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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출항
내 대답을 들은 이순신은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작은 목소리로 다시 물었다.
“좌수사 영감. 남만인들이 우리 좌수군이 장비한 총통보다 크고 강한 화포로 무장하고 있다는 말씀도 사실이십니까?.”
연이은 질문에 나는 약간 짜증이 났다.
“본관이 왜 거짓을 말하겠는가. 남만선이 화포로 무장한 것이 사실이듯이 남만인들이 총통보다 크고 강한 화포로 무장한 것 역시 사실이네. 녹도만호는 명군이 사용하는 불랑기포를 알고 있는가?.”
내가 짜증난 목소리로 물었지만 이순신은 침착하게 대답했다.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불랑기포는 명군이 사용하는 화포다. 모포와 자포로 나뉘어있고 자포에 미리 화약과 철환을 장전해 두었다가 모포에 자포를 장착해 방포하는 화포이다. 방포하고 난후 모포에서 자포를 분리하고 화약과 철환이 장전된 다른 자포를 모포에 장착해 방포할 수 있으니 조선의 총통보다 간단하게 장전하고 더 빨리 방포할 수 있다.”
내 말을 들은 이순신은 불랑기에 흥미를 가졌다.
“확실히 그런 방식이면 방포 후 간단히 재 장전할 수 있겠습니다. 장전 후 다시 방포하는 것도 훨씬 간단하고 말입니다.”
“그 불랑기는 남만선이 무장하고 있던 화포를 바탕으로 명에서 개발한 화포다. 불랑기는 본래 남만인들이 만든 화포였단 말이다.”
내 말에 이순신은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
“소장은 그 같은 사실을 모르고 있었습니다. 영감.”
“명에 무역을 하러 왔던 남만선이 명의 해변가에서 좌초되었을 때 명의 군사들이 남만인들을 구해주면서 남만선에 있던 화포와 물품들을 차지했다고 한다. 그때 명에서 확보한 화포를 바탕으로 명에서 불랑기를 개발했고 불랑기는 지금도 명군에서 쓰이고 있다. 남만인들이 무장하고 있는 화포는 불랑기뿐이 아니야. 내가 듣기로는 다양한 크기의 화포로 무장하고 있다고 하더군.”
내 말에 충격을 받았는지 이순신은 출정군 본대가 정박하고 있는 무인도로 돌아가는 내내 아무 말도 없이 깊은 생각에 잠긴 모습을 보였다. 나는 이순신의 그런 모습을 보며 엉뚱하게도 인간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순신 장군이 이렇게 까지 심각하게 고민에 빠진 모습은 처음 보는 군. 그동안 존재하는지도 몰랐던 남만인들이 거대한 전선과 강력한 화포를 가지고 나타났으니 놀라는 것도 무리는 아니지. 그동안 완벽한 모습만 보이다가 이렇게 고민하는 모습을 보이니 오히려 인간적으로 보이는데 이순신 장군도 결국 사람이구나.’
내가 이런 생각을 하는 동안 관선은 무인도에 도착했고 무인도에 도착하기 무섭게 나는 좌수군 상선으로 향하면서 모든 장수들을 소집할 것을 명령했다. 이미 밤이 늦은 시간이었지만 장수들이 상선으로 모이는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대부분의 장수들이 좌수사인 나를 기다리면서 잠들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그 덕분에 생각보다 일찍 작전회의를 시작할 수 있었다. 우선 나는 장수들에게 남만선이 나타났다는 사실을 알렸다.
“남만인들에 대해서는 아는 사람이 없을 테니 간단히 설명하도록 하겠다. 쉽게 말하면 서역에서 온 사람들이라고 생각해도 무방하다. 왜인들은 남쪽에서 온 사람들이라고 그들을 남만인이라 부르지만 명에서도 한참을 서쪽으로 바다를 건너가면 명과는 다른 대륙이 있다고 한다. 그들은 그 땅에 존재하는 나라에서 온 사람들이다. 그들은 무역을 하는 상인이지만 그들의 배는 먼 바다를 건너와야 하는 만큼 우리의 전선보다 크고 튼튼하고 또 강력한 화포로 무장하고 있다. 이들은 군인이 아닌 상인들이지만 재물을 약탈하려는 해적들로부터 자신들을 보호하기 위해 배에 화포를 장비한 것이다.”
남만인 아니 유럽인들에 대해서는 처음 듣는 만큼 장수들은 진지한 표정으로 내가하는 설명에 귀를 기울였고 나는 유럽인들과 그들의 갤리온에 대해 간단히 설명한 후 무인도로 돌아오면서 생각한 작전대로 장수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우선은 날이 완전히 밝기 전에 복강도[후쿠에 섬(福江島)]에 상륙한다. 순천부사 이억기.”
“예 좌수사 영감.”
