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선 수군이 되었다-65화 (65/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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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병

“출병을 앞두고 있는데 왜 너를 불렀겠느냐?.”

사화동은 이번에도 침착하게 대답했다.

“장군께서는 오도를 정벌하실 계획이시니 소인을 길잡이로 쓰시려는 것 아니십니까.”

사화동의 대답을 들은 나는 고개를 저으며 사화동에게 말했다.

“대답이 틀린 것은 아니지만 절반만 맞췄다. 내 오늘 너를 불러낸 것은 네게 살 수 있는 기회를 주기 위함이니라.”

살 수 있는 기회라는 말에 사화동은 눈을 크게 뜨고 나를 바라보았다.

“살고 싶으냐. 네가 마음만 먹으며 조선에서 네 처자식과 함께 얼마든지 살 수 있으니라. 몸은 고되겠지만 밥을 굶지는 않을 것이고 처자식과 함께 지낼 수 있을 것이다. 어떠냐. 살고 싶으냐?.”

내 질문이 끝나기 무섭게 사화동은 고개를 땅에 박으며 외쳤다.

“살려주소서. 장군 살려만 주시면 장군께 충성하는 개가 되겠습니다. 장군.”

그동안 사화동을 몇 번 심문했었지만 사화동에게 살려주겠다고 확답을 준적은 없었다. 다른 포로들과 달리 조선인으로 왜구들의 앞잡이가 된 사화동의 신분이 조정이나 선조에게 알려진다면 사화동은 알짤 없이 참수형을 당할 것이 확실했다. 그 사실을 알고 있는 나는 사화동이 필요하다고 생각됐지만 지금까지 목숨을 구해줄 것을 확실히 약속하지 않고 있었다.

겉으로는 침착하게 행동하고 있었지만 살려주겠다는 약속도 없이 정보만 빼가자 반쯤은 포기하고 있었던지 사화동은 살려준다는 말에 격렬하게 반응했고 나는 그런 사화동에게 냉정한 말투로 말했다.

“진정 살고자 하느냐?.”

“살고 싶습니다. 장군 살려만 주신다면 무슨 짓이라도 하겠습니다.”

“좋다. 그럼 너는 지금부터 조선인이 아닌 왜인이 되어야 한다.”

뜻밖의 말에 놀랐는지 사화동은 나를 바라보았고 손대남 역시 놀란 기색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네가 조선인이라는 사실이 알려진다면 너는 반드시 죽는다. 네가 오도정벌에 참가해 큰 전공을 세운다고 하더라도 조선인이 왜구들의 길잡이를 했다면 결코 죽음을 면할 수 없을 것이다. 네가 살길은 오직 하나 네가 왜인이 되는 것이다.”

사화동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죄송하지만 자세히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장군 소인이 왜인이 되는 것이 왜 살길인지 소인은 어리석고 무식해서 그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네가 조선인이라면 조선을 배신한 너는 살아남지 못하겠지만 왜인 포로로써 오도정벌에 종군해 전공을 세운다면 항왜로 인정받아 충분히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다. 이제부터 너는 조선인 사화동이 아닌 오도출신의 왜인이다. 네 아비가 바다에서 고기를 잡다. 오도로 떠밀려간 조선인이기에 너는 조선말을 아는 것이고. 네 어머는 일본인이다. 네 아비는 오도에서 네 어미를 만나 오도에 정착했고 너는 오도에서 태어났지만 아비에게 조선말을 배운 것이다. 알겠느냐?.”

내말을 들은 사화동은 희망에 물든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며 물었다.

“소인이 항왜가 된다면 살 수 있는 것입니까?.”

“전라좌수사인 본관이 장담하겠다. 네가 항왜의 신분으로 오도정벌에 종군한다면 네 목숨은 물론 제 처자식 까지 좌수영으로 구해올 것이다. 이미 알고 있겠지만 오도의 왜인들은 우리 전라좌수군의 화력을 당해낼 수 없다. 나는 왜구들을 토벌하고 조선인들을 구해오는 것은 물론 너를 비롯한 좌수군에 포로로 잡혀 있는 왜인들의 처자식들 까지 모두 구출해서 좌수영으로 데려올 것이다. 너희도 달리 먹고 살길이 있었으면 굳이 바다를 건너서 조선까지 와 노략질을 벌이지는 않았을 테니. 너희에게 먹을 양식과 일할 땅을 주고 처자식들과 함께 조선에서 살도록 돌봐줄 것이다.”

