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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하도와 중통도
히사카섬(久賀島)의 항구에 관선들이 들어서자 항구를 지키고 있던 왜군들은 관선들을 확인하기 위해 부두로 나왔다.
“오늘 입항하는 배가 있었나?”
“나도 모르겠는데. 무슨 일이지?”
왜군들이 예정에 없던 관선의 입항을 왜군들이 이상하게 여기자 왜군들 뒤에서 나이가 지긋한 무사 하나가 일본도를 들고 나오며 말했다.
“배가 들어왔으니 좋은 일 아니겠느냐. 혹시 아느냐 오늘 밤 술 한잔 할 수 있을지.”
일반 병사들은 모르고 있었지만 히사카 섬을 비롯한 고토열도의 왜군 무장들은 여인들과 아인들을 남만인들에게 노예로 판매하는 계획을 이미 알고 있었다. 이 무사도 지금 입항하는 관선을 노예들을 구입하기 위해 들어오는 배로 생각하고 자신에게 떨어질 떡고물을 기대하고 있었다.
무사의 뒤를 따라 관선으로 다가가던 왜군들은 관선의 갑판위에 낯선 사람들이 있는 것을 보고는 관선을 향해 외쳤다.
“무슨 일로 왔느냐?”
왜인 복장으로 갑판위에 있던 병사들이 왜군들의 음성을 듣고 신호를 하자 갑판위에 놓인 의자에 앉아 있던 이순신이 몸을 일으켰다. 두정갑 차림의 이순신이 몸을 일으키자 그것을 신호로 갑판 나간에 몸을 숨기고 있던 사부들이 일제히 일어나 부두에 있는 왜군들에게 활을 겨눴다.
“아니 이게 무슨 일이냐?”
관선의 갑판 위에서 갑자기 사부들이 나타나 활을 겨누자 무사는 일이 잘못됐다는 것을 깨닫고 황급히 몸을 돌려 달아났지만 그가 화살보다 빠를 수는 없었다. 이순신이 공격 명령을 내리자 사부들은 일제히 당기고 있던 시위를 놨고 10여발의 유엽전(柳葉箭)이 왜군들을 향해 날아갔다.
“으악”
“악”
부두에 나와 았던 왜군들이 화살을 맞고 쓰러지자 이순신은 상륙을 명령했다.
“군사들은 항구로 내려가고 전선에 신호를 보내라.”
“예 나리”
이순신의 명령이 떨어지기 무섭게 관선에 타고 있던 좌수군 군사들은 병장기를 들고 항구로 내려갔다. 엄심갑 차림에 손에는 병장기를 든 좌수군 군사들이 나타나자 항구에 나와 있던 왜인들은 비명을 지르며 도망쳤고 좌수군 군사들은 도망치는 왜인들을 추격했다. 관선에서 군사들이 내리는 동시에 깃발로 신호를 보내자 바다에서 대기하고 있던 판옥선들이 항구로 다가왔다. 판옥선이 다가오는 것을 확인한 이순신은 두정갑 차림에 허리에는 환도를 차고 관선에서 내려왔다. 이순신은 항구에 내려오면서 생각했다.
‘좌수사 영감은 역시 철두철미 하시군. 이런 작은 섬의 왜구들도 토벌하라고 하시니. 하긴 이곳 구하도(久賀島)가 복강도의 8분의1에 불과한 작은 섬이라고는 하나 왜구들의 있으니 그냥 놔둘 필요가 없지. 복강도와 거리도 가까우니 토벌하는데 큰 어려움이 있는 것도 아니고. 이곳 보다는 중통도(中通島 나카도리섬)로 직접 가신 좌수사 영감이 힘드시겠는데.’
구하도 정벌과 중통도 정벌은 어제 갑자기 좌수사가 명령을 내렸다. 어제 정오 순천부사와 녹도만호를 호출한 좌수사는 복강도에서 지원함대를 기다리기만 할 경우 군사들의 사기가 떨어지고 기강이 해이해질 수도 있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구하도와 중통도의 정벌을 명령했다. 어차피 군사들은 전투를 각오하고 출병했고 큰 피해 없이 복강도를 정벌해 군사들의 사기도 높으니 순천부사 이억기와 녹도만호 이순신의 좌수사의 의견에 찬성했고 좌수사는 이순신에게 구하도의 정벌을 명령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이순신 이억기 둘 다 만족했다. 이순신은 단독으로 구하도 정벌의 지휘를 맡은 것을 기뻐했고 이억기는 중통도 정벌은 자신이 맡을 것으로 생각하고 잔뜩 기대하고 있었다. 그러나 좌수사는 이들의 예상과 달리 폭탄선언을 했다.
