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선 수군이 되었다-84화 (84/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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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뢰의 이유

김개동과 사화동이 물러나자 나는 오랜만에 자리에 편하게 앉아 쉬었다.

‘청자와 백자의 판매만 순조롭게 되고 항왜들을 돌산도에 정착시킬 정착비용과 식량 문제는 해결된다. 조선에서 도공들에게 자기를 구매하는 가격을 생각하면 일본 영주들 그리고 유럽

상인들과의 도자기 무역은 최소한 100배 이상의 이익을 보장하는 황금거위와 다름없다. 한 달에 100점씩만 팔아도 항왜들의 정착비용과 식량은 물론 일본까지 갤리온이 다녀오는 비용과 갤리온을 몰고 다녀올 선원들에게 줄 보수까지 충분히 감당하고도 남을 것이 분명해. 초기에 몇 번은 항왜들의 정착비용을 위해 거래하겠지만 도자기 무역만 원활하게 이뤄지면

북해도 정벌과 거점 건설을 위한 자금을 확보할 수 있다. 북해도에 거점을 마련하고 임진왜란을 대비하려면 화승총과 대포를 제작할 장인들도 필요하지만 일본에는 화승총을 제작하는 장인들이 많이 있고 조선에도 총통을 제작하는 장인들이 있으니 돈만 있다면 장인들을 구하지 못할 이유가 없지.’

자리에 누워 생각해 보니 이번 고토열도 정벌은 나에게 행운의 연속이었다. 왜구들을 토벌하고 조선인들을 구출하였으니 정벌의 목적을 이루는데 성공했고 중간에 이런 저런 사정이 있었지만 그토록 원했던 갤리온을 3척이나 획득할 수 있었으며 갤리온을 획득하면서 확보한 대포와 화승총 그리고 화약의 양도 적지 않았다. 무엇보다 왜국과의 도자기 무역의 기반이 마련된 것이 가장 큰 성과였다.

‘일본인들도 생각보다 많이 데려갈 수 있게 됐어. 처음에는 항왜들을 먹여 살려는 일로 정신이 없겠지만 인구와 영토는 그 자체가 국력이다. 돌산도의 항왜들과 이번에 데려가는 일본인들은 내가 북해도와 북미지역에 건설할 거점에 주민과 군사가 될 것이니. 기회가 될 때  데려가야지.’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자리에 누워있었던 나는 잠이 오려고 하자. 정신을 차리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후쿠에 섬을 장악하고는 있었지만 좌수영에 돌아갈 때 까지는 긴장을 풀지 않는 것이 현명한 행동이었다. 오랜만에 일지를 꺼내 상륙이후에 일어난 일들을 시간별로 기록한 나는 좌수영에서 출발한 지원함대가 도착할 날짜를 계산해 봤다.

‘오늘이 상륙 3일째 되는 날이다. 손대남은 상륙한 날 오후에 출발했으니 빨라도 오늘에야 좌수영에 도착하겠구나. 관선으로 갔고 한척만 갔으니 서둘렀다면 오늘 중으로는 충분히 좌수영에 도착할 것이고 좌수영에서 함대가 출발해도 이곳 까지 이틀 이상은 걸릴 것이니 내일 아침에 출발한다고 하면 빨라도 3일 후에야 도착하겠구나.’

후쿠에 섬에 주둔 중인 좌수군 군사들은 오늘을 기준으로 4일 후에 좌수영으로 돌아가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좌수영에서 출발한 지원함대가 빨라도 3일후에나 도착할 예정이니 지원함대가 도착한 후 하루나 이틀 정도 휴식과 재정비를 하고 출발한다면 좌수영으로 돌아가는 날짜는 하루 정도 뒤로 미뤄질 수도 있었다. 돌아갈 날짜를 계산하던 나는 고민에 빠졌다.

‘지원함대가 도착한 다음날 곧바로 돌아갈 수 있을까? 판옥선은 격군들이 중요한데. 이곳에 도착했을 때는 지원함대의 격군들이 이미 지쳐있을 거야. 하루나 이틀 정도 휴식을 취하고 돌아가야 할 것 같은데. 하루 아니 한나절만으로 격군들이 충분히 체력을 회복할 수 있을까. 그리고 예정대로 4일 후에 돌아간다고 해도 4일간 군사들이 하는 일없이 쉬기만 해도 좋지 않아.’

