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선 수군이 되었다-71화 (71/223)

────────────────────────────────────

────────────────────────────────────

진군

“성안의 왜군의 수는 불과 수 십 명에 불과하니 머뭇거릴 이유가 없다. 밧줄을 가지고 있는 군사들은 지금 당장 성벽에 밧줄을 던져라. 성벽을 넘어 성문을 여는 군사들에게는 큰 상이 있을 것이다.”

“예이~”

적군의 수가 적고 성문을 열면 큰 상이 있을 것이라는 최도진의 말에 갈고리가 달린 밧줄을 소지하고 있던 정한손과 성범동은 주저할 것 없이 성벽을 향해 밧줄을 던졌다. 밧줄 끝에 달린 갈고리가 성벽에 걸리자 정한손과 성범동은 환도를 등에 맨 후 팽팽해진 밧줄을 잡고 성벽 위로 올라갔다. 자신과 함께 정찰을 나왔던 정한손과 성범동이 성벽을 오르는 동안 최도진은 그의 곁을 지키던 조문부에게 명령을 내렸다.

“너는 어서 가서 매복해 있는 군사들을 이곳으로 인도해 오너라. 내 명인 것을 전하고 곧 성문이 열릴 것이니 한시라도 빨리 와야 한다고 전하 거라.”

“예 나리.”

정한손과 성범동이 성벽을 오르는 것을 지켜보고 있던 조문부는 최도진의 명령을 듣고 항구로 향했다.

성벽의 높이가 그리 높지 않아 어렵지 않게 성벽위로 올라간 정한손은 성벽위에 서서 조심스럽게 주위를 살펴보았다. 위에서 내려다보니 성문 보초로 보이는 왜군이 두 명이 있었지만 졸고 있는 것인지 성벽에 몸을 기대고 고개까지 숙인 상태였다. 보초들을 확인한 정한손은 성범동에서 손짓으로 보초들과 성문을 가리켰고 성범동은 고개를 끄덕이며 등에 매고 있던 환도를 손에 잡았다.

정한손과 성범동은 재빨리 성문으로 다가가 주위를 살핀 후 다른 왜군들이 보이지 않자 둘은 동시에 보초를 덮쳤다. 정한손과 성범동은 졸고 있는 왜군의 창을 조심스럽게 자신의 잡아당긴 후 왜군의 창을 바로잡고 보초의 가슴을 힘껏 찔렀다.

“흑”

가슴을 정확히 찔린 보초들은 짧은 비명을 지르며 두 눈을 떴지만 소리도 지르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즉사했다. 간단히 보초들을 제거한 정한손과 성범동은 큰 소리가 나지 않게 조심하며 성문에서 빗장 뽑은 후 성문을 열었다.

“끼이익~”

성문을 열면서 요란한 소리가 났지만 성문 앞에는 이미 좌수군 병사들이 성문이 열리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환도를 뽑아들고 성문 앞에 서 있던 최도진은 성문이 열리자 크게 기뻐하며 외쳤다.

“성문이 열렸다. 안으로 진군하라.”

“진군하라~”

병장기를 든 군사들은 함성을 지르며 성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후쿠에 항에 상륙한 군사들이 왜성을 공격하던 바로 그때 남만선 갑판위로 올라간 김개동과 호위병들은 갑판을 수색한 끝에 선실로 내려가는 출입구를 찾는데 성공했다. 조심스럽게 출입구를 확인한 김개동은 김윤문에게 그 사실을 알렸고 김윤문은 병사들을 소집했다. 그동안에도 좌수영의 군사들이 남만선 위로 올라오고 있었던 터라 갑판을 장악하고 있던 군사를 외에도 호위병들을 비롯해 30명의 병사들이 출입구 주위로 모였다.

“이곳이 바로 선실로 내려가는 입구인 것 같다. 이곳으로 내려간다. 모두 마음을 단단히 먹어라.”

“예 나리.”

김윤문은 출입구를 발견한 사실을 좌수사에게 보고할 것을 지시하고 직접 와키자시(길이 30cm~60cm 사이의 일본도)를 뽑아들고 조심스럽게 닫혀있는 문을 열었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자 갑판 위와는 다른 탁한 공기와 진한 땀 냄새가 후각을 자극했다. 선실 내에서의 생활을 잘 아는 김윤문은 냄새를 참으며 안으로 들어갔고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내딛던 김윤문의 바로 앞에서 갑자기 무엇인가가 나타났다.

