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선 수군이 되었다-72화 (72/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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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투

이억기가 군사들을 수습해 진군을 준비하는 동안 나는 좌수영에서 출병한 이후부터 지금까지의 경과를 간단히 정리해서 기록했다. 기억이 생생할 때 기록해 두는 것이 정확하고 이렇게 기록한 자료는 전쟁이 끝난 후 논공행상을 행할 때와 조정에 장계를 올릴 때 자료로 사용될 것이다. 지금까지의 상황을 기록하면서 항구 북쪽에 있는 왜성을 간단히 북성으로 기록했고 이제 곧 진군할 복강도 내륙에 위치한 성을 복강성으로 기록했다. 내가 필기를 하고 있는 동안 군사들을 수습한 이억기는 준비를 끝내고 내게 보고했다.

“진군할 준비가 끝났습니다. 좌수사 영감.”

이억기의 보고에 눈을 들어보니 군사들이 병장기를 들고 대기하고 있었고 군사들의 뒤에는 포가에 설치된 현자총통 12문이 보였다.

“항구 북쪽의 왜성에는 군사 50명을 남겨 성을 지키도록 했고 성에 감금되어 있던 백성들은 군사들과 함께 출병하기를 자청해 길잡이로 삼아 앞세우려 합니다.”

이억기의 보고에 만족한 나는 자리에 일어나 이억기에게 진군 명령을 내렸다.

“수고했네. 이제 출발하지. 오늘 저녁은 왜성을 함락시키고 그 안에서 먹을 것이다.”

“예 좌수사 영감.”

나에게 공손히 군례를 올린 이억기는 환도를 뽑아들고 힘차게 외쳤다.

“자 가자. 왜성을 향해 진군한다.”

“와아~”

이억기가 외치자 군사들은 병장기를 들어올리며 함성을 질렀고 길잡이로 선발된 항왜들과 조선인들이 앞장서서 길을 안내했다. 길잡이들의 뒤에는 500명이 넘는 군사들이 병장기를 들고 진군했고 군사들의 뒤에는 군량과 화약 그리고 화살과 포탄을 길은 달구지들의 행렬이 줄줄이 이어졌다. 강줄기를 따라 진군하는 동안 왜인들의 마을을 지나기도 했지만 무장한 군사들이 보이자 왜인들은 집에 들어가 문을 닫고 내다보지도 않았다. 길 안내를 하던 항왜들은 왜인들을 마주칠 때 마다 일본어로 ‘어서 집으로 돌아가라’고 외치며 왜인들에게 좌수군에게 저항하지 말라고 당부했다.

어느덧 정오가 가까워질 무렵 저 멀리에 왜성이 보였다. 왜성이 시야에 들어오자 나는 정신을 집중해 왜성 주변을 살펴보았고 성 앞에는 500여명 남짓한 왜군들이 진을 치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성 밖에서 싸울 생각인가. 성문을 닫고 농성을 했으면 시간이 걸렸을 텐데 차라리 잘 된 일이군.’

왜군의 수는 500명에 가까워 보였지만 인근 마을의 주민들을 동원했는지 군사들 중에서 반 이상은 제대로 된 갑옷이나 투구도 쓰고 있지 않았다.

‘저건 농민들과 어부들에게 창만 들려서 내보낸 것 같은데. 하긴 전국시대 일본에서는 농민들과 어부들도 집에 무기를 숨기고 있다가 전쟁에서 패해 도망치는 패잔병들을 사냥해 무기와 갑옷을 빼앗고 심지어 패잔병의 목을 잘라 상대방 무사들에게 바치고 상을 받는 경우도 있었다고 했지. 일본에서는 농민들도 어부들도 방심할 수는 없어.’

내가 왜군을 발견하고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을 때 이억기가 다가와 보고했다.

“왜군을 발견했다고 합니다. 일전을 벌일 생각인 것 같습니다.”

나는 이억기의 보고에 고개를 끄덕이며 명령을 내렸다

“왜군들이 성 밖으로 나왔으니 우리에게는 잘 된 일이다. 왜군들이 성 안으로 들어가기 전에 격파한다. 사부와 총병을 앞세우고 왜군들로 부터 100보 앞까지 전진하라. 왜군들이 화승총과 활로 공격할 수도 있으니 방패를 든 병사들을 앞세워 총병들과 사부들을 보호하도록 하고 화포장은 왜군들과의 거리를 계산해 방포가 가능한 곳에 화포를 준비하라.”

“예 좌수사 영감.”

