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선 수군이 되었다-63화 (63/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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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각궁

내가 일어서자 나를 부축하던 이운룡은 나를 놔 주었다. 내가 똑바로 서는 것을 확인한 이운룡은 흑각궁을 들고 있던 병사에게서 활을 받아 나에게 내밀었다.

나는 정중한 자세로 활을 받은 후 선조가 내린 흑각궁을 높이 들고 장수들에게 외쳤다.

“주상전하께서 흑각궁을 내리셨으니 이것은 우리 전라좌수영에 다시없을 큰 영광이니라. 이것은 저하께서 나 이대원에게 내리신 것이 아니라 전라좌수사에게 내리신 것이니 곧 전라좌수군에 내리신 것 과 다를 것이 없을 것이다. 오늘 전라좌수영의 모든 장졸들은 술과 고기를 나누며 주상전하께서 전라좌수군에 내리신 은혜를 축하하여야 할 것이다.”

내 말이 끝나자 좌수영의 장수들은 함성을 외쳤다.

“주상전하 천세.”

“천세 천세 주상전하 천세.”

“감축 드립니다. 좌수사 영감”

장수들의 함성이 잦아들자 나는 장수들에게 외쳤다.

“이미 술과 음식이 준비되어 있으니 무엇을 더 기다리겠느냐. 어서 가서 오늘 저녁은 마음껏 먹고 즐기도록 하라.”

“명을 받듭니다. 좌수사 영감.”

장수들이 기뻐하며  술상을 재촉하기 위해 본영 안으로 향하자 나는 이운룡에게 함께 할 것을 권했다.

“오랜만이지 이렇게 정말 반갑군.”

“무탈하셨사옵니까. 좌수사 영감 감축 드립니다.”

“술과 음식이 준비되어 있으니. 나와 함께 가세 오랜만에 술잔을 기울이며 밤새 밀린 이야기를 나눠보세.”

“소인은 공무가 바빠 오늘은 이만 돌아가도록 하겠사옵니다.”

이운룡은 뜻밖에도 돌아가겠다고 했다.

“이미 저녁이 다 되지 않았나. 저녁도 먹어야 하니 오늘은 좌수영에서 푹 쉬고 내일 돌아가지 그러나.”

내가 이운룡에게 권하자 이운룡은 나에게 다가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좌수사 영감께서 곧 큰일을 하시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좌수영의 장수들과 나누실 말씀이 많으실 텐데 외인인 저는 그만 물러나도록 하겠습니다.”

이운룡 대답을 들은 나는 나도 모르게 멈칫거릴 정도로 놀랐다.

‘역시 선조의 주변에서 일하는 선전관은 다르구나. 고토열도 정벌은 조정에서 논의되지 않았는데도 알고 있을 정도니.’

내가 놀란 나머지 아무 말도 하지 못하자 이운룡은 나에게 미소를 지으며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소인은 전하의 어명을 전하고 교지를 전달하는 선전관이옵니다. 주변에는 듣는 이야기가 많사옵니다. 한성은 물론 조정에서도 소인만큼 이일을 알고 있는 자는 손에 꼽을 정도이니 너무 염려하지 마시옵소서.”

“그래 알겠네. 그리고 좌수영의 상황을 이해해줘서 고맙네.”

이운룡은 사람 좋아 보이는 미소를 지으며 나에게 말했다.

“이번에도 틀림없이 대승을 거두시고 돌아오실 테니. 조만간 다시 뵈어야할 것 같사옵니다. 그때는 소인에게도 술 한잔 내리 실 줄을 기대하겠사옵니다.”

“물론이네. 그리 오래 걸리지는 않을 테니 걱정 말게.”

“그럼 대승을 거두시기를 기원하겠나이다. 좌수사 영감.”

인사를 마친 이운룡은 군사들을 거느리고 황급히 좌수영을 떠났다. 나는 이운룡의 마음 씀씀이가 고마웠다.

‘이운룡을 따라온 군관과 군사들은 고토열도 정벌계획을 모르고 있겠지. 선조와 정언신 대감 그리고 선조의 몇몇 측근들만 알고 있는 기밀일 테니 말이야. 지금 좌수영에는 출병할 군사들이 술과 음식을 기다리고 있으니 그 광경을 한성에서 내려온 군관과 군사들이 봤으면 이상하다고 생각했을 거야. 전쟁이 벌어진 것도 아닌데 2000명이 넘는 군사들이 좌수영에 모여 있으니 말이야.’

