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선 수군이 되었다-80화 (80/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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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발한 술통

아마도라호의 갑판장 에스테반 곤잘레스는 일본인들이 술통을 지고 배에 올라오자 신이 나서 선원들에게 외쳤다.

“술이다. 술 모두 잔을 가져와라. 내 잔도 가져와야 한다.”

“와아~”

술이라는 말에 선원들은 함성을 질렀고 서둘러 잔을 들고 갑판으로 모였다. 일본인들이 술통과 음식이 담긴 상자들을 갑판위에 내려놓고 배에서 내리자 그 다음 부터는 거칠 것이 없었다. 곤잘레스를 비롯한 선원들은 술통 주위에 둘러 앉아 술통 뚜껑을 열었고 선원들 가운데 가장 지위가 높은 곤잘레스는 국자를 들고 술을 떠서 선원들의 잔을 채워주었다. 곤잘레스는 선원들의 잔을 채워주면서도 갑판장으로써 자신의 역할을 잊지 않았다.

“술통이 4개나 왔으니 일본용병(낭인)들에게도 한통 나눠줘라. 이미 뚜껑을 연 술은 모두 마셔야 한다는 것은 알고 있겠지. 지난 며칠간 수고가 많았으니 오늘은 밤은 실컷 마시고 편히 쉬어라.”

“예 갑판장님.”

곤잘레스의 말에 선원들은 환호와 웃음으로 대답했고 몇몇 선원은 술통과 음식을 들고 선창으로 내려가 노예들을 감시하고 있는 낭인들에게 술과 음식을 나눠주었다. 선원들이 술통 하나마다 한 무리씩 세 무리로 모여 앉아서 술잔을 비우고 있었을 때 갑자기 술통이 폭발했다.

“쾅”

술통이 폭발하자 술을 뜨고 있던 곤잘레스는 다리에서 갈가리 찢어지는 것 같은 고통을 느끼며 그 자리에 주저앉았고 술통 주위에 앉아 있던 선원들도 피를 흘리며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이게 무슨 일이야.”

갑자기 폭발이 일어나며 선원들이 쓰러지자 다른 무리에 있던 선원들은 놀라 자리에서 일어났다. 곤잘레스를 비롯한 다친 선원들을 부축하기 위해 부상자들에게 다가가던 선원 주위에서도 폭발이 일어났다. 그들 무리가 마시고 있던 술이 들어있던 술통이 폭발한 것이다.

“으악”

술통 앞에 서 있었던 맨도사는 자신의 다리에 나무 조각이 박혀있는 것을 발견하고는 비명을 질렀다. 폭발은 시간차를 두고 일어났고 갑판 위에 있던 3개의 술통이 모두 폭발했다. 심지어는 선내에서도 폭발 소리가 들리는 것으로 봐서 낭인들이 마시고 있던 술통도 폭발한 것 같았다. 곤잘레스는 극심한 고통 속에서도 선원들에게 외쳤다.

“누구든 어서 닻을 올려라. 일본 놈들이 준 술통이 폭발했다. 이건 함정이야. 어서 이 섬에서 도망쳐야 한다.”

폭발에 놀란 선원들은 우왕좌왕 하다가 함정이라는 소리에 정신을 차리고 급히 닻을 올리려고 했다. 부상당하지 않은 운 좋은 선원들과 다행히 가벼운 상처만 입은 선원들이 서둘러 닻줄을 감아 닻을 올리고 아마도라호를 바다로 몰려고 하던 바로 그때 함성 소리가 들리더니 무장한 군사들이 아마도라호에 발판을 걸고 아마도라호의 갑판으로 올라왔다.

“적이다. 어서 막아라.”

곤잘레스는 고통을 참으며 외쳤지만 처음 보는 형태의 갑옷을 입은 군사들은 거침없이 갑판으로 올라왔다.

“남만인들을 쳐라. 저놈들은 왜구보다 악독한 놈들이니 인정 봐줄 필요가 없다. 사정없이 쳐라.”

환도를 휘두르며 아마도라호의 갑판으로 올라온 김윤문은 눈 앞에 보이는 남만인들에게 환도를 휘두르며 외쳤다. 그의 외침에 군사들은 함성으로 대답하며 아마도라호로 올라왔다. 얼핏 봐도 30명 가까운 선원들이 피를 흘리며 갑판에 쓰러져 있었지만 부상이 가벼운 선원들은 긴 칼과 화승총을 들고 좌수군 군사들에게 저항하려고 했다. 군사들을 저지하려는 선원들의 용기는 가상했지만 김윤문과 좌수군 앞에서는 헛된 저항에 불과했다.

