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갤리온
내가 포르투칼인들을 회유한 방법은 간단했다. 바로 당근과 채찍이었다. 나는 포르투칼인들을 한자리에 모아 놓고 이토 겐타로를 통해 내 말을 전했다.
“나는 조선의 해군 제독이고 너희는 조선인을 노예로 사고팔려다 붙잡힌 노예상들이다. 조선의 국법에 의하면 너희는 처형감이지만 내 말을 듣는 자들은 살려주겠다. 너희들 중에서 조선수군이 갤리온을 운용할 수 있도록 협조하는 자들은 살려줄 것이고 협조하지 않는 자들은 이곳에서 처형될 것이다.”
내 말을 들은 포르투칼인들은 놀란 표정이었다. 특히 선장들이 처형되는 것을 바로 눈앞에서 목격한 항해사들은 하얗게 질린 표정을 지었다. 포르투칼인들이 내 말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것을 확인한 나는 포르투칼인들에게 당근을 제시했다.
“너희가 협조하여 우리 조선수군이 너희가 없어도 갤리온을 충분히 운용할 수 있을 때 내가 책임지고 너희를 풀어주도록 하겠다. 너희를 풀어줄 때는 고향으로 돌아가기에 충분한 재물까지 줄 것을 약속하겠다.”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재물까지 준다는 말에 포르투칼인들이 얼굴이 밝아졌고 잠시 자신들끼리 대화를 주고받은 포르투칼인들은 결국 나에게 협조할 것을 약속했다. 나는 그때까지 창고에 갇혀있던 포르투칼인들을 깨끗한 방에서 머물 수 있도록 조치하고 음식과 함께 갤리온에서 획득한 술까지 허락했다. 배불리 먹고 마신 포르투칼인들은 부상당한 자들을 제외하고 3명의 항해사와 11명의 선원들이 나카도리섬 정벌에 참가했다.
나카도리 섬 까지 오는 동안 이토 겐타로의 통역으로 좌수군 병사들은 포르투칼인 선원들에게 갤리온을 모는 방법을 배웠고 돛대를 조정하거나 돛을 펼칠 때는 병사들도 선원들을 도와서 함께 돛대를 잡았다. 갤리온은 판옥선과는 구조가 달랐지만 10여년 이상씩 배를 몰고 바다를 누볐던 좌수군의 병사들은 포르투칼인들의 설명을 듣고 갤리온의 구조와 주의할 점을 빠르게 배워갔고 타공과 진무들은 항해사들로부터 키를 잡고 갤리온을 보는 법을 배워갔다.
나카도리 섬에 무사히 도착하는 것만 생각하고 갤리온을 몰았다면 한 두 시간은 더 일찍 도착할 수 있었겠지만 오는 동안 병사들이 갤리온에 대해 배우고 실습하며 왔기에 예상 보다는 시간이 많이 걸렸다. 그러나 나는 그 결과에 충분히 만족했다.
‘좌수군 병사들이 기대이상으로 잘해주고 있어. 갤리온에 처음 탔는데도 배에 금방 적응한 것 같고 원래 배를 몰던 사람들이라서 그런지 갤리온이 항해하는 원리에 대해서도 금방 이해한 것 같아. 이대로만 간다면 몇 년씩 걸릴 것도 없이 1년이면 충분히 좌수군 병사들만으로 갤리온을 몰고 나갈 수 있겠어.’
갤리온을 무사히 몰고 나카도리 섬에 도착한 것에 만족한 나는 만족한 기분으로 나카로리 섬에 상륙했고 내 뒤를 이어 갤리온에 탑승하고 있던 좌수군 병사들이 섬에 상륙했다. 왜군들은 활과 화승총을 쏘며 저항했지만 총병들이 화승총으로 반격하고 포수들이 현자총통으로 철환을 날리자 왜구들은 좌수군의 화력을 감당하지 못하고 산속으로 도망쳤다. 항구와 주변 마을에서 왜군들은 몰아낸 것을 만족한 나는 왜군들을 추격하는 대신 현장으로 정리할 것을 명령했다.
“추격할 것 없다. 전투를 치른 현장을 정리하고 왜군들의 병장기와 투구 그리고 갑옷을 벗겨서 모아라 모두 좌수영으로 가져갈 것이다. 그리고 사망한 왜군들의 수급을 잘라 소금에 절여라. 좌수영으로 가져갈 것이다. 그리고 인근 마을에 부모가 없는 아이들은 나오라고 전해라 우리가 좌수영으로 데려갈 것이다. 서방이 없는 과부들도 나오라고 전해라 그들도 좌수영으로 데려갈 것이다. 우리를 따라가면 밥을 굶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것도 알려라.”