아직까지는 불미스러운 일이 벌어지지 않았지만 나는 좌수군 군사들의 휴식시간이 길어지면 지루해진 군사들이 무슨 일을 벌이지는 않을지 걱정됐다. 이번에 출병한 병사들은 대부분 2달 이상을 집에 돌아가지 않고 좌수군에서 복무했고 출병하기 전에는 매일 같이 군사훈련을 받았었다. 병사들도 젊은 사내들인 만큼 일본여인을 보며 욕정을 느낀다고 해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더구나 이번 출정에 자원한 군사들은 대부분 왜구들에 대한 증오심을 가지고 있었으니 아무리 생각해도 군사들이 하는 일없니 후쿠에 섬에 계속 있는 것은 위험해 보였다.

‘2달 이상 집에 돌아가지 못 한데다가 하는 일없이 시간만 보내고 있으니 병사들이 허튼 생각을 하는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니지.’

후쿠에 성에 잡혀있던 여인들과 아이들은 각자의 집으로 돌아갔고 나카도리섬에서 잡혀온 여인과 아이들은 후쿠에 성에서 생활하고 있었다. 후쿠에 성은 나를 비롯한 장수들이 버티고 있고 군사들이 순찰을 돌고 있으니 성 안에서는 사고가 일어날 확률이 적었지만 주민들이 가옥 까지는 일일이 신경 쓸 수가 없었다. 욕정에 눈이 먼 군사들이 여인을 강간할 목적으로 민가를 습격할 경우 막을 방법이 없었던 것이다.

‘허튼짓을 하거나 특히 여인을 강간하는 자들은 이유를 불문하고 목을 쳐서 효수하겠다고 경고했지만 이대로 시간만 보내면 사고가 나는 것은 시간문제야.’

어찌해야 할지 고민하던 나는 정벌을 준비하면서 그린 지도를 발견하고는 생각에 잠겼다.

‘고토열도에서 가장 큰 섬은 후쿠에 섬은 우리가 점령했다. 그 다음으로 큰 섬이 나카도리

섬이지 나카도리 섬에서 포르투칼인들과 낭인들이 여인들과 아이들을 납치해왔어 그곳의 왜군들은 포르투칼인들에게 협조했고. 생각해 보니 왜군들을 토벌하면 전리품이 제법 나왔어

일본도와 화승총에 화약까지 나카도리 섬의 왜군들도 여인들을 납치하는데 협조했으니 포르투칼인들에게 무기와 화약을 받지 않았을까.‘

나카도리 섬은 후쿠에 섬하고는 거리가 제법 떨어져 있지만 갤리온으로 간다면 하루 만에 충분히 다녀올 수 있을 것 같았다. 지도에서 나카도리 섬을 살펴보던 나는 고토열도에서 3번째로 큰 히사카 섬이 후쿠에 섬 바로 옆에 위치하고 있는 것을 보고는 결정을 내렸다.

“거기 누구 없느냐?”

“예 영감 부르셨습니까.”

“순천부사와 녹도만호를 불러오너라. 당장.”

1587년 4월 9일 후쿠에 섬에 좌수군이 상륙한지 4일째 되는 날

손대남을 통해 전라좌수사의 서신을 받은 좌수영 우후 김시민은 좌수사가 명한대로 좌수영에 대기하고 있었던 전선을 출항시켰다. 손대남이 타고 왔던 관선의 격군들은 좌수영에 도착한 후 너무 지쳐있어서 이번에는 출정하지 못했고 손대남이 타고 왔던 관선도 좌수영에 남겨놓았지만 손대남과 바닷길을 안내할 항왜 오오타 스케마스는 김시민과 함께 판옥선에 탑승했다. 좌수사의 명령으로 갑자기 나서는 예정에 없던 출병이었지만 판옥선의 상태는 완벽해 보였고 군사들도 당황하거나 불만을 가진 모습을 발견할 수 없었다.

군사들이 전선에 올라 출정준비를 끝내자 마지막으로 김시민이 군관들과 함께 전선에 올랐고 김시민의 명령이 떨어지자 4척은 판옥선은 천천히 바다로 나갔다. 전선의 갑판에서서 점차 멀어지는 항구를 바라보며 손대남은 감탄을 금치 못했다.

‘우후. 대단한 사람이다. 우후가 좌수사의 명을 전달 받은 것이 어제인데 불과 하루도 안 되는 짧은 시간에 전선과 군사들이 출정하다니 이것은 우후가 미리 준비해 놓았기에 가능한 일이다.’

