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남만선을 쳐라
갤리온이 항구로 다가오는 것을 목격한 나는 횃불로 신호를 보낼 것을 명령했고 왜군 복장으로 위장한 좌수군 군사들은 횃불을 흔들어 갤리온에 신호를 보냈다. 항구 옆의 해변가에는 모닥불을 피워놔서 갤리온을 항구로 인도하는 등대의 역할을 하게 했다. 불빛을 따라오듯이 천천히 항구로 들어선 갤리온은 부두에 접안하자 갤리온의 선원들은 갑판위에 발판을 설치했다. 갤리온의 갑판에서 부두까지 발판이 설치되자 갤리온의 선장으로 보이는 중년 남자가 천천히 발판을 밟으며 부두로 내려왔고 그 뒤를 이어 5명의 남자가 더 부두로 내려왔다.
첫 번째 갤리온에서 사내들이 내려오자 이토 겐타로는 사내에게 다가가 인사를 했다.
“오시느라 수고가 많으셨습니다. 안토니오 두산투스 선장님.”
“3일 만에 보는군. 겐타로 자네도 잘 지내고 있었나.”
“예 저는 이곳에서 편히 지내고 있었습니다.”
겐타로의 대답에 안토니오 두산투스는 웃으며 대답했다.
“자네와 마르셀 선장은 신세가 좋았군. 나도 섬에서의 일이 지루하지는 않았어.”
안토니오 두산투스 선장은 함께 후쿠에 섬에 도착한 카울자 드엘리베라 선장과 함께 히라도를 출발해 나카도리 섬에 들려서 노예로 구매한 여인과 아이들을 배에 싣고 오는 길이었다. 자신들이 노예로 팔릴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었던 여인들에게는 마른하늘에 날벼락 같은 일이었지만 나카도리 섬의 무사들과 왜군들이 여인들을 팔아넘기는 일에 앞장섰고 히라동에서 고용한 낭인들과 갤리온의 선원들이 흉기를 휘두르며 여인들을 위협했으니 갤리온에 오르지 않는 여인들에게는 죽음밖에 선택지가 없었다. 안토니오 두산투스는 나카도리 섬에서의 노예사냥이 즐거운 경험이었다는 듯이 말하며 겐타로와 대화를 나누었다.
잠시 후 또 다른 갤리온에서 카울자 드엘리베라 선장의 일행이 부두로 내려왔다. 카울자 드엘리베라는 안토니오와 대화를 나누고 있는 겐타로에게 다가오더니 마르셀 드스피놀라의 행방을 물었다.
“마르셀 선장은 어디에 있는 건가? 우리가 도착했는데도 나오지 않다니. 마르셀 선장의 배는 항구에 있는 것을 봤는데 말이야.”
카울자의 질문에 겐타로는 침착하게 대답했다.
“마르셀 드스피놀라 선장님께서는 성에 계십니다. 성주님께서 선장님과 항해사님들을 성으로 초대하셔서 지금 연희가 열리고 있습니다.”
겐타로의 대답에 안토니오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말했다.
“그러면 그렇지. 마르셀 선장은 술 마시느라 나오지 못했나보군. 밤이 깊었으니 이미 많이 취했겠어.”
“그래도 그렇지. 이건 너무했군. 우리가 왔는데도 나오지 않다니.”
카울자가 못 마땅하다는 듯이 말하자 이토 겐타로는 재빨리 입을 열었다.
“성주님께서는 두 분 선장님을 기다리고 계십니다. 선장님들을 대접하기 위해 술과 음식도 많이 준비했다고 합니다.”
연희가 준비되었다는 말에 안토니오는 입을 크게 벌리며 웃었다.
“하하하. 역시 긴시요라 성주는 손님을 대접할 줄 아는군. 카울자 선장 어서 갑시다. 음식이 식기 전에 성에 들어가야 하지 않겠소. 성주를 너무 기다리게 하는 것도 손님의 예의가 아니오.”
안토니오는 신이 나서 성으로 가자고 했지만 카울자 드엘리베라는 못마땅한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오늘은 밤도 늦었고 피곤하기도 하니 그냥 배에서 쉬고 내일 날이 밝으면 성주를 만나기로 합시다.”
“그게 무슨 소리요. 태평양을 건넌 것도 아니고 겨우 3일 바다에 있었을 뿐인데. 피곤하다니. 엄살이 심하시오. 정 피곤하시면 카울라 선장은 그냥 쉬시오. 성주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니 나는 성주를 만나 술 한잔 해야겠소.”