“에잇”

김윤문은 갑자기 나타난 상대에게 손에 들고 있던 와키자시를 휘둘렀다.

“으악~”

상대방의 비명을 들으며 공격이 성공한 것을 확신한 김윤문은 쓰러지고 있는 상대에게 다시 한 번 와키자시를 휘둘렀다.

해가 서서히 그 모습을 드러내며 날이 밝아지기 시작했을 무렵 후쿠다 항으로 선발대를 출동시킨 후  후속병력을 상륙시킬 준비를 하고 있었던 이억기는 순천전선에서 최도진이 보낸 전령으로부터 보고를 받았다.

“항구를 완전히 점령했고 왜성도 함락시켰다고 하였느냐.”

“예 부사 나리. 항구는 좌수군 군사들이 지키고 있으며 왜성 역시 저희 좌수군 군사들이 점령하였습니다. 왜성 안에는 지난 전란당시 왜구들에게 끌려온 조선인들이 100여명 감금되어 있었으며 그들도 무사히 구출하였습니다.”

전령의 보고를 받은 이억기는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됐다. 아주 잘 됐구나. 최 군관에게 왜성을 굳게 지키고 혹시라도 모를 왜구들의 기습에 대비하라고 전하라. 곧 모든 전선들을 항구에 정박시키고 정벌군 본대를 복강도에 상륙시킬 것이다.”

“예 알겠습니다. 부사 나리.”

전령이 이억기의 명을 듣고 나가자 이억기는 부하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어서 이 사실을 좌수사 영감께 전하도록 하라. 우리 순천전선은 복강도 항구에 정박할 것이며 정벌군을 상륙시킬 것이다. 정벌군이 곧 복강도 항구에 내릴 것이라는 것도 어서 좌수사 영감에게 보고하도록 하라.”

“예 명을 따릅니다.”

부하들의 대답을 들으며 이억기는 흐뭇한 표정으로 후쿠에 섬을 바라보았다. 이억기의 명에 따라 순천 전선을 비롯한 좌수군의 전선들이 노를 저어 항구로 향하자 항구를 바라보던 이억기의 눈에 항구에 정박하고 있는 관선들이 보였다.

‘아니 뭐야. 저 왜선들을 잊고 있었군.’

왜선을 발견한 이억기는 인상을 쓰며 외쳤다.

“어서 사부들을 집결시키고 화포장과 포수들은 총통을 방포할 준비를 하라. 왜선에서 왜구들이 보이면 곧바로 방포할 것이다.”

이억기의 명에 따라 화포장과 포수들이 총통을 장전하고 사부들은 갑판위에 서서 활과 화살을 점검했다. 그러나 순천전선의 병사들이 전투 준비를 마친 후에도 관선에서는 사람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그 장면을 본 이억기와 순천전선의 군사들은 이상하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뭐야. 사람이 없는 빈 배인가?’

“부사 나리 왜선에서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는 것 같사옵니다.”

순천 군관 장업동의 말에 이억기는 그럴 리가 없다는 듯이 대답했다.

“그럴 리가 있겠느냐. 저 왜선이 복강도의 배라고 해도 배를 지킬 보초들은 배에 남아있어야 하지 않겠느냐.”

“혹시 지난 전란에 왜구들이 손죽도에서 도망치면서 타고 온 왜선이 아닐까요. 이곳은 왜구들의 소굴이니 왜구들이 방심하고 배를 지키지 않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장업동의 말이 그럴 듯하다고 여긴 이억기는 장업봉에게 명령을 내렸다.

“왜구들이 있던 없건 간에 왜선을 그대로 놔둘 수는 없다. 장 군관은 군사들과 함께 저 왜선을 점령하고 배 안을 수색하라.”

“명을 받듭니다. 나리.”

잠시 후 순천전선이 항구에 도착하자 장업동은 군사들을 거느리고 항구에 정박해 있는 왜선에 놀라 왜선의 내부를 수색하고 혹시라도 왜구들이 숨어있지는 않은지 확인했다.

한편 좌수영 상선에 있던 나는 갤리온에 올라간 군사들이 선실로 내려가는 출입구를 확보했다는 보고와 후쿠에 섬에 상륙한 군사들이 항구와 왜성을 점령했다는 보고를 동시에 받았다. 이억기로 부터 항구와 왜성을 점령했으니 후쿠에 섬에 정벌군 본대를 상륙시키겠다는 보고를 받은 나는 잠시 갤리온과 항구를 번갈아 바라보며 생각했다.

