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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문2
사쿠라타니 로쿠카즈의 대답을 들은 나는 로쿠가즈에게 여인들과 아이들의 갇혀있다는 창고의 자세한 위치를 물었다.
“아이들과 여인들이 갇혀있는 창고는 어디에 있느냐? 창고는 어떻게 들어가야 하는지 자세히 설명해야 할 것이다.”
로쿠카즈는 조선군 장군의 질문에 아는 대로 성심성의껏 대답했다.
“여인들이 갇혀있는 창고는 장작을 쌓아둔 광의 뒤편에 있습니다. 창고의 문을 성 안에서 찾으려면 찾기 어려울 것입니다. 아이들이 갇혀 있는 창고는 여인들이 갇혀있는 창고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 창고의 안으로 들어가시면 문이 하나 더 있고 문을 열면 안쪽의 창고로 들어갈 수 있도록 창고 두 개가 연결되어 있습니다. 성안에 머무는 여인들이 있는 방은 성 내에 있으며 성 안에 여인들이 머무는 방은 2곳입니다.”
로쿠카즈의 설명을 듣고 나서야 나는 왜 이억기와 좌수군 군사들이 아직도 갇혀있는 여인들과 아이들을 찾지 못했는지 알 수 있었다.
‘왜성은 내부 구조도 조선의 성이나 가옥과는 다르구나. 성 자제가 요새화된 건물이라 숨겨진 공간도 있고 구조도 복잡하게 되어있어서 내부 구조를 모르면 숨어있는 공간을 찾기가 어렵겠다.’
로쿠카즈의 설명이 끝나자 나는 일본어를 통역하는 병사에게 명을 내렸다.
“포로가 설명한 내용을 순천부사에게 알리고 창고에 갇혀있는 여인들과 아이들을 구출하도록 하라. 그리고 사화동을 불러오너라.”
“예 좌수사 영감.”
사화동을 부른 것은 일본어 통역을 위해서였지만 아무래도 이 섬에 대한 기본지식이 있는 사람이 통역을 하는 것이 심문하기 편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방금 같은 경우는 우리군사들이 왜성의 구조에 대한 지식이 없어서 포로를 심문하는데 어려움이 있었다. 후쿠에섬 과 고토열도에 대해 좀 아는 사람이 통역을 해야 한결 쉽게 심문할 수 있을 것 같아. 사화동이 오면 좀 편하게 진행되겠지.’
일본어를 통역할 병사가 자리를 비우자 심문은 잠시 중단됐다. 나는 그 사이에 포로들에 대한 고문과 구타를 중지시켰다.
“포로들을 풀어주고 물을 주어라. 말을 할 수 있게는 만들어놔야. 포로들도 순순히 질문에 대답할 것이 아니냐. 그만 풀어주어라.”
“명을 받듭니다. 좌수사영감.”
군사들이 포로들을 풀어주고 물이 담긴 바가지를 내밀자 포로들은 마치 열흘 굶은 거지가 밥을 먹듯이 물을 들이마셨다. 바가지 안에 담긴 물을 단숨에 들이마시고는 군사들에게 바가지를 내밀며 물을 더 달라고 애원하는 포로들도 있었다. 방금 전 까지 포로들을 구타하고 고문하던 군사들도 포로들의 그런 모습에 동정심을 느꼈는지 포로들이 내미는 바가지에 순순히 물을 채워주었다.
심문이 중지된 동안 잠시 최도진이 가져온 의자에 앉아 쉬던 나는 사화동이 나타나자 다시 포로를 심문하기 시작했다. 사화동이 나타나자 사쿠라타니 로쿠카즈의 표정이 변했다. 포로도 사화동을 알고 있는 눈치였다.
“친분이 있던 자냐?”
사화동에게 묻자 사화동은 담담한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무장들의 명령으로 바다에 나갔을 때 일한 적이 있는 사람입니다. 같은 마을 사람은 아니라 개인적인 친분은 없습니다.”
“이자도 지난 전란 때 조선을 침략했었던 자냐?”
내 질문에 사화동은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아닙니다. 이 사람은 조선으로 가는 배를 타지 않았었습니다.”
“그럼 잘됐군.”
사화동을 통해 사쿠라타니 로쿠카즈가 조선을 침략했던 왜구가 아니라는 것을 확인한 나는 사쿠라타니 로쿠카즈에게 부녀자들과 아이들을 성에 감금한 이유를 물었다.
“저는 정말로 모릅니다. 성주님의 명으로 여인들과 아이들을 성으로 불러들였다는 것만 알고 있을 뿐 왜 성으로 불러들였는지는 정말 모릅니다.”