“녹도만호가 구하도를 정벌하는 동안 본관은 남만선을 몰고 중통도를 정벌하도록 하겠다. 중통도의 왜군들은 남만선을 경계하지 않을 것이니 중통도 정벌은 누워서 떡먹기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직접 남만선을 몰고 가겠다는 좌수사의 주장에 순천부사 이억기는 놀라서 말렸다.
“좌수사 영감. 중통도 정벌은 소장에게 맡기시지요. 영감께서 직접 출병하실 필요는 없으실 것 같습니다.”
“좌수군 군사들은 남만선에 익숙하지 못하니 남만인 선원들을 데리고 가야 할 것이고 그럼
통역을 할 이토 겐타로도 동승해야 할 것이다. 바닷길을 아는 항왜들도 몇 명 데리고 가야할지 모르는데 본관이 직접 나서지 않으면 남만인들과 항왜 그리고 이토 겐타로를 다루기 어려울 것이다.“
좌수사가 주장을 굽히지 않자 이억기가 걱정된다는 듯이 말했다.
“좌수사 영감과 녹도만호가 출병한다고 해도 이곳 복강도에 남아있을 군사들의 수가 적지 않을 것입니다. 그 군사들은 어떻게 하시려고 하십니까?”
이억기의 질문은 충분히 일리가 있었지만 좌수사는 아무렇지 않게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다.
“그래서 순천부사가 복강도에 남아있는 것이 아닌가. 본관이 출정하는 동안 순천부사가 복강도를 지켜주게 본관이 출병하는 동안 출정군의 지휘권과 생사여탈을 순천부사에게 위임하겠으니 군령을 위반하는 자들은 좌수군이라고 가차 없이 처벌하도록 하고 특히 여인을 겁탈한 자들은 목을 베어 효수하도록 하게 알겠는가.”
좌수사의 명령에 이억기는 알겠다는 대답을 할 수밖에 없었고 출정이 결정되자 셋은 그래도 방에 앉아 오늘 출병할 군사들을 선별하는 것으로 시작해서 출병계획을 세웠다. 오늘 날이 완전히 뜨지도 않은 새벽 좌수사는 직접 남만선에 올라 군사들과 남만인 선원들을 이끌고 중통도(中通島 나카도리섬)로 행했고 이순신은 좌수사가 탑승한 남만선이 중통도에 도착했을 시간을 계산해 구하도(久賀島 히사카섬)를 향해 출병했다. 좌수사와 이억기 그리고 이순신이 세운 계획에 의하면 이순신이 구하도를 공격한 바로 그 시간 좌수사가 지휘하는 남만선이 중통도에 도착했을 것이다. 작전계획대로 구하도의 항구를 점령하고 육지에 상륙하는 데 성공한 이순신은 자신과 마찬가지로 좌수사가 지휘하는 남만선도 중통도에 도착했을 것으로 믿었다.
그로부터 2시간 후 나카도리 섬의 항구에는 갤리온이 천천히 다가오고 있었다. 나카도리 섬의 항구를 지키고 있던 왜군들은 예정에도 없이 갤리온이 다가오고 있어도 놀라거나 당황하지 않았다. 당황하기는커녕 반가워하는 자들도 있었다.
“며칠 전에 섬에 왔었던 남만선 같은데 또 과부들을 데리러 왔나?”
“설마. 과부들 중에서 젊은 여자들은 지난번에 대부분 데려갔잖아. 이번에는 아이들을 더 데려갈 생각이겠지. 아이들은 아직 더 있잖아.”
“어쨌거나 잘 된 일이야. 이번에도 생기는 것이 있겠지.”
“남만인들이 철포와 화약을 주고 갔다고 하던데. 철포가 우리 차례까지 오겠어. 그래도 수고 했다고 술 한잔할 돈은 쥐어주겠지.”
왜군들이 이야기를 주고 받으며 갤리온이 항구에 입항하기를 기다렸다. 갤리온이 천천히 항구에 들어서자 왜군들은 이번에는 무슨 떡고물이 떨어질지 기대하며 갤리온 앞으로 다가갔다. 그러나 왜군들의 기대와 달리 갤리온의 갑판에서 일어나 왜군들을 내려다본 사람은 포르투칼 상인들이 아니라 조선수군 전라좌수사 이대원이었다.
