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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와 아이들
내가 직접 봐야할 것 같다는 이억기의 말에 나는 이억기와 함께 성내로 들어서면서 물었다.
“무슨 일인가?.”
“성 안에서도 많은 여인들이 모여 있는 방을 찾았습니다. 아무래도 갇혀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지난번에 말씀하신 남만인들을 발견했습니다.”
이억기의 대답을 들은 나는 순간 머릿속에서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여인들을 성안에 가둬두고 있었다니. 갤리온이 왜 후쿠에 섬 까지 왔나 했더니. 설마 이놈들이.’
성내로 들어서면서 나는 이억기에서 말했다.
“사화동과 항왜들을 불러오게 그리고 군사들 중에 왜어를 구사할 수 있는 자들도 몇 명 불러오고.”
“예 영감.”
이억기는 군사들에게 명령을 내려 사화동과 일본어를 아는 군사들을 불러오게 한 후 계속 나를 안내했다.
“이 방입니다.”
방 앞에는 창을 든 군사 두 명이 방문을 지키고 있었다.
“여인들이 갇혀있는 방인가?.”
“예 그렇습니다.”
“방문을 열게.”
“예. 영감.”
이억기는 나에게 대답한 후 방 앞에 서 있는 군사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방문을 열어라.”
“예이.”
군사들이 방문을 열자 제법 넓은 방안에 여인들이 빼곡히 앉아 있었다. 다들 지쳤는지 아니면 겁을 먹은 것인지 표정이 어두웠고 고개를 숙이고 있는 여인들도 상당수였다. 그 광경을 본 나는 어이가 없었다.
‘미쳤다. 정말. 얼핏 봐도 100명은 넘겠네. 옷차림을 보니 노예나 기생들도 아닌 마을 주민들 같은데 마을 아녀자들을 이렇게 많이 잡아왔다니.’
이것만 봐도 우리가 왜성을 함락시키지 않았으면 이들이 어떤 일을 당했을지 짐작할 수 있었다. 일본인들을 좋아하지는 않지만 이런 모습을 보니 여인들에게 측은한 마음까지 들었다.
‘참 일본인들이 불쌍하게 생각되는 것은 조선에서는 물론 한국에서의 삶까지 통틀어서 정말 처음이네.’
여인들을 내려다보던 나는 민망한 마음에 이억기를 향해 고개를 돌려 물었다.
“항왜들은 아직 도착하지 않았는가. 왜 이리 더딘가.”
“군사들을 보내 찾아오도록 하겠습니다.”
이억기가 황급히 군사들을 보내려고 했을 때 항왜들과 군사들이 복도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들을 발견하자 나는 조용히 그들을 불렀다.
“이쪽으로 오거라.”
항왜들이 방 앞으로 다가오자 나는 방안으로 가리키며 항왜들에게 물었다.
“이들 중에서 아는 사람이 있느냐?”
내 질문에 방안을 들여다보던 항왜들이 갑자기 경악을 했다. 항왜 중에 하나는 놀란 표정으로 다급하게 뭐라고 외쳤고 일본어를 구사하는 군사들은 항왜가 외친 말을 나에게 설명했다.
“자신들이 살던 마을의 아녀자들이라고 합니다. 지금 말을 하고 있는 자는 자신의 부인이 방안에 있다고 외치고 있습니다.”
“뭐. 부인이 방안에 있어?”
“예. 그렇다고 합니다.”
‘설마 했는데 역시 나구나.’
항왜의 부인이 방안에 있다는 말에 나는 짐작하고 있던 것이 확실하다고 판단했다. 쉬지 않고 뭐라고 떠들고 있는 항왜가 누군가 하고 바라보니 아버지가 마을의 촌장이라고 했던 이와마츠 요시히였다. 요시히는 방안에 손짓을 하며 일본어로 뭐라고 외치고 있었다. 그 광경을 본 나는 일본어를 통역하고 있는 군사에게 말했다.
“요시히에게 부인을 방에서 데리고 나와도 좋다고 전해라. 나는 너희와의 약속을 지킬
것이라는 말도 함께 전하고.”
“예 좌수사 영감.”
군사가 요시히에서 말하기도 전에 내말을 들은 사화동이 먼저 일본어로 항왜들에게 말했다. 요시히는 나에게 연신 고개를 숙이더니 방안에 있는 자신의 아내에게 나오라고 외쳤고 방 안에 있던 여인은 조심스럽게 자리에서 일어나 요시히에게 다가왔다. 그 광경을 보고 있는 나에게 사화동이 다가와 다급하게 말했다.
