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선 수군이 되었다-60화 (60/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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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성심 아니면 두려움

나는 남천산에게 청자의 대금으로 쌀과 보리 그리고 면포를 내어주며 유약을 잘못 바른 청자들도 가져오면 값을 넉넉히 치를 것을 약속했다. 뜻밖의 제안에 남천산과 도공들은 기뻐하며 청자들을 가지고 좌수영으로 돌아올 것을 약속하고는 청자의 대금으로 받은 곡식과 면포를 달구지에 싣고 강진으로 돌아갔다. 남천산과 도공들이 돌아간 후 나는 청자를 손에 들고 어루만지며 기뻐했다.

이번에 청자를 가져온 도공들에게 쌀 한 섬과 보리 두 섬과 면포 세 필을 주었고. 남천산이 처음 좌수영에 불렀을 때도 청자를 주문하면서 쌀 한 섬과 면포 두 필을 주었으니 도공들도 불만은 없을 것이었다. 아니 한달 만에 쌀 두 섬과 보리 두 섬 그리고 면포 다섯 필을 받았으니 도공들의 평소에 수입 보다는 많이 받은 것이 확실했다. 그러나 청자를 보고 있으니 도공들에게 곡식과 면포를 내어준 것이 전혀 아깝지가 않았다.

‘흐흐흐 그 정도 곡식과 면포를 주고 이런 보물을 받았으니 내가 도둑놈이지. 도둑놈이야. 한국이었으면 절대 불가능한 거래였겠지만 지금은 조선시대 그것도 16세기니 가능한 일이지.‘

조선에서는 유교의 영향으로 도공을 비롯한 장인들의 신분이 낮고 대우가 형편없었지만 조선에서 만드는 도자기의 가치는 지금의 시대에도 결코 작지 않았다. 도자기를 제작하는 기술이 없었던 일본은 조선에서 만든 도자기를 보물로 여겼고 임진왜란 당시에는 도자기를 비롯해 많은 보물들을 약탈했을 뿐만 아니라 아예 도공들을 납치해가서 일본에서 자체적으로 도자기를 생산하는 데 열을 올렸다. 유럽 상인들도 명에서 만든 도자기와 비단을 유럽으로 가져다 팔면서 막대한 이익을 올리고 있었고. 나는 조선의 도자기가 명국의 도자기와는 다른 매력을 가지고 있으니 충분히 경쟁력이 있다고 생각했다.

‘일본의 상인들과 영주들에게 판매해도 좋지만 유럽 상인들에게도 청자와 백자를 소개하기만 한다면 충분히 높은 가격을 받을 수 있다. 내가 도공들에게 준 곡식과 면포의 100배 아니 1000배의 값은 충분히 받아낼 수 있어.’

나는 행복한 상상을 하며 웃음을 참지 못했다.

그 후로도 정벌 계획과 좌수영의 업무는 순조롭게 진행됐다. 남천산과 도공들은 약속대로 유악을 잘못 바른 청자를 가져왔다. 이전에 가져왔던 청자들 보다 색이 연하기는 했지만 잘 만들어진 청자들이었기에 나는 기꺼이 그 청자들도 구입하기로 하고 곡식과 면포를 지불했고 남천산은 매우 기뻐하며 다음 달에 다시 청자를 만들어 오겠다고 약속하고는 강진으로 돌아갔다. 얼마 후 또 한 무리의 도공들이 백자를 만들어 가지고 왔고 나는 백자의 품질에도 만족해 백자를 만들어온 도공들에게도 곡식과 면포를 지불하고 백자를 모두 구입했다. 생각했던 것 보다 두둑하게 보수를 받은 도공들 역시 매우 기뻐하며 다음 달에 다시 백자를 만들어 올 것을 약속하고는 돌아갔다.

군사들이 훈련을 거듭하고 있는 동안 좌수영 안쪽의 깊숙한 창고에는 100여 점의 청자와 백자가 잘 포장된 상태로 보관되어 있었고 내 방 한편에도 청자와 백자가 하나씩 자리를 잡고 있었다. 업무를 보다가 지칠 때는 청자와 백자의 아름다움 모습을 보며 마음의 위로를 얻었다.

1587년(정해년) 3월 26일 한성 경복궁

병조판서 정언신은 전라좌수사가 보낸 서신을 받고 선조에게 독대를 요청했다. 좌수사가 보낸 서신에는 4월 초에 고토열도로 출병할 것이라는 것과 함께 출병군의 규모와 작전 계획이 자세히 쓰여 있었다.