‘남만인들이 저항했으니 오히려 잘됐다. 저항하지 않는 자들을 베면 좌수사 영감께 꾸중을 들을지도 모르지만. 이번에는 남만인들이 확실하게 저항했으니 마음껏 베어도 상관없겠지.’

김윤문은 자신에게 칼을 휘두르는 남만인의 칼을 환도로 쳐내고 그대로 환도를 오른쪽으로 휘둘러 남만인의 목을 노렸다.

“으악”

김윤문에게 칼을 휘두르며 저항했던 젊은 선원은 환도에 목을 베여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눈 앞에서 선원들이 쓰러지는 참상에 곤잘레스는 고통에도 불구하고 허리에서 단도를 뽑아들었지만 단도를 들고 일어서기도 전에 군사들의 발길질에 쓰러졌다. 갑판에서 일어나려는 곤잘레스를 발로 걷어차 주저앉힌 정한손은 곤잘레스에게 환도를 들이대며 외쳤다.

“목숨을 부지하고 싶으면 가만히 앉아 있어. 일어나면 죽는다.”

조선말을 알아듣지는 못했지만 곤잘레스는 목으로 향하고 있는 칼날을 보고는 더 이상 움직일 생각을 하지 못했다. 순식간에 선원들을 제압하고 갑판을 장악한 조선군은 선실로 내려가는 입구를 찾았다.

“여기 문이 열려있습니다. 이곳으로 내려가는 것 같습니다.”

성범동이 입구를 찾아 외치자 김윤문은 총병들을 찾았다.

“총병들은 무엇하느냐 앞장서지 않고.”

지난번 갤리온에서의 전투를 교훈삼아 이번에는 화승총으로 무장한 총병들이 갤리온에 투입됐다. 선실로 내려가는 문이 열리자 화약과 총탄을 장전한 화승총을 든 총병들이 화승에 불을 붙인 후 총구를 앞세우고 입구에 들어섰다. 선실로 내려가는 통로에 선원들이 나타나면 화승총으로 선원들을 제압해 선실로 내려가는 통로를 장악할 계획이었다. 입구와 통로의 폭이 좁은 것을 감안해 총병은 2명이 내려갔고 그 뒤에는 와키자시를 뽑아든 군사들이 총병들의 뒤를 따라 입구에 들어섰다.

선내에서도 폭발이 일어난 탓에 통로에서부터 유황 냄새가 나고 연기가 눈과 코를 자극했다. 제법 묵직한 화승총으로 정면을 겨냥하고 힘겹게 선내로 들어간 박고산은 갑자기 눈 앞이 어두워지자 본능적으로 방아쇠를 당겼다.

“탕” “탕”

총성 두발이 연이어서 울렸다. 박고산이 방아쇠를 당기자 박고산의 뒤에서 화승총을 들고 있던 이봉수가 총성을 듣고 방아쇠를 당긴 것이다.

“털썩”

박고산에게 달려들었던 낭인이 총탄에 맞고 쓰러지자 박고산과 이봉수는 화승총을 몽둥이처럼 휘두르며 앞으로 뛰어나갔다. 무모한 행동 같았지만 좁은 통로로 군사들이 내려오고 있었으니 이들이 어떻게든 앞으로 나가야 뒤에 있는 군사들이 선실로 내려갈 수가 있었다. 새벽의 전투에서 선내에서의 전투가 벌어지면 어렵다는 것을 실감한 김윤문은 선내로 들어가는 총병들에게 여러 번 반복해서 당부했다. 만약에 통로에서 적군을 만나면 방포하고 무조건 앞으로 나가라고. 만역 총병들이 뒤돌아서면 뒤의 군사들도 길이 막혀 오도가지 못하게 되니 총병들이 더 위험해진다고 무조건 앞으로 뛰어들라고 당부를 했고 김윤문이 당부한 대로 박고산과 이봉수가 화승총을 휘두르며 앞으로 뛰어들자 와키자시를 뽑아든 좌수군 군사들이 그들의 뒤를 따라 선내로 뛰어들었다.

아마도라호에서 김윤문이 지휘하는 조선군이 선내로 진입해 낭인들과 전투를 벌이고 있을 무렵 카울자 드엘리베라가 선장으로 있는 도루리토랄호에서는 이순신이 지휘하는 군사들이 선원들을 제압하고 배를 점령하는데 성공했다.

“남만선인들은 모두 제압하였습니다. 선내에 남아있던 왜구들이 저항하고 있으나 왜구들의 수가 얼마 되지 않아 곧 제압할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녹도진 군관 허원종의 보고를 받은 이순신은 매서운 눈빛으로 허원종에게 명령을 내렸다.

“왜구들을 한시라도 빨리 제압하도록 하고 뒤처리를 철저히 하도록 하라.”

“예 만호나리 명을 따르겠습니다.”

