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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륙전야
내가 보낸 명령문을 확인한 이순신은 관선을 내보내 주변 바다를 정찰하게 했다. 녹도만호 이순신은 녹도진 소속의 판옥선 2척과 관선 2척을 지휘하고 있었고 이순신이 지휘하는 전선들이 함대의 선두에서 달리고 있었으니 이순신은 출정군의 선봉장이었고 녹도진의 군사들은 선봉대였다.
이순신 장군이 속도가 빠른 관선으로 내보내 정찰을 하는 것을 보며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순신 장군에게 정찰과 선봉의 임무를 맡겼으니 안심할 수 있지. 길 안내로 사화동도 녹도전선으로 보냈으니 함대가 엉뚱한 곳으로 가는 일은 없을 것이다.’
전라좌수군 함대가 출병한 이후 내가 내린 명령은 그것이 전부였다. 이미 출항하기 전부터 좌수군 함대는 후쿠에 섬의 동쪽 항구를 목표로 남진할 계획이었으니 모든 전선들은 바다에 나오기 무섭게 뱃머리를 남쪽으로 향하고 달리고 있었고 이순신 장군을 선봉장에 임명하여 모든 전선들은 녹도전선의 뒤를 따르도록 했으니 좌수군의 전선들은 녹도전선의 뒤를 따라 일정한 거리를 두고 달렸다.
상선에서는 군관 손대남과 진무 이언세가 군사들을 지휘하며 배를 몰고 있었으니 내가 하는 일은 망루에 올라 전선들이 같은 방향으로 잘 가고 있는지 지켜보는 것이 전부였다. 바쁘게 움직이고 있는 군사들이 보기에는 좌수사가 아무 일도 하지 않고 게으름을 피우는 것으로 보이겠지만 갑주차림으로 장검을 차고 군사들이 보이는 자리에 버티고 있는 것도 좌수군의 사령관으로써 중요한 일이었다.
손대남과 이언세는 녹도진 소속으로 녹도전선에 탑승하고 있어야 하지만 누구보다 믿을 수 있는 심복인 두 사람을 나는 좌수영에 붙잡아 두고 있었다. 이순신 장군이 녹도만호로 부임한 이후 이순신이 녹도진에 적응할 수 있도록 손대남과 이언세를 잠시 녹도진으로 돌려 보냈었지만 곧 두사람의 빈자리를 느낀 나는 보름 만에 두 사람을 다시 좌수영으로 불러들이고 그 둘을 좌수영 소속으로 임명해 버렸다. 그 덕분에 나는 좌수영에서도 계속 손대남과 이언세를 부릴 수 있었고 상선을 지휘도 그들에게 맡길 수 있었다.
선조에서 하사받은 수은갑주 차림에 역시 선조에게 하사받은 장검을 차고 망루에 서서 전선들을 지켜보던 나는 곧 지루해졌지만 다리에 힘을 주고 버텼다.
‘계절이 봄이라고는 하지만 바닷바람은 아직도 쌀쌀하구나. 바닷바람이 차지만 총사령관이 군사들 눈에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은 군사들의 사기에 영향이 있을 테니 조금만 더 버티자.’
망루 위에서 한 시간 가량 더 버티던 나는 그만하면 됐다는 생각에 망루에서 내려왔다. 망루에서 내려와 손대남을 부른 나는 손대남에게 전선의 지휘를 맡겼다.
“손군관이 상선을 지휘하도록 하게 적을 발견하거나 함대 전체에 영향을 끼치는 일이 발생하면 즉시 나에게 알리고 그 외에 상선을 운항하는 일은 손군관이 지휘하도록 하게.”
“예 좌수사 영감.”
손대남에게 지휘권을 맡긴 나는 선실로 내려왔다. 이순신에게 선봉을 맡겼고 사화동이 길 안내를 하고 있으니 후쿠에 섬에 도착할 때 까지 적선을 만나지만 않는다면 별일은 없을 것으로 판단한 나는 선실에 도착하자마자 갑주를 벗어놓고 편한 옷차림으로 자리에 누웠다. 후쿠에 섬에 도착하기 전에 나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바로 휴식이었다.
