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선 수군이 되었다-83화 (83/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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겐타로의 기회

처형한 죄수들의 사체를 화장하면서 전투 중에 사망한 왜군들과 남만인 선원들의 사체도 모두 화장했다. 사체들을 화장하고 갤리온을 정비하면서 꼬박 하루를 보낸 좌수군은 후쿠에 섬에 상륙한지 3일째 돼서야 군사들에게 교대로 휴식을 허락하고 재정비의 시간을 가졌다. 빠르면 나흘 안에 좌수영으로 돌아갈 것이라는 소문이 돌자 좌수군의 군사들은 귀국을 기대하며 오랜만에 긴장을 풀었다. 3일째 되는 날에서야 시간 여유가 생긴 나는 이토 겐타로를 호출했다. 후쿠에 성의 성주의 방에서 나는 통역으로 사화동을 앞에 두고 이토 겐타로와 대화를 나누었다.

“남만인들을 제압하는데 협조했으니 약속대로 너의 목숨은 보장해주겠다. 우리는 늦어도 닷새 후에는 후쿠에 섬을 떠나 조선으로 돌아갈 것이니 우리가 돌아간 후에는 히라도로 돌아가도 좋다.”

“감사합니다. 장군. 장군님의 자비에 감사드립니다.”

입으로는 감사하다고 말하고 있었지만 대답을 하고 나서도 그 자리에 그대로 앉아 기다리고 있는 겐타로의 태도는 무엇을 더 기다리고 있는 표정이 역력했다. 나는 그런 겐타로를 비웃으며 말했다.

“나는 약속을 지키는 사람이다. 남만인들을 제압하는데 협조하면 네가 큰돈을 벌 수 있는 기회를 주겠다고 했으니. 네게 기회를 주마 할 수 있겠느냐?”

“무엇이든지 맡겨만 주십시오 장군. 장군님의 명은 무엇이든 따르겠습니다.”

이토 겐타로는 기다렸다는 듯이 대답했다.

“그래 기회를 주겠다.”

말을 마친 나는 내 옆에서 나를 경호하고 있던 김개동에게 명령을 내렸다.

“그것을 가지고 오너라.”

김개동은 방 안쪽의 문을 열고 작은 나무 상자를 꺼내왔다. 성주의 방은 방 두 개가 문으로 나눠져 있는 형태로 문을 닫아서 방을 두개로 사용할 수도 있고 문을 활짝 열면 방 두 개가 합쳐져서 큰방이 되는 형태였다. 김개동이 상자를 가지고 오자 나는 조심스럽게 상자를 받아 상자의 뚜껑을 열고 안에 든 청자를 꺼냈다. 상자 속에서 청자가 천천히 나오며 그 아름다운 모습을 드러내자 이토 겐타로는 물론 사화동도 청자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고토열도로 출병하면서 나는 자기를 몇 점 가지고 왔었다. 배에서 자기가 깨지지 않도록 나무상자에 자기를 넣고 상자 안에는 볏짚까지 채워서 잘 포장해 좌수영 상선의 내 선실에 잘 보관하고 있었던 자기였다. 혹시나 후쿠에 섬에서 유럽 상인들과 거래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기면 견본으로 보여주기 위해 가져왔던 자기였다.

“직접 만져보겠느냐?”

이토 겐타로에게 청자를 내밀자 겐타로는 공손하게 두 손으로 청자를 받았다. 마치 어린아기를 안 듯이 조심스럽게 청자를 안은 겐타로는 떨리는 목소리로 청자를 받아든 소감을 말했다.

“무척 아름답습니다.”

나는 그런 겐타로의 모습을 바라보며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됐다. 청자에게서 아주 눈을 떼지 못하는군. 아주 넋이 나갔어.’

“너도 상인이니 이름은 들어봤을 것이다. 고려청자 바로 그 도자기가 바로 고려청자다.”

내 말을 들은 겐타로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것이 정말 고려청자란 말씀이십니까. 정말 귀하고 귀한 보물입니다.”

나는 놀라워하는 겐타로를 보며 생각했다.

‘너는 운이 좋은 놈이다. 포르투갈 상인들이 노예상인들만 아니었어도 포르투갈 상인들과 직접 거래하려고 했을 텐데. 그놈들이 조선인들 까지 노예로 거래하려고 한 덕분에 너에게도 기회가 온 것이다.’

“물론이다. 고려청자는 조선에서도 귀하기 어려운 보물이다. 어때 고려청자라면 너에게 큰 기회가 될 것 같으냐?”

