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선 수군이 되었다-88화 (88/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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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왜와 포로들

한참을 고민하던 나는 좌수영으로 돌아간 후 갤리온을 획득한 사실을 선조에게 보고하기로 결정했다.

‘어차피 갤리온을 본 사람들이 한둘이 아니니 감춘다고 감춰질 일도 아니고 어설프게 감췄다가 선조에게 발각되면 선조의 의심을 사게 되니 그게 더 큰일이다. 차라리 남만인들 과의 전투 중에 남만선을 점령했다고 보고하고 좌수영에서 사용하겠다고 보고하자.’

물론 선조에게 보고하기로 결정했지만 순진하게 갤리온에 대해 낱낱이 보고할 생각은 없었다.

‘갤리온에 대해 따로 보고하거나 설명할 필요는 없겠지. 이번 정벌에 대해 보고하면서 우선 전과를 보고하고 남만선 3척을 획득해 항왜들을 좌수영으로 수송하는데 사용했다고 간략하게 보고하자. 이번에 구출한 조선인의 수가 150명에 왜군들에게서 노획한 병장기와 갑옷, 투구의 수도 적지 않고 왜군의 수급도 300구가 넘는데다가 항왜들이 2000명이 넘으니 잘하면 남만선 3척을 노획했다는 것은 다른 전과보고에 묻혀서 큰 화제가 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럼 갤리온은 그대로 내 차지가 되는 거지.’

큰 사건으로 다른 사건을 덮는 것은 현대의 한국에서 자주 봤었던 일이다. 선조를 비롯한 조선인들은 갤리온이 어떤 배이며 얼마만큼의 가치가 있는지 모르고 있으니 고토열도 정벌의 성공 소식과 함께 이번에 거둔 전과가 알려지면 선조나 조정의 대신들에게 장계 말미에 적힌 남만선 3척은 별로 주의를 끌지 않을 것 같았다.

이번 정벌의 전과와 항왜들의 규모를 알려서 선조와 조정대신들의 관심이 갤리온으로 향하지 않도록 만들기로 결정한 나는 저녁식사를 마친 후 선조에게 보낼 장계의 내용을 생각하기 시작했다.

1587년 4월 13일 오전 후쿠에 섬

전라좌수군이 후쿠에 섬에서 철수하는 날이었다. 후쿠에항에는 갤리온과 전선들이 정박해 있었고 좌수군 군사들과 항왜들은 좌수영으로 가져갈 물품들을 갤리온에 싣고 있었다. 주로 후쿠에섬에서 노획한 왜군들의 병장기들을 비롯한 전리품들과 좌수영으로 가는 동안 먹고 마실 식수와 식량이었다. 갤리온에 화물들을 전부 싣는 동안에도 갤리온에 탑승할 항왜들이 항구에 모여서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항구에서 갤리온과 판옥선에 화물을 싣는 작업을 감독하고 있던 김시민은 항구에 모인 항왜들을 보고는 놀랐다.

“아니 좌수영으로 데려갈 항왜의 수가 2100명이라고 하더니 과연 대단하구나. 그런데 어떻게 항왜들이 대부분 여인들이냐? 아이들도 많이 보이기는 하지만 대부분 젊은 여인들 같은데 이게 어떻게 된 일이냐.”

김시민이 항왜들을 보고 놀라자 군관 최도진이 다가와 조용한 목소리로 말했다.

“돌산도에 있는 항왜들의 처자식들과 남만인들에게 노예로 팔려가던 여인들입니다.”

“뭐 노예?”

김시민이 놀란 표정으로 최도진을 바라보자 최도진은 나지막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대부분 과부들 즉 서방이 없는 여인들이라고 합니다. 아이들도 돌산도에 있는 항왜들의 자식들이거나 과부들의 자식들이고 말입니다. 오도의 왜구들이 남만인들에게 과부와 아이들을 노예로 팔아넘기려는 것을 좌수사 영감께서 구출하셨습니다.”

최도진의 대답을 들은 김시민은 다시 한번 놀랐다.

“아무리 왜구라고 하지만 과부와 아이들 까지 노예로 팔 생각을 하다니 그것도 남만인에게 정말 흉악한 놈들이구나.”

최도진은 김시민의 말에 동의하며 말했다.

“이대로 오도에 놔두고 가면 여인들은 노예가 될 것이 분명하기에 좌수사 영감께서 구출하신 것입니다.”

김시민은 여인들을 너무 많이 데려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좌수사가 여인들을 좌수영에 데려가려는 심정도 이해를 했다. 젊은 여인들이 노예로 팔려간다면 어찌 될지 그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좌수사 영감께서 의외로 마음이 여리시구나. 아무리 여인들과 아이들이 불쌍하다고 해도 왜군들의 처자식들을 이리도 많이 거두시다니.’

