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선 수군이 되었다-70화 (70/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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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쿠에 항

선미의 좌우 갑판을 통해 남만선에 올라온 병사들은 모두 20명이었다. 김개동이 지휘하는 단정에서는 김개동이 마지막으로 올라왔고 우측 갑판에 달린 밧줄로는 좌수영 군관 김윤문이 마지막으로 올라왔다. 김윤문을 비롯해 20명의 병사들이 무사히 남만선으로 올라오는데 성공하자 김윤문은 김개동에게 작은 소리로 말했다.

“좌수사 영감께서 내리신 명을 실행할 것이다.”

“예 나리.”

김개동은 작지만 힘찬 목소리로 김윤문에게 대답했다.

“나는 군사들과 함께 갑판을 장악할 것이니 너는 선실로 내려가는 입구를 찾도록 하라.”

“예 알겠사옵니다. 나리.”

작은 목소리로 대화를 주고받은 김윤문과 김개동은 각자 거느리고 있는 군사들을 이끌고 움직였다. 김개동이 지휘하는 호위병들은 선창과 선실로 내려갈 수 출입구를 찾고 있었고 김윤문은 밧줄이 묶인 돛대 주변에 자리 잡고 돛대를 지키는 한편 선수 갑판 쪽으로 병사들을 보내 혹시나 갑판위에서 남만인들이 숨어있거나 자고 있는 사람은 없는지 확인했다. 이들은 선발대에 불과했다. 이들이 갑판을 장악했으니 전선과 단정에서 대기하고 있는 병사들이 연이어 남만선 위로 올라올 것이었다.

상선에서 남만선 나포작전을 지휘하고 있던 나는 김윤문과 김개동이 지휘하는 선발대가 무사히 남만선에 올라갔다는 보고를 듣고 즉시 후발대를 투입할 것을 명령했다.

“대기하고 있는 병사들을 남만선에 투입하라 최대한 조용히 남만선에 올라가야 한다.”

“예 좌수사 영감. 명을 받들겠습니다.”

손대남은 힘차게 대답하고 병사들을 출동시켰다. 갤리온에 투입 될 병사들이 탑승할 단정이 전선에서 내려지는 것을 보고 다시 한번 갤리온을 바라보던 나는 갤리온과 함께 항구에 정박해 있는 관선들을 발견하고 손대남을 불렀다.

“손군관.”

“예 좌수사 영감.”

“화포장과 포수들은 대기하고 있겠지.”

“그렇사옵니다. 좌수사 영감.”

“그럼 됐다. 지금 즉시 총통을 장전하고 단선들이 내려가는 즉시 항구의 관선들을 조준하라. 항구와 남만선을 점령하기 전에 관선들이 움직이거나 관선에서 왜구들이 나오려고 하면 즉시 방포할 것이다.”

“명을 받들겠습니다. 좌수사 영감.”

힘차게 대답한 손대남은 화포장에게 방포준비를 할 것을 지시했고 나는 다시 갤리온을 바라보았다. 호위병들과 정예병으로 구성된 선발대가 갤리온에 침투하는데 성공했고 후발대도 갤리온으로 향하고 있으니 갤리온은 이미 전라좌수군에게 나포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대서양과 태평양을 건너오는 갤리온이지만 탑승하는 선원의 수는 그렇게 많지가 않았다. 장거리 항해를 하는 갤리온의 특성상 많은 수의 선원이 탑승하면 그만큼 많은 양의 식수와 식량을 실어야 하기에 선주들이나 선장들은 최소한의 인원으로 갤리온이 운행했고 범선이었던 갤리온은 노를 사용하지 않기에 판옥선이나 관선보다 적은 인원으로도 충분히 항해가 가능했다.

‘대항해 시대의 갤리온 선원들은 해적들과 다름이 없었다고 하지만 전문적인 군사훈련을 받은 병사들을 그것도 야간에 기습을 당한 상태에서 당해낼 수는 없을 거야. 저 정도 크기의 갤리온이라면 탑승하고 있는 선원의 수는 많아야 50명 정도일 것이니 갤리온에 침투한 병력만으로도 충분히 제압할 수 있다.’

나는 병사들이 갤리온을 점령할 것을 확신했고 갤리온을 바라보던 시선을 돌려 항구로 시선을 향했다.

‘갤리온은 우선 선원들은 제압해 놓은 후 감금하고 후쿠에 섬을 장악한 후 천천히 처리하자 우선은 이번 출정의 목적인 후쿠에 섬 정벌과 조선인들의 구출이 우선이다. 그리고 돌산도에 있는 항왜들의 가족들도 구해가야 하고.’

