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선 수군이 되었다-78화 (78/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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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부와 고아들

김윤문과 김개동으로 부터 당시의 상황을 자세히 보고받은 나는 어이가 없었다.

‘병사들이 남만인들이라고 선원들을 일부러 죽이려 한 것 같지는 않으니 다행이긴 한데. 나도 성급했구나. 갤리온의 내부의 구조도 모르는 군사들을 갤리온으로 침투시켰으니.’

더구나 김윤문을 비롯한 좌수군 군사들은 유럽인들을 처음 봤으니 미지의 존재에 대한 두려움이 있을 수밖에 없고 당연한 일이지만 그들과 대화도 통하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 좁은 배 안에서 마주쳤으니 서로 무기를 휘두르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나는 갤리온을 발견했다는 사실에 흥분해 조급하게 행동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알겠다. 어찌됐든 분명한 승전이고 전과도 크니 내 잊지 않고 포상할 것이다. 그리고 남만선 안에 있던 선원들은 복강도의 여인들과 아이들 그리고 복강도에 잡혀있던 조선인들을 노예로 사가려던 일당들이었다. 너무 마음 쓸 것 없다.”

이미 전투는 끝났고 그만하면 큰 전공을 세운 셈이니 나는 군사들의 마음을 편하게 풀어주기 위해 갤리온의 선원들이 여인들과 아이들을 노예로 사가기 위해 온 노예상들인 것을 밝혔다. 그러자 그 사실을 몰랐던 김윤문과 손대남 그리고 이순신 등의 장수들은 크게 놀란 표정으로 나에게 물었다.

“좌수사 영감.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여인들과 아이들을 노예로 사가다니요.”

“왜구들이 조선인들을 노예로 팔려고 했다는 말씀이십니까? 남만인들에게요.”

장수들이 묻자 나는 침착하게 지금까지 밝혀낸 사실들을 장수들에게 설명했다.

“그래서 제장들을 이곳에 모이라고 명한 것이다. 오늘밤 남만선이 2척이나 복강도로 들어올 예정이다. 그 남만선에는 왜의 여인들과 아이들이 노예로 잡혀있을 것이다. 나는 그 남만선을 제압하고 여인들과 아이들을 구조할 생각이다.”

내 말을 들은 이순신이 의외라는 듯이 물었다.

“좌수사 영감. 말씀드리기 송구스럽지만 저희가 출정한 목적은 왜구의 정벌과 조선인들의 구출이었으니 이미 목적을 완수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이대로 조선인들을 구해서 좌수영으로 귀환해도 상관없지 않겠습니까.”

이순신은 방금 전까지만 해도 남만인들을 너무 많이 죽인 것이 아니냐고 장수들을 질책하던 좌수사가 이번에는 왜 아직 도착하지도 않은 남만선을 제압하고 왜인들을 구출하겠다고 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저 질문이 나올 것 같더라.’

나는 이순신이 던진 질문을 좌수군의 장수 누구라도 나에게 물을 수 있다고 예상했었다.

‘사실 말이 되지 않거든. 우리가 일본군도 아니고 조선수군인데 굳이 포르투갈인들과 전투까지 치루며 일본인들을 구출한다는 것이.’

이성적으로는 보면 우리와는 상관없는 일이었지만. 나는 방에 그리고 창고에 갇혀있던 여인들과 아이들은 보는 순간 이들이 일본인이라는 생각보다는 노예로 팔려갈 수 있는 연약한 여인들과 아이들이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그래서 도와주고 싶었고 남만선에 갇혀있는 일본인들고 구해주고 싶었다. 나는 이 질문을 예상하면서 질문을 받았을 때 이런 저런 이유를 변명하기 보다는 내 솔직한 심정을 털어놓고 싶었지만.

‘조선인들도 아닌 일본인들 더구나 이들은 왜구들의 소굴로 알고 있는 후쿠에 섬과 오도의 일본인들이니 좌수군의 장수들과 군사들은 이들을 왜구와 그들의 가족들로 생각하고 있을 뿐 같은 사람으로 보고 있지는 않을 거야. 그런데 여인들과 아이들이 불쌍하니 구해주자고 하면 이상하게 생각하겠지. 그러니 관점을 일본인들이 아니라 포르투갈인들로 돌려야지.’

나는 최대한 침착한 표정으로 이순신에게 대답했다.