겐타로는 뒤로 넘어갈 듯이 놀라며 물었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다. 이 고려청자를 소인에게 주시겠다는 말씀이십니까?”

“아니지. 너에게 고려청자와 백자를 맡기겠다는 말이다. 왜의 귀족들과 영주들은 조선의 자기와 다완에 거금을 아끼지 않는다고 들었다. 유럽의 상인들도 명나라에서 자기와 비단을 구하기 위해 거금을 아끼지 않는다고 들었고 내가 너에게 고려청자와 조선백자를 맡기면 너는 그것을 왜의 영주들이나 유럽의 상인들에게 보여주고 비싼 값에 청자와 백자를 구매할 사람을 찾아보면 되는 것이다.”

“제가 어찌하면 되겠습니까. 장군.”

겐타로는 큰 기회를 잡았다고 생각했는지 절실한 표정으로 나에게 물었다.

“이곳 후쿠에 섬에서 북쪽으로 올라가면 작은 무인도가 있다. 보름 후에 내가 그곳으로 배를 보낼 것이니 너는 그때까지 자기를 구매하겠다는 상인들과 영주들을 찾아보고 구매자들과 구매하려는 자기의 개수와 가격도 협상해야 한다. 물론 내가 조선인이라는 것과 내 신분을 구매자들에게 밝혀서는 안 된다. 보름 후에 내가 보낸 사람을 통해 구매자들이 요구한 자기의 개수 그리고 가격을 나에게 전하면 지금으로부터 한 달 후 내가 남만선에 자기를 싣고 무인도나 거래를 하기 편한 장소로 갈 것이다. 그때 너는 나에게서 약속한 가격에 자기를 구매해 가면 될 것이다. 만족스러운 가격에 청자와 백자를 판매하게 되면 한번 거래가 이루어질 때 마다 네게 자기 한 점을 주고 판매액의 1푼(分)[1%]를 너에게 주마. 어떠냐?“

내 말을 들은 겐타로는 생각도 하지 않고 대답했다.

“감사합니다. 장군 소인에게 이렇게 큰 기회를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나는 겐타로의 대답을 들은 후 겐타로에게 말했다.

“너도 상인이니 자기를 구매하려는 자들에게도 중간에 수수료를 받으려고 하겠지만 그것은 상관없다. 단 내가 만족할 만한 가격에 자기를 판매하고 가격을 속이지만 않는다면 나는 왜국에는 너를 통해서만 자기를 판매할 것이니 너의 이익이 작지는 않을 것이다. 그리고 이후에는 더 큰 거래를 맡길 수도 있으니 열심히 해봐라.”

겐타로는 더 큰 거래라는 말에 눈에 불을 켜고 물었다.

“큰 거래라고 하심은 무엇을 말씀하십니까?”

나는 그런 겐타로의 반응에 만족하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왜에는 조선에서 필요한 유황과 구리가 나오는 광산이 흔하다고 들었다. 우선은 자기를 판매한 대금을 금과 은으로 받겠지만 시일이 지난 다음에는 그 자금으로 왜에서 유황과 구리도 구입할 수 있을 것이다. 너에 대한 신뢰가 쌓이면 유황과 구리의 구매도 너를 통해 거래할 수 있을 것이니 그 액수도 적지는 않을 것이다.”

내 대답을 들은 겐타로의 입이 귀에 까지 길게 찢어졌다. 조선에서는 유황이 나오는 광산이나 화산이 없어서 왜에서 유황을 수입하는 것은 겐타로도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그런데 함대를 거느린 조선의 수군 지휘관이 자신에게서 유황과 구리를 구입하겠다고 하니 겐타로는 거래액과 이익을 상상하며 행복한 꿈을 꾸었다. 상인인 겐타로에게 내가 제안하는 거래가 밀수라는 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나와의 거래를 통해 큰돈을 벌 수 있다는 것이 켄타로에게는 가장 중요한 일이었다.

“맡겨만 주심시오 장군.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겐타로는 내게 절을 하며 최선을 다할 것을 맹세했고 나는 겐타로에게 견본으로 백자 하나를 더 안겨주었다. 백자를 받아든 겐타로는 다시 한번 기절할 것 같은 표정을 지었고 나는 그런 겐타로의 모습을 보며 만족했다.