경복궁 내의 조용한 전각에서 정언신은 선조에게 좌수사가 보낸 서신을 내밀었다. 선조는 정언신이 내미는 서신을 받으며 정인신에게 입을 열었다.

“그래 전라좌수사가 출병날짜를 알려왔다고.”

“예 전하. 다음 달 5일경에 출병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정언신의 대답을 들은 선조는 기분이 좋은 듯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전라좌수사가 정말 대단하군. 좌수영에 많은 일이 있었다고 들었는데 그 모든 일을 감당하면서도 기어이 왜구들을 토벌할 준비를 마쳤으니 말이야.”

“그러하옵니다. 전하. 전라좌수사는 정말로 인재가 아닐 수 없습니다. 평범한 장수였다면 아직 까지도 좌수영을 수습하기 바빴을 것입니다.”

선조와 정인신 둘 다 전라좌수사 이대원을 높이 평가하고 있었다.

“정벌군의 규모가 2000명이 넘는다고 했지. 좌수사가 이전에 말했던 것 보다는 규모가 커졌군.”

좌수사 이대원은 한성에 상경했었을 당시에 선조와 정언신에게 군사 1000여명과 전선 8척이면 오도를 정벌하고 조선인들을 구출할 수 있다고 장담을 했었다.

“좌수군 군사들 중에 왜구토벌에 자원하는 군사들이 많아 출병할 병력을 확보하는데 어려움이 없었다고 합니다. 기왕이면 많은 병력이 출병하는 것이 승리할 가능성이 더 높지 않겠습니까. 전하.”

정언신이 좌수사를 두둔하자 선조도 크게 문제 삼지는 않았다.

“머릿속에서 계획한 것을 실제로 실천하다 보면 계획했던 것과는 차이가 나는 법이지. 군사들이 스스로 출병을 자원했다니 기특한 일이다. 이번에도 전라좌수군이 승전하고 돌아온다면 과인은 좌수군을 크게 포상할 것이다.”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전하.”

정언신은 선조에게 머리를 조아렸고 선조는 좌수사가 보낸 서신을 펼쳐보며 출정군의 규모를 확인했다. 병력 2000명에 전선이 12척(판옥선) 그리고 관선(왜선)이 4척 이렇게 총 16척의 전선이 출병할 예정이었다. 특히 조선을 침략한 왜구들을 몰아내기 위한 출병이 아닌 왜구들의 본거지를 토벌하기 위한 출병이라는 점에서 규모는 작지만 1419년에 있었던 대마도 정벌 이후 첫 왜구토벌이었다.

선조는 겉으로 내색하지는 않았지만 전라좌수군의 오도정벌이 성공하여 자신이 왜구들로부터 나라를 지키고 백성들을 구한 성군으로 기록되는 것을 기대하고 있었다.

“맡은 임무를 다하고 열심히 싸운 장수와 병사들이 상을 받는 것이 당연한 일이다. 전라좌수군이 지난 전란의 피해를 복구하고 왜구들의 토벌하는 역량까지 갖춘 것은 전라좌수사와 좌수군의 장수와 군사들이 모두 제 역할을 다했기 때문일 것이다.”

선조는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지만 정언신은 선조의 말만 듣고도 선조가 얼마만큼 전라좌수사 이대원을 좋게 보고 있고 좌수군의 오도정벌을 기대하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선조의 반응에 기분이 좋아진 정언신은 다시 한번 선조에게 고개를 조아린 후 입을 열었다.

“보면 볼수록 전라좌수사의 일처리 솜씨가 대단합니다. 좌수영에서 소금을 생산하고 있으면서도 전하께 말씀드린 것처럼 소금을 상인들에게 내다 팔지는 않고 있다고 합니다.”

정언신의 말을 들은 선조는 가볍게 웃으며 정언신의 말을 이었다.

“과인도 들어서 알고 있었다. 소금을 직접 팔지는 않는 대신에 인근의 어민들이 잡은 물고기들을 절여 상인들에게 팔거나 장에서 팔았다고 했지.”

“예 그렇습니다. 전하. 좌수군을 재건하고 정벌을 준비하자면 필요한 물품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을 텐데. 재물은 필요해도 소금을 직접 유통시키지는 않겠다고 한 약속을 지키려고 방법을 생각해낸 것 같습니다.”

