 있고 없고는 모르는 일이지만. 자네는 좌수사 영감께서 재물을 독차지 하실 분 같으신가?.”

“뭐 재물이 생기면 그렇지 않겠습니까. 높으신 분들 중에 재물을 싫어하시는 분이 어디 있었습니까?.”

“좌수사 영감은 다른 분들과 다르시네.”

“뭐가 다르시다는 말씀이십니까?.”

대화가 길어지자 정한손도 나서서 물었다.

“내가 나이가 있다 보니 여기저기서 주워듣는 게 있어. 지난번에 쌀과 면포가 포상으로 내렸을 때 임금님께서 내리신 쌀과 면포를 좌수사 영감께서는 욕심내지 않으시고 좌수영의 모든 병사들에게 공평하게 내리셨다고 하더군. 쌀, 면포와 함께 내린 비단도 장수들에게 나눠주셨고. 병사들에게 내려주시고 남은 쌀은 좌수영의 군량미로 보태셨다고 하네. 좌수사 영감께서 욕심을 부리셨으면 얼마든지 쌀과 재물을 차지하실 수 있으셨는데도 말이야.”

“그게 참입니까?.”

정한손이 놀랐다는 듯이 묻자 강응적은 정한손과 병사들을 둘러보며 다시 입을 열었다.

“좌수사 영감께서 좌수영에 오신 후로 좌수영에서 쌀밥을 먹는 사람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는가?.”

“형님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저희야 매일 보리밥이지만 좌수사 영감과 높으신 분들은 쌀밥을 드시지 않습니까?.”

성범동의 대답을 들은 강응적은 그럴 줄 알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다시 입을 열었다.

“아닐세. 좌수사 영감은 물론 우후 나리와 군관 나리들도 보리밥이나 조밥을 드신다네.”

“그게 정말입니까?.”

병사들이 놀란 표정을 지으며 묻자 강응적은 그런 것도 몰랐냐는 듯이 병사들을 바라보며 대답했다.

“좌수사 영감께서는 좌수영에 오신 날부터 매일 쌀에 보리나 조가 반씩 섞인 밥을 드신다고 하네. 좌수사 영감께서 보리밥이나 조밥을 드시는데 우후나 군관 나리들이 감히 쌀밥을 드실 수 있으시겠나. 좌수사 영감께서 오신 후로 우후나리와 군관나리들도 보리나 조가 섞인 밥을 드신다고 하네. 알겠나. 좌수영에는 쌀밥을 먹는 사람이 없네.”

강응적의 말을 들은 병사들은 놀라는 한편 좌수사가 대단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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