“남만인들이 때문이다. 남만인들은 여인과 아이들뿐만 아니라 왜구들에게 잡혀온 우리 백성들 까지 노예로 사들이려고 했다. 이들을 가만히 놔둔다면 다시 노예를 구하기 위해 이곳 복강도에 올 것이고 왜구들은 남만인들에게 팔 노예를 구하기 위해 다시 조선을 침범할 것이다. 비록 이번에 복강도를 정벌하고 돌아간다고 하지만 왜국은 아직도 각 지역의 영주들이 패권을 잡고 서로 간에 전쟁을 벌이고 있다. 영주들의 전쟁으로 인해 집과 땅을 잃은 유민들이 각지를 떠돌고 있으니 복강도에도 다시 왜인들이 들어올 것이며 그들은 언제라도 왜구로 돌변해 조선을 침략할 수 있다. 남만인들이 복강도에 돌아와 복강도의 왜인들에게 화약과 무기를 주며 다시 조선인 노예들을 구할 수 있다는 말이다.”

내 대답을 들은 이순신과 좌수군의 장수들은 그럴 수 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후쿠에 섬의 왜군들이 포르투갈 상인들에게 조선인들만 노예로 판매하려 한 것도 아니도 다시 포르투갈인들이 찾아와 노예를 구한다고 해도 후쿠에 섬의 왜인들이 노예로 판매할 조선인을 납치하기 위해 다시 조선을 침범할지 알 수는 없었지만 가능성이 아예 없는 이야기는 아니었다.

“그래서 사람을 사고파는 남만인들에게도 이번에 따끔한 맛을 보여주고 더불어 남만인들에게 노예로 붙잡혀있는 여인들과 아이들을 구출해 돌산도로 데려갈 것이다.”

내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하던 장수들은 갑자기 여인들과 아인들을 돌산도로 데려간다는 말에 이상하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이번 정벌을 준비하면서 돌산도의 항왜들에게 처자식들을 데려다 주겠다고 약속했다. 항왜들은 그 약속을 믿고 나에게 복강도와 오도의 정보를 제공하고 이번 정벌에 길잡이로 나서기도 했으니. 나는 항왜들과의 약속을 지킬 것이다. 이곳 복강도의 왜구들이 남만인들에게 팔아넘기려 했던 여인들과 아이들은 모두 항왜들의 처자식들이었다. 남만선에 갇혀있는 여인들과 아인들도 대부분 항왜들의 처자식들이거나 남편이 없는 과부들일 것이니. 남만인들을 제압한 후 그들을 구출해 돌산도로 데려가 항왜들과 짝지어줄 것이다.”

내가 돌산도와 절이도의 둔전에 신경 쓰고 있는 것을 알고 있는 장수들은 둔전의 노동력 확보를 위해 왜인들을 데려가겠다는 것으로 알고 이해하는 눈치였다. 그러나 차후에 내 계획대로 북해도의 오시마 반도를 점령하는데 성공하면 나는 돌산도의 항왜들과 이번에 구출한 일본인들을 오시마 반도로 데려갈 생각이었다.

이렇게 이순신을 비롯한 좌수군 장수들을 설득하는데 성공한 나는 장수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시간이 없다. 2척의 남만선이 오늘밤 복강도 항구에 도착할 예정이니 남만인들을 제압하고 남만선을 점령하기 위해서는 준비를 서둘러야 한다.”

“명을 내리시지요. 좌수사 영감.”

“좌수사 영감의 명을 따를 것입니다.”

순천부사 이억기가 명령을 내려줄 것을 청하자 다른 장수들도 일제히 명령에 복종하겠다고 외쳤다.

“좋아. 그럼 명을 내리겠다. 첫째로 군관 손대남.”

내가 부르자 손대남은 나에게 곧장 대답했다.

“명을 내리시지요. 좌수사 영감.”

“관선 한척을 내주겠다. 출항 준비가 끝나는 대로 곧장 좌수영으로 돌아가 우후 김시민에게 내가 주는 서신을 전달하도록 하라. 좌수군 본영에 대기 중인 모든 전선에 최대한 많은 군량을 싣고 최대한 빨라 복강도로 출발하라는 명령을 적은 서신이다. 우리의 병력이 부족하지는 않지만 항왜들의 처자식들과 노예로 갇혀있는 여인들을 데러가기에는 전선의 숫자가 부족할 것 같아 좌수영에 대기 중인 전선들을 복강도로 부르려고 한다. 손대남은 지금 바로 항구로 나가 출항을 준비하고 내가 서신을 써주는 즉시 좌수영으로 출발하도록 하라.”

