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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문
통역을 두 번이나 거쳐야 하니 시간도 많이 걸리고 대화의 내용도 약간은 틀릴 수 있겠지만 서로간의 대화가 불가능할 정도는 아니었다.
“우리는 포르투갈에서 온 상인들이고 나는 마라호의 선장인 마르셀 드스피놀라다. 우리는 이번 전쟁과 상관이 없으니 조선군이 괜찮다면 이만 섬을 떠나고 싶다.”
일본인 통역을 통해 저들의 대답을 들은 나는 마르셀 드스피놀라를 비롯한 포르투갈인들을 비웃으며 다시 물었다.
“상인이라면 무엇을 사고파는가? 이 섬에는 무엇을 구입할 계획이었고 무엇을 판매하기 위해 왔느냐?.”
“우리는 전쟁과 상관없는 상인이다. 우리가 당신의 질문에 대답할 의무는 없다. 우리는 조선이라는 나라를 가본적도 없고 이번 전쟁과 상관없으니 이만 섬을 떠나겠다.”
마르셀의 대답을 들은 나는 포르투갈인들을 노려보다가 통역을 하고 있는 일본인을 바라보았다.
‘포르투갈인들은 우리가 자신들을 어떻게 하지는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구나. 그렇지 않으면 저렇게 자신만만한 태도를 보일수가 없지. 포르투갈인들은 자신만만해 보이는데 통역을 하고 있는 일본인은 불안해하는 것 같단 말이야. 저 일본인은 포르투갈인들과 같은 일행이 아닌가?’
통열을 하고 있는 일본인의 태도를 살펴본 나는 통역을 하고 있는 병사에게 말했다.
“이번에는 왜인에게 묻는 것이다. 왜인에게 확실히 전하도록 하라.‘
“예 좌수사 영감.”
병사는 군기가 잔뜩 든 목소리로 대답했고 나는 일본인에게 질문을 던졌다.
“너는 어디에서 온 누구냐? 이곳 복강도 출신이냐 아니면 포르투갈인들과 같은 일행이냐?”
질문을 받은 왜인은 잠시 포르투갈인의 눈치를 보더니 내 질문에 대답했다.
“내 이름은 이토 겐타로 나는 이들과 같은 일행이 아니다. 히라도 섬의 상관 소속으로 마르셀 선장의 통역을 돕기 위해 이곳에 온 것이다.”
왜인의 대답을 들은 나는 잘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포르투갈인들과 같은 일행은 아니지만 통역을 했으니 그들이 이곳에서 무슨 거래를 하려고 했는지 알고 있겠구나. 솔직하게 대답한다면 너는 무사히 히라도 섬으로 돌려보내주겠다.”
내 질문에 겐타로는 고민하는 기색을 보이더니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상인은 신용이 생명이다. 내가 마르셀 선장을 배신했다는 소문이 퍼지면 나는 다시는 포르투갈 상인들과 같이 일하지 못할 것이다. 나는 대답할 수 없다. ”
겐타로의 대답을 들은 나는 답답하기 보다는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놈들 뭐야. 지들이 여기에 왜 왔는지 우리가 모를 것 같은가. 누굴 바보로 아나.’
나는 겐타로와 마르셀을 비웃으며 말했다.
“너희가 말하지 않아도 우리가 너희가 왜 복강도에 왔으며 복강도에서 무엇을 하려고 했는지 이미 알고 있다. 참고로 말하면 항구에 정박하고 있는 갤리온 역시 이미 내 부하들이 배 안의 선원들을 제압하고 이미 점령했다.”
자신의 배가 이미 점령당했다는 말에 마르셀은 흥분한 표정을 보이며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했지만 마르셀의 일행들이 마르셀을 말렸다. 나는 그런 마르셀을 바라보며 비웃음을 날렸다.
‘무기도 없는 놈들이 달려들면 어쩔 거야. 차라리 달려들었으면 그 핑계로 쓸어버리는 건데.’