애초에 후쿠에 섬에 상륙하는 병력의 지휘는 이억기에게 맡기려고 했지만 내가 군사들과 함께 내륙으로 들어오자 이억기는 내게 보고하며 내 명령을 받았으니. 내가 이억기를 통해 군사들을 지휘하는 형태가 되었다. 이억기에게 미안하게 됐지만 내가 동행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억기가 단독으로 군사들을 지휘할 수는 없었다.

내 명령이 떨어지자 군사들은 그 자리에 멈춰 대열을 정비했다. 사부와 총병들이 앞으로 나서는 동안 방패를 든 병사들은 총병들의 좌우 옆에 섰고 군관들과 검술에 능한 군사들이 총병의 바로 뒤에 섰다. 마지막으로 창병들은 군관들과 거리를 두며 뒤에서 대열을 정비했다.

대열의 맨 뒤에 있던 포수들은 뒤에서 밀기도 하고 앞에서 끌기도 하며 가져오던 화포를 멈추고 잠시 휴식을 취했다. 잠시 후 대열을 정비한 군사들이 다시 앞으로 전진 하자. 포수들은 다시 포가에 장착된 화포를 밀기도 하고 끌기도 해가며 행군을 시작했다. 포수들이 끙끙거리며 화포를 끄는 동안 왜군과의 거리를 가늠하던 화포장 이동구는 왜군과의 거리가 200(약240m)보 가까이 된다고 판단되자 그 자리에서 포수들에게 멈출 것을 명령했다.

"그 자리에 멈춰라. 이 정도면 충분히 방포할 수 있는 거리다.“

군사들의 뒤에 서서 군사들이 전진하는 것을 지켜보고 있던 나는 포수들이 멈춘 것을 보고 포수들에게 다가갔다.

“왜 멈춘 것인가?.”

내가 묻자 이동구가 고개를 조아리며 대답했다.

“충분히 방포할 수 있는 거리이기에 이 자리에서 방포를 준비하려고 합니다. 영감.”

이동구의 대답을 듣고 화포들과 왜군들을 번갈아 보며 위치와 거리를 계산한 나는 이동구에게 전진 명령을 내렸다.

“성 밖으로 나온 왜군들부터 처리할 것이다. 총통 중 6문에는 조란환을 장전하고 다른 6문에는 철환을 장전하라.”

“명을 받들겠사옵니다. 좌수사 영감.”

이동구는 나에게 대답한 후 포수들에게 조란환과 철환을 장전할 것을 명령했다. 포수들은 보급품이 실린 수레에서 화약통과 조란환 그리고 철환이 든 나무상자를 꺼내 총통에 화약과 포탄을 장전했다. 이번에 출병하면서 페이퍼 카트리지 방식으로 총통에 사용할 화약을 1회 방포할 분량으로 소분해 포장할 것을 지시했다. 포수들은 화약을 장전하면서 1회분의 화약이 든 종이봉지를 통째로 총통에 가져가 물에 젖지 않도록 기름을 먹인 종이를 뜯어 봉지 안의 화약을 일제히 총통 안에 털어 넣고 밀대로 포신 안에 화약을 다져넣으면 되니 총통을 장전하는 시간이 이전보다 빨라졌고 장전하는 과정도 한결 편해졌다.

12문의 화포에 화약과 포탄이 모두 장전되자 나는 화포장 이동구에게 명령을 내렸다.

“총통을 앞으로 끌고 가서 방포를 준비하라. 창병들 바로 뒤편 까지 총통을 끌고 가야 한다. 우선 왜군들을 격멸시키고 왜성을 공격할 것이다.”

“예 좌수사 영감.”

내 명령이 떨어지자 포수들은 다시 화포를 끌고 밀어가면서 앞으로 전진 했다. 한편 왜군들을 향해 다가가던 군사들은 왜군들과의 거리가 100보 가까이 되자 그 자리에 멈췄다. 군사들이 멈추자 성 앞에 버티고 있던 왜군들이 군사들을 향해 활과 조총을 쏘며 공격해 왔다.

“탕”  “탕”  “탕”

총성이 울리고 왜군들이 활을 쏘자 방패를 든 군사들이 재빨리 앞으로 나와 방패로 군사들의 앞을 가렸다. 이번에 가져온 방패는 고토열도로 출병하기 전에 특별히 제작한 특제품 방패였다. 나무로 된 방패지만 전면에 반으로 쪼갠 대나무 조각을 촘촘하게 붙여 총탄이나 화살이 방패에 명중해도 대나무 조각을 깨트리면 총탄과 화살의 관통력을 약화시켜 방패를 관통하지 못하도록 제작한 방패였고 방패의 안쪽에는 질긴 돼지가죽을 둘러 방어력은 한층 더 높였다.

