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선 수군이 되었다-59화 (59/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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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무분배

“하나” “왜구” “둘” “토벌”  “하나” “왜구” “둘” “토벌”

100여명의 병사들이 웃통을 벗고 머리 위에 통나무를 들고 군관의 명령에 따라 ‘왜구’, ‘토벌’을 외치고 있었다. 10명의 병사들이 한조를 이루어 초가집의 기둥만한 굵고 긴 통나무를 들고 목봉체조를 하면서 군관의 명령에 따라 구호를 외치는 장면은 보기만 해도 장관이었다.

“지금부터 10회를 반복한다. 몇 회?.”

“10회.”

“좋다. 10회 시작.”

“왜구” “토벌” “왜구” “토벌” “왜구” “토벌”

100여명의 병사들이 전라좌수영 인근의 해변에서 목봉체조를 하는 동안 전라좌수영 훈련장에서는 한 무리의 병사들이 창을 들고 창술을 훈련받고 있었다.

“이얏.”  “이얍.”

육진에서 전투경험이 군관들이 장창을 휘두르며 시범을 보이자 병사들은 창을 잡은 손에 힘을 주고 군관들의 동작을 따라하며 창을 휘둘렀다. 훈련장에서 병사들 땀을 흘리는 동안 바다에 나가있는 전선에서 땀을 흘리는 병사들도 있었으니 고토열도 정벌에 참여할 것을 결정한 격군들은 전선에 올라 북소리에 따라 노를 당기고 있었다. 해전의 가능성은 없다고 예상하고 있었지만 장거리 항해가 확실한 만큼 격군들 간에 호흡이 잘 맞도록 훈련에 훈련을 거듭하고 있었다.

좌수영 본영과 수군진에서 고토열도 정벌에 참가할 병사들을 모집한 것은 대성공이었다. 녹도진 만큼은 아니지만 녹도진과 인접한 발포진과 역시 흥양현 안에 자리 잡고 있는 사도진에서도 고토열도 정벌에 지원하는 병사들이 있었고 좌수영 본영에서는 녹도진 뭇지 않을 정도로 많은 병사들이 지원하여 충분히 많은 병력을 확보할 수 있었다. 고토열도 정벌에 지원한 병사들은 좌수영에 집결해 본격적으로 훈련이 시작됐고 지원하지 않은 병사들은 그대로 집으로 귀가하도록 조치했다. 각 수군진에 병사들이 빠진 자리에는 3월에 복무할 병사들이 도착하면서 병사들이 빠진 자리를 채우면서 한동안 좌수영 전체가 어수선했지만 며칠 시간이 지나자 곧 혼란은 잠잠해졌다.

정벌군의 군사훈련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자 출병준비와 좌수영의 지휘업무를 동시에 처리해야 하는 나는 당연히 정신없이 바빴다.

“안되겠어. 이러다가 내가 쓰러지겠다.”

내 앞에 쌓인 서류들과 두루마리를 보고 비명을 지른 나는 지금처럼 나 혼자서는 모든 업무를 처리할 수 없다고 판단하고 부하들에게 업무를 분담시킬 것을 결정했다.

‘절이도의 둔전과 피난민 마을의 관리는 지금처럼 흥양현감에게 맡기자. 어차피 흥양현의 군사들이 절이도를 관리하고 있으니 앞으로 계속 흥양현감이 관리하도록 하고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절이도의 일은 따로 보고할 필요가 없다고 지시하자.’

절이도를 흥양현감이 알아서 관리하고 지키라는 명령을 내린 후 곧바로 흥양현감에서 명령서를 작성해 보낸 나는 돌산도의 포로마을과 염전을 관리하는 일은 돌산도에 염전을 만들고 운영하고 있는 조천군에게 맡길 것을 작정했다.

‘돌산도도 절이도처럼 순천부사에게 맡기는 것이 자연스러울 것 같은데 돌산도에는 염전이 있고 염전에서 거두는 소금은 좌수영의 자금줄이 될 것이니 돌산도는 좌수영에서 직접 관리해야 한다. 고토열도 정벌이 끝난 후 왜인 포로들을 이주시킬 것도 생각해야 하니 더더욱 돌산도는 좌수영에서 직접 관리해야지.’

나는 조천군에게도 명령서를 써서 돌산도의 포로마을과 염전의 관리와 운영을 맡긴다는 명령을 내리고 염전의 소금 생산량과 두 번째 염전의 건설에 관한 업무가 아닌 이상. 특별히 좌수영에 보고할 필요는 없다는 명령을 내렸다.

이렇게 돌산도와 절이도의 관리를 조천군과 흥양현감에게 맡긴 나는 좌수영의 업무도 일부 내려놓고 싶었지만. 좌수영의 업무는 쉽지 않은 일이었다.