돛을 있는 대로 펴고 바람을 받으며 달리던 전선들은 해가 지고 날이 어두워지자 서서히 속도를 줄였다. 밤에도 바람을 타거나 노를 저어서 항해를 계속 할 수는 있지만 16척이나 되는 전선들이 밤바다를 항해하는 것은 사고의 위험이 있었다. 달빛에 의지해 천천히 나아가던 전선들은 작은 무인도를 발견하고는 그대로 무인도에 정박했다. 이곳에서 밤을 보내고 내일 날이 밝는 대로 다시 남쪽으로 향할 예정이었다.
“밥이다. 많이 먹어라. 먹은 만큼 힘쓰는 법이다.”
“그래 어서들 먹어라. 왜구들과 전투가 시작되면 제때 밥 먹는 것도 힘들 수 있다. 이럴 때 많이 먹어라.”
녹도전선의 화병들이 저녁밥을 가져오자. 강영남을 비롯한 고참들은 어린 병사들에게 밥과 반찬이 든 그릇을 나눠주면서 많이 먹으라는 말을 잊지 않았다. 출병 첫날이라 힘든 일은 없었지만 이번이 첫 출병인 나이 어린 병사들은 긴장한 기색이 역력해 보였다.
“잘 먹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조카뻘로 보이는 어린 병사가 그릇을 받으며 감사인사를 하자 조카인 칠복이가 생각한 강영남은 어린 병사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그래 많이 먹어라. 부족하면 말하고. 내 누룽지라도 얻어 오마.”
“예 감사합니다.”
밥그릇을 받고도 신병들을 긴장했는지 밥을 잘 넘기지 못했지만 강영남과 임광정, 박언필 등 수군으로 군역을 치른 세월이 10여년이 넘어가는 고참 병사들은 반찬으로 나온 자반과 김치에 기뻐하면서 맛있게 밥을 먹었다. 고참들이 깨끗하게 밥그릇을 비우고 시원하게 물을 마시자. 강영남에게 밥그릇을 받았던 송대길이 조심스럽게 다가와 물었다.
“저 어르신들은 지금까지 몇 번이나 바다에 나오셨습니까?.”
“어르신은 무슨 그냥 형님이라고 불러라.”
강영남이 익살스럽게 말하자 송대길은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예 형님.”
“그래. 바다와 생업이 바다에 나가 고기를 잡는 일이니 수도 없이 나왔었지. 보아하니 네가 묻는 것은 전선을 타고 왜놈들과 싸우러 몇 번이나 나왔었는지를 묻고 싶은 게로구나 그렇지.”
“예 그렇습니다. 형님.”
대길과 영남의 대화가 이어지자 영남 또래의 고참 병사들은 물론 대길 또래의 어린 병사들도 둘의 대화에 귀를 기울였다.
“내가 녹도전선을 타고 다닌 세월이 십 수 년이니 왜구가 나타났다는 소식에 전선을 타고 바다로 나온 적이 꽤 많다. 가장 큰 싸움은 올해에 왜구들이 쳐들어왔었을 때이고.”
강영남의 대답에 송대길은 놀란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시산도와 절이도를 노략질한 왜구들 말씀이십니까. 형님께서도 출병하셨습니까?.“
송대길의 질문에 강영남은 기가 차다는 듯이 대답했다.
“어디서 무슨 소문을 들었기에 그런 것을 묻느냐. 출병하다니 왜구들과 가장 치열하게 싸운 것이 바로 우리 녹도진 수군이었다.”
강영남의 대답에 고참 병사들은 그렇다고 맞장구를 쳤다.
“그렇지 손죽도에서 부터 왜구들과 제대로 싸운 수군은 우리 녹도진 수군뿐이었지.”
“손죽도에서 우리 녹도수군이 선봉이었고 왜선 18척이 녹도전선을 추격해 왔었지.”
고참 병사들의 말에 송대길과 어린 병사들은 놀란 표정을 지으며 감탄했다.
“정말 대답하십니다. 녹도진 수군이 왜구들과 싸웠다는 소문은 들었지만 가장 치열하게 싸운 사실은 모르고 있었습니다.”
“좌수사 영감께서 지난 전란이 일어났을 당시에 녹도만호로 우리를 지휘하셨다. 좌수사 영감의 지략이 아니었다면 녹도전선은 물론 우리도 무사하지 못했을 것이다.”
강영남이 자랑스럽다는 얼굴로 말하자 다른 병사들도 맞장구를 쳤다.
“내 일생을 바다에서 보냈고 전선을 타고 바다로 나온 세월도 십 수 년 이지만 좌수사 영감만큼 용감하고 지략이 뛰어난 장수는 처음 보았다.”