“예 좌수사 영감.”
김윤문은 힘차게 대답한 후 병사들에게 내 명령을 전달했다. 항왜들과 일본어를 구사하는 병사들은 인근 마을을 돌아다니며 고아와 과부들이 있으면 나오라고 외쳤고 병사들은 현장으로 정리하면서 땅에 떨어져 있는 왜군들의 병장기를 모으고 왜구들에게서 투구와 갑옷을 벗겼다. 부상을 당했을 뿐 사망하지는 않은 왜군들은 투구와 갑옷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몸부림치는 경우도 있었지만 좌수군 병사들은 그런 왜군들에게는 사정없이 발길질을 가했다.
“가만히 있어. 이놈아.”
“아직 숨이 붙어있는 것을 다행으로 여겨.”
부상자들은 죽이지 말라는 명령을 미리 내려놓은 덕분에 부상을 당한 왜군들은 죽음을 면했지만 좌수군 병사들은 저항하는 왜군을 사정없이 짓밟거나 두들겨 패고는 투구와 갑옷을 벗겨 갔다. 군사들이 한참을 움직여 병장기와 갑옷 그리고 투구를 모으자 제법 많은 양의 전리품이 쌓였다. 그렇게 현장을 정리하고 왜군 부상자들 가운데 몸을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는 자들 까지 병사들을 시켜 마을로 데려다 주자 남은 것은 왜군 전사자들의 사체뿐이었다.
“항구에서 왜군들의 수급을 자르고 소금에 절여라 그리고 사체는 곧바로 화장하도록 하라.”
내가 사체들을 바라보며 명령을 내리자 김윤문은 굳은 표정으로 대답했다.
“예 좌수사 영감.“
잠시 후 병사들은 항구에서 왜군 병사들이 앉아서 쉬던 오두막을 헐어서 장작으로 만들고 항구 한쪽에 화톳불을 피웠다. 화톳불에 장작을 쌓다시피 넣어 불을 크게 피웠고 건장한 병사들은 도끼를 들었다. 잠시 후 병사들이 왜군들의 사체를 가마니에 말아 항구로 가져오자 도끼를 든 병사들은 눈을 크게 뜨고 왜군의 목을 내리쳤다. 수급을 자른 사체는 곧바로 화톳불에 던져 화장했고 수급은 바닷물에 넣어 피를 빼고 소금물에 절여졌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나는 나도 모르게 눈을 지끈 감았다. 눈앞이 어두워지고 나서야 내가
눈을 감은 것을 깨달은 나는 기겁을 다시 눈에 힘을 줬고 어렵게 눈을 떴다.
‘끔찍한 장면이기는 하지만 조정에서는 수급의 수로 전공을 평가하니 어쩔 수 없지. 정신을 차려라 나는 사령관이다. 내가 약한 모습을 보여서는 안 된다.’
나는 이를 악물고 병사들이 왜군의 수급을 잘라내고 사체를 화장하는 장면을 지켜보았다. 잠시 후 모든 사체가 화톳불에 타올랐고 잘라낸 수급을 바닷물에 절여 가마니에 담자 나는 최대한 침착한 목소리로 김윤문에게 명령을 내렸다.
“왜군의 사체를 모두 화장한 후 왜군의 유골은 모두 바다에 버려라. 유골을 모두 버린 후 우리는 복강도로 돌아갈 것이다.”
“알겠사옵니다. 좌수사 영감.”
군관 김윤문의 대답을 들은 후 나는 낮은 목소리로 김윤문에게 말했다.
“복강도에 돌아간 후 오늘 출병했던 군사들에게 술을 내릴 것이다.”
술을 주겠다는 말에 김윤문은 크게 기뻐했다.
“감사합니다. 좌수사 영감 군사들이 크게 기뻐할 것입니다.”
“오늘 수고 많았다.”
가볍게 던진 한마디였지만 김윤문은 수고했다는 말에 놀랐는지 대답을 하지 못했다. 군사들이 정리를 끝내고 다시 갤리온에 오른 것은 이미 해가 진 다음이었다. 이언세는 밤에 바다에 나가는 것을 염려했지만 나카도리 섬에 더 머물고 싶지 않았던 나는 출항을 명령했다. 배가 항구를 떠나자 나는 갑판에 횃불을 밝히고 김윤문과 함께 전과를 확인했다.
“창검 등 병장기가 109점에 달하고 왜군의 활이 20개 그리고 화승총이 10정에 달합니다.”
김윤문의 보고를 들으며 나는 항구에서 획득한 전리품을 기록한 문서를 확인했다.
“항구의 오두막에서 찾아낸 것 까지 병장기가 5점 그리고 투구와 갑옷은 1벌이고.”