‘저놈은 이제 절대로 나를 배신하지 못한다. 견본으로 준 자기를 들고 도망가도 자기를 팔아 거액을 벌수 있겠지만. 그런 짓을 하면 겐타로는 두 번 나와는 거래를 하지 못한다. 자기 두 개를 팔아 받을 수 있는 금액 딱 그 정도 액수만 이익을 볼뿐이지. 거래를 할 때 마다 자기 한 점을 주겠다고 했으니 그것만 해도 적지 않은 액수이고 거기에 거래액수의 1%를 주겠다고 했으니 자기의 거래 가격이 크면 클수록 겐타로에게도 이익이 되고 구매자에게서 수수료도 받을 수 있으니 사기꾼이 아닌 제대로 된 상인이라면 그 이익을 결코 포기하지 못할 것이다.’

솔직히 자기의 원가를 생각하면 거래액수의 1%를 주는 것 보다 거래를 할 때 마다 청자나 백자를 겐타로에게 몇 점 더 주는 것이 훨씬 이익이었지만 겐타로가 최대한 자기를 높은 가격에 판매하도록 유도하기 위한 당근으로 거래액수의 1%를 제시한 것이다.

겐타로에게 그만 물러가도 좋다고 하자 켄타로는 나무 상자에 자기를 조심스럽게 넣어 상자

채 들고 나갔다. 겐타로가 방을 나가자 나는 복잡한 표정을 짓고 있는 사화동을 바라보며 물었다.

“겐타로에게 자기를 맡긴 것이 못마땅한 것이냐?”

내 질문에 사화동은 기겁을 하며 엎드렸다.

“아닙니다 장군님. 제가 장군님께서 하시는 일이 불만을 가질 리가 있겠습니까.”

나는 그런 사화동의 반응에 터져 나오려는 웃음을 참으며 말했다.

“네 얼굴에 다 보이는 구나. 겐타로에게 보물을 맡겨서 불만인 것이.”

“아닙니다. 장군님. 불만이라니요. 아닙니다.”

나는 그런 사화동의 반응을 즐기며 김개동에게도 물었다.

“개동이 너도 궁금해 하는 것 같더구나. 왜 겐타로에게 자기를 주었는지 말이다.”

김개동은 평소와 같이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이유를 말씀해 주실 수 있으십니까. 좌수사 영감.”

“돌산도에서 지내고 있는 항왜들이 몇 명이나 되는지 알고 있느냐?”

김개동은 어렵지 않게 대답했다.

“500명이 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지금이야 항왜들이 농사를 짓고 있고 염전에서 소금도 생산하고 있지만 처음 돌산도에 도착했을 때는 무엇을 먹으며 지냈겠느냐?”

김개동은 역시 담담한 태도로 대답했다.

“좌수영의 군량으로 항왜들과 피난민들에게 양식을 주시지 않으셨습니까. 좌수군에서 그 일을 모르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래 급한 마음에 우선은 좌수영의 군량으로 항왜들과 피난민들을 먹였다. 이후에는 좌수영 인근의 부호들의 도움을 받았고 말이다. 항왜들과 피난민들이 몇 달간 먹은 곡식이 적지는 않은 양이었다. 그리고 이번에 우리 좌수군만 조선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다.”

여기까지 이야기를 나누자 김개동은 물론 사화동도 내가 왜 겐타로에게 청자와 백자를 맡겼는지 눈치를 챘다.

“오도의 여인들과 아이들을 위한 재물을 구하기 위해 겐타로에게 그런 보물을 맡기신 것입니까.”

사화동은 긴장된 표정으로 물었고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지금까지 우리 좌수군과 함께 조선으로 돌아갈 왜인들의 수가 1000명이 넘는다. 장정들인 항왜 500명이 돌산도에 자리를 잡는 것도 힘들었었는데 여인과 아이들이 대부분인 왜인들이 돌산도로 들어가면 당장 먹을 양식에서부터 지낼 집이며 이것저것 필요한 것이 많을 것이다. 당장은 군량과 내가 가진 재물을 쓴다고 해도 한계가 있을 것이니 겐타로를 통해 영주들과 상인들에게 청자와 백자를 팔아 필요한 자금을 확보할 것이다.”

내말을 들은 사화동과 김개동은 감격한 표정을 지었다.

“나는 좌수군 군사들은 물론 항왜와 왜인들에게도 분명히 약속했다. 나의 부하들은 절대로 굶주리지 않을 것이라고 나는 조선인이건 왜인이건 나는 어떤 방법을 쓰던지 내 휘하의 사람들이 춥거나 배고프게 만들지는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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