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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벌의 원인
왜군들이 돌격해오자 선두에 서있는 총병들과 사부들은 당황한 기색을 보였다.
“군관들과 창병들은 무엇을 하고 있느냐.”
이억기가 창병들에게 공격 명령을 내리려고 하자 나는 조용히 이억기에게 명령을 내렸다.
“군사들을 좌우로 물러나게 하라.”
적군들이 몰려오고 있는데 군사들을 물러나게 하라는 명령을 들은 이억기는 당황한 표정으로 나를 보았고 나는 단호한 목소리로 이억기에게 말했다.
“총통에 조란환을 장전해 놨다. 왜군들에게 총통을 방포할 것이니 군사들을 물러나게 하라.”
“예 좌수사 영감.”
그제 서야 상황을 이해한 이억기는 다시 명령을 내렸다.
“좌우로 물러서라 총통을 방포할 것이다.”
“어서 물러서라. 방포할 것이다.”
“몸을 피해라.”
방포한다는 명령이 떨어지자 군사들은 서둘러 좌우로 흩어졌고 그러자 군사들의 뒤에 숨어있던 현자총통이 그 모습을 드러냈다. 좌수군 군사들을 향해 달려오던 왜군들은 좌수군 군사들이 좌우로 갈라지자 의아하게 생각하다가 현자총통을 발견하고는 놀란 표정을 지었다.
“쾅” “쾅” “쾅”
현자총통이 불을 뿜으며 수 백발의 조란환이 왜군들을 향해 날아갔다.
“으악~” “아악~”
달려들던 왜군들은 조란환 세례에 그대로 벌집이 되어 쓰러졌고 앞에서 달리던 왜군들이 쓰러지는 광경을 목격한 왜군와 왜의 무장들은 그제 서야 방향을 돌려 왜성으로 달아나려고 했다.
“어서 방포하라.”
왜군들이 왜성 안으로 도망치려고 하자 나는 방포명령을 내렸다. 12문의 총통 중에서 조란환을 장전해 놓은 총통은 6문이었고 그중에서 3문만 방포했으니 아직 3문의 총통은 조란환을 장전한 체 방포 명령을 기다리고 있었다. 노련한 화포장인 이동구는 왜군의 수가 아군보다 많지 않자. 3문의 총통만 방포하고 방포하지 않은 3문을 남겨두고 있었던 것이다. 내가 방포명령을 내리자 대기 중이던 3문의 현자총통을 방포했다.
“쾅” “쾅” “쾅”
다시 한번 포성이 울리며 조란환이 발사되자 왜구들은 포성에 다시 한번 놀라고 또다시 조란환 세례에 쓰러졌다. 2차례의 방포 이후에 살아서 도망치는 왜군들은 불과 100여명에 불과해 보였다. 왜군들이 포성에 놀라 도망치는 만큼 사기도 바닥으로 곤두박질쳤을 것이 분명하다고 판단한 이억기에서 명령을 내렸다.
“바로 지금이야. 군사들을 왜성으로 돌격시키게.”
“예 좌수사 영감.”
이억기는 힘차게 대답하고 군사들에게 외쳤다.
“좌수군 군사들은 어서 돌격하라. 왜군들을 섬멸하고 왜성을 점령하라. 돌격이다.”
“와아~”
현자총통의 방포를 목격한 좌수군 군사들이 이미 사기가 치솟아 있었다. 이억기의 돌격 명령이 떨어지자 군사들은 주저하지 않고 함성을 지르며 왜성을 향해 달려갔다.
“와아~”
“왜구들을 죽어라~”
“왜성을 점령하자~”
“우리는 전라좌수군이다. 조선 최고의 정예군이다.~”
“좌수사 영감께서 우리를 이끄신다.”
“좌수사 영감은 조선 제일의 명장이시다.”
군사들은 함성을 지르며 왜성을 향해 들려들었고 군사들이 외치는 소리 중에는 내가 듣기에 민망한 내용들도 있었다.
‘뭐. 내가 조선 제일의 명장이라고 낯 뜨겁기는 하지만 기분 나쁜 소리는 아닌데.’
아직 전투가 끝나지는 않았지만 내가 군사들이 외치는 소리에 신경을 써도 될 만큼 전황은 우리에게 유리했다. 총통이 방포되고 왜군들이 벌집이 되어 쓰러지자 왜성을 지키고 있던 왜군들도 총통의 위력에 놀랐다.
“어서 성문을 닫아라. 빨리 닫지 못하겠느냐.”