마르셀과 포르투갈인들은 아무런 무기도 지니고 있지 않았지만 나는 수은갑주차림에 장검을 차고 있었고 내 등 뒤에는 통역을 맡은 병사를 포함해 무장한 병사들이 6명이나 있었다. 마르셀이나 포르투갈인들이 그 자리에서 나에게 달려들었다면 내 검과 병사들의 창칼에 죽음을 면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나는 살짝 아쉬운 기분까지 들었다.
“너희가 섬의 부녀자들과 아이들을 노예로 사들이기 위해 이곳 복강도에 왔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다. 무엇을 대가로 주고 노예를 사가는 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아마도 화약과 무기를 주기로 했을 것은 이미 짐작하고 있다. 어때 이제는 솔직하게 대답할 생각이 드는가?”
“노예라니 나는 모르는 일이다.”
마르셀은 모르는 일이라고 딱 잡아뗐고 겐타로 역시 한층 더 안절부절 못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입을 열지는 않았다. 나는 그들을 보며 말로 해서는 안 되겠다고 결정을 내렸다.
“너희들은 왜구들에게 끌려온 조선의 백성들을 노예로 사가려고 했다. 너희가 부녀자들과 조선인들을 노예로 사가며 왜구들 화약과 무기를 제공한다면 왜구들은 그 무기로 다시 조선을 침략했을 테니. 조선의 수군지휘관은 나는 너희를 용서할 수 없다.”
말을 마친 나는 군사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더 이상 말로해서는 안될 것 같다. 이 놈들을 밖으로 끌어내라.”
“예 좌수사 영감.”
내 명령이 떨어지자 내 주위에 있던 병사들은 겐타로와 마르셀 일행에서 창을 들이대고 방 밖으로 끌어냈다. 겐타로는 겁에 질린 표정이었고 마르셀을 비롯한 포르투갈인들 화를 내고 있었지만 이미 창끝이 목을 향하고 있었으니 저항하지는 못했다.
“퍽” “퍽” “퍽” “퍽” “퍽”
“으악~” “아악~” “악~”
포르투갈인들 성문 앞의 평지로 끌고 나오자 그곳에서는 이미 매타작이 벌어지고 있었고 왜군들의 비명소리가 울리고 있었다. 좌수군 군사들은 왜군을 묶어놓고 몽둥이와 창대로 타작하듯이 두들기고 있었고 개중에는 왜군의 두 다리를 묶어놓고 다리사이에 창대를 밀어 넣어 주리를 틀고 있는 군사들도 있었다.
포르투갈인들을 만나기 전에 나는 이미 좌수영 군관 최도진에게 포로들을 심문해 이곳 후쿠에 섬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었고 후쿠에 섬의 왜인들이 포르투갈인들과 무슨 일을 꾸미고 있는 지 모든 것을 알아내라는 명령을 내려놨었다. 그와 더불어 필요하다면 포로들에게 고문을 가해도 좋다고 허락했었다. 상황을 보아하니 최도진과 군사들은 내가 명령을 내리자마자 포로들에 대한 심문을 시작한 것 같았다. 전라좌수군 군사들 특히 이번 정벌에 지원한 군사들은 그렇지 않아도 왜구들에 대한 감정이 좋지 않았다. 이미 왜구들에 대한 원한을 품고 있는 군사들에게 고문을 가해도 좋다는 허락이 떨어지자 군사들은 신이 나서 손에 몽둥이나 창대를 잡고 포로들을 구타하거나 고문하기 시작했다.
나는 군사들을 지휘하고 있는 최도진에게 다가갔다.
“수고가 많군.”
“감사합니다. 좌수사 영감.”
“순천부사가 보이지 않는군. 순천부사는 어디에 있는가?”
“부사께서는 성을 수색하고 있는 군사들을 지휘하고 계십니다.”
최도진의 대답을 들은 나는 짜증이 났다.
‘뭐야. 아직도 성안에서 여인과 아이들을 찾지 못한 거야.’
나는 잠시 주위를 둘러보다가 달구지 위에 엎드려진 체로 엉덩이에 매를 맞고 있는 왜군을 발견했다.
‘형틀대신 수레위에 묶어놓고 곤장을 치고 있군. 임기응변인가 괜찮은 방법인데.’
