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선 수군이 되었다-77화 (77/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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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만선

나는 사화동을 위로한 후 최도진에게 명령을 내렸다.

“포로들을 모두 하옥하고 도주하지 못하도록 철저하게 감시하라. 그리고 무장들과 병사들을 분류해 하옥하라.”

“예 좌수사 영감. 명을 받들겠습니다.”

때맞춰 이억기도 창고를 찾아 갇혀있던 아이들과 여인들을 구조했다고 보고했다.

“수고가 많았다. 우선 아이들과 여인들이 쉴 수 있도록 방을 배정해주고 먹을 것을 챙겨주도록 하라. 그리고 정오가 지났으니 우리 군사들도 점심을 먹을 수 있도록 준비하라.”

“예 명을 따르겠습니다. 좌수사 영감.”

점심을 먹는 다는 말에 병사들은 기뻐하며 포로들을 성안으로 끌고 갔다. 포로들이 성안으로 끌려가는 동안 나는 이토 겐타로와 포르투갈인들에게 다가갔다. 포로들을 심문하는 과정을 보고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마르셀 드스피놀라를 비롯한 포르투갈인들은 못마땅한 표정으로 나를 노려보고 있었지만 이토 겐타로는 겁에 질린 표정으로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나는 이토 겐타로를 바라보며 말했다.

“하고 싶은 말이 있느냐? 있으면 말해봐라. 어디 변명이나 들어보자.”

이토 겐타로는 떨리는 목소리로 나에게 말했다.

“살려주십시오. 장군 소인은 그저 상단주의 명을 받고 이곳에 왔을 뿐입니다.”

나는 그런 이토 겐타로를 비웃으며 말했다.

“너는 저들이 이곳에서 무슨 일을 벌일지 알고 있었으면서도 말하지 않았다. 더구나 긴시요라가 노예로 팔아넘기려 했던 사람들 중에는 조선인들도 있었다. 나는 조선인들을 구출하기 위해 이곳 고토열도로 출병한 조선수군의 선봉장이니 내가 너의 목을 칠 이유는 충분한 것 같은데.”

사화동에게 내말을 전해들은 겐타로는 그 자리에 엎드려 사정을 했다.

“살려주십시오. 장군 살려만 주신다면 알고 있는 모든 것을 말씀드리겠습니다.”

겐티로의 말을 나에게 통역한 사화동은 내가 말을 하기도 전에 겐타로를 윽박질렀다.

“어서 장군님께 네가 아는 사실을 모두 고해바치지 않고 무엇을 하느냐. 네가 장군님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고 있구나.”

사화동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겐타로는 나에게 외쳤다.

“오늘 밤이나 늦어도 내일 중으로 남만선 2척이 이곳 후쿠에 섬으로 들어올 것입니다.”

사화동을 통해 겐타로의 말을 전해들은 나는 놀란 나머지 황급하게 물었다.

“어디서 오는 배들이냐? 히라도 섬이냐. 무슨 목적으로 이곳에 오는 배들이냐?”

이토 겐타로가 나에게 알고 있는 것을 털어놓는 것을 눈치 챈 마르셀 드스피놀라가 겐타로에게 뭐라고 외쳤지만 겐타로는 주저하지 않고 입을 열었다.

“2척 모두 이틀 전에 히라도를 출발해 나카도리섬(中通島)을 거쳐 후쿠에 섬으로 오는 배들입니다. 배는 이곳 성주에게 대금으로 지급할 철포(鐵砲)[조총]와 화약을 싣고 올 것이며 나카도리에서 노예를 싣고 올 것입니다.”

겐타로의 말을 전해들은 나는 기가 막히다 못해 나도 모르게 혼잣말이 나왔다.

“진짜 미쳤구나.“

긴시요라가 후쿠에 섬 뿐만이 아니라 나카도리 섬의 여인과 아이들도 노예로 팔아먹으려 했다는 사실을 들은 나는 기가 막혔고 사화동과 좌수군 군사들도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 너무 놀란 나머지 머리가 아파서 좌우로 고개를 돌리던 나는 문득 마르셀 드스피놀라를 비롯한 포르투갈인들이 지금까지 나와 좌수군을 두려워하는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는 것이 떠올랐다.

“오늘 밤에 도착할 남만선을 본적이 있느냐?”

내 질문에 겐타로는 그렇다고 대답했다.

“예 히라도에서 본적이 있습니다.”

“그 배에는 대포가 몇 문이나 있으며. 선원들은 몇 명이나 타고 있느냐?”

“대포는 20문이 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선원들은 40명 정도이며 노예들을 감시하기 위해 히라도의 낭인들이 20명씩 배에 탑승할 예정이었습니다.”

겐타로의 대답을 듣고 나서야 이제까지 마르셀과 포르투갈인들이 나를 두려워하지 않았던 이유를 깨달았다.