돌산도에서 소금을 생산하기 시작한 이후에도 좌수영에서는 직접 상인들이나 주변 마을주민들에게 소금을 팔지 않았다. 생산한 소금을 군사들과 군사들의 가족들의 식량과 그들이 잡은 생선을 염장하는 데만 사용하겠다고 약속하고 염전건설과 소금의 생산을 허락받았던 나는 소금을 나눠주고 좌수영 인근의 어민들이 잡아온 생선을 사들였다. 냉장고도 없고 얼음도 구하기 어려운 조선에서 생선을 오래보관하기 위해서는 소금에 절이던지 말리는 방법 밖에 없었다. 그러나 어민들에게는 생선을 염장할 소금을 구하는 것도 큰 부담이었다. 잡은 생선은 곧 바로 상인들에게 팔거나 직접 요리해서 먹는 방법 밖에 처리할 방법이 없던 어민들은 소금을 나눠주자 선 듯 잡은 생선들을 가져왔다. 어민들에게서 구입한 생선들은 좌수영의 관비들과 군사들의 가족들을 동원해서 소금에 절였고 소금으로 염장해 내륙지역으로 이송할 때 까지 보관할 수 있게 된 생선은 곡식과 면포 혹인 철과 구리를 받고 상인들에게 팔았다. 나는 선조에게 한 약속을 어기지 않고 소금을 사용해 좌수군에서 필요한 물품들을 구할 수 있으니 좋았고. 어민들은 그대로 놔두면 상해서 먹지도 못할 생선들을 팔아서 소금을 구할 수 있었고 좌수영에서 소금으로 생선을 염장한 아낙들도 소금과 염장한 생선으로 보수를 받았으니 불만이 없었을 뿐 아니라. 상인들 역시 비싼 소금을 들이지 않고도 염장한 생선을 대량으로 확보할 수 있었으니 모두에게 만족스러운 거래였다.

“좋아. 과인과의 약속을 지킨 전라좌수사의 신의를 과인은 결코 잊지 않을 것이다. 작인 일에도 충성하는 장수이니 더 큰 일도 믿고 맡길 만 하지 않겠는가.”

“그렇습니다. 전하 전라좌수사 이대원은 전하에 대한 충성심이 대단한 장수입니다.”

선조는 전라좌수사의 이런 행동을 자신에 대한 충성으로 보고 만족했지만 정언신은 그 만큼 좌수사가 선조를 두려워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전하에 대한 충성심 때문인지. 아니면 전하를 두려워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전라좌수사의 이런 행동이 나쁘지는 않아. 전하를 두려워한다면 감히 배신하거나 반란을 일으킬 생각은 하지 못 할 테니 앞으로도 믿고 군사를 맡길 수 있고. 충성심이 강한 것이라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일이지.’

기분이 좋아진 선조는 자신은 너그러운 군주라는 듯 호기롭게 말했다.

“전라좌수사가 출병을 앞두고 있으니 따로 비단과 서신을 보내 좌수사를 격려해 좌수사의 사기를 올려줄 것이다.”

“전하. 출병을 앞두고 있는 장수를 격려하시는 전하의 은혜에 좌수사는 눈물을 감추지 못할 것이옵니다. 하오나 전장에 나가는 장수에게는 비단 보다 의미 있는 선물을 내리시는 것이 어떠하시겠나이까?.”

평소보다 기분이 좋은 상태였던 선조는 정언신의 대답에도 성내지 않고 궁금하다는 듯이 물었다.

“의미 있는 선물이라니 어떤 것이 있겠는가?.”

선조의 질문에 정언신은 주저하지 않고 대답했다.

“장수라면 누구라도 명마와 보검 그리고 좋은 갑옷을 마다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선조는 정언신의 대답이 그럴듯하게 들렸는지 잠시 고민하는 모습을 보였다.

“과연 과인의 생각이 짧았도다. 과인에게 바른말을 해주는 병판이야 말로 과인의 진정한 충신이다.”

“망극하옵니다. 전하.”

정언신은 다시 한번 선조에게 고개를 조아렸고 선조는 그럼 정언신에게 다시 입을 열었다.

“전라좌수사는 수군장수이니 명마를 내리는 것은 합당하지 않고 갑옷과 검은 지난 번 상경하였을 때에 수은갑옷과 검을 내렸으니 이번에는 좋은 활을 내리는 것이 좋겠구나.”

*참고자료*

고토열도

고토 열도(五島列島) 나가사키현 서쪽의 동해와 동중국해의 경계에 있는 섬들이다. 북쪽부터 나카도리섬(中通島), 와카마쓰섬(若松島), 나루섬(奈留島), 히사카섬(久賀島), 후쿠에섬(福江島) 등 5개의 섬을 중심으로 140개의 섬이 있다. 열도의 길이는 약 85km이며 나가사키시로부터 약 100km 떨어져 있고 제주도에서 약 180km 떨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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