“너희는 복 받은 줄 알아라. 좌수사 영감께서 출정군을 지휘하시니 이번에도 틀림없이 대승을 거두고 돌아갈 거다.”
“암 그렇고말고 대승을 거두고 돌아가면 필시 큰 상이 있을 것이니 기대해도 좋을 것이다.”
강영남을 비롯한 고참들의 말을 들으며 이번이 첫 실전인 병사들은 승전과 포상에 기대감을 가지기 시작했다. 이런 일들은 녹도전선 뿐만 아니라 좌수영 상선과 좌수영 직속 전선 그리고 정해왜변 당시 참전했던 병사들이 타고 있는 모든 전선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정해왜변을 경험한 병사들은 전라좌수사 이대원을 믿고 있었고 그들의 장담을 들은 병사들은 실전에 대한 두려움과 부담감을 이전보다는 덜 느낄 수 있었다.
정해왜변을 겪은 병사들이건 군역으로 복무하기 위해 좌수영과 녹도진에 들어온 신병들이건
군사들이 같은 전선에서 어울려 지내며 서로에게 익숙해지는 동안에도 좌수군 전선들은 날이 밝으면 바다로 나와 고토열도를 향해 달려가고 해가지면 무인도에 정박해 숨을 고르는 나날이 반복되었다. 드디어 출병일로부터 3일째 되는 날 밤 후쿠에 섬 인근의 무인도에 정박한 좌수군 전선들은 돛을 내리고 휴식에 들어갔고 좌수영 상선에서는 이번에 출병한 장수들이 모여 작전회의가 열렸다.
“사화동과 항왜들의 보고에 따르면 이곳 후쿠에 섬으로부터 좌수영까지의 거리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전선을 몰았을 경우 이틀 만에 도착할 수 있는 거리라고 합니다. 그러나 우린 좌수군은 이곳 바다에 익숙하지 않고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시야가 어두운 야간에는 항해를 자제하였기에 이곳에 도착하기 까지 3일이 걸렸습니다. 3일 만에 무사히 목적지에 도착했으니 이번 항해는 성공적이라고 생각됩니다.”
선봉장인 이순신의 보고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녹도만호의 의견이 옳다. 우리 좌수군이 처음 오는 길이었고 오는 도중에 적선을 만날 가능성도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사고도 없이 출병한 전선이 모두 무사히 도착했으니 본관도 이번 항해가 아주 성공적이었다고 본다.”
“군사들의 사기도 높습니다. 출정군의 절반 이상이 스스로 출정군에 자원한 군사들이고 이들은 좌수사 영감과 함께 지난 전란을 치른 군사들이라 이번에도 승리를 자신하고 있습니다. 지난 전란을 겪지 않은 군사들도 자원한 군사들의 이런 모습에 영향을 받아 적을 두려워하지는 않고 있습니다.”
순천부사 이억기도 군사들의 사기가 높은 것을 보고했다. 이번에 출병한 군사들 중 절반 이상은 스스로 자원한 군사들이었다. 이들은 대부분 정해왜변 당시 나의 지휘를 받았던 군사들이고 이번에도 승리할 것을 자신하고 있었다. 전선마다 많은 수의 격군이 필요한 조선수군의 특성상 자원한 군사들 외에도 군역을 치르기 위해 전라좌수군에 복무중인 군사들도 격군으로 동원했다. 이들은 복무시기 때문에 출정군에 동원된 탓에 처음에는 두려워하는 기색을 보이는 군사들이 많았지만 지난 3일간 정해왜변을 치른 군사들의 무용담을 들으면서 지금은 자신감을 가지게 된 군사들이 많았다.
장수들의 보고를 받은 후 나는 상륙계획과 이후의 작전계획을 다시 한번 장수들과 상의했다. 좌수영에서 출병하기 이전부터 이미 포로들에게 획득한 정보를 바탕으로 작전계획을 세워놓은 상태였기 때문에 오늘 자리는 출병한 군사들과 전선들의 상황을 파악하고 작전계획을 다시 한번 확인하고 검토하는 자리였다.
작전계획에 대한 검토가 끝난 후 기존의 계획대로 진행해도 큰 문제가 없겠다고 판단한 나는 장수들에게 말했다.
“작전대로 내일 새벽에 후쿠에 섬에 상륙할 것이다. 아직 한밤중이기는 하지만 오늘은 달이 밝으니 상륙할 항구와 주변 해안가를 정찰하는 것이 어떻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