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야간정찰
상륙지점을 정찰하자는 의견에 이의를 제기하는 장수는 없었다. 나는 이순신을 바라보며 말했다.
“속도가 빠른 관선을 준비하도록 하게. 내가 직접 나가지.”
내가 직접 정찰을 나가겠다고 하자 이순신 장군은 놀란 표정으로 나를 말렸다.
“좌수사 영감. 정찰은 소장의 임무이옵니다. 소장이 다녀오도록 하겠습니다.”
“그렇사옵니다. 영감. 전라좌수군의 수장이신 영감께서 직접 정찰을 나서실 필요는 없으십니다. 녹도만호에게 맡기시지요.”
이억기도 걱정된다는 듯이 나를 말렸지만 나는 물러설 생각이 없었다.
“총지휘관인 내가 좌수군이 상륙할 지형도 모른다는 것은 말도 되지 않는 일이다. 다행히 오늘은 달이 밝아 항구와 그 주변의 지형을 살피기에 좋은 날이니 내가 직접 나가 지형을 살피고 내일 상륙을 지휘할 것이다.”
내가 직접 나가겠다고 고집을 부리자 어쩔 수 없이 이순신 장군이 직접 나섰다.
“그럼 소장이 직접 모시도록 하겠습니다. 관선을 준비하겠지만 관선은 속도가 빠르기는 하나 무장하고 있지 않으니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녹도전선을 뒤따르게 하시는 것이 어떠하십니까.”
“날이 밝는 대로 후쿠에 섬에 상륙할 것이니 내일 전장에 나가야하는 군사들도 오늘 밤은 쉬어야 하지 않겠는가. 녹도진의 군사들은 쉬게 하고 내 호위병들과 총병 2개 오(伍)를 대동하면 많은 군사들을 번거롭게 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알겠사옵니다. 좌수사 영감.”
말을 마친 이순신은 관선의 출항 준비를 위해 선실 밖으로 나갔고 손대남은 내 호위를 위해 호위병들과 상선에 탑승하고 있던 총병들을 소집했다. 호위병들은 김개동을 비롯해 모두 12명으로 평소에는 6명씩 2개 조가 교대로 나를 경호했다. 한성에 다녀온 이후 내시들이나 선조의 밀정들이 언제라도 나를 감시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나는 혹시라도 모를 암살이나 습격에 대비하기 위해 좌수영과 녹도진의 군사들 중에서 체격이 건장하고 체력이 좋은 자들을 선발해 내 호위병으로 삼았다.
총병 2개 오(伍)는 병사 10명을 뜻했다. 오(伍)는 조선군의 편제로써 그대로 병사 5명으로 구성되고 오장(伍長)이 지휘한다. 오장은 장수가 아닌 일반 병사가 맡았다고 한다. 오(伍)의 위로는 대(隊)가 있고 대(隊)는 5개의 오(伍)로 이루어졌고 대정(隊正)이 지휘를 했다. 대(隊)의 위로는 여(旅)가 있고 5개의 대(隊)로 이루어졌으며 지휘관은 여수(旅帥)였다. 즉 오(伍)는 5명, 대(隊)는 25명, 여(旅)는 125명이 되는 것이다.
잠시 후 이순신이 지휘하는 관선이 무인도를 출발해 바다로 나왔다. 관선의 갑판 위에서는 이순신이 배를 지휘하고 있었고 그 옆에는 사화동이 서서 바닷길을 안내하고 있었다. 나는 이순신의 뒤편에 서서 주변 바다를 바라보고 있었고 내 주위에는 호위병들과 10명의 총병들이 화승총으로 무장하고 있었다.
정찰을 나온 만큼 밝게 빛나는 수은갑옷이 아닌 어두운 색의 흉갑(엄심갑)을 입고 나온 나는 관선이 후쿠에 섬을 향하는 동안 주변 바다를 바라보았다. 조선에 떨어진 후 이상할 정도로 좋아진 시력 덕분에 한밤중에도 간단한 사물을 분간하는 것은 어려운 점이 없었다. 주변을 둘러보다가 이상한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 뒤를 돌아본 나는 뒤편에서 희미하게 배가 따라오고 있는 것이 보였다.
‘저게 뭐야. 적선이 내 등 뒤에 있을 리는 없고 녹도전선이 따라왔나.’