‘갤리온에 관심이 가지만 군사들이 올라간 이상 갤리온은 이미 내 손아귀에 들어온 것이나 마찬가지다. 조급하게 굴 필요는 없어 이곳 고토열도 까지 함대를 몰고 온 것은 갤리온을 나포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왜구들을 정벌하고 조선인들을 구출하기 위해 온 것이니 출병한 목적을 잊지 말자.’

마음을 정한 나는 손대남에게 명령을 내렸다.

“군관 김윤문에게 명령을 내려 남만선을 확실히 장악하고 남만선의 선원들을 모두 포박해 문초하라 전하라. 저들은 왜인들과 거래를 하는 이들이니 저들 중에 왜어를 할 줄 아는 자들이 한둘은 있을 것이다. 남만인들을 철저하게 문초하여 저들이 이곳에 온 목적이 무엇인지 밝혀내도록 하라.”

“예 좌수사 영감.”

“남만선은 김윤문과 군사들이 장악하고 있으니 상선과 전선은 항구에 정박시키도록 하라. 내가 직접 군사들을 거느리고 상륙병력과 합류할 것이니 순천부사에게도 전령을 보내 통보하도록 하라.”

“명을 받듭니다. 좌수사 영감.”

후쿠에 섬에 상륙한다는 명령을 손대남은 상선의 군사들에게 항구로 상선을 몰 것을 지시했다.

내가 직접 항구에 상륙하겠다고 하자 이억기는 순천전선에서 군사들과 화포를 항구로 내리기 무섭게 순천전선을 다시 바다로 출항시켰다. 후쿠에 섬에 있는 항구의 규모가 작아 좌수군의 전선들이 모두 항구에 정박시킬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좌수영 상선도 마찬가지로 항구에 내릴 군사와 식량 그리고 화약을 항구에 내린 후에는 다시 바다로 나갔고 바다에서는 아직 항구로 들어오지 못한 전선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항구에 내려 이억기로 부터 그동안의 상황을 보고 받은 나는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후쿠에 섬은 유럽 상인들이 무역을 하는 무역항이 아닌데도 갤리온이 정박해 있는 것도 그렇고 병력이 부족하다고는 하지만 항구를 지키는 병력이 아예 없었고 항구의 방어를 위해 쌓은 성에도 왜군의 수가 50명에 불과했다니 성을 지키고 있던 왜군의 수가 너무 적었던 것도 마음에 걸린다. 그리고 전선으로 쓰이는 관선이 2척이나 정박해 있는데 배를 지키는 병력도 없었다니 이상한 일이 한 두 가지가 아니야.’

지금의 상황이 아무래도 이상하다는 생각이 든 잠시 생각을 정리하다가 나는 이억기에게 물었다.

“지금 항구에 상륙한 병력이 얼마나 되나?.”

“항구를 방어하고 있는 병력까지 합하면 300명이 좀 넘습니다. 그리고 항구 북쪽의 왜성에도 군사 200명과 조선인 100명이 좌수사 영감의 명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럼 당장 진군할 수 있는 병력이 500명이 조금 넘는군. 항왜들은 이곳 복강도의 지리에 익숙할 테니 항왜들을 길잡이로 삼을 수 있겠고.”

내 말을 들은 이억기가 물었다.

“출병을 명하시겠습니까. 좌수사 영감.”

나는 이억기에게 대답하지 않고 지도를 펼쳤다. 좌수영에서 포로들을 심문해서 확인한 정보를 바탕으로 제작한 지도였다. 지도를 살펴본 나는 섬 안쪽에 그려진 성을 가리키며 이억기에게 명령을 내렸다.

“이 성안에는 복강도에 주둔하고 있는 대부분의 왜군들이 거주하고 있다. 지금 즉시 군사들을  왜성 까지 진군하도록 하라.”

“지금 바로 말씀이십니까. 영감.”

“아무래도 지금의 상황이 출병하기 전에 예상했던 것과 너무나 다르다. 이상한 일이 한 두 가지가 아니야. 아군의 전력이 왜군보다는 월등히 우세하기는 하지만 앞으로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니 왜군들에게 대응할 시간을 주지 않기 위해 최단 시간 안에 왜성을 친다. 항구와 왜성을 지키고 있는 병력까지 총동원해 진군하도록 하고 전선에 대기 중인 군사들을 상륙시켜 항구와 왜성을 지키고 보급로를 확보하도록 한다.”

“명을 받들겠습니다. 좌수사 영감.”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