‘모든 업무를 내가 할 수는 없지만. 좌수영은 내가 확실하게 장악하고 있어야 하니 쉽게 업무에서 손을 뗄 수가 없구나. 우후 김시민에게 각 수군진에서 새로 복무하는 병사들을 관리하는 일을 맡기자 지금은 각 진의 병사들 까지 신경 쓸 여유가 없으니.’

좌수영 우후 김시민에게도 명령서를 내려 일부업무를 맡긴 나는 그동안 직접 훈련시키고 있던 총병 훈련에서도 한 걸음 물러날 생각을 했다.

‘그동안은 화승총이 조선인들에게 생소한 무기라서 직접 병사들을 훈련시켜 왔지만 이제는 숙달된 병사들이 있으니 총병 훈련도 부하들에게 맡기자.’

조선인들 중에서 화승총을 다룰 줄 아는 사람이 없는 만큼 병사들 중에서 재빠르고 영리해 보이는 병사 10명을 골라 총병으로 직접 훈련시켰었다. 내가 훈련시켰던 병사들이 이제는 어느 정도 숙달됐으니 그들을 훈련조교로 삼아 신병들의 훈련을 맡기고 나는 훈련계획을 세워주고 훈련조교들을 감독하는 역할만 할 생각이었다.

이렇게 하나씩 부하들에게 맡길 수 있는 업무를 맡겨가다 보니 상당히 많은 업무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이제는 그만큼 좌수영이 안정된 것 같아 뿌듯한 기분이 드는 것을 느꼈다.

‘처음 좌수사에 제수됐을 때만 해도 눈앞이 캄캄했는데 그래도 이제는 직접 모든 일을 하지 않아도 될 만큼 안정됐구나.’

손죽도에서 왜구들을 토벌하고 좌수영으로 귀환했을 때만해도 선전관이 기다리고 있다는 말에 혹시 패전의 책임을 물어 사약을 받는 것은 아닌지. 긴장했었다. 좌수영에 도착해서는 우후와 좌수군의 장수들이 보고 있는 앞에서 선전관에게 어명을 받고 전라좌수사로 제수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는 기쁘기보다 뒷감당을 어찌할지 부터 걱정했었다. 좌수영 본대의 패전과 좌수사의 전사로 좌수군의 사기는 바닥을 치고 있었고 방금 전까지 내 상관이었던 우후와 장수들은 좌수사로 제수된 소식을 듣고는 인상을 구기고 있었으니. 어찌해야 할지 막막하기만 했었지만 다행히 선조와 병조판서 정언신의 신임과 지원을 바탕으로 하나씩 문제들을 해결하고 좌수영을 안정시킬 수 있었으니 이제는 뿌듯한 생각만 들었다.

‘좌수영의 안정과 돌산도, 절이도의 둔전과 피난민들과 포로들의 처분까지 생각해보면 첩첩산중이었지만 이제까지 잘해왔다. 돌산도의 염전으로 자금 문제가 해결된 덕분에 마음 놓고 고토열도 정벌만 준비할 수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이제 고토열도 정벌만 무사히 끝내고 조선인들과 포로들의 가족들만 구해오면 당분간은 큰일이 없을 것 같으니 고토열도를 정벌하는 것만 생각하자.’

좌수영의 안정을 바탕으로 여러 가지 업무들을 내려놓을 수 있었지만 아직도 내가 직접 처리해야 할 업무는 많았다. 포로들에게 고토열도와 후쿠에 섬의 정보를 수집하는 것도 다른 사람에게 맡길 수는 없었고 포로들을 심문해 얻은 정보를 확인해서 정리하는 것도 내가 해야 할 일이었다. 무엇보다. 구체적인 작전계획을 세우는 것은 그 누구에게도 맡길 수 없는 내가 해야 할 일이었다.

부하들에게 보낼 명령서 쓰는 것을 마친 후 머리도 식힐 겸 포로들에게서 확인한 고토열도의 정보를 정리한 서책을 펼쳤다. 서책 중간 중간에는 후쿠에 섬의 지도와 고토 열도의 해도도 그려져 있었다. 서책을 보며 작전 계획을 생각하고 있었을 때 밖에서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좌수사 영감. 계십니까?.”

“그래 무슨 일이냐?.”

“남씨 노인이 좌수사 영감을 찾고 있습니다.”

남씨 노인이 찾아왔다는 말에 나는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 곧 나갈 것이다.”

남씨 노인은 청자를 만드는 도공들의 중에 가장 웃어른이었다. 남씨 노인이 나를 찾아왔다는 말은 청자를 만들어 왔다는 뜻이었다.