김시민은 좌수사 이대원이 마음이 약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면서도 갤리온에 오르기 위해 줄을 서있는 여인들과 아이들을 보자 측은한 마음이 드는 것을 느꼈다. 왜인들이지만 남편 잃은 여인들과 아비를 잃은 아이들을 보니 불쌍하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김시민도 마찬가지였다.

‘주상전하께 보고하는 일은 좌수사 영감께서 알아서 하시겠지 이럴 때는 수사나 병사가 아닌 한낱 우후인 것이 마음 편하구나.’

항왜들을 보며 이런 생각을 하던 김시민은 갤리온에 식수와 식량을 모두 실었다는 보고를 받기가 무섭게 항왜들을 갤리온에 탑승시켰다.

“천천히 배에 올라와라. 모두 탈수 있으니 걱정할 것 없다.”

“너희 모두 데려갈 것이다. 걱정 말고 천천히 배에 올라와라.”

여인들이 발판을 밟고 배에 오르는 동안 좌수군 군사들은 부두와 갤리온의 갑판에서 항왜들을 안내하고 탑승자들의 대열이 무너지지 않도록 질서를 유지시키기 위해 애썼다. 군사들 중에는 배에 오르는 여인들을 보며 한숨을 내쉬거나 간혹 뚫어지게 쳐다보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군관들과 나이가 많은 고참 병사들과 그런 병사들의 뒤통수를 내려치거나 고함을 질러 군사들이 다른 마음을 먹지 못하도록 단속했다.

“어디를 보고 있느냐. 정신 차려라.”

“여인을 범하는 자는 이유를 불문하고 참수하라는 좌수사 영감의 명이 있으셨다. 목이 달아나고 싶지 않으면 허튼 생각하지 말아라.”

군관들과 고참들의 고함에 여인들을 쳐다보던 병사들은 다시 정신을 차리고 마음을 다잡았다.

철수를 앞두고 항구에 나와 있었던 나는 그 광경을 보고 이억기에게 다시 한번 명을 내렸다.

“좌수영으로 돌아가는 길에도 불미스러운 일이 없도록 하라. 여인을 희롱하는 자는 이유 불문하고 참수할 것이며 그 목을 좌수영에 효수하여 군의 기강을 바로 잡을 것이다.”

내가 화난 목소리로 명을 내리자 이억기는 군기가 잔뜩 들어간 이병의 자세로 군례를 올리며 대답했다.

“명을 받들겠사옵니다. 좌수사 영감.”

이억기의 대답을 들은 나는 이억기의 대답에 만족하지 않고 직접 호위병들을 거느리고 항왜들과 병사들이 배에 승선하고 있는 항구를 직접 누비기 시작했다. 수은 갑옷차림의 내가 호위병들과 함께 항구를 누비기 시작하자 확실히 장수들과 병사들의 움직임이 달라졌다. 장수들은 물론 병사들도 한결 재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고 병사들이 배에 오르는 시간도 점차 빨라졌다. 그렇게 군사들과 항왜들이 갤리온과 전선에 승선하는 동안 사화동은 이번에 좌수영으로 잡혀가는 왜군 포로들을 달래고 있었다.

“잘된 일이라고 생각하게 장군님께서는 인자하신 분이시니. 조선에서도 시키는 일만 열심히 하면 특별히 어려운 일은 없을 것이야.”

사화동이 좋은 말로 달랬지만 포로로 끌려가는 왜군들의 마음이 편할 수는 없었다. 사화동의 말을 듣다가 화가 치민 타가미 마고시타가 사화동에게 대들며 말했다.

“포로로 잡혀가는데 잘된 일이라니 그게 무슨 말이오. 이대로 끌려가면 죽이지는 않는다고 해도 죽도록 일만 시킬 것이 아니오. 내말이 틀렸소. 그래서 우리를 잡아가는 것이 아니오.”

“그만해라.”

사쿠라타니 로쿠카즈는 놀라서 마고시타를 말렸지만 다른 포로들도 마고시타의 말에 동조하고 나셨다.

“맞아. 죽지 않으면 뭐해 매일 같이 매 맞고 노예처럼 일만 할 텐데.”

“마고시타의 말 대로야. 조선인들이 일시키면서 밥은 제대로 주겠어.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일만 하다가 병들거나 지치면 그대로 죽이지 않겠어.”

“어차피 조선에 끌려가서 죽을 거라면 차라리 고향에서 죽자.”