정신을 집중해 뒤편을 바라본 나는 내가 타고 있는 것과 같은 관선이 내 뒤를 따라오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배는 판옥선이 아는 관선인데 등 뒤에서 거리를 두고 쫓아오는 것을 보니 적은 아닌 것 같고.’
부하들이 따라오고 있는 것으로 짐작한 나는 이순신을 불렀다.
“부르셨습니까. 좌수사 영감.”
“우리를 뒤에서 쫓아오고 있는 관선은 녹도진 수군인가. 아니면 왜구들인가?”
내 질문에 이순신은 당황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아니 그것을 어찌 아셨습니까?”
“내가 그냥 운이 좋아 좌수사가 된 것 같은가. 그리고 한밤중에는 낮보다 소리가 멀리까지 울리는 법일세. 거리를 두고 쫓아온다고 해도 전선이 따라오는 것을 내가 몰랐을 것 같은가.”
“죄송합니다. 영감. 영감의 안전을 염려해 허군관에게 군사들과 함께 뒤를 따르라 명을 내렸습니다.”
이순신이 솔직하게 대답하자 나도 이순신을 나무라기는 곤란했다.
‘엄격하게 따지만 내 명령을 어긴 것이고 실전에서 총사령관의 허락도 없이 병력을 동원한 것도 잘못이기는 하지만 나를 걱정해서 저지른 일인데 뭐라고 하기도 그렇고 무엇보다 상대가 이순신 장군이니.’
“녹도만호가 나를 염려하는 것은 알겠지만 내 허락도 없이 전선과 군사를 움직인 것은 명백한 잘못이네.”
“죄송합니다. 영감.”
“전투를 앞두고 장수를 처벌해 아군의 사기를 떨어뜨릴 수는 없으니 이번일은 그냥 넘어가도록 하겠네. 이번 정벌에서 용감히 싸워 잘못을 씻도록 하게.”
“감사합니다. 영감. 이 한 몸 죽기를 각오하고 왜구들과 싸울 것입니다.”
이순신 장군은 진짜 감격한 표정으로 말했고 이순신 장군의 대답에 오히려 내가 놀랐다.
‘죽기는 왜 죽어. 이 양반아 당신은 앞으로 할 일이 많아. 앞으로 나라를 구해야 하니. 이런 작은 전쟁에서 목숨 걸 필요는 없어.’
나는 당황한 기색을 숨기기 위해 일부러 냉정한 표정을 짓고 이순신 장군에게 주의를 주었다.
“장수가 함부로 죽음을 말하는 것은 경솔한 언행이네. 장수가 부하들을 이끌고 용감히 싸워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아군의 피해가 없이 적을 격퇴하는 것도 장수의 능력이야. 죽기를 각오하고 싸운다는 다짐을 하는 것은 좋지만 실제 전장에서는 아군의 피해를 최소화 하면서 적에게는 최대한의 피해를 주는 전략을 생각해야 할 것이네.”
나는 이순신이 이번 정벌에서 진짜 목숨을 걸고 달려들 까봐 걱정되는 마음에 일부러 주의를 주었고 내 훈계를 들은 이순신은 진심으로 고마워하는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부족한 소장에서 좌수사 영감께서 큰 깨우침을 주시니. 이 은혜 결코 잊지 못할 것입니다. 좌수사 영감께서 내리신 말씀을 항상 기억하고 전장에서는 부하들이 헛되이 쓰러지지 않도록 주의할 것입니다.”
나는 이순신의 반응에 놀라며 대화를 끝냈다.
‘이순신 장군이라서 그런가. 아니면 역시 조선 사람이라서 그런가. 왜 이렇게 진지해 설마 항상 이렇게 심각하게 생각하고 사는 것은 아니겠지.’
“아직 할 일이 많으니 그만 자리에서 일어나게. 우선은 항구와 해안가를 살펴봐야 하지 않겠나.”
“예 영감.”
나는 이순신을 일으켜 함께 뱃머리로 향했다. 뱃머리에서 항구가 있는 방향을 안내하고 있던 사화동은 내가 다가가자 고개를 조아리며 말했다
“장군. 복강도가 제법 가깝습니다. 여기서 더 다가가면 항구에서 파수(把守)를 보는 군사들에게 들킬 수도 있습니다.”
사화동은 후쿠에 섬에 가까이 다가가는 것을 꺼리는 것 같았지만 나는 신경 쓸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상관없다. 어차피 우리는 관선을 타고 있지 않느냐. 관선이 복강도에 다가가는 것이 무슨 문제가 있겠느냐. 파수를 보는 왜군들이 우리가 조선 수군인 것을 어떻게 알 수 있겠느냐. 섬에 가까이 다가갈 것이다.”