이운룡 장군이 좌수영의 자세한 상황은 모르고 있었겠지만 좌수군의 장수들이 좌수영에 모여 있고 좌수영이 잔치를 준비하는 시끌벅적한 분위기였으니 군사들이 모여 있다는 것을 짐작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내 입장을 생각해 저녁밥도 먹지 않고 돌아간 이운룡 장군에게 고마운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고토열도를 정벌하고 돌아오면 이운룡 장군과 같이 자리를 가질 것을 다짐한 나는 아전들에게 상을 차릴 것을 명령했다.

이운룡 장군과 한성에서 온 군사들이 돌아가자 본격적으로 상이 차려졌다. 좌수영의 마당에는 멍석이 깔렸고 멍석 위에는 밥과 음식이 차려진 밥상이 놓였다. 상이 차려지자 군사들은 밥상을 하나씩 차지하고 자리에 앉았다. 나와 장수들은 마당이 내려다보이는 대청에 앉았고 대청에도 곧 음식상이 들어왔다. 조선에서는 사람마다 하나씩 1인분의 밥상이 차려졌다. 특히 잔치나 국가 단위의 큰 행사가 벌어지는 날에는 행사에 동원된 군사들에게 각각 밥상을 차려주어 군사들은 한사람 몫의 음식이 차려진 상을 각각 하나씩 받고 자신의 상에 올라온 음식을 먹었다.

이날 좌수영에서 벌어진 잔치도 모든 장수들과 군사들이 똑같이 상을 하나씩 받았다. 물론 품계나 직위에 따라 상위에 차려진 음식의 차이는 있었지만 모두 상을 하나씩 받은 것은 차이가 없었다.

군사들이 모두 자리에 앉자 나는 대청에서 일어나 군사들 앞으로 나갔다. 내가 일어나자 장수들도 자리에서 일어났고 자리에 앉아있던 군사들도 일어나려고 했다. 나는 재빨리 손을 들고 외쳤다.

“모두들 그 자리에 그대로 앉아라. 일어날 필요 없다.”

내 말에 군사들은 다시 자리에 앉았고 잠시 눈치를 보던 장수들도 다시 자신들의 자리에 앉았다. 나는 대청 위에 서서 군사들을 바라보며 외쳤다.

“오늘 이 자리에 함께한 우리 전라좌수군의 군사들이여 나는 너희들을 진심으로 존경한다.”

좌수사가 느닷없이 수군군사들을 존경한다고 하자. 군사들은 무슨 소리인가 싶었는지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오늘 우리가 이 자리에 함께 한 이유가 무엇이냐. 무엇을 위해 너희가 집으로 돌아가지도 못하고 한 달이나 더 좌수영에서 지냈느냐?.”

“왜구를 토벌하기 위해서 입니다.”

내 외침에 대답하는 군사가 있었다.

“그렇다 왜구들을 토벌하고 왜구들에게 끌려간 우리의 친구들을 우리의 가족들을 구해오기 위해 너희는 지난 한 달간 많은 훈련을 받았다. 우리 친구들과 가족들을 괴롭히고 노략질한 왜구들을 두려워하지 않고 왜구들을 토벌하기 위해 가족들과 지내는 시간도 포기한 너희의 용기와 수고를 나는 진심으로 존경한다.”

“와아~”

군사들이 일제히 함성을 질렀다. 잠시 동안 함성 소리를 듣고 있던 나는 함성 소리가 잦아들자 손을 들어 군사들을 진정시키고 말을 이었다.

“우리는 곧 지난 전란 당시 손죽도와 시산도 그리고 절이도를 침입하고 우리 친구들과 가족들을 노략질한 왜구들의 본거지인 오도로 출병할 것이다. 오도열도의 가장 큰 섬이자 왜구들의 거점인 복강도에 상륙하여 왜구들을 토벌하고 왜구들에게 끌려간 우리의 친구들과 가족들을 구출할 것이며 왜선들을 불태워 다시는 조선을 침략할 생각을 하지도 못하도록 본보기를 보일 것이다.”

“와아~”

내 말에 군사들은 다시 함성을 질렀다. 대대로 수군으로 군역을 지는 군사들 중에는 복무하지 않는 기간에는 내륙지역에 사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대다수는 해변가에 살며 농사와 어업을 병행하며 사는 사람들이었다. 어업으로 생업을 이어가는 사람들에게 가장 두려운 것 중에 하나가 자연재해와 함께 왜구였다. 조선시대에 왜구들은 직접 육지에 상륙해 식량과 재물을 약탈하고 사람들을 잡아가기도 했지만 고기잡이를 위해 바다에 나온 어부들을 납치해가는 일도 심심치 않게 발생했다.