포로들이 타가미 마고시타의 말에 동조해서 분위가 험악해 지자 사화동은 잠시 포로들을 바라보다가 호통을 쳤다.

“그렇게 죽고 싶으면 무엇을 기다리고 있느냐 지금 당장 바다에 뛰어들지 않고 왜 할복을 하고 싶으냐. 조선군에게 부탁해서 칼이라도 빌려올까. 죽고 싶은 사람은 지금이라도 일어나라 내가 직접 목을 쳐줄 테니.”

사화동의 호통에 포로들은 놀란 듯 하나같이 입을 다물었다. 사화동은 그런 포로들을 비웃으며 말했다.

“장군님이나 조선군이 일 시킬 사람이 없어서 너희를 데려가는 것 같으냐. 천만의 착각이다. 이미 돌산도에는 일하고 있는 장정들의 수가 500명이 넘고 장군님께서 마음만 먹으면 5000명 이상을 동원하실 수 있다. 너희 200명 정도야 장군님이나 조선군은 이곳에서 바로 죽여도 큰 차이가 없다는 말이다. 알겠느냐.”

사화동의 호통에 놀란 타가미 마고시타는 기가 죽은 표정으로 사화동에게 물었다.

“그럼 조선군은 왜 우리를 잡아가는 것이오? 일을 시킬 사람도 필요하지 않는데 말이오.”

그런 마고시타의 질문은 사화동의 비웃음을 살 뿐이었다.

“그럼 모두 죽이고 갈까.”

“그게 무슨 말이오? 우리를 모두 죽인다니.”

“조선군은 이곳 후쿠에섬을 정벌했고 너희는 조선군에게 패해서 포로로 잡힌 것이다. 조선군은 너희를 굳이 조선으로 잡아갈 필요가 없다. 그냥 죽이고 가면 간단하지. 왜 내말이 틀렸느냐?”

사화동의 말에 타가미 마고시타는 물론 포로들은 아무도 대답하지 못했다. 사화동의 말대로 일본에서는 전쟁에서 패한 장수가 처형당하는 일은 흔하게 일어나는 일이었다. 물론 전쟁이 끝난 후에는 일반 병사들 까지 일부러 죽이는 경우는 드물었지만 그것은 그 병사들이 농민들이기에 노동력으로 그리고 병사로써 가치가 있기 때문에 죽이지 않을 뿐이었다. 전쟁에서 승리한 영주가 상대방의 영지를 점령한 후 그 땅에서 세금을 걷고 병사들을 징집하기 위해서 그 땅에서 농사를 짓는 농민들이 필요하고 또 다시 전쟁이 일어나면 그 농민들을 병사로 징집할 수 있기 때문에 병사들을 죽이지 않을 뿐이지 그럴 가치가 없다면 충분히 죽일 수 있는 일이었다.

“너희도 알고 있겠지. 전쟁 중에서는 상대방 영지의 마을과 논에 불을 지르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말이다. 조선군이 너희를 죽이고 마을과 논에 불을 지르지 말아야 하는 이유가 있느냐.”

일본 전국시대 당시 일본에서는 상대방 영주의 영지에 불을 지르는 행위도 빈번하게 일어났다. 전쟁 중에 상대방 영주의 영지를 점령하기 어렵거나 불가피하게 철수해야 하는 경우 상대 영주가 세금을 걷지 못하도록 곡식이 자라고 있는 논과 밭에 불을 지르고 그와 함께 마을에 까지 불을 지르는 것은 전쟁 중에 흔하게 일어나는 일이었다.

포로들이 대답을 못하자 사화동은 딱하다는 듯이 포로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장군님은 너희에게 살 기회를 주시는 것이다.”

사쿠라타니 로쿠카즈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물었다.

“사실이오. 조선군을 따라가면 살수 있다는 것이.”

사화동은 로쿠카즈를 바라본 후 다시 포로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나를 봐라 나는 불과 2달 전에 긴시요라와 함께 조선으로 떠났었다. 나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조선으로 건너갔었지. 그런데 그중에서 몇 명이나 오도로 살아 돌아왔느냐.?”

사화동의 말에 포로들은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조선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너희도 알 것이다. 나는 장군님이 이끄시는 군대에 포로로 잡혔다. 나 까지 전부 500여명이 포로로 잡혔다. 그들 외에는 모두 차가운 바다 속에서 물고기 밥이 되고 말았다.”

포로들도 배를 타는 사람들이기에 바다에 대한 경외심을 가지고 있었다. 자신이 아는 사람들이 물고기 밥이 됐단 소리에 포로들은 자신들도 모르게 몸을 부르르 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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