내말이 끝나기 무섭게 사화동은 바닥에 머리를 찧으며 외쳤다.

“장군. 소인 평생토록 장군께 충성하는 개가 될 것입니다.”

“됐다, 그런 마음가짐이면 네 처자식들과 평생 밥걱정 없이 살 수 있을 것이다.”

사화동은 큰 소리로 충성을 맹세했고 나는 그런 사화동을 바라보며 손대남에게 명령을 내렸다.

“이놈이 너무 흥분한 것 같으니 그만 옥사로 데려가게 내일 날이 밝으면 다시 문초할 것이네.”

“예 좌수사 영감.”

사화동은 손대남에게 끌려 바닥에서 일어났고 손대남은 사화동을 끌고 밖으로 나갔다. 사화동은 손대남과 군사들에 의해 좌수영 옥사로 다시 끌려갔다.

‘됐다. 사화동이 충성을 맹세했으니 고토열도까지의 길잡이는 해결됐다.’

후쿠에 섬에 상륙한 후에도 사화동의 지식과 경험은 출정군에 큰 도움이 될 것이 분명했다.

사화동이 아닌 다른 조선인에게 왜인의 신분으로 살라고 한다면 길길이 날뛰고 쌍욕을 퍼부을 것이 분명하지만 사화동은 오도에서 이미 일본인으로 살아왔으니 사화동에게는 앞으로도 왜인의 신분으로 사는 것이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사화동은 자신의 신분 보다는 가족들과 함께 사는 것이 더 중요한 문제였다.

‘사화동은 고토열도 정벌 이후에도 쓸모가 많아. 고토열도 정벌 중에 갤리온이나 유럽 상인들을 만나지 못하면 사화동을 길잡이로 삼아 히라도 섬에 까지 진출할 수도 있으니.’

고토열도 정벌 이후 유럽 상인들과의 무역을 생각하고 있었던 나는 무역항인 히라도에 다녀온 경험이 있는 사화동을 그냥 처형당하도록 놔둘 수는 없었다. 이렇게 사화동의 문제를 처리 한 후 내일을 위해 쉴 생각으로 방으로 들어갔다.

그로부터 이틀 뒤 아침 좌수영 항구에는 16척의 전선이 출항준비를 마치고 대기하고 있었고 전선 안에는 2000여명의 군사들이 승선해 있었다. 새벽부터 항구에 나와 전선마다 군량과 화약 등 보급물자가 제대로 실려 있는지 확인했던 전선에 적재된 물자를 확인하고 군사들의 승선을 명령했다. 출정군 군사들이 모두 전선에 오르자 나는 내 옆에 서 있던 김시민을 바라보며 말했다.

“우후. 그럼 좌수영을 부탁하네.”

“심려 놓으십시오. 좌수사 영감.”

김시민과 인사를 나눈 후 나는 작은 목소리로 김시민에게 말했다.

“내가 맡긴 장계와 서신 후 보름동안 보관하도록 하게 보름 후에도 내가 돌아오지 않거나 따로 연락을 보내지 않으면 서신은 병조판서 정언신 대감에게 보내고 장계는 주상전하께 올리도록 하게.”

내 말을 들은 김시민은 긴장된 표정이었지만 다부지게 대답했다.

“그럴 일은 없을 것이옵니다. 이번에도 분명히 대승을 거두고 돌아오실 테니. 좋은 술을 준비해 놓고 승전 축하연을 준비할 것입니다.”

긴장한 표정으로 축하연을 준비하겠다는 김시민의 말에 나는 웃음이 나올 것 같았지만 가까스로 참았다. 가볍게 김시민을 격려한 나는 좌수군 상선에 올랐고 손대남과 이언세 그리고 김개동을 비롯한 호위병들이 내 뒤를 따라 상선에 올랐다.

상선에 오른 나는 망루에 올라 전선들을 바라보았다.

‘판옥선 12척, 관선 4척, 군사 2000명 이들의 생명에 내 손에 달려있구나.’

1419년 대마도 정벌에 동원된 전선이 227척 군사의 수가 17000명에 달했으니 그에 비하면 초라해 보일 정도로 작은 규모였지만 나는 자신이 있었다.

전선들을 두 눈으로 바라본 후 나는 힘차게 명령을 내렸다.

“출항하라~.”

“출항하라.”