“복강도에 상륙하는 병력은 순천부사가 지휘한다. 우선 항구를 점령하고 항구 북쪽에 있는 성을 공격하라 성을 함락한 후에는 그곳을 기점으로 방어선을 구축하고 왜구들로부터 항구를 방어해야 한다.”
“명을 따르겠습니다. 영감.”
“다음은 녹도만호 이순신.”
“예 좌수사 영감.”
“녹도만호는 좌수영 전선 2척과 녹도진 전선들을 지휘해 복강도 항구를 바다에서 봉쇄하라. 특히 동쪽 바다를 봉쇄해야 한다. 우리 좌수군의 전선들 외에 어떤 배도 바다로 나와서는 안 되고 반대로 어떤 배도 바다에서 복강도로 들어와서는 안 될 것이다.”
“명을 받들겠습니다. 영감.”
이번에 출정한 장수들에게 하나씩 임무를 부여한 나는 마지막으로 장수들에게 말했다.
“남만선과 남만인들은 본관이 상대하도록 하겠다. 상륙병력이 복강도 항구에 도착하기 전에 좌수영 병력과 호위병들을 남만선에 침투시켜 남만인들을 제압할 것이다.”
내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이번에도 장수들이 우려하는 눈빛을 보냈지만 나는 손을 들어 장수들을 제지하고 말을 이었다.
“지금 좌수군의 장수들 중에 본관만큼 남만인들에 대해 잘 아는 이는 없다. 본관이 생각하기에 남만인들이 화포를 방포하지 못하도록 저지할 수만 있다면 그들과 굳이 싸우지 않고도 좋게 일을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으니 본관이 직접 나서려는 것이다. 장수들은 너무 염려하지 말라.”
“예 좌수사 영감.”
장수들은 걱정하는 기색이 역력했지만 내말이 틀리지 않았으니 더 이상 만류하지는 못했다. 더구나 이번 출병의 목표인 후쿠에 섬이 바로 코앞에 있었으니 장수들도 남만선에 신경 쓰지 않게 된 것이 반가울 것이다.
“모두들 밤에 잠을 자지 못했으니 피곤하겠지만 이제는 정말 시간이 없다. 날이 밝기 전에 복강도에 상륙해야 한다. 한 시진(時辰)[2시간] 후에 복강도를 향해 출항할 것이다. 장수들은 그때 까지 쉬어도 좋다.”
“명을 받들겠습니다. 좌수사 영감.”
장수들은 일제히 군례를 올리고 선실 밖으로 나갔다. 장수들에게 쉬어도 좋다고 했지만 출항을 앞두고 있으니 장수들 중에 오늘 밤 제대로 쉴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장수들이 모두 나가자 나는 갑옷을 벗고 자리에 누웠다. 나도 잠들 수는 없을 것 같았지만 출항하기 전에 잠시라도 몸을 편안하게 하고 싶었다. 몸은 누워있었지만 머릿속에서는 오늘 발견한 갤리온이 떠나지 않았다.
‘드디어 갤리온을 발견했구나. 갤리온만 있으면 북해도로 이주하는 것도 유럽 상인들과 무역하는 것도 문제없다. 그런대 왜 후쿠에 섬에 갤리온이 왔을까. 유럽 상인들은 히라도 섬이나 나가사키에서 주로 무역을 했을 텐데. 무슨 상품을 거래하려고 고토열도 후쿠에 섬 까지 왔을까.’
드디어 갤리온을 발견했다는 사실에 그리고 이것을 계기로 유럽 상인들과 무역을 하는 물꼬를 틀 수 있다는 사실에 흥분하기도 했지만 왜 갤리온이 이곳까지 왔는지 궁금하기도 했다.
한참을 고민하던 나는 결국 제일 간단한 방법으로 해답을 찾기로 했다.
‘아무리 고민해도 답이 안 나온다. 정보가 너무 부족해. 어쩔 수 없지 유럽 상인들을 내 앞에 묶어놓고 직접 물어보자.’
결론을 내린 나는 그제 서야 마음 편히 누워있을 수 있었다.
그로부터 한 시진 후 전선마다 횃불이 켜졌고 군관들과 진무들은 병사들을 깨웠다.
“어서 일어나라.”
“그만 일어나라 출항할 것이다.”
“어서 일어나지 못해.”
자고 있는 병사들을 깨우는 동안 병사들 보다 먼저 일어난 화병들은 이미 솥에 쌀을 부어 밥을 짓고 있었다. 군관들과 진무들의 호통소리에 병사들이 잠에서 깨어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자 출항준비는 곧 끝났다. 잠시 후 녹도전선을 선두로 좌수군의 전선들은 돛을 펴고 한척씩 바다로 나왔다.