“예 영감.”
내 말을 들은 이순신은 군사들에게 명령을 들었고 관선은 천천히 노를 저어 후쿠에 섬을 향해 다가갔다. 항구 근처에 성이 있고 항구를 지키는 왜군이 성에 주문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었지만 파수를 보는 왜군은 없었는지 항구에서 불빛이 보이지는 않았다. 천천히 항구를 살펴보던 나는 항구에 몇 척의 배가 정박해 있는 것을 발견하고 정신을 집중해 배를 살펴봤다.
‘이상하다. 아무리 봐도 전선 같은데 오른쪽 끝에 있는 배는 다른 왜선들 보다 훨씬 크다. 크기도 높이도 두 배는 될 것 같은데 저 정도 크기면 판옥선보다도 크다는 말인데 지금 일본에 판옥선 보다 큰 전선들이 있었나.’
내가 알고 있는 지식과 정보에 의하면 16세기 일본의 전선들은 전체적으로 조선의 판옥선보다 크기가 작았다. 지금 일본의 전선들 중에서 판옥선 보다 큰 전선이 있다면 오다 노부나가가 모리 가문의 수군을 상대하기 위해 건조했다는 텟코센(鉄甲船) 정도가 있을까. 판옥선 보다 큰 전선은 극히 드물었고 임진왜란 당시 안택선(安宅船)의 크기가 판옥선과 비슷했다고 하지만 안택선 역시 주력 전투함이라기보다는 함대의 기함이자 장수들의 전용함에 가까웠다.
내가 정체불명의 전선에 대해 궁금증을 하지고 거대전선의 정체를 추리하는 동안에도 관선은 서서히 노를 저으며 후쿠에 섬에 다가갔고 섬과의 거리가 가까워지자 정체를 알 수 없는 전선의 모습도 보다 선명하게 보였다.
‘아니 왜 저게 여기에 있지.’
거리 때문에 형태를 확인하지 못했던 정체불명의 전선의 모습이 완전히 보이자 나는 놀라서 뒤로 넘어갈 뻔했다.
내 옆에 있던 사화동도 그 전선을 발견하고는 떨리는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장군 남만선이옵니다.”
“남만선이라니 그것이 무엇이냐?.”
사화동의 말을 들은 이순신이 날카로운 표정으로 사화동에게 묻자 사화동은 나를 바라보며 이순신에게 대답을 해도 되는지 물었고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사화동은 이순신에게 남만선에 대해 설명했다.
“남만선은 남만인들이 타고 다니는 배입니다. 남만인들의 나라는 남쪽으로 저 멀리에 있다고 합니다. 명보다도 훨씬 멀리에 있는 나라라고 하며 그들의 나라에서 철포와 화약을 가지고 와서 팔고는 은이나 금을 사가지고 돌아갑니다.”
“뭐야. 남만인들이 무기와 화약을 왜에 팔고 있다고.”
이순신은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남만선 아니 갤리온을 노려보았다.
“남만인들이 이곳에 있다면 이것은 작은 일이 아니다. 남만선은 판옥선과 같이 화포로 무장하고 있고 남만인들의 화포는 조선의 총통보다 크기도 더 크고 위력도 더 강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우선은 본대가 있는 곳으로 돌아가 다시 계획을 세워야겠다.”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 갤리온을 발견한 나는 우선 생각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했다. 내가 돌아가겠다고 하자 이순신은 군사들에게 명령을 내렸고 관선은 방향을 돌려 좌수군 함대가 정박해 있는 무인도로 향했다.
관선이 후쿠에 섬으로부터 멀어지자 이순신은 작은 목소리로 나에게 물었다.
“좌수사 영감. 외람되지만 영감께 묻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무엇인가? 대답할 수 있는 것은 대답할 테니 말씀하시게.“
“남만선이 화포로 무장하고 있다는 것이 사실입니까?.”
“물론 사실이네. 남만인들은 왜는 물론 명과도 무역을 하는 이들이네 자기들의 나라로부터 수만리 떨어진 명과 왜에 와서 장사를 하는데 무기도 없이 올 수 있겠는가. 남만인들은 자신들의 목숨과 상품을 지키기 위해 남만선에 강력한 화포를 싣고 다니고 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