성벽 위에서 전투를 지켜보고 있던 하세가와 미츠시로는 성 밖으로 나간 군사들이 조선군에게 쫓겨 도망치는 모습을 보고 성문을 지키고 있는 군사들에게 빨리 성문을 닫으라고 외쳤지만 전투에서 패한 왜군들이 이미 성 안으로 뛰어 들어오고 있는 상황에서 성문을 지키고 있던 군사들과 이들을 지휘하는 타가미 마고시타와 사쿠라타니 로쿠카즈는 성문을 닫을 수 없었다. 성문을 지키고 있는 군사들이 머뭇거리며 성문을 닫지 않자 미츠시로는 다시 한번 고함을 질렀다.
“성문을 닫으라고 하지 않았느냐. 감히 내 명을 듣지 않다니 목이 날아가고 싶은 것이냐. 조선군이 몰려오고 있다. 조선군이 성 안으로 들어오면 너희는 무사할 것 같으냐.”
미츠시로의 고함소리를 들은 마고시타와 로쿠카즈는 조선군이 오고 있다는 말에 황급히 성문을 닫으려고 했지만 성문이 완전히 닫히기 전에 최도진이 성문 안으로 들어오는데 성공했다. 두정갑 차림에 손에 환도를 들고 성문 안으로 뛰어 들어온 최도진은 성 안으로 들어오기 무섭게 성문을 닫기 위해 밀고 있던 마고시타를 향해 환도를 휘둘렀다.
“이놈들이”
“으악.”
환도에 팔에 길게 자상을 입은 마고시타는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고 성문을 밀기 위해 무기를 내려놓고 있었던 왜군들은 환도를 휘두르며 달려드는 최도진을 피해 도망쳤다. 마고시타와 함께 있던 왜군들이 성문에서 떨어지자 최도진은 이번에는 로쿠카즈를 향해 달려가며 환도를 휘둘렀다.
“어어~”
최도진의 살기등등한 모습에 놀란 로쿠카즈는 성문을 닫아야 한다는 사실도 잊고 그 자리에서 도망쳤고 성문을 밀고 있던 왜군들도 도망치거나 그 자리에 엎드려 목숨을 구걸했다. 성문을 닫으려던 왜군들이 도망치자 최도진은 자신의 뒤를 따라온 군사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어서 성문을 활짝 열어라. 군사들이 안으로 들어올 수 있도록 성문을 활짝 열란 말이다.”
“예이~”
좌수군 군사들은 왜성의 성문에 달려들어 성문을 열었고 열린 문으로 군사들이 연이어서 들어왔다.
왜군들이 성문을 닫지 못하는 순간 전투는 끝난 것이나 다름없었다. 좌수군 군사들이 성 안까지 쫓아 들어오자 왜군들은 더 이상 도망칠 곳이 없다는 것을 직감하고 좌수군 군사들에게 일본도와 창을 휘두르며 저항했지만 왜군의 사기는 이미 떨어질 때로 떨어져 있었던 반면에 좌수군 군사들의 사기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아 있었다. 왜군들은 조선군에 비해 날쌔고 검술에 능하다고 알려져 있었지만 좌수군과 싸우고 있는 왜군들 중에 절반 이상은 근처 마을에서 끌려온 농민들이었고 좌수군 군사들은 고토열도를 정벌하기 위해 한 달 이상 군사훈련을 받은 정예병들이었다. 군사들 개개인의 전투력에서도 왜군들에게 크게 밀리지 않았고 숫자에서는 3배 이상 우위에 있었으니 좌수군을 향한 왜군들의 공격은 최후의 발버둥에 지나지 않았다.
결국 한 시간도 지나기 전에 대부분의 왜군들은 피를 흘리며 쓰러졌고 후쿠에 섬에서 가장 크다는 왜성은 결국 전라좌수군이 점령했다. 성 안의 왜구들을 소탕했다는 보고에 나는 이억기와 함께 왜성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성을 향해 걸으며 이억기는 감탄했다는 듯이 나에게 물었다.
“좌수사 영감. 과연 명불허전(名不虛矣)이십니다. 전투를 시작하기도 전에 어떻게 포수들에게 조란환을 준비하게 하셨습니까. 혹시 왜군들이 돌격해 올 것을 예상하시고 계셨습니까?.”
이억기의 질문에 나는 태연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우리 좌수군의 군사들이 왜군들과의 전투에서 패하지는 않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었지. 다만 왜군들은 상황이 불리해도 격렬하게 저항할 것을 예상했기에 아군의 피해를 줄이기 위해 조란환을 준비했을 뿐이네.”