내 명령을 손대남이 다시 한번 크게 외쳤고 상선이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전선들이 바다로 나가는 장면은 언제 봐도 장관이었지만 나는 전선을 바라보면서도 머릿속에서는 이번 정벌을 생각했다.

‘지피지기 백전불태.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번 싸워도 위태로움이 없다고 했다. 적의 전력은 이미 파악했고 지금 규슈지역은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규슈정벌이 한창일 테니 고토열도에 병력이 증원됐을 가능성은 없다.’

규슈의 최남단의 사쓰마를 기반으로 삼아 규슈 남부지역을 장악하는데 성공한 시마즈 요시히로는 규슈 전 지역을 장악할 목적으로 대군을 일으켜 규슈 북부지역으로 진군한다. 시마즈군의 공격을 받게 된 분고의 영주 오토모 소린은 군사를 일으켜 시마즈군과 싸웠지만 시마즈 군은 전국시대의 일본군 중에서도 용맹하고 사납기로 유명했고 시마즈 가문의 본거지인 사쓰마 지역은 일본에서도 조총의 생산지로 유명한 지역이다. 시마즈 군의 맹공에 규슈 중부지역의 영지들 까지 시마즈에게 항복하자 사실상 홀로 시마즈에 저항하게 된 오토모 소린은 도요토미 히데요시에게 구원을 요청했고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시마즈 요시히로에게 더 이상의 진군을 멈추라고 경고했지만 승세를 탄 시마즈군이 히데요시의 경고를 무시하고 오토모 소린의 영지에 대한 공격을 멈추지 않자. 무려 20만 대군을 일으켜 규슈로 진군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본군을 포함한 20만 대군이 규슈에 상륙한 것이 지난달 3월 규슈 전 지역은 도요토미 히데요시와 시마즈 요시히로와의 전쟁으로 정신이 없을 시기이고 고토열도를 통치하던 오무라 스미타다 역시 4월 중에 병사할 것이니 고토열도는 지금 무주공산과 다름없어 고토열도의 왜구들을 지원할 군대는 없다.‘

내가 고토열도 정벌을 계획했던 이유 중의 하나가 일본 특히 규슈의 현재 상황 때문이었다. 고토열도는 규슈 북부의 히젠 영지의 일부지역을 통치하던 오무라 가문의 영토였고 영주인 오무라 스미타다는 지금 중병을 앓고 있었다. 스미타다의 아들 오무라 요시아키가 아버지를 대신해 영주의 업무를 보고 있었지만 영지인 히젠이 포함된 규슈 전 지역이 전쟁터가 됐으니 지금은 오무라 요시아키나 오무라 가문이 고토열도에 신경을 쓸 여유가 없었다.

후쿠에 섬은 물론 고토열도의 모든 섬들이 규슈의 오무라 가문의 지원을 받지 못하는 지금이 바로 고토열도를 정벌한 좋은 기회라고 판단한 것이다. 눈으로는 전선들을 바라보며 고토열도와 규슈지역에 대해 생각하던 나는 출병하는 전선들이 모두 항구를 빠져나온 것을 확인한 후 손대남에게 명령을 내렸다.

“선봉은 녹도군이다. 녹도만호에게 주변의 경계를 철저히 하라고 이르라. 모든 전선은 녹도전선의 뒤를 따른다.”

“예이. 알겠습니다. 좌수사 영감.”

내 명령이 떨어지자 좌수군 상선에서는 깃발로 녹도전선에 신호를 보내 내가 명령을 내렸다는 것을 알렸다. 잠시 후 상선에는 단정이 바다로 내려졌고 명령문을 전하는 전령은 단정을 타고 녹도전선으로 가서 녹도만호 이순신에게 명령문을 전달했다. 전령이 타고 가는 단정은 좌수영의 전선을 건조하는 목수들이 제작한 보트였다. 상륙용 보트의 필요성을 느낀 나는 한국에서의 기억을 떠올려서 10명의 군사들이 노를 젓는 보트를 설계했고 그 그림을 목수들에게 보여주며 보트의 제작을 명령했다. 보트는 이전까지 조선에서는 사용된 적이 없는 배였지만 전선을 건조하던 목수들답게 그림을 보고 어렵지 않게 보트를 제작하는데 성공했다. 출정군의 모든 전선(판옥선)에는 선체의 양 측면에 단정(보트)이 두 척씩 매달려있었으니 전선마다 네 척씩의 단정이 부착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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