순천전선을 비롯해 상륙병력이 출발한 전선들에서 발사하는 화전이 내 눈에도 보였다. 화전이 날아가는 방향으로 보고 항구로 가는 방향을 잡은 병사들은 후쿠에 항을 향해 열심히 노를 저어가고 있었다.

항구를 향해 다가가던 단정들이 부두와 항구 인근의 해변에 도착하자 단정에 타고 있던 병사들은 각자의 무기를 잡고 육지로 올라왔다. 가장 먼저 출발한 단정을 타고 온 군관 최도진은 육지에 도착하자마자 환도를 뽑아들고 큰 소리로 외치며 항구를 향해 달려갔다.

“우선 항구를 점령하고 항구 북쪽의 성을 칠 것이다. 병사들은 나를 따르라.”

“와아~”

최도진의 명령을 들은 병사들은 함성을 지르며 최도진의 뒤를 따랐다. 왜구에 대한 적개심으로 전의가 충만한 병사들이 병장기를 단단히 손에 쥐고 항구를 향해 달려 들어갔지만 그들의 눈에 보이는 왜구는 항구 어디에도 없었다. 항구는 파수를 보는 왜군들도 없었는지 텅 비어 있었고 고기잡이를 준비하기 위해 나오고 있었던지 손에 그물을 든 왜인들이 항구로 다가오는 것이 보일 뿐이었다.

“저들을 잡아라.”

왜인들을 발견한 최도진이 병사들에게 외치자 병사들은 창과 환도를 뽑아들고 왜인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아직 날이 밝지 않은 새벽이었지만 구로다 겐조는 고기잡이를 나가기 위해 동료들과 그물과 도구를 들고 집을 나섰다. 후쿠에 섬은 물론 고토열도 전체가 요즘 뒤숭숭한 분위기에 휩싸여 있었지만 그렇다고 고기잡이를 나가지 않을 수는 없었다. 이들에게 고기잡이는 처자식들의 생계가 걸린 일이었기에 제때에 맞춰 바다로 나가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일이었다.

“아니 이게 무슨 소리야.”

항구 쪽에서 들려오는 함성소리를 들은 겐조와 동료들은 함성소리로 항구에 누군가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지만 항구를 향하는 발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어제 남만선이 들어왔다고 하던데. 남만인들이 술이라도 마시고 있나 보지.”

“다른 섬에서 온 전선들도 항구에 들어왔다고 하던데 무슨 일이라도 벌어지려나.”

동료들과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항구를 향해 걸어오던 겐조와 동료들은 항구에 도착하고 나서야 새벽안개를 헤치며 달려오는 좌수군 병사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왜인들이다. 잡아라.”

“왜구다. 잡아.”

최도진의 명령에 왜인들을 잡겠다고 달려온 병사들은 순식간에 겐조 일행을 에워싸고 날이 시퍼렇게 선 창날과 장검을 들이대며 고함을 질렀다. 병사들의 성난 고함소리와 흉흉한 기세에 겐조를 비롯한 왜인들은 손에 들고 있던 그물을 내려놓고 그대로 땅에 엎드렸다.

“살려주십시오.”

“살려주소서.”

왜인들을 잡으라고 고함을 지르며 달려온 병사들은 겐조와 동료들이 저항 한번 없이 엎드려서 연신 살려달라고 빌자 어찌할 바를 몰랐다.

“이거 어떻게 하지.”

“이 섬은 왜구들의 소굴이야. 왜구들이니 전부 죽여.”

“엎드리고 있는 놈들을 죽이자고 별로 마음에 내키지 않는데.”

“우리가 왜 여기까지 왔는데 왜구들 때문이잖아 그냥 죽이자.”

병사들이 왜인들을 에워싸고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자. 최도진이 다가왔다.

“어떻게 됐느냐?”

“왜인들을 잡았습니다. 병장기는 소지하고 있지 않지만 왜구들 같아 어찌할지 모르고 있었습니다.”

병사들 중에 하나가 최도진에게 대답하자 최도진은 왜인들을 바라본 후 병사들에게 말했다.

“내가 왜인들을 잡으라고 했지 언제 죽이라고 했느냐. 너희는 출정하기 전에 좌수사 영감의 명을 듣지 못하였느냐. 병장기를 들고 저항하는 자는 죽여도 무방하지만 항복하는 자들이나 무기를 들지 않은 자들은 우선 포박하라 하지 않으셨느냐. 저들은 무기를 들지 않았고 엎드려 있으니 우선 포박하라 차후에 문초할 것이니라.”