“명을 따르겠습니다. 좌수사 영감.”

좌수영은 좌수군 우후 김시민이 지키고 있었고 군사 500명과 판옥선 4척이 대기 중이었다. 좌수영의 방어와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 전선과 군사들을 좌수영에 대기시켜 놓은 것인데. 이번에 그들에게도 출병을 명한 것이다.

‘김시민과 예비병력은 출동시키고 싶지 않았지만 배가 부족하니 어쩔 수 없지. 고토열도를 향해 출병할 때만 해도 이곳에서 데려갈 항왜들의 가족들의 수를 1000명 정도로 예상했는데 이미 후쿠에 섬에서만 1000명 이상을 데려가게 됐고 갤리온에는 여인들과 아이들이 몇 명이나 잡혀있을지 모르니 최대한 많은 전선을 확보해 놓자.’

이토 겐타로와 하세가와 미츠시로를 점심 식사 자리에 까지 불러놓고 묻자. 밥을 입이 아니라 코로 먹을 지경이 된 겐타로와 미츠시로는 자신들이 알고 있는 모든 사실을 불었다. 그들의 자백에 따르면 이곳 후쿠에 섬에서 노예들로 판매할 예정이었던 여인들과 아이들은 성 안에 갇혀있던 사람들 뿐만이 아니었다. 후쿠에 섬에서만 600명이 넘는 여인들과 350여명의 아이들을 포르투갈인들에게 판매할 예정이었다. 여인들은 대부분 쟁해왜변 당시 조선으로 건너갔다가 돌아오지 못한 왜인들의 아내들과 다른 이유로 남편을 잃은 과부들이었고 아이들은 대부분 노예로 팔려갈 예정이었던 여인들의 자녀들과 부모가 없는 고아들이었다. 특히 아이들은 너무 어리거나 너무 왜소해서 노예로 상품가치가 없는 아이들을 제외하고도 판매하려던 아이들이 350명에 달한다는 말에 나는 겐타로와 미츠시로에게 밥그릇을 집어 던지고 싶은 충동을 간신히 참았다. 하여간 노예로 팔려갈 뻔했던 여인들과 아이들 그리고 섬에 남아있는 그들의 가족들 까지 후쿠에 섬에서만 돌산도로 돌아갈 인원이 1300명 이상이었고 그 수는 증가할 가능성이 높았다.

후쿠에 섬에서 돌산도로 데려갈 인원도 적지는 않았지만 나카도리 섬에서 노예로 붙잡혔을 여인들과 아이들도 대부분이 정해왜변 당시 조선으로 건너갔던 왜인들의 가족들이거나 과부들과 고아들이라는 말에 나는 남만선에 잡혀있을 왜인들도 모두 구출해 돌산도로 데려가기로 마음먹었다.

‘남만선에 잡혀있던 사람들 까지 합하면 2000명 가까운 인원이 될 것 같은데. 좀 많기는 하지만 모두 데려가자 이곳에 남아있으면 과부와 고아들의 운명은 십중팔구는 노예나 창녀가 될 테니 돌산도로 데려가자.’

손대남에게 명령을 내린 후 나는 장수들과 함께 이토 겐타로와 하세가와 미츠시로가 자백한 정보를 바탕으로 포르투갈 노예상들을 제압하고 갤리온을 점령할 계획을 세웠다.

그날 밤 달도 없는 그야말로 오밤중에 갤리온 두 척이 천천히 후쿠에섬을 향해 다가왔다. 항구에 나와 갤리온을 기다리고 있던 나는 갤리온을 발견하자 장수들에게 말했다.

“남만선이 다가온다. 준비하라.”

“알겠사옵니다. 영감.”

“모두 준비하라.”

이억기는 장수들을 대표해 힘차게 대답한 후 항구에서 대기 중인 군사들과 항왜들에게 준비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일본식 갑옷을 입고 일본 무사로 위장한 나는 내 옆에 서 있는 이토 겐타로를 보며 말했다.

“무엇을 해야 하는지는 알고 있겠지. 이번 일만 성공시키면 네 목숨은 물론 큰돈을 벌 수 있게 해주겠다.”

내 말을 들은 사화동이 이토 겐타로에게 일본어로 전해주자 겐타로는 나를 향해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장군님께서는 약속을 지키시는 분이시니 장군님의 말씀을 믿겠다고 합니다.”

사화동의 통역을 들으며 나는 만족한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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