‘오늘밤에 오는 남만선이 자신들을 구해줄 것이라고 생각했었구나.’

대포로 무장한 갤리온 2척이면 강력한 전력이었다. 더구나 선원들과 낭인들은 모두 화승총으로 무장하고 있을 테니. 그만한 전력이면 좌수군으로 부터 자신들을 구출하는 것은 어렵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 것 같지만 지금 후쿠에 섬에 도착한 좌수군 전력을 생각하면 어림도 없는 일이었다.

‘지금의 좌수군 전력으로 대해에서 갤리온과 해전을 벌이는 것은 몰라도 섬에 접근하는 갤리온을 상대로 방어전을 치르거나 섬 근처로 유인해서 나포하는 것은 충분히 가능하다. 화포로 무장한 판옥선이 12척에 갤리온 1척을 이미 나포해 갤리온의 화포로 사용할 수 있으니. 더구나 함대의 지휘관이 이순신 장군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도저히 질것이라는 생각은 들지가 않는다.’

“잘됐다. 남만선이 도착할 것이라는 것을 몰랐으면 몰라도 아미 알고 있는 이상 남만선을 상대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오늘밤에 도착하는 남만선도 점령해 낭인들과 포르투갈인들을 붙잡아 죄 값을 치르게 하고 남만선에 갇혀있는 아이들과 여인들을 구할 것이다.”

내가 자신 있게 말하자. 남만선이 온다는 소식에 놀랐던 좌수군 병사들과 사화동은 안심하는 표정을 지었고 겐타로도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것 같았다.

“남만인(포르투갈인)들을 옥에 가둬라. 다른 왜인들과 접촉하지 못하도록 왜인들과 떨어진 곳에 가두고 먹을 것은 물론 물도 주어서는 안 된다.”

“예 좌수사 영감.”

병사들이 포르투갈인들을 성 안으로 끌고 가자 나는 사화동과 겐타로 그리고 미츠시로를 바라보며 말했다.

“너희는 나와 함께 가자. 같이 점심이라도 먹으며 이야기를 나누도록 하자.”

점심을 같이 먹자는 말에 사화동은 영광이라는 표정을 지었지만 이토 겐타로와 하세가와 미츠시로의 표정은 어둡게 변했다.

그로부터 2시간 후 후쿠에 섬 앞바다에서 항구와 동쪽 바다를 감시하고 있던 이순신은 항구에서 출발한 관선으로부터 내 명령을 전달 받았다. 전령이 보낸 문서를 열어 내 명령을 확인한 이순신은 예상외의 명령에 놀랐다.

‘뭐야. 봉쇄를 풀고 항구로 돌아오라고. 이게 무슨 일이지.’

후쿠에 섬을 봉쇄한지 하루도 지나지 않았는데 봉쇄를 풀고 항구로 들어오라는 명령에 이순신은 이상하다는 생각을 했지만 군대에서 상관의 명령은 절대적이었다. 이순신은 더 이상 고민하지 않고 항구로 들어갈 것을 명령했다.

“뱃머리를 돌려라. 우리도 복강도에 들어갈 것이다.”

“예이”

섬으로 들어간다는 말에 신이 난 군사들은 힘차게 노를 저었다. 노를 젓는 격군들뿐만 아니라 전선의 군관들과 진무(鎭撫), 타공, 요수들 까지 모두가 섬으로 들어간 다는 말에 좋아서 어쩔 줄을 몰랐다. 이들이 이렇게 까지 후쿠에 섬으로 들어가는 것을 좋아하는 이유는 이들의 지휘관이 이순신이었기 때문이었다. 이순신의 임무는 후쿠에 항구와 동쪽 바다를 감시해 섬에서 일본 본토로 탈출하는 배와 반대로 일본 본토에서 후쿠에 섬을 향해 들어오는 배를 저지하는 것이었다. 임무가 해안봉쇄와 감시였으니 바다에 배를 세워놓고 바다를 감시할 군사들만 배치해 놓아도 뭐라고 할 사람은 없었지만 이순신은 바다에 나온 이상 할 일이 없다고 군사들을 쉬게 하지 않았다. 이순신의 지휘를 받는 전선들은 바다로 나온 이후 동쪽 바다와 항구를 감시할 경계병들을 배치한 후 이순신의 지시에 의해 기동훈련을 시작했다.

항구를 감시해야 하는 이상 먼 바다로 나가지는 못했지만 이순신은 적선에 방포할 경우를 대비해 전선을 좌측과 우측으로 뱃머리를 돌려 선체를 회전시키는 훈련을 반복적으로 지시했고 나중에는 뱃머리를 돌리며 선체를 180도로 회전시키는 훈련도 감행했다. 새벽에 바다로 나온 것도 부족해 아침부터 쉬지 않고 훈련을 시키자 군관들과 병사들은 지쳐있었고 섬으로 들어간다는 말에 환호성을 지르지 않을 수 없었다.