“아니 어떻게 왜군들이 격렬하게 저항할 것을 예상하셨습니까. 소장은 저들이 돌격해 올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던 터라 매우 놀랐습니다.”
나는 이억기와 대화를 주고받으며 그가 명장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신분도 왕실 종친에 불과 20대의 젊은 나이에 북방에서 이미 명성을 떨쳤던 맹장이 더구나 종3품의 순천부사직에 고위무관이 자신보다 나이 어린 상관을 질투하지도 않고 자신은 예상하지 못했었다고 솔직하게 말하고 물어보기 까지 하다니. 체면을 중시하는 조선인들에게서는 보기 힘든 성품이다. 과연 이억기 장군이 명장이 된 것은 다 이유가 있었구나.’
나는 이억기의 솔직한 성품에 놀라며 이억기에게 대답했다.
“왜군들 특히 무장들은 우리가 조선군이라는 것을 안 그 순간부터 자신들이 용서받을 수 없다고 생각하고 끝까지 저항할 마음을 먹었을 것이네.”
“왜 그런 것입니까?. 북방의 야인들도 사납기는 하지만 불리한 상황에서 항복하는 경우가 없지는 않았습니다.”
“우리가 왜 이곳 오도를 정벌했는지를 생각해보게. 저들은 불과 두 달 전에 손죽도와 시산도 그리고 절이도를 노략질하고 조선인들을 이것 오도까지 끌고 온 놈들이야. 저들도 머리가 있다면 조선군이 이곳을 정벌하는 이유가 자신들이 벌인 짓 때문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을 테니 어차피 항복해도 처형당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차라리 끝까지 저항할 생각을 했을 테지. 뭐 나라도 같은 상황이라면 그런 생각을 하게 될 것 같군.”
네 대답을 들은 이억기는 자신은 그런 생각을 못했다는 듯이 말했다.
“확실히 그렇습니다. 소장이 지난 전란을 겪었었다면 이해했을 텐데. 소장 수군장수가 된지 얼마 되지 않아 그런 사정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나는 이억기에게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그럴 수 있는 일이니 너무 마음 쓰지 마시게. 하지만 이번 정벌의 원인이 지난 전란이었다는 것은 항상 기억하시게. 이번에 출병한 좌수군 군사들 중에서 반 이상은 스스로 자원한 군사들이 아닌가. 지난 전란이 없었다면 좌수군의 군사들도 오도정벌에 이렇게 많이 지원하지는 않았을 것이네.”
내 말을 들은 이억기는 군기가 바짝든 모습을 보이며 대답했다.
“절대로 잊지 않겠습니다. 좌수사 영감.”
이억기와 대화를 주고 받으며 왜성에 들어서자 성문과 성벽에는 이미 좌수군 군사들이 배치되어 있었고 성문 주위에는 핏자국이 선명하다 못해 흥건해 보이는 것이 격렬한 전투가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내가 이억기와 함께 성 안으로 들어가자 군사들은 나에게 군례를 올렸고 군관들과 한 무리의 군사들이 성 안에 모여 있었다. 성 안으로 들어온 나는 이억기에게 명령을 내렸다.
“군사들을 동원해 성 안으로 샅샅이 수색하도록 하게 성안에 남아있는 사람은 없는지 그리고 성안에 남아있는 재물과 군량과 병장기, 화약 등 성 안에 남아있는 모든 물품을 확인하고 빠짐없이 기록하여 보고하게.”
“명을 받들겠습니다. 좌수사 영감.”
이억기가 힘차게 대답하고 군관들에게 성안을 수색할 것을 명하자 군관들은 군사들을 거느리고 성안 구석구석을 들쑤시고 열어보았다. 군사들이 성안으로 수색하는 동안 잠시 성벽을 살펴보던 나는 군관 최도진이 성벽에 세워진 망루에서 내려오는 것을 발견하고 최도진에게 다가갔다. 나는 가장 먼저 성안으로 들어온 최도진을 격려했다.
“수고가 많았네.”
“수고라니요. 아닙니다. 좌수사 영감.”
“성 안에서도 전투가 치열했던 것 같은데 아군의 사상자는 얼마나 되는가?.”
최도진은 이미 사상자 수를 파악하고 있었는지 어렵지 않게 대답했다.
“군사들 중에서 죽은 사람은 없고 12명이 다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사망자가 없다니 천만 다행이군. 수고가 많았네.”
“아닙니다. 좌수사 영감.”
내가 최도진과 대화를 나누고 있었을 때 이억기가 나를 찾아왔다.
“좌수사 영감. 영감께서 직접 보셔야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