허원종은 이순신에게 군례를 올리고 물러났고 이순신은 갑판에 남아있는 군사들에게 갑판의 구석구석 까지 수색할 것을 명령했다. 혹시라도 남아있을지 모르는 남만인들과 숨겨진 무기들을 찾기 위한 수색이었다. 군사들이 횃불을 들고 갑판 구석구석을 뒤지고 확인하는 동안 이순인은 갑판위에 뒹굴고 있는 술통의 잔해를 보며 대단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이 배에 최소한 40명의 남만인들과 20명의 왜구들이 타고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군사들이 배위에 올라오기도 전에 10명 이상이 죽었고 죽지 않은 자들도 대부분 부상을 입어 변변한 저항도 하지 못하고 군사들에게 제압됐다. 판옥선 보다 크고 판옥선 보다 많은 화포로 무장하고 있는 배를 술통 4개로 간단히 점령하다니 좌수사는 과연 대단한 사람이다.’

이순신이 이렇게 까지 감탄하는 이유 중의 하나는 폭발한 술통에 있었다. 선장을 성으로 유입해 제압하고 선원들에게 술을 내려서 방심하게 만든 후 제압하는 것은 이순신도 충분히 생각하고 실행할 수 있는 일이었다. 그러나 전라좌수사 이대원은 여기에 한술 더 떠 술통 안에 화약과 도화선을 설치해 일정 시간이 지나면 술통이 폭발하도록 만들었고 이 술통들이 폭발하면서 선원들이 사망하거나 부상을 입어 손쉽게 남만선을 점령할 수 있었으니 이순신은 술통을 폭발시키는 계략을 생각해내고 솔통을 폭발시키는 방법 까지 직접 생가해낸 좌수사에게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순신과 최도진이 갤리온의 선원들과 낭인들을 제압하는 동안 항구에서 군사들을 거느리고 있던 나는 갤리온을 지켜보고 있었다. 북성에서 직접 군사들을 이끌고 항구로 달려온 나는 마르셀 선장의 배인 알투알렌테호 안에서 매복하고 있던 군사들과 합류해 오늘 밤 항구에 도착한 두 척의 갤리온을 공격할 것을 명령했다. 생각 같아서는 내가 직접 군사들을 이끌고 갤리온으로 뛰어들고 싶었지만 이순신과 좌수군의 장수들은 그런 나를 극렬하게 말렸다. 최고사령관이 선봉으로 나서는 경우는 없다는 말에 수긍한 나는 갤리온에서의 전투에 경험이 있는 최도진을 선봉으로 안토니오 두산투스의 배를 공격할 것을 명령했고 카울자 드엘리베라의 배에는 무슨 임무라도 믿고 맞길 수 있는 이순신에게 공격할 것을 명령했다.

최도진과 이순신이 군사들을 거느리고 갤리온을 공격하는 동안 나는 20여 명의 군사들을 거느리고 항구에 남아있었다. 최도진과 이순신 중에서 어느 한쪽이라도 상황이 안 좋아지면 내가 거느린 군사들을 거느리고 지원할 계획이었지만 보아하니 내가 군사들을 거느리고 지원할 일은 없어보였다.

잠시 후 갤리온을 완전히 점령했는지 갤리온에 올라갔던 군사들이 남만인들과 낭인들의 시신을 부두로 내려 보냈고 시신을 내보낸 다음에는 부상당한 남만인들과 낭인들이 피를 흘리며 부두로 내려왔다. 항구에 대기하고 있던 군사들은 부두로 내려온 남만인들과 낭인들을 비워놓은 창고로 안내했고 상처를 치료할 줄 아는 병사들이 부상자들의 상처를 살핀 후 바닷물로 상처를 씻기고 출혈이 있는 부위를 횃불로 지져가며 출혈을 멈추게 했다.

“으악~”

상처에 바닷물을 붓자 남만인은 고통을 참지 못하고 비명을 질렀고 환부를 살핀 병사가 상처에 횃불을 들이대자 이전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비명을 질렀다. 포르투갈인들의 비명소리와 상처가 타는 냄새에 그 자리를 벗어나고 싶었던 나는 최도진이 공격한 겔리온에 올라갔다.

“좌수사 영감. 이곳은 전장입니다.”

내가 갑자기 움직이자 김개동을 비롯한 호위병들이 나를 따라 움직였고 항구에 대기하고 있던 병사들 가운데 창고를 지키고 있던 병사들과 환자들을 치료하던 이들을 제외한 이들은 내 뒤를 따라왔다. 갤리온의 갑판으로 오른 나는 아직도 핏자국이 생생한 갑판을 바라보며 눈살을 찌푸렸지만 폭발한 술통의 잔해를 발견하고는 나도 흥미로운 눈길로 술통을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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