나는 곤장을 맞고 있는 왜군에게 다가가자 장작개비만한 몽동이로 왜군을 내리치고 있던 군사들은 들고 있던 몽둥이를 내려놓았다. 수레에 묶여있는 왜군을 보니 이미 꽤 많이 맞았는지 얼굴이 사색으로 변해 있었다.
‘이정도면 대답하기도 전에 숨이 끊어지겠군.’
왜군의 상태를 확인한 나는 군사들에게 물을 가져오라고 시켰다.
“여기 물을 가져오너라. 많이 떠와라.”
내 명령이 떨어지자 군사들은 커다란 물통을 들고 왔다. 한국에서 쓰던 양동이만큼 큰 나무로 된 물통에는 물이 반 정도 차 있었고 물통 안에는 바가지도 하나 들어있었다. 나는 바가지에 가득 물을 떠서 곤장을 맞던 왜군의 머리위에 쏟아 부었다.
“아푸푸푸”
물벼락을 맞은 왜군은 정신을 차린 듯 고개를 돌리며 물을 뱉었고 나는 그 광경을 혀를 찼다.
‘곤장을 치는 것이 목적이 아닌데. 묻는 말에 순순히 대답하게 만들기 위해 곤장을 치는 건
어쩔 수 없지만 정신을 잃을 정도로 때리면 어떻게 해. 곤장을 쳐도 상태를 봐가면서 대답할 수 있을 정도로 만들어 놔야 물어볼 수 있지.’
수레에 묶여서 매를 맞고 있던 사쿠라타니 로쿠카즈는 물벼락을 맞고서야 정신을 차렸다. 고래를 흔들며 코 안으로 들어온 물을 털어낸 로쿠카즈는 자신이 아직도 수레에 묶여있는 것을 확인하고는 절망한 표정을 지었다.
성문을 지키고 있었던 사쿠라타니 로쿠카즈는 환도를 휘두르며 달려드는 최도진을 피해 성 안으로 도망쳤다. 조선군이 성안으로 들이닥치자 손에 무기를 들고 저항하는 무사들과 병사들도 있었지만 무사가 아닌 일반 병사 그것도 병사가 된지 한 달 밖에 되지 않은 로쿠카즈는 조선군을 발견하자 땅에 엎드려 항복했고 그 덕분에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다. 조선군에게 포로로 잡힌 후 만난 타가미 마고시타가 팔에 상처를 입은 것을 보고 자신은 다치지 않았으니 다행이라고 생각했었지만 그 생각은 착각에 불과했다. 전투가 끝난 후 포로들을 한곳으로 모은 조선군은 포로들의 주위에 감시병이 붙어서 포로들이 도망치지 못하게 감시만 했을 뿐 밧줄로 묶거나 가혹행위를 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다친 사람들은 간단하게 치료해주는 등 친절을 베풀기도 해서 로쿠카즈는 항복하길 잘했다는 생각도 하고 있었다. 그러나 행복한 순간은 잠시 뿐이었다.
로쿠카즈와 마고시타에게 검을 휘둘렀던 무섭게 생긴 조선군 무장이 성에 들어갔다 나온 후 조선군의 분위기는 살벌하게 변했다. 무장이 조선군을 모아놓고 뭐라고 명령을 내리자 조선군 병사들은 로쿠카즈를 비롯해 포로들을 성 밖으로 끌어냈다. 조선군은 마고시타와 같이 부상을 당한 포로들은 건드리지 않았지만 로쿠가즈 같은 부상을 입지 않은 포로들은 한명도
빠짐없이 끌고 갔다. 험악한 표정의 조선군에게 붙잡혀 성 밖으로 끌려 나간 로쿠카즈는 이대로 끌려 나가 살해당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에 두려움에 떨었고 로쿠카즈를 끌고 간 조선군이 수레위에 엎드리게 하고 두 손을 묶자 로쿠카즈는 조선군에게 남색을 당할까봐 두려운 마음에 발버둥을 쳤다. 힘껏 발버둥을 쳤지만 그 대가는 몽둥이 찜질이었다. 로쿠카즈의 두 손을 묶은 조선군은 손에 몽둥이를 들고 로쿠카즈의 엉덩이를 힘껏 내리쳤고 한 대. 한 대. 매를 맞을 때 마자 로쿠카즈는 엉덩이를 불로 지지는 듯한 통증을 느끼며 비명을 질렀다. 어느 순간 스스로 목에서 비명이 나오지 않는 것을 느끼던 로쿠카즈는 갑자기 차가운 물이 머리위로 쏟아지자 소스라치게 놀라며 정신을 차렸다.