왜군들과의 거리는 조총으로는 충분히 살상 가능한 거리였지만 왜군들에게 조총의 수가 많지는 않은지 총성은 그리 자주 들리지 않았고 조선군이 사용하는 각궁보다 관통력과 사정거리가 떨어지는 일본의 목궁은 좌수군에게 그렇게 큰 위협이 되지 않았다.

“탁” “팍”

총탄에 맞았는지 방패에 붙은 대나무 조각이 쪼개졌고 화살이 박혔지만 아직까지 방패를 관통한 총탄이나 화살은 없었다. 특별히 제작한 방패가 왜군이 쏜 총탄과 화살을 충분히 막아내자 군사들은 안심하고 방패 뒤에 몸을 숨겼다. 한편 왜군이 사절을 보내거나 대화도 없이 공격하자 이억기는 몹시 화가 났다.

‘아니 아무리 전장이라고는 하지만 사신도 보내지 않고 아무런 통보도 없이 대뜸 활부터 쏘다니. 왜인들은 예의범절을 모르는 무례한인 것이 분명하구나.’

이억기는 환도를 뽑아들고 성난 목소리로 외쳤다.

“사부들은 무엇을 하느냐. 왜군들을 공격하지 않고 총병들은 장전하는 대로 왜군들에게 방포하도록 하라.”

“예이~”

이억기의 명령이 떨어지자 방패 뒤에서 몸을 숨기고 있던 사부들이 일제히 활을 들어올렸다. 조선의 궁수들은 주로 직사로 활을 쐈다고 하지만 활은 곡사도 가능한 무기였다. 사부들은 활을 들어올리기 무섭게 화살을 꺼내 활에 장전하고 시위를 힘껏 잡아당겼다.

“쏴라~”

군관의 명령에 사부들은 일제히 시위를 높고 화살을 날렸다.

“명을 기다릴 것 없다. 준비된 사부들은 연이어서 쏴라.”

군관의 명령은 활을 쏜 사부들은 다시 화살을 꺼내 왜군들을 향해 연달아 화살을 날렸다. 복합궁인 각궁은 왜군이 사용하는 일본제 목궁보다 사정거리도 길었고 관통력도 강했다. 사부들이 방패 뒤에 몸을 숨기고 쐈으니 정확하게 조준을 하지는 못했지만 100여발의 화살이 일제히 날아갔으니 화망을 구성하기에는 충분했다. 잠시 후 하늘 위에서 100여발의 화살이 왜군들을 향해 쏟아졌고 왜구들의 머리 혹은 어께와 팔, 더러는 가슴에 화살이 박혔다.

“으악~”  “아악~”  “으아~”

왜군들 사이에서 비명소리가 들려오면서 총성이 멈췄다. 조총을 발사하던 왜군들도 화살에 맞은 것이다. 사부들이 날린 화살에 왜군들이 연이어서 쓰러지자 이억기는 신이 나서 명령을 내렸다.

“바로 지금이다. 총병들은 왜군들을 향해 방포하라.”

이억기의 명령이 떨어지자 방패를 든 군사들은 좌우로 갈라지면서 사부와 총병들에게 길을 열어주었고 시야가 확보된 총병들은 화승총을 들고 왜군을 조준한 후 방아쇠를 당겼다.

“탕” “탕” “탕” “탕” “탕”

왜군들이 발포할 때 보다 요란한 총성이 울리며 선두에 있던 왜군들이 일제히 쓰러졌다. 총병들의 일제사격은 그 위력이 놀라웠다. 선두의 병사들이 일제히 쓰러진 것은 물론 50명의 총병이 방포하여 30명 이상의 적군이 쓰러졌으니 실전에서의 명중률도 양호한 편이었다. 그동안 총병들이 훈련하는 장면만 봤었지 실전에서 화승총의 위력을 처음으로 목격한 이억기는 화승총이 자신이 생각했던 것보다 유용한 병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화승총이 승자총통과 별 차이가 없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오늘 보니 승자총통 보다 유용한 병기 같구나.’

일본군들을 향해 방포한 총병들은 다시 방패 뒤로 몸을 숨기고 화약이 든 종이봉지(페이퍼 카트리지)를 꺼내서 화승총에 화약을 부어넣고 삭장을 총구에 밀어 넣었다. 활과 화승총의 공격에 연달아 당했으면 왜군들도 도망치거나 성으로 피할 생각을 할 법도 하지만 왜군을 지휘하는 장수는 용맹한 것인지 아니면 성으로 피하는 것을 수치로 여긴 것인지 일본도를 휘두르며 사방에 대고 고함을 질렀다. 왜장이 고함을 지르며 설치자 주춤거리던 왜군들은 일제히 일본도와 창을 들고 좌수군 군사들을 향해 달려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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