당연히 수군으로 복무하는 장정들 대부분이 왜구들을 두려워하기 마련이었고 이들에게 왜구들을 토벌하고 왜구들에게 끌려간 친구들을 구해오자는 말은 정말로 속 시원하고 후련한 소리였다.

“왜구들을 토벌하자. 친구들을 구해오자.”

“왜구 토벌” “왜구 토벌”

“전라좌수군 천세,  좌수사 영감 천세.”

흥분한 군사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함성을 질렀고 왜구들을 토벌하자고 외쳤다. 그러다가 일부 군사들이 천세까지 외치자 나는 지나치다는 생각이 들어 손을 들어 군사들을 진정시켰다.

“오늘은 그동안 왜구들을 토벌하기 위해 수고한 우리 전라좌수군의 노고를 위로하기 위해 준비한 자리다. 그동안 훈련을 받느라 수고가 많았다. 전라좌수군의 모든 장수들과 군사들이 함께 땀을 흘리며 무술을 연마하고 손에 굳은살이 생길 정도로 병기와 노를 잡았으니 우리 전라좌수군이 왜구들을 토벌하고 친구들을 구출해서 돌아오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 승전하고 돌아오면 오늘보다 더 큰 축하를 받을 것이며 특히 이번 정벌에서 용감히 싸운 군사들은 내 결단코 잊지 않고 포상할 것이니 용감히 싸워 포상을 받도록 하여라.”

“와아~”

군사들이 다시 함성을 지르자 나는 군사들이 천세를 외치기 전에 재빨리 외쳤다.

“본관이 먼저 잔을 들 것이다. 모두들 앞에 놓인 잔을 들라.”

내가 먼저 술잔을 들자 좌수영에 모인 모든 장수와 군사들이 일제히 상에 놓인 술잔을 들었다.

‘조선에서 건배를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오늘 같은 날 그냥 지나칠 수는 없지.’

“이 잔의 술로 전라좌수군의 승전을 기원할 것이다. 잔을 비운 후 모두들 마음껏 먹고 즐기도록 하라.”

잔을 든 나는 그대로 군사들 앞에서 힘차게 외쳤다.

“우리 모두는 승리하고 반드시 돌아올 것이다.”

내가 군사들 앞에서 외친 후 곧바로 잔에 든 술을 들이마시자 장수들과 군사들도 일제히 잔을 비웠다. 군사들은 잔을 비운 후 왁자지껄하게 떠들며 상에 놓인 음식을 입으로 가져갔고 나도 자리에 앉아 장수들과 함께 식사를 시작했다.

장수들은 군사들의 반응을 보며 좀 놀란 것 같았지만 나는 당연한 반응이라고 생각했다.

‘이 당시에 군역을 지는 장정들 특히 수군에서 복무하는 장정들 대부분이 힘없는 일반 백성들이지 군역을 지고 세금을 내는 일반 백성들 억눌리고 생계를 위해 땅에서 바다에서 땀 흘리는 이들에게 무기를 주고 군사훈련을 시키며 왜구들을 토벌하고 돌아오자고 했고 승리하고 돌아오면 큰 상을 내리겠다고 했으니 군사들이 통쾌하게 여기는 것도 무리는 아니지 일생을 살면서 이런 저런 일로 쌓인 것이 많은 군사들일 것이고 억울한 일을 당했어도 어디 속 시원하게 분풀이 한번 못했을 텐데. 왜구들에게 복수하러 가자고 했으니 왜구들을 두려워했던 만큼 흥분될 정도로 기대하고 있을 거야.’

물론 군사들에게 단순히 왜구들과 싸우러 가자고 했으면 나서는 군사는 하나도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좌수군의 군사들은 정해왜변으로 왜구들에 대한 감정이 쌓여있는데다가 정해왜변을 승리로 이끈 나의 지휘능력을 믿고 있는데다가 지난 한 달간의 훈련으로 자신감 까지 가진 상태였다. 지난 한 달간 나는 군량과 재물을 아낌없이 풀어서 군사들을 배불리 먹이고 병장기와 전선을 철저하게 정비했다. 그 모든 것을 지켜보고 체험한 군사들은 왜구들과 싸워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지게 되었고 이번 정벌이 승리할 것이라고 믿고 있기에 이렇게 환호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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