손대남도 수군에서 잔뼈가 굶은 사람이었기에 전선이 출정하는데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리는지 잘 알고 있었다. 좌수사의 명령을 확인한 김시민이 출병하겠다고 했을 때만 해도 손대남은 오늘 오후에나 출병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지만 김시민은 뜻밖에 오후가 아닌 아침에 전선을 몰고 오도로 출병했다. 손대남은 그런 빠른 출병에 놀랐고 전선에 올라와서는 판옥선은 물론 군사들의 상태도 흠잡을 것이 없는 것을 보고 다시 한번 놀랐다.

오오타 스케마스가 뱃머리에 서서 뱃길을 안내하는 동안 갑판에서 전선을 둘러보던 손대남은 우후 김시민이 자신에게 다가오자 군례를 올렸다.

“아직 피곤할 텐데. 몸은 괜찮은가?”

“괜찮습니다. 나리.”

“서둘러서 출항하기는 했지만. 오도로 가는데도 이틀 이상이 걸린다고 하니. 좌수사 영감께서 많이 기다리시겠군.”

“사실 많이 놀랐습니다. 오늘 아침에 곧바로 출정하게 될 줄은 생각지도 못했지 뭡니까.”

손대남이 감탄한 표정으로 말하자. 김시민은 멋쩍은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좌수사 영감이 출병하기 전에 준비를 많이 해놓으셨더군. 좌수영에 미리 전선들과 군사들을 집결시켜 놓으신 것도 좌수사 영감이고 군량이며 화약, 병장기의 개수까지 장부대로 맞춰져 있었는데 그것도 좌수사 영감이 많이 애쓰셨다고 하더군.”

김시민의 말을 들으며 손대남은 역시 좌수사라고 생각했다. 그런 손대남의 모습을 보며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짐작한 김시민은 이번에는 기가 막힌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좌수사 영감이 대단한 장수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가장 대단하다고 느낀 것은 좌수사 영감에 대한 병사들의 믿음이야. 좌수사 영감은 지난 전란 때 어떻게 지휘하셨기에 좌수영의 군사들이 좌수사께서 출병 명령을 내렸다니까. 별다른 불평도 없이 순순히 전선에 올랐다고 하더군. 마치 할 일을 한다는 듯이 말이야.”

손대남은 김시민의 말을 들으며 적지로 출병하는 것은 군인이 마땅히 해야 하는 일이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김시민이 궁금해 하는 점을 대답했다.

“좌수사 영감께서는 지난 전란 마지막 전투를 제외하고는 항상 적군보다 열세인 병력으로 적군들과 싸우셨습니다. 열세도 보통 열세가 아닌 몇 배나 차이가 나는 적군을 상대로 말입니다. 좌수사 영감께서는 전투 중에도 아군 병사들  피해를 입지 않도록 주의해서 싸우셨고 불리한 전장에서는 가차 없이 전선을 돌리셨습니다. 몇 배나 많은 적과 싸웠을 때도 항상 승리를 자신하셨을 때만 싸우셨고 승리를 거두면서도 아군의 피해가 많지 않도록 주의하셨습니다.”

이 당시에 장수가 승리의 영광보다 아군의 피해를 줄이는데 신경 쓰는 것은 상당히 드문 일이었다. 손대남의 대답을 들으며 김시민은 좌수군의 병사들이 좌수사를 믿고 따르는 이유를 조금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좌수사는 일생을 전장에서 구른 노장이 아닌 아직 약관을 넘긴지 얼마 안 되는 어린 장수인 것을 생각하면 정말 대단한 일이다. 좌수사의 나이라면 아군의 피해보다는 승리의 과실을 탐할 나이인데.’

전선들이 고토열도를 향해 달리는 동안 김시민은 손대남과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각자의 경험과 지식을 나누었다.

같은 날 정오 히사카 섬의 항구에 2척의 관선이 다가왔다. 히사카 섬은 후쿠에 섬에 8분지1에도 미치지 못할 정도로 작은 섬이었지만 고토열도의 섬들 중에서 후쿠에 섬에 가장 가까이에 위치하고 있는 섬이었고 고토열도의 섬들 중에서 후쿠에 나카도리에 이어 3번째로 큰 섬이었다. 섬의 위치상 후쿠에 섬과의 교류도 활발한 편이었기에 후쿠에 섬이 있는 남서쪽에서 관선이 다가오는 것을 히시카 섬의 왜인들은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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