안토니오와 카울자의 대화를 듣고 있던 이토 겐타로는 카울자가 배에서 쉬겠다고 하자 둘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성주님께서 선원들을 위해서 술과 음식을 보내셨습니다. 쉬시더라도 술은 한잔 드시고 쉬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겐타로의 말에 안토니오의 입이 길게 찢어졌다.
“선원들을 위해서도 술을 보냈다고. 과연 성주는 예의를 아는 사람이군. 아주 마음에 들어.”
카울자도 성주가 보냈다는 술에 관심을 가졌다.
“어디. 무슨 술을 보냈는지 봅시다.”
“여기에 있습니다.”
이토 겐타로는 왜군 복장의 병사들이 서 있는 곳을 가리키자 그곳에는 나무로 된 술통이 여덟 개나 보였고 술통 옆에는 나무로 된 상자들이 보였다. 겐타로가 왜군으로 위장한 병사에게 일본어로 말하자 일본어를 알아들은 병사는 상자의 뚜껑을 열었다.
“술 안주도 보내셨군. 역시 성주는 예의를 아는 사람이야. 곧 바로 성으로 출발하지 내 성주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꼭 해야겠어.”
상자 안에는 나무로 만든 그릇들이 들어있었고 그릇 안에는 구운 생선과 양념한 채소 등 음식들이 가득히 담겨 있었다. 술과 음식을 확인하고 만족한 안토니오는 겐타로에게 출발을 재촉하는 한편 카울자 선장에게 비웃듯이 말했다.
“성주가 우리를 대접할 준비를 하고 있으니 술과 음식만 준비하지는 않았겠지. 나는 성주와 함께 미녀를 품에 안고 즐거운 시간을 보낼 테니. 피곤에 지치신 카울자 선장은 선원들과 함께 술이나 한잔 하시오. 그럼 내일 봅시다.”
대항해 시대 당시 바다를 누비던 뱃사람들은 험악한 환경 탓에 성격이 거칠고 자존심이 강한 경우가 많았다. 카울자 드엘리베라는 안토니오가 자신을 비웃자 참지 못하고 발끈했다.
“내가 지치다니 나는 끄떡없소.”
“피곤해서 미녀와 술도 마다하시는 카울자 선장이 아니시오. 지치신 것이 아니었소.”
카울자를 놀리는 것에 재미라도 붙였는지 안토니오가 대놓고 비꼬자 카울자 드엘리베라는 씩씩거리며 말했다.
“좋아 같이 성주를 만나러 갑시다. 그리고 우리 진땅 마셔봅시다. 과연 누가 먼저 쓰러질지 두고 보겠소. 나 카울자 드엘리베라는 당신 안토니오는 물론 긴시요라 성주가 술에 취해 쓰러지는 것을 보고 말 것이오.”
카울자는 진짜 기분이 상해서 말했지만 안토니오도 술내기라면 피할 위인이 아니었다.
“좋소. 내일 날이 밝을 때 까지 마셔봅시다.”
안토니오는 신이 나서 카울자에게 대답한 후 이토 겐타로에게 말했다.
“성주가 준비해준 술과 음식은 배로 올려서 부하들이 나눠먹게 하고 나와 카울자 선장은 성주를 만나러 가도록 하지.”
“술과 음식을 배로 보내고 제가 선장님들을 모시도록 하겠습니다.”
안토니오에게 공손하게 대답한 겐타로는 일본어로 병사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잠시 후 왜군과 일꾼으로 위장한 병사들과 항왜들이 술통을 짊어지고 갤리온으로 올라갔다. 갤리온의 갑판에서 선장들을 지켜보고 있던 선원들은 왜인들이 술통을 짊어지고 갑판으로 올라오자 환호성을 질렀다. 선장과 함께 항구에 내려갔었던 항해사가 올라와 선장의 허락이 떨어졌으니 술을 마셔도 좋다고 하자 선원들은 신이 나서 술통을 열었고 선실에 내려가 있었던 선원들도 자신의 잔을 들고 갑판으로 올라왔다. 술에 정신이 팔린 선원들은 술통을 짊어지고 왔던 왜인들이 술통을 내려놓은 후 일부러 느린 걸음으로 부두를 향해 내려가면서 배의 구조를 살펴보고 선원들의 수를 헤아리는 것도 알아차리지 못했다.