“예 군관나리”

병사들은 힘차게 대답한 후 왜인들에게 달려들어 왜인들이 가지고 있던 밧줄로 단단히 묶었다.

“운 좋은 줄 알거라. 군관 나리가 아니셨으면 오늘이 니들 제삿날 될 수 있었으니.”

병사들 중에서 일본어를 할 줄 하는 병사가 묶여있는 왜인들을 비웃으며 왜인들에게 말하자 겐조는 자신과 동료들을 당장 죽이지는 않겠다는 생각에 오히려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겐조 일행이 모두 밧줄에 묶이자 최도진은 일본어를 할 줄 아는 병사를 통해 왜인들에게 물었다.

“조선에서 잡혀온 조선인들이 이 섬에 있는 것을 알고 있다. 조선인들은 어디에 있느냐?.”

최도진의 질문을 병사가 일본어로 겐조 일행에게 묻자 겐조가 나서서 대답했다.

“일부는 마을에서 농사일을 돕고 있고 일부는 항구에서 짐을 옮기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조선인들이 항구에 있다는 대답을 들은 최도진은 눈에 불을 켜고 겐조에게 물었다.

“항구에 있는 조선인들은 어디에 잡혀 있느냐?.”

“항구 북쪽에 무사님들과 병사들이 머물고 있는 성이 있습니다. 조선인들은 일을 하지 않을 때 그 성안에 갇혀있습니다.”

겐조의 대답에 최도진은 겐조를 노려보며 말했다.

“성이 있는 곳으로 우리를 안내 하라. 그러면 너와 네 가족들은 살려줄 것이다.”

성으로 안내하지 않으면 죽이겠다는 말과 다름없는 말을 들은 겐조는 고개를 끄덕이며 고갯짓을 했다.

“저 왜인이 성으로 안내할 것이다. 가자.”

“예 군관나리.”

병사들이 최도진의 뒤를 따르자 성으로 향하던 최도진은 왜인들을 잡은 병사들에게 따로 명을 내렸다.

“너희는 항구를 지키고 횃불에 불을 붙여 부사 나리께 무사히 항구를 점령했음을 알리 거라.”

“예 나리.”

그들을 비롯해 항구에 100여명의 병사들을 남겨둔 최도진은 200명이 넘는 병사들을 거느리고 겐조의 안내를 받으며 왜성으로 향했다. 잠시 후 겐조가 안내한 곳에 돌로 쌓은 성이 보였다. 군사들을 항구에 매복시킨 후 겐조와 병사 1개 오를 거느리고 왜성에 다가간 최도진의 얼굴이 어둡게 변했다.

‘조선에서 보던 형태의 성이 아니다. 크기는 작지만 성의 크기가 작으니 적은 병력으로 방어하기에 유리하고 성벽은 제법 튼튼해 보인다. 힘으로 공성전을 벌여서는 피해가 크겠어.’

아직 날이 완전히 밝지 않은 것을 믿고 성벽 근처 까지 다가간 최도진은 사다리를 찾아서 성벽에 올라가야 하나 고민하다가 성벽 위에 세워진 망루를 발견하고는 이상하다는 생각을 했다.

‘성벽에 망루까지 세워놓고 왜 파수를 보는 병사들이 없을까. 망루에서 파수를 보는 군사가 있었다면 우리를 발견하지 못 봤을 리가 없는데.’

이상하다는 생각이 든 최도진은 겐조에게 물었다.

“성 안에 병사의 수는 얼마나 되느냐? 그리고 왜 망루에는 병사가 보이지 않느냐?.”

최도진의 질문에 겐조는 성심성의껏 대답했다.

“성안에 있는 병사의 수는 정확히 모릅니다. 작년 까지는 100명 정도가 성안에 머무르고 있었는데 두 달 전에 조선에 다녀왔던 병사들 중에서 다시 섬으로 돌아오지 않은 병사가 절반은 됩니다. 그 때부터 망루에서 병사들이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겐조의 대답에 최도진은 환호성을 지를 뻔했다.

‘그렇군. 왜성에 있던 왜군들도 지난 전란 때 조선을 침략했다가 물고기 밥이 되거나 포로로 잡혀서 돌산도에서 농사를 짓고 있겠군. 이놈들이 병력이 부족하니 망루도 비워놓고 있었구나.’

왜성 안에 병력이 얼마 되지 않는 다는 것을 확신한 최도진은 자신감을 가지고 공격 명령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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