“왜군들의 투구와 삿갓이 94개, 갑옷은 89개이며 수급이 107개에 달합니다. 대승이옵니다. 좌수사 영감.”
나카도리 섬에 출병한 좌수군 병사들 중에 부상을 당한 병사는 몇 명 있었어도 전사자는 1명도 없었다. 단 1명의 전사자도 없이 이만한 전리품과 100개가 넘는 수급까지 가져가니 대승인 것은 확실했지만 나는 아쉬운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이곳에도 포르투칼인들이 넘겨준 화약과 화승총이 있었을 텐데 그것들을 놔두고 가니 아쉬운 마음이 드는 군. 여기까지 와서 화승총 10정만 가져가려니 아쉽다.’
아쉬운 마음이 드는 것은 사실이었지만 지금도 눈을 감으며 항구에서 왜군들의 수급을 자르는 장면이 떠오를 지경이었으니 나카도리 섬에서는 오래있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었다. 선장실에 술병이 있는 것을 떠올린 나는 선장실로 내려갈 생각을 했다.
“나는 피곤해서 이만 내려가겠으니 김군관에게 뒷일을 부탁하겠네.”
김윤문은 자신도 피곤할 텐데 피곤하다는 내색도 하지 않고 힘차게 대답했다.
“편히 쉬십시오. 좌수사 영감.”
나는 선장실로 내려가기 전에 이언세에게도 당부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날이 어두우니 배를 조심히 몰고 남만인들을 살펴보는 것을 잊지 말도록 하게.”
이언세도 다부지게 대답했다.
“심려를 놓으십시오. 좌수사 영감.”
김윤문과 이언세에게 배를 맡긴 나는 선장실로 들어가 문을 닫고 선장실에 달려있는 서랍을
열였다. 서랍 안에는 종이로 싸놓은 말린 생선과 술병이 들어있었다. 좌수군 병사들은 선장실을 수색하면서 술병을 여러 개 찾았고 선장실에게 찾은 물품들은 모두 내게 가지고 왔다. 나는 혹시나 필요할 경우를 대비해 와인이 든 술병 하나와 간식으로 먹을 말린 생선을 선장실에 챙겨놓았었고 오늘 목격한 참혹한 광경을 머리에서 지워버리기 위해 술과 어포를 꺼냈다.
좌수사가 자리를 비운 후에도 갤리온은 서서히 북강도를 향해 서쪽으로 나아갔다. 김윤문은 병사들에게 저녁밥을 먹인 후 낮에 전투를 치른 병사들에게 수면과 휴식을 허락했고 갑판위에는 김윤문과 이언세, 낮에도 배에서 내리지 않은 병사들 그리고 포르투칼인들과 이토 겐타로가 남아있었다. 갤리온의 키를 잡고 있던 항해사 드베로에게 갑판장 소아르스가 다가왔다. 드베로는 소아르스가 다가오자 무슨 일인지 물었다.
“갑판장이 무슨 일인가?”
소아르스는 드베로의 질문에 대답하지 않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정면을 보면서 작은 목소리로 말씀하십시오. 배신자 일본인은 지금 조선인들과 함께 있습니다.”
소아르스의 말에 긴장감을 느낀 드베로는 다급하게 물었다.
“무슨 말을 하려고 그러나?”
“2등 항해사님은 이대로 계시려고 하십니까?”
소아르스의 질문에 드베로는 다시 한번 물었다.
“그게 무슨 말이냐니까?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거야.”
드베로의 질문에 소아르스는 답답하다는 듯이 말했다.
“선장님께서 너그러운 분은 아니셨지만 2등 항해사님께는 잘해 주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왜 저들이 시키는 대로 하시려는 겁니까.”
소아르스의 말에 드베로는 무슨 말이냐는 듯이 물었다.
“그럼 지금 뭘 어떻게 하자는 말이야?”
“배의 키는 누가 잡고 있습니까. 2등 항해사님 아니십니까. 이대로 배를 몰고 히라도나 나가사키로 배를 몰고 가면 조선인들은 끝장 아닙니까. 배는 우리 차지구요.”
소아르스의 말에 드베로는 답답하다는 듯이 대답했다.
“그게 가능할 것 같은가? 조선인들이 바보인줄 알아. 자네도 봤을 텐데 저들이 갤리온에 대해 얼마나 빨리 이해하고 익숙해졌는지. 저들은 갤리온에 처음 탔을 뿐 우리만큼 바다에 배를 몰고 나왔던 뱃사람들이야. 그런 저들이 내가 엉뚱한 방향으로 배를 돌리는 것을 눈치 채지 못할 것 같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