갤리온에 완전히 항구에 들어서자 갑판위에 놓인 의자에 앉아 있었던 나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갑판위에서 항구를 내려다보니 거지꼴 보다 조금 나은 복장의 왜군들이 손에는 창과 일본도를 들고 갤리온을 올려다 보고 있었다. 그 꼴을 보고 화가 난 나는 갑판에서 몸을 숨기고 있던 총병들에게 외쳤다.
“왜구들이다. 일제히 방포하라.”
나 명령이 떨어지자 총병들은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났고 화승총을 들어 왜군들을 조준했다.
“철포다.”
“아니 이게 무슨 일이야.”
“왜이래 왜 이러는 거야.”
그제 서야 화승총을 발견한 왜군들은 총병들에게 손가락질을 해가며 일본어로 떠들었지만 총병들은 왜군들의 수다를 들어줄 생각이 없었다.
“어서 방포하지 않고 무엇을 하느냐.”
내가 다시 한번 방포명령을 내리자 총병들은 일제히 방아쇠를 당겼다.
“탕” “탕” “탕” “탕” “탕” “탕”
총병들의 화승총이 불을 뿜자 왜군들은 일제히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갤리온에는 선원들과 항왜들 외에도 총병 3개 오(伍) 15명을 비롯해서 120명의 좌수군 병사들이 승선하고 있었다. 항구에 나와 있던 왜군들이 모두 쓰러진 것을 확인한 나는 허리에 찬 장검을 만지며 상륙 명령을 내렸다.
“섬으로 내려간다. 서둘러라.”
“예 좌수사 영감.”
군관 김윤문은 나에게 힘차게 대답한 후 군사들을 이끌고 항구로 내려갔다. 총성을 듣고 항구 바깥쪽에 있었던 왜군들이 달려왔지만 왜군의 증원을 저지하기 위해 2개 오(伍)의 총병들이 갤리온에서 내리지 않고 대기하고 있었다. 왜군들을 발견한 총병들은 주저하지 않고 방아쇠를 당겼고 다시 한번 항구에 총성이 울렸다.
“탕” “탕” “탕” “탕” “탕” “탕”
10명의 총병들이 화승총을 발사하자 앞에서 달려오던 왜군 3명이 총탄을 맞고 쓰러졌고 다른 왜군들은 달리던 발걸음을 멈추고 그래도 몸을 뒤로 돌려 달아났다. 달아나는 왜군들은 총병 대신 김윤문이 이끄는 군사들이 추격하기 시작했다. 총병들과 나보다 한발 앞서 항구에 내린 군사들이 왜군들을 몰아내자 나는 총병들을 거느리고 갤리온에서 내릴 준비를 하면서 이언세에게 따로 명령을 내렸다.
“이진무는 배에 남아 배를 지키도록 하게.”
“예 알겠습니다. 좌수사 영감.”
나는 눈짓으로 돛대 옆에 서서 돛을 살펴보고 있는 남만인 선원을 가리키며 이언세에 말했다.
“아직은 남만인들을 믿을 수 없다는 것을 이진무 역시 잘 알고 있을 것이네. 군사 20명을 배에 남겨둘 것이니. 항상 남만인들의 행동을 지켜보도록 하고 특히 화약이나 병장기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경계를 게을리 하지 말게.”
“심려를 놓으십시오. 좌수사 영감.”
이언세는 믿음직한 목소리로 대답하며 나에게 군례를 올렸고 그 덕분에 나는 안심하고 항구로 내려올 수 있었다. 내가 굳이 나카도리 섬을 정벌할 것을 결정하고 내가 직접 나카도리 섬으로 출병한 이유 중에서 가장 큰 이유가 바로 갤리온으로 항해를 하기 위해서였다.
‘갤리온을 소유하고 있어도 갤리온을 사용할 줄 모르면 그림의 떡이나 다름없지. 어차피 나카도리 섬을 정벌하지 않아도 좌수영으로 돌아가기 전에 포르투칼 선원들을 회유했어야 했는데 나카도리 정벌을 핑계로 항해사와 선원들 회유하는데 성공했으니 결과적으로 잘된 일이야.’
갤리온을 운용하기 위해서는 포르투칼인 항해사와 선원들의 협조가 필요했던 나는 나카도리 섬 까지 빠른 시간 안에 병력을 수송하기 위해서는 갤리온이 필요하다는 핑계로 갤리온을 몰고 다녀오겠다고 고집을 부렸고 역시나 군대는 계급이 깡패인 만큼 후쿠에 섬에서 내 주장에 반대할 사람은 없었다. 그렇게 갤리온을 몰고 바다로 나갈 명분을 만든 나는 처형하지 않고 붙잡아 놓은 항해사들과 선원들을 회유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