4척의 판옥선이 후쿠에 섬을 향해 뱃머리를 돌리고 항구를 향해 나아가자 이순신은 전선들의 움직임을 살펴보며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확실히 아침보다는 전선의 회전 속도가 훨씬 빠른 것 같군. 전선의 움직임도 한결 자연스럽고 격군을 비롯해 병사들도 움직임도 동료들과 손발이 잘 맞는 것 같아. 역시 훈련을 하면 성과가 확실히 보이는구나. 항구에서는 어쩔 수 없지만 바다로 나오면 다시 훈련이다. 오늘 중으로 바다로 나왔으면 좋겠는데.’

병사들이 알면 이순신에게 벼락이 떨어지기를 기원할 생각을 하며 이순신은 훈련성과에 만족한 미소를 지었다. 이순신이 지휘하는 전선들이 항구에 다가갔지만 항구에 들어설 수는 없었다. 항구의 규모가 작은 탓에 12척이나 되는 판옥선들이 동시에 정박할 수는 없었던 것이다. 우선 이순신이 탑승한 녹도전선이 항구에 정박하고 후쿠에 섬에 발을 내딛은 이순신은 좌수사가 자신을 찾는다는 전령의 말에 군관들을 거느리고 좌수사를 찾아갔다.

점심식사를 마친 후 항구로 돌아와 항구 인근의 평지에 막사를 치고 본영을 설치한 나는 김윤문과 김개동으로 부터 보고를 듣고는 기가 막혔다.

“남만선을 장악하고 화포 22문과 화승총 100정 그리고 화약을 노획한 것은 좋다. 그런데 남만선에 남아있던 남만인 선원 37명 중에서 살아남은 자가 13명이고 사망자가 24명이라고.”

결과만 본다면 갤리온을 점령하는데 성공하고 갤리온에 실려 있던 무기 까지 획득하는데 성공했으니 작전수행에 성공한 것으로 보였지만 새벽에 기습했음에도 불구하고 선원들 중에서 70% 가까이를 죽였다는 것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내가 남만인들을 섬멸해도 좋다고 명령한 것도 아니고 분명히 남만선을 점령하고 선원들을 제압하라는 명령을 내렸는데 이게 어찌된 일이지. 이일의 원인을 철저하게 확인해야 한다. 만약 병사들이 외국인이라고 선원들을 무작정 죽인 것이라면 문제가 심각해. 만약 병사들이 그런 마음을 먹고 있다면 후쿠에 섬의 일본인들을 대상으로도 학살이 벌어질 수 있다.’

이미 왜성을 점령하고 후쿠에 섬을 사실상 장악한 나는 이곳에서 불필요한 살상이나 학살이 벌어지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돌산도의 포로들과 그들의 가족들을 북해도에 세울 거점의 주민으로 받아들일 생각을 하고 있던 나는 이제 후쿠에 섬의 일본인들을 최대한 많이 돌산도로 데려갈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이냐? 새벽에 남만선에 침투할 때 까지만 해도 남만인들에게 들키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는데.”

내 질문에 김윤문이 나서서 대답했다.

“남만선의 갑판을 장악하고 선실로 들어가는 입구를 찾을 때 까지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입구로 들어 간지 얼마 되지 않아 남만인들과 마주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남만인들과 전투가 벌어졌는가?”

“아닙니다. 그 자리에서 왜도(와키자시)를 뽑아 남만인을 제압했습니다. 그러나 비명소리를 듣고 선실 안에서 남만인들이 올라오기 시작했고 입구는 좁고 어두워. 남만인들을 상대하기 적합하지 않기에 어쩔 수 없이 입구에서 물러나 갑판위로 올라왔습니다.”

김윤문은 침착한 태도로 당시의 상황을 설명했다. 비명소리를 듣고 선실에서 나온 선원들은 김윤문에게 당해서 쓰러진 사람을 발견하고 고함을 질러 다른 선원들을 깨웠고 갤리온의 선원들이 갑판으로 나오며 저항할 기색을 보이자 갑판으로 물러났던 김윤문과 좌수군 군사들은 다시 와카자시를 뽑아들고 갑판으로 나오려는 선원들에게 와키자시를 휘둘렀다. 방금 전에서야 잠자리에서 일어난 선원들은 무기도 없는 빈손이었고 피할 곳도 없는 선실 내 통로에서 김윤문과 좌수군 군사들과 마주쳤으니 저항도 하지 못하고 모두 와키자시를 맞고 쓰러졌다. 그들이 쓰러지면서 지른 비명소리를 듣고 남만선의 선원들은 모두 자리에서 일어났지만 그들도 선실 내 통로에서 혹은 갑판위로 나오기가 무섭게 좌수군에게 제압당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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