조선군 장군의 질문에 사쿠라타니 로쿠카즈는 아는 대로 대답했지만 모르는 것은 모른다고 대답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런데 로쿠카즈가 여인들과 아이들이 성 안에 갇혀있는 이유를 모르겠다고 하자 사화동의 표정이 변했다. 사화동은 마치 잡아먹을 듯 한 기세로 사쿠라타니 로쿠카즈를 윽박질렀다.
“이유가 무엇이냐? 빨리 말하지 못해.”
“나는 정말 모른다니까. 왜 그래. 내가 오늘 얼마나 맞았는지 알아. 알면 벌써 대답했다.”
모르겠다는 로쿠가즈의 대답에 사화동은 눈에 불을 켜고 다그쳤다.
“내 아내도 성안에 있었어. 요시히의 부인도 성안에 있었고 내가 직접 봤어. 성안에 갇혀있었던 아녀자들 대부분이 지난번 조선에 갔다가 돌아오지 못한 사람들의 부인들과 딸이야.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당장 말하지 못해. 지금 같아서는 당장 널 때려죽이고 싶은 심정이야.“
사화동의 말을 들은 사쿠라타니 로쿠카즈는 식은 땀을 흘리며 대답했다.
“이것 봐 진정해 내가 그런 일을 알 리가 없잖아. 생각해봐 나는 그저 문을 지키는 일반 병사에 불과해 그것도 지난달부터 병사노릇을 했다고 그런 큰일을 어떻게 알겠어.”
로쿠카즈의 대답을 듣고도 사화동은 눈에 불을 켜고 물었다.
“정말 죽고 싶어. 장군님께 네가 알고 있으면서도 말하지 않는 것 같다고 말씀드릴까. 지금 섬 안에 조선군이 얼마나 많이 들어와 있는 줄 알아.”
사화동의 협박에 로쿠카즈는 사정하듯이 말했다.
“정말 모른다니까. 나를 죽여서 무슨 득을 보겠다고 그래.”
로쿠카즈가 사정을 해도 사화동은 비웃으며 말했다.
“흥. 그래? 너는 정말 모를지 몰라도 알고 있을 만한 사람은 알고 있겠지. 아니야?”
사화동의 말에 로쿠카즈는 흠칫 놀라며 말했다.
“정말. 왜 그래?”
“나는 어차피 부인과 함께 조선군 따라서 조선으로 갈께야. 너 하나 여기에서 죽여도 아무 상관이 없다고. 내가 당장 너를 때려죽여도 장군님이나 조선군이 눈 하나 깜박할 것 같아.”
사화동에게 살기를 느낀 로쿠카즈가 몸을 부들부들 떨자 사화동은 다시 한번 로쿠카즈를 윽박질렀다.
“누구야. 어서 말해. 그리고 성주도 이미 죽었어.”
성주인 긴시요라가 죽었다는 말에 로쿠카즈의 눈이 왕방울 만하게 커졌다.
“그게 정말이야. 성주님이 돌아가셨어?”
“그래 이미 죽었어. 성 밖에서 조선군의 포탄에 맞아 갈가리 찢어졌어. 내가 직접 투구와 수급을 확인했단 말이야. 그러니까 빨리 말해.”
사화동의 위협과 성주인 긴시요라 까지 조선군의 손에 죽었다는 말에 로쿠카즈는 결국 굴복하고 말았다.
“하세가와 미츠시로.”
“뭐 누구?”
“성주님이 아끼시던 무사야 성주님의 조카라는 소문도 있었어. 하세가와 미츠시로는 무슨 일이었는지 알고 있을 거야.”
로쿠카즈의 대답을 들은 사화동은 다시 한번 다급하게 물었다.
“그 사람 지금 어디에 있어. 하세가와 미츠시로”
로쿠카즈는 지친 표정으로 힘없이 대답했다.
“성 안에 있어. 전투 중에 다쳤는지 피를 흘리고 있던데. 죽지는 않았어. 부상을 당한 사람들은 조선군이 때리지 않았어.”
“알았어. 내가 장군님께 잘 말씀드리지.”
사화동은 로쿠카즈와 나눈 대화 내용을 나에게 모두 보고했고 나는 최도진에게 하세가와 미츠시로를 잡아올 것을 명령했다. 잠시 후 군사들에게 붙잡혀온 하세가와 미츠시는 사쿠라타니 로쿠카즈가 묶여서 곤장을 맞았던 수레위에 엎드린 채로 두 손을 묶였다. 로쿠카즈에게 곤장을 치던 군사들이 다시 손에 몽둥이를 잡고 몸을 풀자 나는 군사들에게 외쳤다.
“저놈을 매우 쳐라.”
“예 좌수사 영감.”
“명을 받들겠습니다. 좌수사 영감.”