“방안에 있는 여인들은 모두 마을의 주민들입니다. 그리고 대부분이 지난번에 숨졌거나 지금 돌산도에 있는 장정들의 부인과 딸들입니다.”
사화동의 설명을 들은 나는 나도 모르게 인상이 굳어졌다.
‘뭐 부인과 딸들이라고 어린 소녀들 까지 잡아왔다는 말이야.’
나는 침착한 표정을 보이려고 노력하며 사화동에게 물었다.
“방 안에 너의 부인도 있느냐?”
“그렇습니다. 장군.”
“그럼 무엇을 하고 있느냐. 어서 네 부인을 데리고 나오지 않고. 다른 항왜들에게도 부인과 딸이 방안에 있으면 데리고 나오라고 전하라.”
“예 장군. 감사합니다. 장군.”
사화동은 나에게 연신 고개를 숙이더니 항왜들에게 일본어로 말했다. 사화동의 말을 들은 항왜들은 나에게 일제히 고개를 숙이더니 방 안에 있는 가족들에게 어서 나오라고 외쳤다.
항왜들의 부인과 자녀들이 방안에서 나오자 방안에 있는 다른 여인들은 가족을 만난 여인들을 부러워하는 기색이었고 항왜들은 부인들이 방안에서 나오는 그 짧은 시간도 안절부절 하지 못하며 아내가 밖으로 나오는 것을 지켜보았다.
부인을 만난 항왜들은 부인을 껴안고 울음을 터트렸고 부인들도 남편을 껴안고 눈물을 흘리기는 마찬가지였다. 그 와중에 사화동과 사화동의 아내는 나를 향해 엎드려 큰절을 올렸다.
좁은 복도에서 사화동과 그의 부인이 큰절을 올리자 나는 민망한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그 모습을 본 다른 항왜들과 부인들도 엎드려 나에게 큰절을 올렸다.
“그만 일어나라 이게 무슨 일이냐.”
항왜들이 일제히 큰절을 하자 당황한 나는 항왜들에게 일어나라고 했지만 사화동은 울먹이는 목소리로 내게 외쳤다.
“장군님. 장군님의 은혜로 다시 부인과 만났습니다. 이제는 정말 여한이 없습니다. 평생 장군님의 개로 충성을 바치며 살겠습니다.”
‘장군님의 은혜라니 한국 위에 있던 동네가 생각나네. 좀 민망하긴 해도 충성을 바치겠다니 기분이 나쁘지는 않네.’
사화동을 시작으로 항왜들은 일제히 나에게 충성을 바치며 연신 감사하다고 외치자 그런 항왜들의 모습에 민망하기도 하고 난감함을 느낀 나는 우선 자리를 수습하자는 생각에 이억기에게 명령을 내렸다.
“우선 항왜들에게 방을 내주게. 아직은 이들을 성 밖으로 나가게 할 수 없으니 항왜들이 가족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쉴 수 있도록 비어있는 방을 내어주게. 먹을 것도 챙겨주고.”
“예 좌수사 영감.”
이억기의 대답을 들은 나는 아직도 방안에 앉아 있는 여인들을 가리키며 추가로 명령을 내렸다.
“우리가 아직 섬을 완전히 점령한 것은 아니니 이들도 지금은 성 밖으로 내보내지 않는 것이 좋겠군, 이들에게 묻고 싶은 것도 있으니 우선은 이들에게 물과 먹을 것을 가져다주고 당장은 계속 이 방에서 지내게 하게. 방문 앞은 항상 군사들이 지키게 하고.”
“명을 받듭니다. 좌수사 영감.”
이곳의 일을 마무리하고 유럽인들을 보러 가려고 했을 때 사화동이 나에게 다가왔다.
“무슨 일이냐?”
“방안에 있는 여인들의 수발을 드는 것은 저희가 하겠습니다. 여인들도 군사들이 다가가는 것 보다는 저희가 보살피는 것이 마음 편할 것입니다.”
‘항왜들이 마을 여인들을 보살핀다? 괜찮은 방법 같은데. 항왜들은 일본어가 되니 아녀자들과 말도 통하고 항왜의 아내들과 가족들은 방금 전까지 여인들과 같이 있었으니 여인들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도 잘 알고 있을 것이고. 무엇보다 항왜들이 나서서 일을 맡는다면 군사들이 할 일이 줄어들게 되지.’
“좋다. 이들은 너희에게 맡기마. 필요한 것은 순천부사나 최도진 군관에게 부탁하도록 하고 성안에 있는 식량을 사용해도 좋다.”