술통을 갤리온으로 올려 보내고 난 후 이토 겐타로는 선장들과 함께 성주가 성으로 향했다. 일행의 선두에는 횃불을 든 왜군 병사들이 앞장서서 길을 걸으며 길을 밝혔고 병사의 바로 뒤에는 키가 큰 무사가 걷고 있었으며 그 뒤를 겐타로가 성주들과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걷고 있었다. 안토니오와 카울자의 부하들은 선장의 뒤를 따르며 자신들 까리 이야기를 주고
받았고 그 뒤에는 10여명의 병사들이 횃불과 무기를 들고 걷고 있었다.
‘이제 됐다.’
항구에 남아있던 나는 이토 겐타로와 함께 갤리온의 선장들이 성으로 향하자 오늘 밤의 작전이 성공할 것이라는 것을 확신했다.
‘왜성에는 이억기가 군사들을 거느리고 있다. 성으로 들어서는 순간 저들은 독안의 쥐 신세다. 성에 도착하기 전에 눈치를 챈다고 해도 무사차림으로 앞장서고 있는 최도진과 왜군 차림의 군사들이 저들을 가만히 놔둘 리가 없지 선장과 항해사들은 이미 체포된 것과 마찬가지야.’
이토 겐타로와 선장들이 항구를 벗어나자 나는 항구에 남아있던 군사들과 항왜들을 거느리고 북성(항구 북쪽에 세워진 왜성)으로 향했다. 북성 안에는 별도로 100명의 군사들이 대기하고 있었다. 무사히 북성에 도착한 나는 군사들을 모두 소집하고 명령을 내렸다.
“작전은 성공했다. 폭발이 일어나면 그것을 신호로 남만선을 친다. 모두 준비하도록 하라.”
“예. 좌수사 영감.”
작전이 성공했다는 사실에 신이 난 군사들은 위장하느라 입고 있었던 왜군과 왜인들의 옷을 좌수군의 복장으로 갈아입고 엄심갑을 착용했다. 나도 물론 수은갑옷으로 갈아입고 장검과 흑각궁으로 무장했고 장수들도 두정갑 차림으로 옷을 갈아입고 각자의 손에 익숙한 병장기를 들었다. 북성에서 대기하고 있던 좌수군의 장수들과 군사들이 모두 준비를 마치고 폭발음을 기다리고 있던 바로 그때 갑자기 항구 방향에서 폭발음이 들려왔다.
“쾅”
화포의 방포음에 비하면 작은 소리였지만 분명히 화약이 폭발하는 소리였다.
“쾅” “쾅” “쾅”
폭발음은 한번만 들리지 않았다. 연이어서 폭발음이 들려오자 나는 장검을 뽑아들고 군사들에게 외쳤다.
“신호다. 이제 남만선을 공격할 것이다. 저항하는 자들은 베어도 좋다. 아니 항복하지 않고 저항하는 자들은 반드시 베어라. 남만선 안에 화약이 많을 것이니. 적들이 화약에 불을 붙이지 못하도록 저항하는 자들은 철저하게 제압하라. 저항하는 자들은 죽여도 좋다.”
“와아~”
내 명령에 군사들은 환호성으로 대답했고 노파심에 나는 다시 한번 당부했다.
“남만선 안에 엄청난 양의 화약이 있다는 것을 항상 기억하고 절대로 불을 지르지 말라. 반대로 불을 지르려고 하는 자는 반드시 죽여야 한다. 알겠느냐.”
“예이~”
“자 이제 남만선을 치러 가자 나를 따르라.”
“와아~”
내가 장검을 휘두르며 앞으로 나가자 좌수군의 장수들과 군사들은 함성을 지르며 병장기를 치켜들고 내 뒤를 따랐다. 군사들의 함성소리와 열기에 나도 모르게 흥분되기 시작했다. 그 열기와 흥분되는 감정 때문인지 항구를 향해 달리면서도 내 머릿속에서는 이런 생각이 들었다.
‘정말 대단하다. 내 말 한마디에 군사들이 함성을 지르고 적군을 두려워하지 않고 싸우기 위해 나선다니. 내가 다 흥분이 된다. 이 맛에 장군하고 정치인 하나.’
이런 실없는 생각을 하며 항구에 도착한 나는 항구에 정박해 있는 갤리온에서 아직도 연기가 올라오며 갑판 위에 쓰러져 있는 선원들이 비명을 지르며 누워있는 것을 확인하고는 공격 명령을 내렸다.
“바로 지금이다. 남만선에 올라라. 어서 빨리 남만인들을 제압하고 남만선을 장악하라.”
“예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