군사들은 힘차게 대답한 후 힘껏 몽둥이를 내리쳤다.
“퍽” “아이고” “퍽” “아이고” “퍽” “으악”
군사들이 연달아서 10대 이상을 내리치자 하세가와 미츠시로는 비명을 지르다 실신했다. 실신한 미츠시에게 차가운 물을 뿌렸고 물을 맞은 미츠시로가 정신을 차리라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심문을 시작했다. 긴시요라와 가까운 사이였다는 미츠시로는 곤장이 효과가 있었는지 정해왜변 이후 긴시요라가 겪은 일을 낱낱이 자백했다.
‘그러니까. 고토열도와 히라도의 왜구들을 동원해 조선에 쳐들어왔던 긴시요라는 고토열도로 돌아오고 나서 궁지에 몰렸다. 하긴 관선 18척을 몰고 갔다가 4척만 돌아왔고 2000여명의 왜구들 중에서 돌아온 자가 500명에 불과했으니 참패도 이런 참패가 없지. 아무리 긴시요라가 왜구들의 두목이었다고 해도 책임을 피하기는 어려웠던 것은 당연한 일이야. 그래서 긴시요라가 생각해낸 방법이 붙잡아온 조선인들과 정해왜변 당시 조선에서 돌아오지 못한 왜인들의 아내와 아이들을 포르투갈 상인들에게 팔아넘기고 그 대가로 화약과 화승총을 받으려고 했다. 그렇게 받은 화승총과 화약을 가지고 다시 조선을 노략질할 생각이었겠지. 그리고 히라도 상인들도 긴시요라의 노예매매에 한 다리 걸치셨다. 히라도에서도 긴시요라를 따라갔다가 돌아오지 못한 사람들이 많으니 그 보상을 대신해 포르투갈 상인들과의 거래에 히라도의 상인들을 끼워주고 그 대신에 히라도 상인들을 긴시요라에게 포르투갈 상인들을 소개해 주고.’
하세가와 미츠시로의 자백을 들은 나는 ‘미쳤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아니 16세기 일본에서 특히 전국시대 당시에는 사람목숨이 파리 목숨이었고 딸아이를 부모가 사창가에 팔아넘기는 일도 있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성주가 마을 주민들을 노예로 팔아넘길 생각을 하다니 그것도 긴시요라를 따라 갔던 사람들의 가족들이니 부하의 아내와 자식들을 팔아넘길 생각이었잖아. 막장도 이런 막장이 없네.’
하세가와 미츠시로의 자백을 들은 나는 기가 막히다 못해 막장이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고 좌수군의 병사들도 같은 생각인지 증오를 넘어 혐오하는 표정으로 하세가와 미츠시로와 포로들을 노려보았다. 특히 자신의 아내가 노예로 팔려갈 뻔 했다는 것을 알게 된 사화동은 눈이 뒤집혀져서 하세가와 미츠시로에게 달려들었다.
“이놈”
사화동은 소리를 지르며 하세가와 미츠시로에게 달려들어 미츠시로의 목을 졸랐다. 목이 졸린 미츠시로가 숨넘어가는 소리를 내자 나는 병사들에게 외쳤다.
“뭐하고 있나. 끌어내지 않고.”
좌수군 병사들이 달려들어 사화동을 뜯어말렸지만 사화동은 미츠시로의 목을 잡은 두 손을 놓지 않았다.
“말리지 마십시오. 이놈은 제가 죽이겠습니다. 나리들의 칼을 더럽힐 필요가 없습니다. 제가 이놈의 목을 분질러 버리겠습니다.”
병사들이 달려들어 간신히 사화동에게서 미츠시로를 떼어내자 나는 사화동에게 물을 끼얹었다.
“정신 차려라. 아직도 할 일이 많다. 네 복수는 확실해 해줄 테니. 걱정할 것 없다.”
복수를 해주겠다는 말에 사화동은 놀란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장군님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복수해 주신다니요.”
“네가 말하지 않았느냐. 나에게 충성하는 개가 되겠다고. 나는 충성하는 부하의 원한을 모르는 척 하는 사람이 아니다. 너는 물론 다른 항왜들도 나에게 충성을 맹세했으니 내 부하들이다. 너희의 원한은 반드시 갚아줄 것이다.”
내 대답을 들은 사화동은 그 자리에 엎드려 통곡을 했다.
“장군님. 감사합니다. 장군님. 아버지가 돌아가신 이후 이렇게 사람대접을 받아보기는 처음입니다. 감사합니다. 장군님.”
땅에 엎드려 통곡하는 사화동을 보자 측은한 마음이 든 나는 사화동의 등을 두드리며 위로해 주었다.
“그래 앞으로는 내가 보살펴 줄 것이다. 걱정할 것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