왜군이 정신을 차리는 것을 본 나는 다시 물 한바가지를 들어 왜군에게 내밀었다.
“목마를 것 같은데 마시겠느냐?”
통역을 하는 병사가 내말을 왜어로 왜군에게 전해주자 수레에 묶여있던 왜군은 입을 벌리며 외쳤다.
‘알아듣지는 못하지만 물 달라는 말인 것은 알겠다.’
나는 천천히 바가지를 기울여 물을 왜군의 얼굴로 떨어지게 했고 사쿠라타니 로쿠카즈는 살기 위해서는 물을 마셔야 한다는 듯 필사적으로 입을 벌려서 물을 받아마셨다. 반 바가지 정도의 물을 먹은 후에야 왜의 얼굴에 비로소 생기가 도는 것 같았다. 왜군의 상태를 확인한 후 바가지는 내려놓은 나는 왜군에게 물었다.
“이제부터 내가 묻는 말에 똑바로 대답하면 오늘은 더 이상 매를 맞는 일이 없을 것이다. 먹을 것도 주고 잠도 자게 해주지 그러나 묻는 말에 대답하지 않으면 계속 매를 맞을 것이고 오늘 밥을 먹거나 잠을 자는 일은 없을 것이다. 어떠냐. 이제는 대답할 생각이 있느냐?”
조선군 장군의 말을 조선군이 왜어로 통역해주자 로쿠카즈는 그야말로 살기위해 대답했다.
“무엇이든 물어보십시오. 무엇이든 얼마든지 정직하게 대답하도록 하겠습니다. 제발 아무거나 물어만 주십시오.”
왜군의 대답에 만족한 나는 왜군에게 곤장을 치던 병사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이자를 풀어 주거라.”
병사들은 군말 없이 왜군을 풀어주고 꿇어앉혔다. 나는 왜군을 내려다보며 질문을 던졌다.
“너는 누구이고 이곳에서의 직위는 무엇이냐?”
로쿠카즈는 조선군이 자신을 풀어주자 이제는 살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괜히 발버둥 치다가 또 매를 맞을 생각은 없었던 로쿠카즈는 가만히 조선군의 손에 자신의 몸을 맡겼고 얌전히 땅 바닥에 꿇어앉았다. 조선군 장군의 질문을 들은 로쿠카즈는 최대한 공손한 자세로 장군에게 대답했다.
“소인의 이름은 사쿠라타니 로쿠카즈 이옵니다. 소인은 이 섬에서 때어나 본래 농사를 짓고 바다에 나가 고기를 잡는 놈이었으나. 지난달에 병사로 뽑혀서 성문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지난달에 병사로 뽑혔다니 정해왜변으로 상실한 병력을 보충하기 위해 징집한 모양이군.’
사쿠라타니 로쿠카즈의 대답에 만족한 나는 다른 질문을 던졌다.
“성안에 많은 여인들과 아이들이 갇혀있는 것을 알고 있다. 여인들과 아이들은 어느 곳에 갇혀있고 언제 잡아온 것이냐?”
로쿠카즈는 장군의 질문을 듣고 잠시 머뭇거렸지만 알고 있는 대로 대답했다.
“닷새 전부터 마을의 여인들이 성안으로 들어왔습니다. 성주님의 명을 듣고 성안으로 들어온 여인들은 성안의 방으로 들어갔고 성주님의 명을 거역하거나 반항하던 여인들은 성안 창고에 갇힌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아이들은 창고에 갇힌 여인들과 함께 같은 창고에 있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