업무를 보던 방과는 다른 넓은 방에서 상석에 앉아있자. 잠시 후 백발의 노인이 허리를 굽히며 안으로 돌아왔고 두 명의 사내가 노인의 뒤를 따라 방안으로 들어왔다.

‘자식들과 같이 청자를 만든다더니 자식들인가 보군. 저 노인의 이름이 남천산이었지.’

“안녕하셨습니까. 영감마님.”

남천산이 먼저 나에게 인사를 올리자 남천산의 아들들로 보이는 사내들도 나에게 허리를 숙여 인사를 올렸다.

“그래 자네도 잘 지냈는가?.”

나는 남천산의 인사를 받으며 안부 인사를 전했고 남고산은 황송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내게 허리를 숙였다. 백발의 노인이 내 앞에서 허리를 숙이는 것이 보기에 좋지는 않았지만 이 시대는 철저하게 신분제 사회였고 정3품 당상관은 도공들이 감히 눈도 마주칠 수 없는 높으신 분이었다.

“염려해 주신 덕분에 잘 지냈습니다. 영감마님.”

“그래 내가 부탁했던 청자는 가져왔는가?.”

“예 말씀하신 대로 준비해 왔습니다. 영감마님”

청자를 가지고 왔다는 대답에 나는 설레이는 마음을 감출수가 없었다.

“그래 어서 들여오게 청자를 보고 싶군.”

“예 알겠습니다. 영감마님.”

남천산이 아들들에게 눈짓을 하자 사내들은 밖으로 나가 나무 상자를 하나씩 들고 왔다. 남천산이 상자를 열자 상자 안에는 볏짚이 가득 들어있었고 남천산은 조심히 볏짚 더미에 손을 넣어 청자를 하나씩 꺼내기 시작했다.

‘청자들이 깨지지 않도록 완충재로 볏짚을 넣었구나.’

남천산이 직접 하나씩 꺼낸 청자는 모두 24개에 달했다. 하나같이 푸른빛을 자랑하는 청자가 그 모습을 드러내자 나는 기쁨을 감추지 못하고 청자를 하나 들어올렸다.

‘너무나 아름답구나. 색은 말할 것도 없고 표면에 새겨진 무늬도 아름답다. 이것이라면 내가 소장해도 좋고 유럽 상인들이나 일본의 영주들에게 내놓는다면 그들은 이 청자를 얻기 위해 금과 은도 아끼지 않을 것이다.’

내가 청자를 마음에 들어 하자 남천산은 자랑스러워하며 청자를 자랑했다.

“영감마님의 말씀대로 청자의 크기는 이전보다 조금 작게 빚었습니다. 청자를 빚을 때부터 신경 써서 청자의 색이 이전에 만들었던 것 보다 더 진하게 만들었습니다.”

남천산의 말을 들으면서도 청자에 눈을 떼지 못한 나는 남천산의 말이 끝나자 청자를 내려놓고 물었다.

“새롭게 청자를 만드는데 어려운 점은 없었느냐?”

“청자를 빚을 때부터 유약을 바를 때 까지 일일이 신경 쓸 일이 많다보니 평소에 청자를 구울 때 보다 시간이 더 걸렸습니다. 특히 가마에서 청자를 구울 때는 유약의 바르는데 실수를 했는지 한번 실패해서 다른 청자와 다름없는 자기들이 구워져 다시 구워오느라고 시간이 이렇게 걸렸습니다.”

내 귀는 먼저 구운 청자들이 있다는 말을 놓치자 않았다.

“실패한 청자들은 어찌하였느냐?. 혹시 가지고 왔느냐?.”

“아닙니다. 영감 나리께 보여드리기 부끄러워 집에 놔두고 왔습니다.”

“혹시 청자들이 깨지지는 않았느냐?.”

청자가 깨졌냐는 질문에 남천산은 자존심이 상한 기색을 보이며 대답했다.

“소인자기를 굽는 일로 평생을 보냈습니다. 새로운 방법을 시도해 보는 것이라 유약의 양을 조절하는데 실패해 청자의 색이 지금 가져온 청자들 보다 못하지만 청자를 굽다가 깨트릴 정도로 솜씨가 미흡하지는 않습니다.”

청자가 무사하다는 대답에 만족한 나는 껄껄 웃으며 남천산에게 말했다.

“본관의 말을 오해했구나. 남도공의 솜씨를 의심하는 것이 아니라 유악을 잘못 바른 청자들도 남도공과 자녀들의 수고가 깃든 물건들이니 내가 사들이려 한다. 그 청자들도 모두 좌수영으로 가져오너라. 내가 값을 치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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