격군들은 자리를 잡고 노를 저었고 사부와 포수들은 각자 자신들의 병장기를 점검하고 있었을 때 화병들이 지은 아침밥이 나왔다.
“밥이다. 밥 먹자.”
“자 밥이다. 노를 잡지 않은 사람들부터 어서 먹어라. 오늘은 전투를 치르는 날이다. 많이 먹어야 왜구들을 박살낼 수 있다.”
고참 병사들이 들고 오는 광주리에는 김이 모락모락 나는 주먹밥이 수복이 쌓여있었다. 격군들 중에서 노를 잡지 않은 병사들이 앞 다투어 주먹밥을 받았다. 광주리에 담긴 주먹밥을 잡은 송대길은 주먹밥을 입으로 가져갔다. 힘차게 주먹밥을 씹은 대길은 그 맛에 놀랐다.
“어 이거 쌀밥이네. 흰쌀밥이다.”
“진짜 쌀밥이다. 쌀밥 주먹밥이다.”
주먹밥을 먹은 병사들은 식사로 흰쌀밥이 나온 것에 감격했다.
“맛있냐?”
병사들에게 주먹밥을 나눠주던 강영남이 쌀밥을 꼭꼭 씹고 있던 대길에게 물었다.
“예 맛있습니다.”
강영남은 천진난만한 표정으로 맛있다고 대답하는 송대길을 보더니 조용히 주먹밥을 하나 집어 대길에게 내밀었다.
“아무 소리하지 말고 먹어라. 개수가 넉넉하지 않으니 모두 두 개씩 먹을 수는 없다.”
송대길은 쌀밥 주먹밥을 받은 것이 기쁜 듯 아무 말도 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주먹밥을 받았다. 노를 잡지 않은 병사들이 모두 식사를 마치자 노를 젓던 격군들과 교대를 했고 노를 젓던 격군들은 그제 서야 노를 내려놓고 아침밥을 먹었다. 전투경험이 없는 어린 병사들은 쌀밥을 먹은 것에 기분이 좋은 표정이었지만 강영남을 비롯한 전투경험이 있는 병사들은 오늘 쌀밥이 나온 의미를 알 수 있었다.
‘오늘은 왜구들과 제대로 붙는 날이겠구나. 계속 전선에 남아있는 놈들은 몰라도 왜구들의 소굴에 상륙하는 놈들도 있으니. 좌수군 중에서도 몇몇은 방금 먹은 아침밥이 이승에서 마지막으로 먹은 밥일 될 수도 있겠지. 그래서 쌀밥이 나왔겠지.’
왜구를 토벌한다는 소문에 자원해서 출정군에 지원했지만 실전이 임박했다고 생각하니 긴장되는 것은 강영남도 어쩔 수 없었다.
아직 날이 밝지 않은 새벽 바다로 나온 좌수군 전선들은 서로 충돌하지 않기 위해 뱃머리에 횃불을 달고 달렸고 횃불과 깃발을 휘둘러 서로 간에 연락을 주고받았다. 우선 좌수사가 직접 지휘하는 좌수영 상선과 좌수영 직속 전선 한척이 돛을 내리고 노만 저어서 서서히 남만선을 향해 다가갔다. 그와 동시에 녹도진 소속 전선 2척 좌수영 직속 전선 2척 그리고 관선 2척이 항구의 동쪽으로 이동해 전선들 간에 간격을 벌리며 봉쇄망을 펼쳤고 그 외에 좌수군 전선 8척과 관선 2척은 서서히 항구로 다가갔다.
순천부 전선에서 전선들의 위치를 확인하던 이억기는 전선들과 항구와의 거리를 가늠하며 명령을 내렸다.
“단선(短船)을 내리 거라.”
“예 나리.”
이억기의 명령이 떨어지자 병사들은 전선의 양 측면에 매달려 있던 단정들을 고정한 밧줄을 풀기 시작했다. 단정이 매달려 있는 갑판 측면에는 밧줄을 걸어서 물체를 끌어올리거나 내릴 수 있는 도르래가 설치되어 있었고 단정을 고정한 밧줄들은 도르래에 감겨 있었다. 병사들은 밧줄의 매듭을 푸는 동시에 매듭을 푼 밧줄에도 병사들이 달라붙어 밧줄이 팽팽하게 당겨지도록 잡아당겼다.
“밧줄이 모두 풀렸다. 천천히 내려라.”
매듭을 풀린 것을 확인한 병사가 밧줄을 잡고 있는 병사들에게 외치자. 병사들은 조금씩 밧줄을 놓기 시작했고 병사들이 밧줄을 풀어놓는 만큼 도르래에 달린 밧줄이 내려가면서 단정은 서서히 수면위로 내려왔다. 단정이 완전히 바다에 닿자 줄사다리가 펼쳐졌고 무장한 군사들이 하나씩 단정으로 내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