대답을 들은 사화동은 감사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나에게 고개를 숙인 후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감사합니다. 장군님 그리고 말씀드릴 것이 더 있습니다.”
“무엇이냐. 시간이 없으니 빨리 말하라.”
“아내의 말로는 다른 여인들이 성안의 창고에 갇혀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아이들도 성안에 갇혀있다고 합니다.”
사화동의 말을 들은 나는 반사적으로 이억기를 찾았다.
“순천부사.”
“예 영감.”
“당장 군사들을 풀어 성을 다시 샅샅이 수색하게 성안에 여인들과 아이들이 갇혀있다고 하니 철저하게 수색하여 찾도록 하게 알겠는가.”
“예 좌수사 영감.”
“최 군관은 어디에 있는가.”
“소장 최도진 여기에 있습니다.”
내가 최도진을 부르자 복도 끝에 서 있던 최도진이 대답했다.
“최도진 군관은 성 안에서 항복하거나 붙잡힌 포로들을 문초해 성안에서 왜 여인들과 아이들을 가두고 있었는지. 아니 지난 전란 이후 성에서 벌어진 모든 일들과 꾸미고 있는 일들을 모조리 밝혀내도록 하라. 필요하면 장을 치거나 주리를 틀어도 좋다.”
“예 좌수사 영감.”
이미 이곳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었는지 짐작을 하고 있었지만 여인들이 갇혀있는 광경을 직접 보니 기분이 좋지 않았다. 더구나 아이들 까지 잡혀 있다는 말에 흥분한 나는 고문을 가해도 좋다는 명령을 내렸다.
‘그러나 이 모든 일의 원흉은 따로 있는 법이지.’
원흉을 직접 만날 생각에 나는 이억기에게 명을 내렸다.
“남만인들을 직접 만날 것이다. 안내하라.”
“예 영감.”
이억기의 안내를 받으며 남만인들이 있다는 방으로 향했다. 이 방에도 창을 든 군사들이 방문을 지키고 있었다.
“방문을 열어라.”
“예 영감.”
방문을 열라는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군사들은 방문을 열었다. 방 안에는 유럽인으로 보이는 외국인들이 다섯 명이나 있었고 이들의 통역인지 일본인으로 보이는 남자도 한 명 보였다.
‘정오가 지났는데도 아직 몰골이 저런 것을 보니 어젯밤에 무지하게 달리셨군. 숙취는 없으신지 모르겠네.’
잠시 방안을 들여다본 나는 곧장 방 안으로 들어가 유럽인들을 내려다 본 후 통역으로 따라온 병사에게 말했다.
“이들 중에 왜어를 구사하는 자가 있을 것이다. 내가 말하면 이들에게 왜어로 전해주면 된다.”
“명을 받드옵니다. 영감.”
병사의 대답을 들은 나는 유럽인들을 내려다보며 입을 열었다.
“나는 조선의 전라좌수사 즉 전라도 수군 지휘관인 이대원이다. 이 섬에 사는 왜구들이 우리 조섬의 섬들을 약탈하고 조선인들을 납치해왔기 때문에 주상전하께서는 이곳 복강도를 정벌하라 이르셨다. 나는 정벌군의 선봉장으로써 전선 16척과 2000명의 수군을 거느리고 복강도에 도착했고 섬의 항구와 항구 인근의 왜성은 이미 우리 수군이 점령하였다. 나는 복강도 정벌군의 선봉장으로써 이곳 복강도를 정벌하기 위해 이 성을 점령했다. 너희는 왜인으로 보이지 않으니 묻겠다. 너희는 누구이며 이것 복강도에는 무슨 이유로 왔느냐?.”
통역을 맡은 병사는 내가 한 말을 왜어로 저들에게 전달했고 유럽인들과 함께 있던 일본인은 병사가 한 말을 듣고 유럽인들에게 전달하는 것 같았다.
‘역시 저 일본인이 통역이었군. 이 놈들의 정체는 뭘까. 아직 영국과 프랑스가 아시아에서 세력을 떨칠 때가 아니니 스페인이나 포르투갈 아니면 네덜란드인들일 것 같은데.“
내 궁금증은 잠시 후 풀렸다. 일본인들 통해 내가 한 말을 전해들은 유럽인들은 자신들 끼지 뭐라고 이야기를 주고받더니 그들 중 가장 나이가 많아 보이는 자가 일행을 대표해서 자신들의 언어로 일본인에게 말했고 일본인은 다시 일본어로 나와 병사에게 유럽인들이 한 말을 전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